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문양 클튜소재 시리즈의
마지막 세트인
기타회화 패턴, 브러쉬 세트를 출시했습니다~!
이로써 1.운기문 브러쉬
2.인물복식 패턴,브러쉬
3.기타화화 패턴,브러쉬 세트 모두
완비되었습니다~
제 포스타입,에이콘에서 판매중입니다
(하단링크)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국사 신라의 금관총
금관총(金冠塚)은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신라시대의 대형 지상식 돌무지덧널무덤이다. 금관총은 경주 대릉원의 일부를 이루는 노서동 고분군의 북측 거의 끝에 있으며 과거에는 고분 북쪽에 습지 지형이 있어 생활 공간과 고분군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모습을 보였다.
금관총의 추정 봉분 규모는 약 48.5미터 정도로 추정되며 적석부와 묘광의 규모가 서봉총보다는 크고 천마총보다는 작다. 금관총의 목곽은 이중곽으로 되어 있으며 목조가구를 축조한 후 측벽부에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이후 밀봉토로 덮어 무덤을 조성하였다.
금관총에서는 금관, 귀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등 금제 유물은 물론 로마 유리그릇, 옥충장식 마구, 고리자루큰칼 등 최고위급 위세품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총은 1921년 9월 발굴 당시 처음으로 신라 금관이 나왔으므로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금관총 금관은 다른 금관과 마찬가지로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그 중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장식의 마디 수가 3단으로 이는 서봉총, 황남대총 북부의 금관과 같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3자루의 고리자루큰칼에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이 확인되었다. '이사'는 이름, '지'는 이름 끝에 붙이는 존칭이다. 그러나 이사지왕이 역사서나 다른 금석문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이사지왕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가 신라 최고 권력자인 마립간(왕)이나 그와 관련된 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단 5세기 말 사망한 신라 최고 유력자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Costume‑restoration exhibition of murals from Princess Zhenxiao's Tomb.
Bohai was an ancient regional regime administered by the TangDynasty of China.Princess Zhenxiao's tomb lies in present‑day Jilin, China. It is precious Chinese historical heritage.
#HanFu#TangDynasty#Bohai
까마귀에게 준 밥, 약식(藥食)
성수동 전통다과점에 갔다왔는데 이런 안내가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죠.
488년 정월 대보름, 소지왕이 까마귀를 따라간 곳에서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적혀 있었는데,
열어보니 '거문고 갑을 쏘라' 다섯 자뿐이었습니다.
궁에 돌아와 활을 쏘자 갑 안에서 왕을 암살하려던 승려와 왕비가 나왔습니다.
그 뒤로 정월 보름엔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에 있는 중국의 유물
청동 진솔선예백장 인장(靑銅 晋率善濊伯長 印章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진대(晋代, 265∼316)의 도장.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5㎝, 길이 2.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흥곡리(출토 당시는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 마조리)에서 청색의 유리옥 10여 개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면에 푸른 녹이 두껍게 덮여 있으며, 인장면(印章面) 외곽에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방형의 인장면 위로는 네 발로 서 있는 원숭이의 모습과 같은 동물형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손잡이의 세부형태를 보면, 꼿꼿이 세운 얼굴에는 두 눈이 움푹 패었고, 입은 조금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인장면을 밟고 있는 네 발 가운데 앞발은 조금 움츠린 듯 표현되었고, 앞발과 뒷발 사이의 허리 아래로는 공간을 두었다.
특히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곳에는 유일하게 짧은 가로줄의 음각선문(陰刻線文)이 반복 시문되어 있어 어떤 동물의 특징적인 형상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인장면의 바닥에는 ‘晋率善濊(?)伯長(진솔선예백장)’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도장이 중국 진대에 사용된 관인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진솔선예백장 인장과 크기와 형태가 같은 ‘晉率□胡伯長(진솔□호백장)’이라는 명문을 지닌 도장 한 점이 현존하고 있어, 이 도장들이 중국 한대(漢代) 이래 이웃 나라의 제국장(諸國長)에게 수여되었던 관인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https://t.co/Wcc1WCO6ob
발해떡밥 지펴진김에 사료 말고 발해 고고학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1. 중국 유수 노하심 유적
부여, 고구려, 발해의 유적과 고분이 하나의 구역에 전부 층층히 쌓여있음
2. 선양 선대자산성
고구려 성, 부속된 고구려 고분군, 고구려에서 시작해 끊이지 않고 발해의 고분조성으로 이어짐
고분벽화라는게 있다
고구려와 백제가 도교문화를 향유하면서 유행하다가 그 둘이 멸망하고 신라가 들어서며 말 그대로 전멸했는데
발해에선 그 문화가 그대로 계승되며 이어졌고, 발해멸망 이후 발해인들이 유입되며 고려에도 유행하게 된다
그럼 이들의 정체성이 어디서 왔다고 판단해야 할까?
미국에 오디세이아를 본뜬 지명이 있다면, 한국에는 삼국지를 따라 지은 듯한 지명들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핫한 강원도 양양(襄陽)이 대표적. 양양은 본래 고구려 때 익현(翼峴), 신라 때 익령(翼嶺) 등으로 불렸다가 조선 태종 16년(1416)에 양양으로 고쳤다.
군청 설명도 중국 호북성 한수(漢水) 연안의 양양과 지형·자연미가 비슷해서 붙였다고 한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번성(樊城)을 치던 양양성이다. 중국 양양에 한수와 현산(峴山)이 있듯, 한국 양양에도 남대천을 한수로 부르던 시절이 있고 읍 뒷산 이름도 현산이다.
바로 옆 강릉(江陵)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과 한자가 같다. 이쪽은 원래 하슬라(何瑟羅)였다. 신라 경덕왕 때 명주(溟州)가 되었고, 고려 후기에 강릉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았다. 중국 강릉은 지금의 형주(荊州, 징저우), 주유와 유비와 관우가 다툰 남군(南郡)의 중심.
경남 함양(咸陽)도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 원래 속함(速含)·천령(天嶺)이었다가 고려 때 함유(含陽)가 되었고, 나중에 '含'을 '咸'으로 고치며 진나라 도읍 함양과 한자가 같아졌다(의도한 건 아니라고). 다만 우연히도 주변에는 위천(渭川)이 있어, 중국 함양의 위수(渭水)와 짝이 맞는다.
미국 오하이오주에는 멘토(Mentor)라는 도시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떠나며 아들 텔레마코스와 왕궁을 맡긴 친구의 이름인 멘토르(Mentor)에서 딴 것. 코네티컷 웨스턴 리저브 정착민들이 그리스 고전에 대한 열정으로 붙인 이름이며, 근처의 솔론, 유클리드, 마케도니아 같은 지명과 같은 계열이다.
영어 단어 Mentor, 곧 ‘멘토’도 같은 오디세이아의 ‘멘토르’에서 온 것. 사실 서사시 속에서 멘토르 본인이 항상 유능한 스승이었던 것은 아니다. 정작 텔레마코스를 이끌고 용기를 불어넣은 것은 멘토르의 모습을 한 아테나였다. 그럼에도 이 이름은 후대에 ‘지혜로운 조언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현대적 용법은 1699년 프랑수아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Les Aventures de Télémaque)』을 통해 크게 퍼졌고, 영어에는 18세기에 들어왔다. 아테나가 텔레마코스에게 Menos, 즉 정신적 힘·결의를 불어넣는 장면과 맞물려 본다면, 멘토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