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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수레카 데이비스
내가 괴물이라고?
책을 읽는 여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괴물화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6년 현재, 아시안의 외모로 책을 읽으며 살아가는 비혼 여성인 나는 여전히 괴물일까?
아니면 정상이라는 경계선 안에 무사히 안착한 사람일까?
괴물은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탄생하는 것일까?
《괴물의 탄생》은 역사 속에서 ‘괴물’이라 불려온 다양한 존재들을 따라가며, 괴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본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 신의 자식인가 아닌가의 경계, 여성인가 남성인가의 경계, 이 밖에 성정체성, 장애, 이민자 등 소위 사회가 정한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를 위협하는 이들이 어떻게 괴물로 규정되고 타자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온몸이 털로 덮여 있거나 아주 작은 사람들, 전설 속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사람처럼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사례들이 제시된다. 이때까지는 괴물이라는 개념이 나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그 시절 귀족들처럼 그저 그들의 생김새를 '구경'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글이 진행될수록 점차 괴물의 조건은 현재에는 전혀 이상하게 인식되지 않는, 그저 개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들로 좁혀진다. 피부색과 같은 외모적 특징부터 부모의 인종, 성정체성, 성별까지, 나에게도 닿아 있는 것들이 어떻게 괴물화되는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시사한다.
특히 ‘여성의 괴물화’ 파트를 읽으면서 뿌리 깊은 여성혐오의 역사를 목도하며 가슴이 답답했다.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나는 괴물이지 않을까?
정상과 괴물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들은 결국 두려움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도태될 것에 대한 두려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을 타인에게 겨누며 인류는 수많은 괴물을 탄생시켜왔다.
계속해서 혐오로 도피할 것인가?
인간은 유연한 존재이다. 경계 밖의 존재들에 의해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지금의 낯섦이 내일의 정상성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범주화와 경계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시도 보다는 유연한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득 처음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괴물이라고?
당신의 눈에는 내가 괴물이 보이나요?
#책추천 #인문학책추천
#도서제공#서평단
『프랑켄슈타인』 메리 W. 셸리
|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는 것이, ‘프랑켄슈타인’을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은 죄다 괴물이고 그러한 괴물의 이미지를 지칭하는 단어 역시 ‘프랑켄슈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마주하고 읽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괴물이 등장하는 고전 호러 소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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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불리는 그 괴물은 빅토어 프랑켄슈타인의 손에서 태어났다. 창조의 가장 은밀한 신비를 세상에 펼쳐 보이겠다는 야망을 가진 빅토어는 광기에 가까운 충동으로 결국 생명을 불어 넣는데 성공했으나, 그의 피조물은 기대와 달리 섬뜩하고 역겹기만 했다. 이름도 없이 괴물이라 불리며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피조물은 빅토어에게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빅토어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괴물은 빅토어가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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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괴물이 빅토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었다.
괴물이 자신의 과거를 독백하는 장면은 세상 모든 것들이 신비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아이의 시선처럼 그려졌고, 아이의 시선을 옮겨 놓은 듯한 문장 역시 아름다웠다. 괴물의 곁에서 세상을 알려주는 이는 없었지만,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자연의 모든 것이 스승이었고, 그가 몰래 지켜보며 좋아하게 된 가족 역시 스승이었다.
그 사람들의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나는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소. 그들이 슬퍼하면 나도 우울해졌고, 그들이 기뻐하면 나도 덩달아 기뻤소.
괴물은 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가족이라면 괴물인 자신에게도 곁을 내어줄 거라는 기대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그토록 다정하고 아름다운 가족조차도 괴물을 받아들여주지는 않았다.
괴물이 자신을 창조한 빅토어 프랑켄슈타인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빅토어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책에서 서술되는 빅토어의 가족은 사랑이 흘러넘쳤고,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빅토어가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도 당연하게 사랑을 보답할 것이었다.
하지만 괴물, 빅토어의 피조물. 빅토어가 만들어낸, 어쩌면 그의 자식과도 같은 괴물에게는 그 사랑이 돌아가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괴물이 받는 멸시와 혐오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빅토어의 가족을 이토록 사랑이 차고 넘치는 존재들로 그려낸 것은 아닐까.
책에서 엉망이 된 빅토어를 품어주고 이끌어주는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모두에게 외면받고 자신의 창조주에게조차 혐오 받는 괴물의 처지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태어난 생명을 학대하고 방임하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부모가 가볍기 짝이 없는 형량을 받은 기사를 끊임없이 접할 수 있는 오늘날.
제대로 마주하며 읽은 이 소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괴물처럼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하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도 없고,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괴물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빅토어를 이해한다.
섬뜩하고 인간을 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괴물이 제 짝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지성을 가진 이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위협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살인을 저지른 괴물이다. 그다음은 더 쉬울 테다.
그러니 빅토어가 제 피조물을 품지 못한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한 존재는 괴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보기만 해도 모든 인간이 달아나고 외면하는 이 세상의 오점, 괴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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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이노트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윤혜성
단순히 복제인간 SF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삶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던 책.
우리는 불편한 감정일수록 애써 외면하려 한다. 어쩌면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건 좋은 모습만 골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다른 무언가를 좇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놓치기도 한다.
나보다 좋은 나를 마주한다는 설정이 결국은 그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모먼트가 너무 좋아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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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_메리 W.셸리
나를 사랑하지 않는 창조주에게, 한낱 피조물은 어떤 애정의 방식을 갈구했어야 했을까.
그에게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한 아버지란 작자에게, 책임감 하나 없이 창조된 생명은 어찌 비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 줄 알았다. (프랑켄슈타인은 그 존재를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끔찍한 외형의 피조물을 마주한 프랑켄슈타인은 역겨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놈을 버리고 도망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존재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었고, 그 넓은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머물 자리는 없었다. 아마 그는 자신을 만들어낸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적어도 자신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는 말아주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말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조차 확인받지 못한 채 버려진 것.
이름도.
가족도.
집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일>>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마주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만을 보고 그를 두려워했고, 그가 내미는 손에는 돌을 던졌다. 그는 선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누구도 그에게 선함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결국 사랑을 갈구하던 존재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 만큼 세상에 상처를 돌려주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을 버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간다.
처음에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가, 어느 순간 사랑받지 못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사랑까지 짓밟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흔히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괴물의 얼굴도, 그가 저지른 잔혹한 행위도 아니라, 한 생명을 만들어놓고도 그 생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인간의 무책임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놓고도 그에 따르는 책임은 외면한 채, 자신이 저지른 일을 모른 척 방치해버리는 사람들.
어쩌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런 뒤틀린 이들을 ‘부모’라는 명목하에 못 본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는 과연 어디까지 선할 수 있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사랑을, 아무도 건네지 않은 사랑을 그는 어떻게 배워야 했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