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2시 약속인데 눈 뜨니까 1시 50분이었음
친구한테 카톡
"거의 다 왔어!! 10분만ㅠ"
머리 감으면서 보냄 ㅋㅋ
바로 답장 옴
"지금 어디쯤?"
아니 그걸 왜 물어
"버스 방금 내렸어" 했더니
"그래? 나 지금 너네 집 앞 정류장인데 ㅋㅋ 같이 가려고 기다리는 중"
샴푸 거품 묻은 채로 굳음
"...아 반대편에서 내렸어" 보냈는데
친구가 사진을 보냄
반대편 정류장이었음. 아무도 없었음
결국 "솔직히 지금 머리 감는 중" 보냄
"알아 너네 방 불 방금 켜졌어"
20분 뒤에 나갔더니 친구가 내 커피까지 사 들고 서 있었음
"다음부턴 거의 다 왔다고 하지 마. 다 보여"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른다고 하면 무능해 보일 것 같고,
다들 아는 얘기에 혼자 멈춰 선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해한 것처럼 웃고, 나중에 검색하면 된다고 넘깁니다.
하지만 아는 척은 그 순간만 편합니다.
한 번 끄덕이고 나면 그 뒤의 대화를 계속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아는 척한 말을 나중에 수습하는 게 더 창피해서, 모르면 그 자리에서 묻습니다.
"죄송한데 그게 뭐예요?" 하고 나면 상대는 대개 기꺼이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같은 걸 몰랐던 사람이 한두 명쯤 꼭 있습니다.
물어본 사람이 늦는 게 아니라, 끄덕이기만 한 사람이 늦게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야 제발 알림 좀 꺼 줘 나 이제 8시 30분만 되면 눈이 떠져"
내가 "알림은 내가 못 꺼 네가 보내야 꺼져" 했음. 혜진이가 한참 조용하더니 "...보내면 진짜 안 오는 거지?" 했음. "응" 했더니 "알겠어" 하고 끊었음
3분 뒤에 입금 알림이 떴음. 3만 3천 원이었음. 메모에는 "알림 그만"이라고 적혀 있었음
1천 원이 모자랐음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1천 원짜리 정산 요청을 보냈음
혜진이는 3분 만에 보냈음. 메모에는 "치사함"이라고 적혀 있었음
고깃집에서 내가 6만 8천 원 계산하고 친구 혜진이한테 3만 4천 원을 못 받은 지 석 달째였음
그날 헤어지면서 혜진이가 "집 가서 바로 보낼게" 했음. 밤 12시까지 안 왔음. 다음 날 물어보니 "헐 깜빡했다 오늘 보낼게" 했음. 안 보냈음
일주일 뒤에는 "월급날 지나면 보낼게" 했고, 월급날 지나서 말하니 "이번 달 카드값 터졌어 진짜 미안ㅠㅠ" 했음. 그날 저녁 혜진이 인스타에 새 운동화 올라옴
두 달 뒤 만났을 때 내가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꺼냈더니 "야 친구끼리 돈 얘기 자꾸 하면 정 떨어져" 했음. 그러고는 내가 산 커피 중에서 제일 비싼 6천 5백 원짜리를 골랐음
그날 집에 와서 정산 앱을 열었음. 재요청 버튼이 하루에 한 번 눌린다는 걸 알게 됐음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8시 30분에 눌렀음.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알림만 보냈음
열하루째 아침 8시 31분에 혜진이한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내가 베푼 호의는 크게 기억나고, 받은 호의는 작게 기억나는 것이 사람입니다.
밥을 사 준 날은 정확히 기억하는데,
얻어먹은 날은 어렴풋합니다.
태워다 준 거리는 멀게 느껴지고, 얻어 탄 거리는 가깝게 느껴집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한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고,
받은 일은 상대의 수고 중 일부만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기억이 제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걸 알아서,
누구에게 뭘 해 줬는지는 세지 않습니다.
대신 받은 것은 적어 둡니다.
서운한 마음이 올라올 때는 장부를 펼치기 전에 이 기울기부터 떠올립니다.
아마 상대의 장부에도 제가 모르는 제 몫이 적혀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부분의 관계는 조금 덜 무겁습니다.
