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있는 학생단위들이 여럿 모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도 있다. 선관위 비판은 물론, 현재의 논란이 짚지 못하는 우리 민주주의로부터 침묵당한 이들의 존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자 했다. 조건이 어려워도 할 말은 해야 하고, 할 일은 해야 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경찰이 투표소 앞에서 시위대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다들 너무 충격적이라며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지난 수십년 간, 아니 당장 지금도 노동자 농민 빈민 이주 노동자들이 저것과 비교할 수도 없이 공권력의 폭력에 놓였을 때는 뭣 했냐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만...당연히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논평] 나는 바꿀 수 없다고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831표, 2.13%. 저는 이번 선거의 숫자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 숫자는 단지 득표수가 아니었습니다. 시설에 갇혀 살던 사람도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제로 이 도시의 투표용지 위에 남은 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 앞에서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장애인권리를 약탈해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5선 서울시장이 되었습니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의 이름으로 뒤로 밀어온 정치가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이 결과 앞에서 저는 이 도시가 아직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 우리가 왜 더 넓게 만나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시설에 있을 때 저는 선거가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투표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꿀 힘이 없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살지, 언제 밖으로 나갈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할지 스스로 정하기 어려운 삶 속에서 선거는 너무 먼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계속 움직였지만, 저는 그 움직임에 ���을 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탈시설한 뒤에도 곧바로 정치가 제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2021년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로 이름을 올렸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 앞에는 더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 나왔다고 해서 위험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살아가며 마주해야 하는 위험들은 계속 쏟아졌습니다. 저는 철거민 투쟁의 당사자로, 다시 도시에서 밀려나는 사람으로, 당장 삶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선거를 이번처럼 제 몸으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투쟁의 현장에서 제 삶을 조금씩 꺼내왔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느린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이 제 몸의 속도로 세상에 닿는 방식이었습���다. 오래 삼키고, 오래 생각하고, 오래 걸려 겨우 말이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제 안에서 문장이 되고, 장면이 되고, 투쟁의 말이 되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달랐습니다.
선거는 빠���게 흘러갔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고, 모르는 시민 앞에서 제 이름을 말해야 했습니다. 기호 6번 조상지라고, 탈시설장애인당이라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제 말이 늦게 도착할까 봐, 제 몸의 속도가 선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제가 이 선거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빠른 시간 속에서 저는 동료들의 힘을 더 깊이 느꼈습니다. 제가 멈추면 함께 멈춰주는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제 말이 늦어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선거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고, 저에게 다시 알려주는 연대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가 무엇인지 새롭게 배웠습니다.
정치는 내가 더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멈춰 서야 하는지 감각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대신 말할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 앞에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정치의 바깥에 남겨지지 않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돈의동 쪽방촌에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글을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 몸이 아프지만 장애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 가난과 병과 고립 속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며 시의원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오래 멈추었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삶을 대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설에서 살아온 제가 쪽방에서 살아온 사람의 시간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밀려난 사람, 갇힌 사람, 아파도 증명받지 못한 사람, 읽히지 못한 사람, 바꿀 힘이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선거가 누가 누구를 대표하거나 대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거는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대신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힘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따로 ���려진 삶들이 서로를 정치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이 이 도시에서 함께 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를 하며 저는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장애인운동의 동료들만이 아니라, 빈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진보정당, 지역의 시민들, 이름을 다 적을 수 없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저를 지지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제의 사람들이 탈시설장애인당의 선거를 지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선거가 누구와 누구를 만나게 하는 일인지, 저 역시 선거를 치르며 배웠습니다.
저는 더 많이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저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받은 표, 우리가 거리에서 나눈 말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설과 쪽방이 만났습니다. 장애와 가난이 만났습니다. 노동과 탈시설이 만났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과 말을 천천히 꺼내는 사람이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같은 정치의 자리 위에 함께 섰습니다.
저는 돈의동에서 멈춰섰던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멈춤은 제가 부족해서 생긴 침묵만은 아니었습니다. 함부로 대신 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멈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기만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해하기 위해 듣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아직 닿지 못한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 목소리가 저와 함께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길을 만들겠습니다.
저를 만나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느린 제 말을 기다려주신 분들, 제 손을 잡아주신 분들, 기호 6번 조상지의 이름을 기억해주신 분들께 고맙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선거의 의미를 함께 만들어주신 동료들, 동지들, 연대자들께 고맙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거운동의 시간에도 ���는 투쟁의 거리 위에 있었고, 투쟁의 시간에도 우리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세훈 5선이라는 현실 앞에서도 이 과정은 멈출 수 없습니다. 권리를 빼앗는 정치가 연장되었다면, 우리는 권리를 확장하는 정치를 더 오래, 더 넓게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는 끝난 구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멈춰 섰던 자리에서, 더 넓어진 정치의 자리에서 만납시다.
2026년 6월 5일
조상지
투표 용지가 남으면 조작질 하려고 많이 찍어낸 거라 음모론 퍼뜨려. 그래서 용지 발급량 줄여 봤더니 이 사달이 나. 용지 부족이 뻔히 예상된 본투표일 오후에도 손놓고 있던 선관위 안일함이 제일 문제이지만, 뭘 어떻게 하든 부정선거무새는 음모를 제기하게 돼 있음. 제발 눈치 좀 그만 봐.
서울시장은커녕 구청장 후보도 잘 안보임. 지하철 유세전에서도 국힘이 더 적극적으로 ���킨십하고 목소리도 더 크게 냄. 부자 몸 조심했던 건지 그냥 구도 상 게임끝났다고 생각하고 안일했던 건지, 우리 동네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암튼 이번에 민주당 선거 되게 못한단 느낌은 많이 받았음
경기도민이지만 매일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이고, 서울 거주 친구들과 대화하며 이번 선거 과정에서 느꼈던 건 ‘성의없음’이었다.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가 누군지 유세하는걸 못봤다는 것. 내란 이후 선거 결과가 이런건 그 성의없음의 결과일지도. 열심히 했는데 지는 거랑 달라. 굉장히 모욕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