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료들에게> 전시 소개글 우연히 읽고 너무나 감명받다
“모두가 퀴어한 삶에 대해, 경계 없는 지대에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어렵다. 누가 그런 삶에 대해 쓴 글은 기만적이라고까지 느껴진다. 퀴어한 관계는 ‘아이를 개로 대체하고, 결혼을 동거로 대체하고, -
‘삶이 아주 느린 자살처럼 느껴질 때 나는 이 시를 자주 복용한다’_ 문학평론가 신형철
그것은 릴케의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라는 시로 파리에 머물 당시 루브르에 소장된 아폴로의 토르소를 보고 쓴(추정) 작품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두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1. 박물관에 흔한 토르소 조각상을 보며 느낀 것이 어찌 이리 깊을까, 괜히 릴케가 아니구나
2. 결국 시의 마지막 문장에 방점이 있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신형철은 시인을 따라 루브르의 토르소를 상상하며 느긋하게 시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 마지막 구절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친다 했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아폴로의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몸통은, 바로 우리의 삶이 언제나 그처럼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상태에 있다고. 그러므로 변화란 예외도 ���고 끝도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_ 릴케
거기 두 개의 눈망울이 무르익고 있던
아폴로의 엄청난 머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토르소는 지금도 촛대처럼 불타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사물을 보는 눈이 틀어박힌 채,
그대로 남아 빛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가슴의 풍만함이
너를 눈부시게 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허리를
조용히 돌리며 보내는 하나의 미소가
생명을 가져다주던 그 중심을 향해 흐르지도 않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돌은, 두 어깨는 투명한 상인방 같지만
밑은 흉측하고 볼품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수의 모피처럼 반짝이는 일도 없고,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마다 마치 별처럼
빛이 비치는 일도 없으리라.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손재준 옮김)
관람객 기록을 깨며 영광의 한해를 보낸 한국 미술관들의 2026년 라인업을 보니 아쉬움이 있음. 국현은 언제적 데미안 허스트를 모셔오는지. 벽지 그림 찍어서 파는 업자 취급받는 30년전 퇴물을 핫한 서울에서 왜 회고전을 해주는지 이해불가. 안성재 앞에서 분자 요리��는 수준의 '감다뒤' 기획 같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예술은 나라가 부유한 시절에 나왔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가 있고 가까운 과거에는 일본 거품경제 시절 애니, 시티팝이 있고..
나는 이걸 '풍요의 감성'이라고 칭하는데 무언가 결핍되고, 동기가 필요할 때 풍요의 감성을 감상하면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사람은 공감을 원하기에 결핍될 때는 결핍의 감성을 찾는다. (이별하고 이별 노래 듣는 것 같이)
공감에는 '안정'의 효과가 있지만, 극복의 힘은 없다.
극복은 정반대의 힘. 즉, 결핍에는 풍요가 필요하다.
풍요로운 시절에 풍요로운 마음으로 만든 작품들... 분명한 힘이 존재한다.
성형한 얼굴, 보정을 통해 왜곡된 얼굴을 자주 보다 보면 인간의 눈은 뭐가 자연스러운지, 심지어 무엇이 예쁜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순간 잊어버립니다.
예쁜 일��인 인스타 유명인 사진보다 차라리 연예인 동영상을 보라고 하는 이유는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이 글 인용 ⤵️https://t.co/FkaKnRmw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