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방에서 TV를 보다 보면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으면 상대방에게 말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 아무리 내용이 충실하고 흥미로워도 마음이 불편해서 자리를 뜬다.
동사무소에 갔더니 선임자가 아래 직원에게 반말을 한다.
물론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많은 직원들이 그렇게 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를 대하면 괜히 반갑다.
인격은 몸에 배인 존댓말에 존재한다.
반말이 친근감의 표현인 경우는 없다.
4기암 4년차. 이렇게 하면 암에 걸린다더라, 이렇게 하면 암이 낫는다더라. 뭐 특별히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인과응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 나도 내 인생의 가장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랬으니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해야 밤잠을 좀 덜 설치니까.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하건 간에 죽음은 정중하게 문을 똑똑 두드리며 혹시 거기 계시냐며 예의 있게 들어오지 않는다. 벽을 부수고 들어와 멱살을 잡는다. 항암실의 90이 넘은 노인도, 5살도 안 된 아이도, 37살의 한창 일할 나이였던 나도, 모두 갑작스럽기는 똑같았다.
적당한 건강관리도 좋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를 바란다.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기를 바란다. 건강이 최고라는 그 흔한 덕담의 폭력 앞에서, 건강을 잃어도 끝내주게 잘 살 수 있다는 저항을, 오늘도 해 본다.
최근에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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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평생 자신이 사는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고. 오히려 어디를 가본 사람보다도 그 어디를 더 잘 알았다고. 그에게 장소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설픈 사람들이 장소를 탓하고, 타인의 언행을 문제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가 바로 서는 것이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ㅡ 유발 하라리https://t.co/9bmI08WW9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