"어머님 허리 괜찮으세요?" 했음
엄마는 "허리?" 하고 나를 쳐다봤음. 나는 눈을 최대한 크게 떴음. 엄마가 0.5초 뒤에 "아이고 허리" 하면서 문틀을 잡았음
수아가 "근데 풍선은..." 하길래 엄마가 "복식호흡. 허리에 좋대" 했음. 수아가 "아 맞다 그거 좋다던데요" 하고 믿어 줬음. 죽만 주고 갔음
문 닫자마자 안방에서 친구들이 튀어나와서 다 같이 바닥에 쓰러졌음
토요일 파티는 성공했음. 수아가 진짜 놀랐음. 문제는 엄마였음. 엄마가 파티 내내 허리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했음. 수아가 생일 주인공인데 엄마한테 방석 갖다 주고 물 갖다 주고 케이크 제일 큰 조각을 드렸음. 엄마는 "고마워 아이고" 하면서 다 받았음
집에 가서 수아가 자기 엄마한테 "민지네 어머님 허리 안 좋으셔" 했나 봄
월요일에 수아 엄마가 한의원에서 지은 약을 택배로 보냈음
엄마는 지금 한약 2주치를 먹는 중임. 쓰다고 함
친구 수아 깜짝파티 준비하느라 일주일 동안 "엄마 허리 때문에 병원 가야 해"를 다섯 번 썼음
수아 생일이 토요일이라 우리 집에서 몰래 파티를 하기로 했음. 친구 열한 명이 단톡방에서 풍선 60개, 케이크, 현수막까지 정해 놨는데 문제는 수아가 매일 저녁 보자고 한다는 거였음
월요일 "오늘 떡볶이?" "엄마 허리 때문에 병원 가야 해" 화요일 "치킨?" "엄마 병원 또 가야 해" 수요일 목요일도 똑같이 말했음
수아가 "어머님 많이 안 좋으셔?" 해서 "응 좀..." 했음. 거짓말인데 표정까지 만들고 있었음
금요일 점심에 수아가 또 "저녁 어때?" 해서 "엄마 허리가 아직..." 했더니 "그럼 내가 죽 사 갈게 7시에" 하고 끊었음. 거절할 말이 없었음
6시 반에 친구 네 명이 우리 집에 와서 풍선을 불고 있었음. 7시 정각에 벨이 울렸음. 친구들을 안방에 밀어 넣고 문을 열었더니 수아가 죽 봉투를 들고 서 있었음
"어머님은 누워 계셔?" 하는데 내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음
"민지야 풍선 펌프 어디 뒀니?"
엄마가 풍선을 든 채 거실에서 나왔고 수아가 엄마를 보더니
소화제를 두 알씩 내밀었음
"너희 둘 저녁에 뭐 먹었어. 한 시간째 번갈아 화장실 가는 소리가 나더라" 하고 엄마가 지호 방문도 두드렸음. 지호가 베개를 안고 나왔음
알고 보니 지호도 번개가 무서웠던 거였음. 형 앞에서 티 내기 싫어서 나랑 똑같이 화장실 가는 척을 한 거였음. 지호는 다섯 번 나갔다고 했음. 나는 여섯 번. 열한 번이나 서로 속인 거였음
"형이 계속 나와서 형도 배 아픈 줄 알았지" "나도 너 배 아픈 줄 알았지" 하고 둘이 복도에서 속삭였더니 엄마가 "이것들이 진짜" 하면서 소화제를 입에 넣어 줬음
엄마는 끝까지 이유를 몰랐음. 그날 저녁에 먹은 건 김치찌개였음
다음 날 아침 엄마가 "쟤들 굴 먹은 것도 아닌데 장이 약해" 하고 이모한테 전화하는 게 들렸음
그날 밤 우리는 번개 소리에 지호 방에서 같이 잤음. 엄마는 우리 장이 약한 줄 앎
일요일 밤 11시 40분에 본가 내 방에서 누웠는데 창밖에서 번개가 쳤음
나는 스물일곱 살이고 아직도 번개가 무서움. 근데 한 달 전에 열일곱 동생 지호한테 "번개가 뭐가 무섭냐 소리만 큰 건데" 하고 큰소리를 쳐 놨음. 지호가 어릴 때 번개 치면 내 방으로 달려온 걸 내가 계속 놀렸었음
그래서 작전을 짰음. 혼자 못 자겠으면 화장실 가는 척 나가서 복도에 있다 오는 거였음. 지호 방 불이 켜져 있는지 보면 좀 안심이 됐음
11시 50분 첫 번째. 12시 10분 두 번째. 나갈 때마다 일부러 물도 내렸음
12시 40분 세 번째에 지호 방문이 열렸음. "형 또 화장실?" "어 배가 좀" "…나도" 하고 지호가 나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음. 그때는 나도 배탈인가 보다 했음
