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소년의 인생에서 야구공과 배트를 덜어내면 대체 무엇이 남는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스윙을 반복하고, 흙먼지 날리는 그라운드에서 숨을 헐떡이며 쌓아 올린 십여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배재고 야구부 소년 두 명이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지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발단은 다 아시다싶히 더그아웃에서 튀어나온 철없는 구호였다. 누군가는 대역죄로 몰고 싶겠지만 정치권과 일부단체가 들고일어나 선동하고, 텀블러와 잔을 깨는 지극히 중국스런 모양새가 내 눈에도 우스웠는데 5.18과 상관도 없이 살아온 학생들 눈엔 오죽했으랴. 탱크 데이가 정말 5.18을 모욕했다는 증거는 지금까지도 밝혀진 바 없다. 그럼에도 굳이 학생들의 가벼운 언행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실과 운동장 안에서 훈육하고, 꾸짖고, 가르쳐야 할 미성숙함의 영역이다.
진영에 따라 조화와 화환을 등교길에 깔아놓던 어른들은 과연 저 학생들을 부끄럼없이 지적할 수 있을만큼 어른스러운 행동이였나?. 그 구호만큼이나 미성숙하고 찌질해보였다.
대한민국의 나이만 어른인 사람들은 이 철없는 농담을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1980년의 망자들을 핑계 삼아 거대한 이념의 괴물이 깨어났다. 진영의 나팔수가 된 정치인과 언론은 미성년자인 소년들을 국가적 대역죄인으로 몰아세웠고, 번호표를 뽑고 순서대로 저주의 칼춤을 추었다. 야구부 전원이 광주로 끌려 내려가 묘역 앞에 늘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고, 반성하고, 침묵했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도덕적 갈증은 해갈되지 않았다. 출전 정지 징계에 이어 학교의 중징계 압박이 가해지자, 소년들은 버티지 못하고 평생의 꿈이 담긴 야구장을 떠나야 했다.
이 소년들에게 5.18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자유를 향한 갈망? 고귀한 희생? 내 판단엔 그 진영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게다.
소년들의 더그아웃에는 이제 묵직한 적막만 남았다. 십 년을 바쳐온 꿈을 강제로 내려놓아야 했던 그 밤, 아이들은 어떤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을까. 권력화된 이념이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방식은 이토록 차갑고 건조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덤을 팔아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은 다시 평범한 아이들의 미래를 사냥한다. 죽은 자를 핑계로 산 자의 숨통을 끊어놓는 이 잔혹한 나라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와 저항, 그리고 어떤 가치가 살아있는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해도 냄새 안 났어요"…
장미란 시신 발견 주민 분통
인근 하우스에서 일하는 70대 A씨
"평소에도 사고가 나거나 그런 일이 없었다"
"시신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서야 알았다. 너무 놀랐다"
"여기서 일해도 냄새 전혀 안 났어요.
너무 놀라서 밥도 못 먹었어요."
"비닐하우스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5명 정도였는데, 시신이 발견된 날에는
다들 충격을 받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