김재오 웃게 해주기. (……보편적으로는 선물을 한다거나 이벤트를 해주며 이런 말을 하곘지만. 검지로 올리고 있던 입꼬리를 소지로 바꾸고 엄지로는 뺨을, 검지와 중지로는 눈꼬리를 잡아 그대로 눌렀다. 어디까지 봐주는지 테스트하는 건 아닌데, 지금 네 표정이 도저히 웃지 않곤 버틸 수가 없어. 결국 고개를 돌려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괜찮네요. 윤 부엉이. (낮은 목소리로 곱씹으니 제법 우스워 따라 웃어 보였다. 익히 알고 있던 부엉이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스스로를 대입해 보니 생각보다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서.) 예전엔 잠도 잘 안 잤어요. 그러니까 매번 술이나 카페인 달고 살고. 근데 몸이 축나는 게 느껴지니까 그나마 커피보단 덜 센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입에 맞더라고요. 블렌딩 차 다양하게 마시는데,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건 역시 홍차요. 나름 티백 말고 찻잎으로 직접 우려서 마시는 걸 좋아해요. 차 우리는 과정까지가 취향이라. 같은 걸로 선물할까요?
버릴 수 있을 때 버리는 것도 능력이라는데, 그게 영 쉽지 않네요. (조금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숨길 수가 없다. 지금껏 감정을 잘 숨긴다고 착각했던 것도 감정을 드러낼 만큼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고. 이럴 땐 미성숙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한 미소는 멋쩍은 미소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상대 역시 비슷한 멋쩍음을 느낀 건지, 내밀어진 잔에 내 잔을 살짝 부딪히며 그제야 편안한 미소로 정착했다. 남은 술을 다 비우고 내려두어 스스로 잔을 반쯤 채우며.) 아, 둘 다 좋은데 고르라면 눈이요. 여름보단 겨울이 좋기도 하고, 비는 맞으면 불편한데 눈은 좋더라고. 비는 비대로 좋지만 안에서 밖을 볼 때 좋고, 눈은 직접 맞는 걸 꽤 좋아해요. 형은요?
텔레파시가 통했나,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김재오, 이제 텔레파시 가능하네. (아진이의 생일, 패잔병처럼 남겨진 우리가 맥주를 마시며 텔레파시를 할 줄 아네, 모르네, 투닥거렸던 게 떠올랐다. 그때 난 널 늪으로 밀어버릴 생각만 했는데, 어느새 우린 유치한 농담을 가능케하는 사이가 됐어. 근심만 가득하던 얼굴이 그나마 풀어지는 걸 보고도 안심이 되질 않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으니 젓가락이 건네졌다. 받아들어 대충 아무거나 집어 입에 넣곤 네 몫의 초밥에서 와사비를 일일이 덜어냈다. 마구 헤집어놓은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정갈하게 정돈하여 바로 먹을 수 있게 네 쪽으로 나란히 줄을 세우며.) 이따 집에 갈 때 내 차로 같이 가. 바이크는 두고. (나야 내일 외부 일정이 없으니 네가 차를 가지고 출근하면 되니까. 가뜩이나 요즘 들어 네가 바이크로 이동하는 게 불안했는데, 오늘 표정이며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대로 바이크를 타면 탈이 날 것 같아서. 초밥을 하나 집어 간장을 살짝 찍어 네 입에 먹여주고서야 젓가락을 내려뒀다. 그나마 나를 의식하느라 먹기라도 하는 것 같으니, 다 먹을 때까진 일 얘기는 꺼내지 않을 생각으로 옅게 웃으며 널 바라봤다.)
@forxvxrho (멈췄던 손을 느릿하게 움직여 잔을 입가로 가져오며 입꼬리를 올렸다.) 근처뿐이겠어, 발 닿는 곳 전부 영역으로 만들 것 같은데. (술을 조금 남겨두고 잔을 내려두려다 네 반응에 고개를 내저으며 남은 술을 전부 들이켰다.) 주문하려던 걸로 해요. 술 안 가려.
@BabelOwner (가까워진 거리감은 자연스럽게 마주함이 아닌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쥐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고쳐 메며 고개를 돌려 옆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게요, 이 시간에 여기서 보니까 진짜 어른 같네. 식사는 했어요?
그런데 희망이란 게 생긴 거야.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겼고, 그 애를 위해 뭐든 다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어요. 눈앞에서 그 애가 욕조에 처박혔을 때, 그 작은 몸을 짓누르던 손이 내가 그토록 사랑을 구걸하던 어른이었을 때 다짐했어요. 내 목숨은 앞으로 그 애 거라고. 그 애를 지키기 위해, 그 애가 원하는 대로 다 했어요. 그런데도 난 여전히 부족했고, 그 애는 나를……, 조금은 특별하게 생각했을까. 분명 그렇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모르겠네.
아주 어린 나이에 행복한 일상이 깨지면 바로 실감할 순 없더라고. 그냥 이건 잠시 지나가는 폭풍우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들고 축축해진 땅도 바짝 마를 거다. 그때의 난 그 나이에 맞게 적당히 희망차고 단순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동화책처럼 달콤하지도, 재밌지도 않잖아요. 어린 나이에 무언가 깨지면,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영혼은 그 순간에 가둬지는 거예요. 그러니 내 영혼의 무게는 가벼울 수밖에 없지. 어리고 어리던 그때 이후로 자라질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