그 뒤로 1시 10분, 1시 30분에도 나갔는데 번개 칠 때마다 지호 방문 소리가 같이 났음
새벽 1시 50분 여섯 번째로 내 방문을 열었더니 거실 불이 켜져 있었음. 엄마가 잠옷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서서 한 손에 약통을 들고
그냥 도로 안으로 들였음
"네 만 원에 드릴게요" 하고 가습기만 건넸음. 새 필터 두 개가 든 쇼핑백은 내 팔에 걸린 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음. 구매자는 "감사합니다" 하고 아주 기분 좋게 갔음
3일 뒤 밤 10시에 채팅이 왔음. "가습기 필터 교체 불 들어왔는데 어디서 사요?" 해서 "제품명 검색하시면 개당 6천 원쯤이에요" 했음
"혹시 갖고 계신 거 없어요?" 했음. "있어요" 했음. 그랬더니
"그럼 저 가습기 사 간 사람인데 단골가로 두 개 5천 원에 주세요"
두 개면 1만 2천 원어치였음. 가습기 값보다 비쌌음. 나는 "저는 단골가 없어요" 하고 보냈음
"단골인데 너무하시네요" 하는 답이 왔음
우리는 한 번 만난 사이였음
당근에 가습기 1만 5천 원에 올렸는데 구매자가 약속 장소에서 세 번 깎았음
쓴 지 한 시즌 된 거였고 새 필터 두 개도 덤으로 줄 생각이었음. 필터는 개당 6천 원짜리라 쇼핑백에 따로 챙겨 놨음
1단계는 채팅이었음. "1만 원에 안 돼요?" 해서 "1만 3천 원까지는 돼요" 했더니 "그럼 1만 2천 원" 하길래 "1만 3천 원에 하겠습니다" 했음. 답이 "네" 한 글자였음
2단계는 토요일 오후 3시 아파트 1층 현관이었음. 3시 25분에 와서 사과도 없이 "주차 힘들어서 돌았어요" 하고 가습기를 콘센트에 꽂아 보더니 "소리가 좀 나네요 천 원 빼죠" 했음. "원래 나는 소리예요" 했더니 "그럼 2천 원"이었음
3단계는 지갑을 여는 순간이었음.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저 지금 이것밖에 없어요 만 원에 하죠" 했음. "계좌이체 되는데요" 하니까 "앱이 로그아웃돼서" 했음
나는 그 순간 현관 선반 위 쇼핑백을 보고 있었는데
우리 통화 시간이었음
엄마는 매주 통화 끝나면 통화 기록에서 시간을 보고 메모장에 옮겨 적고 있었음. 1분 50초가 최저였고 그 옆엔 "짧았음"이 아니라 "바빴나 보다"라고 적혀 있었음
제일 긴 건 9분 3초였는데 옆에 "보일러 고장"이라고 적혀 있었음. 내가 자취방 보일러 고장 났다고 투덜댄 날이었음. 엄마는 그걸 기록 갱신으로 적어 놨음
나는 엄마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폰을 조용히 돌려드렸음. "사진 다 지웠어" 하고
그리고 다음 일요일 저녁 8시에 내가 먼저 전화했음
엄마가 "밥은 먹었니" 하는 순간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음. 나도 평소처럼 1번부터 5번까지 다 대답하고 나서 안 끊고 "엄마 근데" 하면서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음. 편의점 앞에서 고양이 본 얘기
엄마가 한참 웃다가 "아 이건 메모에 없는데" 하더니 옆집 개가 새끼 낳은 얘기를 시작했음
그날 통화는 38분이었음
메모에 없는 얘기가 제일 길었음
추석 연휴 3일째에 엄마가 "폰이 자꾸 저장 공간 부족이래" 해서 사진 지워 주다가 메모장을 열게 됐음
맨 위 제목이 "일요일 8시"였음. 나는 타지에서 혼자 사는데 엄마랑 일요일 저녁 8시에 전화하는 게 5년째 규칙임
열어 보니 번호가 매겨져 있었음
1. 밥은 먹었니
2. 춥다는데 옷 입었니
3. 김치 떨어졌으면 말해
4. 아빠 무릎 얘기
5. 끊기 전에 건강 챙겨
