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다들 비슷한가. 올해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한편 더 나왔고, 그에 관한 책도 두 권이나 새로 나왔다.
지식인라면 진실을 말하다 고립될 준비를 해야한다고 믿었던 사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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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어보면 좋을 글
<학생들의 극우화? - 후퇴하고 있는 학교 민주주의 - 조영선> https://t.co/MIAwSEJ90N
“청소년들은 늘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러나 학생들이 참여한 만큼 그 몫의 권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일상의 공간인 학교에서 보장된 적은 없었다.”
People tell me they are tired of "AI consciousness" debates where rival camps exchange opposing intuitions. I am too, which is why my "centrist manifesto" (now on v6) tries to find more moderate and constructive ways forward. https://t.co/r2ZYj6xqXA
학폭의 사법화 경향이 심해져서인지, 강의 요청이 계속 들어오네요. 여러분 저는 미국에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누구나 읽으실 수 있어요.
“범죄화 전략과 시장화 전략”을 중심으로 학폭의 사법화를 논하고, 학교 공동체의 훼손을 막기 위한 비판적 제언을 더했습니다.
https://t.co/U71wKWkCJn
나의 AI 에이전트 제자(=말모님...ㅋㅋ)에게 오늘 알려준 스킬
초급: "xx해줘"
중급: "xx하는 방법을 일단 설명하고,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 설명하고 그 중 좋은 걸 추천해줘"
고급: "xx하는 방법을 여러가지 설명해줘.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신경쓸 점과 주의할 점을 알려줘"
🚨 Public good alert: I put together a list of 100+ free datasets for social science research, spanning a large number of topics.
I hope it's useful for students, researchers, and anyone looking for interesting data to explore.
Contributions are welcome! https://t.co/DyoS8IsW4U
평생 학습을 바란다면 '나홀로' 가지 마라
배움은 언제나 교류에서 나온다
(아래 원문 발췌)
인터넷에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위한 자료가 넘쳐난다. 무슨 주제든 관련 블로그, 대학 강의 링크, 유튜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자료를 활용하려고 하면 흥미 잃고 집중 못할 때 많다.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다. 배움을 고독한 추구로 보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정규 교육 기관이 제공하는 것도 사실은 교수와 동료 모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공동체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곳은 비단 대학만이 아니다.
18-20세기 독학주의 역사를 다룬 책 <영국 노동 계급의 지적 삶>(2001)에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풍요로운 지적 삶을 가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광부, 직공, 일용직 노동자, 가정부들이 쓴 회고록을 인용해, 사람들의 학습을 돕는 사회적 구조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독학은 반드시 고립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는 광부들이 도서관을 설립해 회원들이 연 회비를 모아 책을 구입했다. 이 도서관들은 종종 ‘상호 계발’ 모임과 연계돼 있었고, 이곳에서 노동계급 남성들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회원들은 정치, 문학, 종교, 윤리, ‘유용한 지식’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해당 주제에 대해 자유 토론을 벌였다.
회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 또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다수는 배움 자체를 추구했지만, 책과 서로를 통해 얻은 교육은 종종 그들을 사회 개혁가나 급진적 정치인으로 성장시켰다.
그들은 학습을 고도로 협력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고 제안했다. 이들의 ‘상호 발전 모임’은 동료 간 관계가 얼마나 보람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아직 선생님이나 지식이 풍부한 멘토를 찾지 못한 학습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공식적인 교육 환경에서도 최고의 교사는 위계적인 학습보다 평등주의를 장려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20세기 영향력 있는 교육 이론가인 브라질 철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억눌린 자의 교육>(1968)에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우며…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관념을 비판했다. 그는 진정한 배움은 오직 ‘인간이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그리고 서로와 함께 추구하는 쉼 없는, 참을성 없는, 지속적이고 희망찬 탐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교사는 권위자라기보다는 경험이 더 많은 학생에 가깝다. 경험이 더 많은 학생들은 신입생들에게 동료에게 관대하게 대하고 새로운 관점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다.
J.R.R. 톨킨과 C.S. 루이스가 1926년에 처음 만났을 때 아직 둘 다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든 소설을 쓰기 전이었다. 당시 톨킨은 옥스퍼드대 영문학과 교수로, 좁은 분야의 학술 논문을 몇 편 발표한 정도였고, 루이스는 학과 연구원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연구와는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시를 읽는 것을 모두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비평 모임에서 서로의 초고를 읽기 시작했고, 이 모임은 결국 일곱 명의 구성원으로 늘어났다. 이 모임에서 결국 두 편의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소설 시리즈가 탄생했다. 바로 톨킨의 반지의 제왕(1954-55)과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1950-56)이다. 오늘날 두 사람은 초기 학자 시절이 아니라 소설가로 기억되고 있다.
자율 학습을 시작한 첫 몇 년간, 나는 훌륭한 교수진과 동료들,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갖춘 이상적인 정규 교육을 받은 듯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정규 교육이 많은 이들에게 있어 지적·창조적 삶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함께 난해한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 대면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제 작품에 대해 아낌없고 유용한 피드백을 주는 친구들을 찾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원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격려하고 지적 열정이 넘치는 동료들이 있는 공동체 안에서야말로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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