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급락하는 이유는 왼쪽을 못 챙겨서가 아닙니다.
그냥 무능해서입니다.
일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 불안정, 부동산 정책 실패, 잇따르는 경찰의 민생 치안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 헛다리 긁기인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3권분립의 원칙을 거스르는 대통령과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이 문제들 어디에 좌우가 있습니까?
그냥 상식의 문제이고 유능한 기획과 대처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무능한 근본 원인은 본래부터 무능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마인드셋이 틀려먹었기 때문도 큽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은 눈앞의 긴급한 현안 앞에서도 계속 콩밭만 머리속에 맴돌겁니다. 틈만 나면 현안 사이에 콩밭 관련 이익을 슬쩍 끼워넣으려 하죠. 사심이 스며들면 현실의 일처리는 썩습니다. 본말이 전도됩니다.
이재명대통령의 콩밭은 본인의 재판이고 민주당 정치인들의 콩밭은 잘 보여서 다음 공천 받는 거죠.
그렇게 계속 현안을 챙기는 척 하지만 근본 동력이 콩밭이라는 것을 이제 국민들이 모두 알게 되버렸습니다.
사심을 털어내고 일만 열심히 하면 지지율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심으로 시작한 정권, 사심이 주요 동력인 정치인들에게 이런 말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아무튼, 얄팍한 표계산으로 왼쪽의 유권자를 더 결집시켜 지지율을 유지해 보겠다는 수작은 통하기 힘들 겁니다.
왼쪽의 유권자들 중에서도 상식이 있고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면 그 정치는 없는 것보다 못하다고요. . .
거짓말의 유통기한 됐다. 이젠 내려올 때가 된거다
말 바꾸고, 실패는 전 정부와 야당 탓으로 돌리고, 비판은 가짜뉴스로 몰고. 좋은 일은 자기 공이고 나쁜 일은 늘 남 탓이었다.
그렇게 오래 국민을 속이며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민심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 권력은 거짓으로 얻을 수 있어도, 거짓으로 끝까지 지킬 수는 없다
나는 글을 다루고 사유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주장에 함부로 '궤변(詭辯)'이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진보 언론의 상징이라 불리는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을 마주하고서는, 그 원칙을 처참하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한 줄의 문장은 단순한 궤변을 넘어, 민주 공화국을 떠받치는 근대 법치주의에 대한 완벽한 사상적 파산 선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 것을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대통령을 끝까지 설득하든 자신이 양보하든 관행을 지켰어야 했다. 국정에서 관행은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눈을 굳게 감고 다시 활자를 곱씹어 본다. 평생을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법의 지배를 부르짖어왔던 원로 언론인의 입에서, "국정에서는 관행이 법률보다 우위"라는 마피아 조직에서나 통용될 법한 망발이 튀어나왔다. 헌법 104조가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고유한 임명제청권을 '법대로' 행사한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권력자와 밀실에서 티키타카를 하던 '짬짜미 관행'을 법보다 우위에 두고 숭배하라니. 평생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온 대법원장에게, 법전 대신 뒷골목의 룰을 따르라고 훈계를 두는 저 기괴한 뇌 구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건의 본질은 자명하다. 사법 리스크의 올가미에 목이 졸린 이재명 체제가 대법원을 자신들의 사적 방탄 로펌으로 사유화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강요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위헌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내 헌법적 권한은 여기까지이니, 불만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해 역사적 책임을 지라"며 서면을 툭 던진 것이다. 이것은 관행 파기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권력의 외압에 맞선 사법부 수장의 가장 외롭고도 차가운 헌법적 저항이다.
그런데 성한용 기자는 이 헌법적 저항을 짓밟기 위해 또 하나의 끔찍한 궤변을 동원한다. 그는 과거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것을 두고 "만약 파기자판으로 피선거권을 박탈했다면 시민혁명이 일어나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겁박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대법원장을 향해 헌법의 가장 기본인 국민주권 원리를 모르는 무자격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사법부의 합의된 판결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 조롱하고, 161석의 입법 완력을 쥐고 사법부를 협박하는 것을 국민주권이라 포장하는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이쯤 되면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성한용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1인 수령을 옹위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과 펜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안성한용', 완벽하게 부패해 버린 '상(傷)한용'일 뿐이다.
법치의 심장인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권력자와의 밀실 관행에 순응하라고 대법원장에게 훈장질을 하는 사회. 헌법이 명시한 권한 행사보다 1인 교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더 숭고한 국정 철학으로 찬양받는 나라. 이재명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언론마저 스스로 이성의 목을 매달고 궤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작금의 풍경이야말로, 자유주의의 붕괴를 알리는 가장 서늘하고도 비극적인 전조(前兆)다.
<독재자들에게 민심의 벼락을>
오늘 박상용 검사 징계를 위한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열립니다. 어제는 국가수사본부에서 소환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국가의 거의 모든 수사기관이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정치인의 대북송금이라는 어마무시한 사건을 해결한 현직 검사 죽이기에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국수본의 소환 사유는 ‘국회 모욕’이라고 합니다. 법이 보장한 박상용 검사의 선서 거부가 국회 모욕이라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수사기관과 민주당의 작태야말로 ‘국민 모욕’입니다.