엄마가 나한테 전화하면서 이걸 보고 있었다는 거였음. 어쩐지 매번 순서가 똑같았음. 밥 옷 김치 무릎 건강 하고 끝
근데 더 아래에 또 뭐가 있었음. 날짜가 쭉 적혀 있고 옆에 숫자가 붙어 있었음
9/8 3분 12초
9/15 2분 40초
9/22 1분 50초
제일 아래 줄은 오늘 날짜도 아닌 지난주 일요일이었고 숫자 옆에 볼펜으로 쓴 것처럼 꾹꾹 눌러 쓴 한 줄이 더 있었음
나는 그게 뭔 숫자인지 처음엔 모르고 엄마한테 "이거 뭐야?" 하고 물으려고 폰을 들었는데
위로가 서툰 사람은 대개 해결책부터 꺼냅니다.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 고쳐 줘야 할 문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든 얘기를 꺼낸 사람은 답을 몰라서 말한 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밤새 생각해 본 답이 있고,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저는 예전에 친구의 하소연에 방법을 다섯 가지나 말해 주고, 그 친구가 말없이 조용해지는 걸 본 적이 있어서 이제는 해결책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할 때 한 번 삼킵니다.
대신 "그랬구나" 하고, 더 듣고 싶으면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고 묻습니다.
방법이 필요하면 상대가 먼저 물어봅니다.
그때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위로는 말을 잘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탁을 못 하는 사람은 대개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계산에는 빠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을 받는 쪽의 마음입니다.
저는 누군가 저에게 부탁했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귀찮은 마음은 잠깐이었고, 나를 떠올려 줬다는 마음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부탁을 참는 건 배려처럼 보이지만, 상대가 나를 도울 기회를 미리 치워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부탁받고 기뻤던 적이 많아서, 필요한 부탁은 미루지 않고 짧게 합니다.
이유를 길게 붙이지 않고, 거절해도 괜찮다는 말만 덧붙입니다.
거절당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지 제 부탁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탁은 폐가 아니라 연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답장이 늦어지는 건 대개 바빠서가 아니라 잘 쓰고 싶어서입니다.
"응"이라고 보내면 되는 톡인데도 괜히 한 줄을 더 붙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읽어 두고 나중에 제대로 쓰자며 미룹니다.
그렇게 미뤄 둔 톡은 하루만 지나도 가벼운 답으로는 보내기 어려워집니다.
늦은 만큼 길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더 미루게 됩니다.
저는 늦은 답장일수록 짧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변명을 길게 쓰지 않습니다.
"이제 봤어요. 좋아요." 정도로 보냅니다.
