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무겁고 겸허히 받들겠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더 깊이 듣지 못했습니다.
더 넓게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저를 믿고 함께해 주신 시민 여러분, 선거 운동원과 자원봉사자,
또 캠프 관계자, 당원 동지 여러분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함께 경쟁해 주신 후보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당선되신 오세훈 후보께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거리에서 잡아주신 손,
끝까지 함께해 주신 응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진보정치의 꿈을 이어가겠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 동안 서울 시민들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 집에서 일터로, 일터에서 집으로 향하는 고단한 발걸음들이 이 서울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가난해지지 않는 도시, 집값과 월세 걱정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 도시, 장애인과 여성, 성소수자와 이주민, 청년과 노인 모두 밀려나지 않는 도시. 삶이 너무 힘들어서 다음날 아침 일어나는 게 싫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서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선거운동 동안 정말 많은 시민들을 뵈었습니다. 응원의 말씀, 자신의 절절한 사연, 진보정치에 대한 꾸짖음의 말씀을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거대한 빌딩과 화려한 개발의 도시가 아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도시의 시민들이셨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호등 연대라는 이름으로 공동대응에 나서주신 노동당과 녹색당 동지들, 당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꺼이 선거에 뛰어들어주신 전국의 후보님들, 저와 진보정치의 미래에 소중한 한 표를 보내주신 모든 유권자 시민들, 부족한 저와 함께 선거운동에 나서주신 수많은 당원님들, 불철주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이번 선거를 이끌어준 선거 캠프원들, 그리고 노동현장 곳곳에서 정의당을 알려주신 노동조합 동지들.
보내주신 마음과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저의 부족함에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부족했던 점들은 모두 저의 과오로 생각해주시고, 진보정치를 향한 희망의 불씨는 꺼뜨리지 말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함께 선거를 치른 모든 후보들께도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전합니다. 경쟁 관계였지만, 서울의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개표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당선되실 후보님께서 부디 서울을 평등한 도시로 만들어가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노동 현장에서, 시장 골목에서, 지하철역 앞에서, 거리에서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의 얼굴을 기억하겠습니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모든 시민들의 목소리가 진보정치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선거는 끝났습니다만,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진보정치의 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소득만으로 살 수 있는 사회, 공공의 책임이 강화된 사회,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연대와 평등이 일상이 되는 사회를 향한 꿈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 꿈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시민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내주신 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진보정치의 여정을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2026.06.03.
권영국 드림
광주시 무등산국립공원 내 저수지인 ‘무동제’에 설치한 ‘인공 수달섬’은 물가에 섬 형태로 설치한 인공 소생태계로, 수달이 쉽게 올라와 쉬거나 배변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인데요. 지난 2월 수달이 수달섬을 이용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촬영됐다고 합니다.
https://t.co/ID9kR83kF3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다. 이날이 될 때마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이 추도사를 꺼내 읽어본다. 당신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세월 적이었던 둘의 관계를 담담하고 먹먹하게 읊는 부분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속 주류화된 민주진영과 여전히 변방에 위치한 노동사회운동 간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댓글에서 계속)
영상 속에 박아무개(사망 당시 59살)씨는 격리실 침대와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 채 4시간 이상 방치됐다가 숨졌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의료진도 격리실에 들어와서 보지 않았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주검이 된 자는 말이 없습니다. 유족이 대신합니다. 한겨레는 그동안 보도해온 정신병원 사망사건 환자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https://t.co/M3jvNsDi4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