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성향자와 성향자를 구분하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지배 성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존경할 수 있고 나를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주인이라는 지위는 스스로 선언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통해 부여받는 것.
주종 놀이 역할극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주고받는 현실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만 맺는다.
성적 취향은 조미료일 뿐, 결국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
일상과 ‘플’을 구분하지 않고 디엣과 연디를 구분하지 않는다
성향, 행위, 관계성에 대한 분류와 네이밍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
‘비성향자’를 만나 플레이를 안 해도 성향이 충족될 수 있고
‘성향자’를 만나도 디엣 자체가 하나의 플레이일 뿐인 경우가 있다
나에겐 전자가 성향인의 삶이다
어제는 평소보다 일찍 러닝을 하러 나섰다.
달리던 중 무심히 강 건너편을 보다가, 우리 강아지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아이를 발견했다.
공터에서 할아버지와 공을 던지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러닝 중에는 웬만하면 멈추지 않는데, 워치를 일시 정지시킬 새도 없이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건너 다가갔다.
웃으며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에 기시감이 들었다. 내 손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보호자께서는 허허 웃으며 충분히 놀 수 있게 기다려주셨다. 신나게 장난치고 토닥이며 놀다가, 곧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징검다리 중간까지 따라오며 나를 향해 웃었다. 그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최대한 빠르게 반환점을 찍고 금방 돌아갔는데, 할아버지와 강아지는 벌써 돌아간 뒤였다.
비슷한 시간에 나가면 또 만날 수 있을까? 러닝이 더욱 기다려진다.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달리는 삶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다 써버리고 싶지는 않다.
충분히 달린 뒤에는 미련 없이 반환점을 돈다.
똑같은 풍경인데도 돌아가는 길은 여유롭고 아름답다. 히늘을 보며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때로는 뜨겁게 쏟아부을 때보다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순간에 더 많은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더 멀리, 더 높은 곳에 도달하지 않아도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자주 기억하려 한다.
현관에서 들어온 대왕 곱등이가 무서워서 도망다니고 울다가 결국 구남친에게 잡아달라고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이여...
새벽인데 바로 와줘서 고마웠지만 원초적 공포에 지배당하는 이토록 무력한 스스로에게 참 어이가 없다. 고작 벌레인데... 고작.
택배 박스 조심...
@su_amma_us ㅋㅋ 그냥 좀 웃기고 깔끔(?)하게 갔어요
1. 우는 거 진짜 예쁘다 난 역시 변태인가 봐
2. 또 부르게 벌레 몰래 뿌려야겠다
3. 힘들면 아무때나 불러> 그냥 내가 빨리 다음 남자 만들게
4. 한번만 안아봐도 되냐> 아니> 멋대로 꽉 안고 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