받는 사람은 답이 얼마나 늦었는지보다 답이 왔다는 사실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삼월의 편지"였음 그냥 떠오른 거였음
엄마가 "어디서 해?" 해서 "OTT에서 해" 했음 10분 뒤 아빠가 "검색해도 안 나온다" 누나는 "나 구독 세 개인데 없음" 했음
"해외 드라마라 제목이 달라" 했더니 엄마가 "원제가 뭔데" 해서 "어려워서 기억이 안 나" 했음 그날은 그렇게 넘어감
문제는 목요일이었음 하루 동안 "삼월의 편지" 질문을 일곱 번 받았음
엄마 "주인공 이름은?" 나 "서진" 아빠 "몇 부작이야?" 나 "12부" 누나 "결말 스포해봐" 나 "…둘이 헤어지고 끝나"
줄거리를 지어낼 때마다 이별 얘기만 나왔음 말하는 내 표정이 계속 어두웠나 봄
토요일 아침에 엄마가 이모랑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음
"쟤가 드라마 주인공 헤어졌다고 사흘째 밥을 제대로 못 먹어 서진이가 불쌍하대"
이모가 뭐라고 했는지 스피커 밖으로 새 나왔음 "그 작가 누구야 혼내줘야겠네"
일요일에 보니 단톡방 이름이 "서진이 힘내"로 바뀌어 있었음 바꾼 사람은 아빠였음
[1/2] 헤어졌다는 톡을 가족 단톡방에 잘못 보내고 "드라마 얘기야"라고 수습했는데 엄마가 제목을 물었음
수요일 밤 10시 40분에 친구 소영이한테 "나 오늘 헤어졌어 3년 만에 끝남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보낸다는 게 가족 단톡방이었음
보내기 누르고 2초 뒤에 알았음 바로 삭제했는데 엄마가 4초 만에 읽은 상태였음
"방금 뭐라고 썼니?" 엄마한테서 바로 왔음 아빠는 "?" 하나 보냈고 누나는 "헐" 하나 보냄
손이 떨리는 채로 "아 드라마 얘기야ㅋㅋ 어제 마지막 화에서 헤어짐" 이라고 침
엄마가 "아이고 놀랬잖아 엄마는 진짜인 줄 알았네 근데 무슨 드라마야? 엄마도 볼래" 했음
이어서 아빠가 "제목 알려줘" 누나가 "나도"
나는 그 주에 드라마를 한 편도 본 적이 없었음
3초 안에 쳐야 했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걸 그냥 쳤음
"제목은
검은색이었음
내가 탄 흰 차는 택시가 아니라 그냥 아저씨 자가용이었음
아저씨는 딸 학원 앞에서 비상등 켜고 기다리던 중이었음. 내가 문을 열고 타서 목적지부터 말하니까 당황해서 "네?" 한 거였고 그 뒤로 말할 타이밍을 놓쳤대
내비를 직접 친 건 택시가 아니라서 내 목적지가 안 떠서였음. 담요는 딸 무릎담요였고 "손님 모시고 있어"도 진짜였음
"왜 말 안 하셨어요" 했더니 "비 오는데 말하면 내리라는 거잖아요 15분이면 되길래" 하셨음
카드를 내밀었더니 "택시 아니라니까요" 하고 손사래를 쳤음. 내리는데 "차 깨끗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택시가 아니라서" 하셨음
폰을 보니 진짜 택시 기사님은 길 건너에서 14분 기다리다 취소한 상태였음
그날 택시비는 0원이었고 취소 수수료 3천 원은 내가 냈음
비 오는 금요일 밤 11시에 택시를 불렀음
앱에 "1분 후 도착"이 떠서 이어폰 끼고 아파트 앞에 나갔는데 길가에 흰색 중형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음. 바로 탔음
"○○동 ○○아파트요" 했더니 기사님이 "네?" 하고 2초 있다가 "...아, 네" 했음. 50대쯤 되는 아저씨였음
첫 번째 이상한 점은 내비에 목적지를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직접 쳤다는 거였음. 택시는 앱에서 자동으로 뜨지 않나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음
두 번째는 출발하자마자 "추우면 말해요" 하면서 뒷좌석 담요를 건넨 거였음. 차가 너무 깨끗해서 "기사님 차 되게 깨끗하네요 택시 같지 않아요" 했더니 "...그렇죠" 하고 이상하게 오래 웃었음
세 번째는 달리는 중에 전화가 와서 스피커로 받았는데 어린 여자애 목소리로 "아빠 학원 끝났는데 어디야" 했고 기사님이 "아빠 지금 손님 모시고 있어 15분만" 했음
기사님이 딸 마중 가다 말고 나를 태워 주나 보다 했음
15분 뒤 아파트 앞에서 "앱으로 결제되죠?" 하고 폰을 켰는데 화면에 "기사님이 도착했습니다"가 떠 있었고 그 밑에 차량 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