박상용 검사가 물론 밉겠지요. 모두가 조아리는 절대 권력 면전에 법이라는 정의의 칼을 들이댔으니 말입니다. 허나 그 미운 검사 한 명 처단하자고 이렇게 무리수를 던지는 건 아닐 겁니다. 그들이 두려운 건, 감옥에서 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벌리게 될 이화영의 입일 겁니다.
박상용 검사를 악마로 만들어 ‘악마가 한 수사는 무효’라는 프레임을 짜고 이화영을 빼내려는 수작,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압니다. 대장동 일당처럼 이화영을 빼내 입을 막아야 이재명의 죄도 지울 수 있다는 생각, 당신들도 알고 국민들도 압니다.
이재명씨 사실이 아니라면 당당히 말해보십시오. 임기 중에 이화영 사면은 없다고, 이 대한민국에 자기 죄를 자기가 지우는 ‘미친 독재’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그 시간부로 이 특별위원회 위원직을 내려놓겠습니다.
박상용은 이제 개인이 아니며, 그가 당하고 있는 폭력 역시 개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 젊은 검사가 홀로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며 피를 흘리고 있는데, 현직 검사들은 물론 법조계 선배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 대법관 출신이네", "나 검찰 간부 출신이네" 말만 하지 말고, 망가진 법치와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권력의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는 '박상용 지키기'에 동참해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이건 여야의 문제도 좌우의 문제도 아닙니다. 부디 부끄러움을 모르고 함부로 보복의 칼을 휘두르는 저 망나니들에게 ‘민심의 벼락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증시 폭락과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파장에 따른 경제 불안, 부동산 세제 논란, 대통령 연임 개헌 논란 등 정국·경제 이슈 전반에 대한 부정적 언론 보도가 복합적으로 작용
#팩트파인더
[리얼미터] 李 45.9% ‘취임 후 최저‘…증시 폭락·개헌 악재반영 https://t.co/CRTNE7XLFO
정치인의 퇴장에도 타이밍의 예술이 존재한다면, 작금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던진 사표는 단연코 올해의 마스터피스다. 이재명을 향한 사법부의 포위망을 허물고, 이른바 '공소 취소'라는 거대한 폭탄을 터뜨리기 위한 모든 도선 연결과 세팅을 끝마친 직후 유유히 짐을 쌌다. 막이 오르기 직전 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이 완벽한 타이밍에 우선 경쾌한 박수를 보낸다.
표면적으로는 숭고한 결단으로 포장했다. 국민의 치안을 위협할 것이 자명한 '보완수사권 폐지'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비장하게 사퇴서를 던졌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진짜 셈법은 차갑고 영악하다 못해 비릿하기까지 하다. 그는 보완수사권이라는 편리한 핑계거리를 방패 삼아,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후폭풍에서 자신만은 절대 다치지 않는 완벽한 '무적의 가불기' 공식을 완성해 낸 것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첫째, 그가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기어이 이재명의 공소가 취소되어 법치가 무너지고, 온 국민이 분노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대중이 책임을 묻기 위해 법무부를 향할 때, 그는 우아하게 손을 씻으며 말할 것이다. "저를 왜 보십니까. 저는 보완수사권 문제로 이미 책임지고 물러난 야인이었습니다."
둘째, 만에 하나 시스템이 멈칫하여 공소 취소가 불발되고, 분노한 극렬 지지층 개딸들이 배신자를 찾겠다며 죽창을 들고 날뛰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이때도 그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방어막을 칠 것이다. "제가 끝까지 장관직을 지키며 책임졌어야 했는데, 보완수사권 사태로 물러나는 바람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대중의 거대한 분노도, 극성 팬덤의 맹렬한 린치도 모두 피해 가는 완벽한 진공상태의 알리바이다. 궂은일은 후임자나 실무자들의 손에 피를 묻혀 해결하게 만들고, 자신은 십자가에 예수를 내어주고 대야에 손을 씻었던 본디오 빌라도처럼 도덕적 무결점의 무대 장치 뒤로 숨어버렸다. 국가 사법 시스템의 기둥마다 폭약을 잔뜩 매설해 놓고, 기폭 장치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설계만 했을 뿐 누르는 건 내 소관이 아니다"라며 택시를 타고 떠나는 비열한 건축가의 뒷모습이다.
이재명의 방탄을 위해 사법 체계를 찰흙처럼 주무르던 자가, 정작 파국이 닥쳐올 순간이 되자 자신의 정치적 생명 하나 다치지 않으려 가장 먼저 구명정에 몸을 싣는다.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린 죗값을 실무자들에게 떠넘기고, 보완수사권이라는 가짜 명분표를 쥐고 조용히 퇴장하는 이 기막힌 꼼수를 우리는 그저 '노련한 정치 공학'이라 부르며 감탄해 주어야 하는가.
폭탄을 조립한 자가 폭발의 순간에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그가 방화범이라는 명백한 팩트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