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스터와 슬레이브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명령하는 주인과 무조건 복종하는 종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마슬은 그것과는 결을 달리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와 직장, 사회적 위치에 따른 위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누군가의 권위를 따르도록 요구받는 것과 스스로 선택한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현대의 복종이 무조건적이기보다 서로의 기준과 신뢰를 전제로 한 조건���인 관계에 가깝다고 봅니다. 여기서 조건이란 자신의 이익을 계��한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를 왜 따르는지 알고 서로 받아들인 약속과 경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판단한 뒤 특정한 사람의 기준 안에서 행복을 찾기로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마스터가 슬레이브에게 제공하는 울타리를 생각하다 보면 아가페적인 사랑과 일정부분 닮은 부분이 있다고 느낍니다. 아가페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사랑에 가깝다면, 마슬은 서로 합의한 권한과 역할, 그리고 복종을 통해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가페에는 지배와 복종이 필요하지 않지만, 마슬에서는 그 위계 자체가 서로의 성향과 행복을 실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두 개념이 전혀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가 슬레이브를 돌보�� 이유가 복종에 대한 대가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듯, 슬레이브 역시 무언가를 돌려받기 위해서만 헌신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가 소중하기 때문에 기꺼이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모습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아가페적인 마음이 관계 안에 존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그 마음이 의무나 부채감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터가 보호와 돌봄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복종을 빚처럼 요구하거나, 슬레이브의 헌신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자발적으로 선택한 관계의 의미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과 상대를 한 사람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충분히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가페와 마슬은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저는 마슬 안에서도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애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복종은 관���의 질서를 만들고, 애정은 그 질서 안에 머물고 싶은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울타리도 단순히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면서도 상대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