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사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더라면
아버지의 증거인멸 시도를 포착 할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끝나는 사건이였음
보완수사권 폐지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밝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숨쉴 구멍을
막아버리는 짓임
권력자들만 살판 났다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닌 권력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거임
[경찰이 여고생 살해범 증거를 없애는 세상인데,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의 아버지는 중견 경찰 간부다.
경찰은 장윤기의 SUV와 훼손된 리얼돌을 장윤기 가족에게 인계했고, 장윤기의 아버지는 증거를 없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오늘 장윤기의 SUV에서 증거를 인멸한 경찰관이 긴급 체포됐다. 현직 경찰이 장윤기의 살해 증거를 고의로 없애줬다는 뜻이다.
너무 끔찍하다. 현직 경찰이 여고생 살해라는 극악한 범죄에서조차 경찰 식구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한다면 중요 강력 사범조차 무죄 방면이 일상이 될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는다. 치안은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민주당은 강성 지지자 눈치만 보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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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무슨 말 했는지 기억도 못해서
매일을 모순으로 살고 있는 조국 선생, 아서라.
부산 출신도 아닌 한동훈 의원이 당선될 동안
손가락질 두려워서 고향에서 출마도 못한 양반이
갑자기 무슨 경상도 사투리 감별사 노릇을 하려 드나.
경상도도 경남, 부산, 대구, 경북 내륙, 경북 해안 지역,
각각 지역별 사투리에 크고 작은 차이가 다 있고,
조 선생 당신이 쓰는 그 사투리만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다.
하는 김에 전라도 사투리 전문가 행세도 한번 해보지 왜,
이때다 싶어 언어학 전문가인 척 까부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원래 언어는 시대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하는 거다.
경상도 사투리 어미 중에서 “노”가 유행을 하고
사람들이 “노” 쓰기를 좋아하면, 용례라는 건 확장되는 거다.
광주 귀족이 허락한 경상도로 살아야 출세하는 정치판이라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나고 자란 고향을 모욕하는 깡패 짓에 동조하나.
입시 비리 저질러가며 꽃 가마 태운 누구 딸만 귀하고
스스로 힘으로 차근차근 열심히 사는 리센느 딸들은 돌팔매질 대상인가?
경상도 사투리는 천년의 왕국 신라의 언어고,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다.
뭐만 하면 일베, 노무현, 일베, 노무현, 일베, 노무현, 일베, 노무현.
도대체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는 몰라도,
24시간 365일 노무현 대통령만 생각하고 사는 건 진짜 병이다.
아직도 노무현 시절 인생 전성기를 보낸 기괴한 추억에 갇혀서
평생 정신 못 차리는 중년의 기득권들을 보면, 참 ‘깝-깝’ 하다.
불혹 또는 환갑이 되도록 해소하지 못한 고약한 똥꼬집에 피해의식,
미숙한 감정과 정서적 결핍을 온 세상에 알아달라고 매순간 어리광.
온 세상이 어데 느그 중심인 줄 아나.
마 질린다 진짜. 쯧.
따뜻함은 환영받지만 분별없는 뜨거움은 화재를 불러일으킵니다. 화재가 남기는 것은 잿더미 뿐입니다. 사소한 이슈마다 설쳐대는 온라인 좌폭, 파란 나치들의 무질서한 마녀사냥과 반복되는 이중잣대. 그 끝에 남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피로감, 민주에 대한 지겨움과 좌파 혐오뿐입니다.
여든 살 노인이 길바닥에 자리를 펴고 토마토와 깻잎을 판다. 어느 날 시장을 돌던 정치인에게 고생한다며 찰밥 도시락 하나를 건넸다. 평범하고 정겨운 시장통의 미담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찰밥 한 그릇이, 자칭 약자의 수호자라는 좌파 진영의 신경망을 건드리는 거대한 발작 버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정치인이 하필 한동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팝콘을 씹으며 보기엔 너무나 비열하고 엽기적인 블랙코미디다.
좌파 강성 지지층은 즉각 좌표를 찍고 북구청에 하루 수십 통의 민원 테러를 쏟아부었다. 목표는 아주 투명하고 잔인했다. "감히 우리 진영의 적에게 밥을 줘? 저 할머니의 노점을 치워버리고 밥줄을 끊어라." 입만 열면 서민과 빈민, 노동자의 생존권을 절대선으로 떠받들던 자들이다. 그런데 내 편이 아닌 자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80대 노점상의 생계를 완벽하게 박살 내기 위해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이쯤 되면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광기에 절여진 사이비 종교의 이단 심문이다.
이 집단적 광기에 화답한 관할 구청의 행정력은 가히 예술에 가깝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이끄는 북구청은 득달같이 달려가 노점 주변에 노란색 통제선을 빙 두르고, '노점 금지' 입간판을 무려 10개나 박아 넣었다. 마치 흉악범의 범죄 현장라도 통제하듯, 할머니 한 명을 포위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이 알뜰하게 동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촌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안면몰수와 꼬리 자르기에 있다. 한동훈 의원이 다시 찾아와 안부를 묻고, 상인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여론이 뒤집어지자 민주당 구청장은 어떻게 돌변했는가. "아침에 보고를 받고 처음 알았다.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곧바로 철거를 지시했다."
구청 한복판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10개의 입간판이 동원된 요란한 행정 집행을, 구청장 본인만 몰랐다는 변명을 믿어줄 호구는 없다. 민심의 표밭이 흔들릴 것 같으니 실무자에게 슬그머니 책임을 떠넘기고 야반도주를 택한 권력의 비루한 쌩얼이다.
여기서 아주 얄미운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보수 정당의 구청장이, 이재명에게 찰밥을 건넨 80대 노점상 할머니를 철거하려 펜스를 치고 입간판을 박아 넣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온 좌파 매체와 스피커들이 총출동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살인", "서민을 탄압하는 파시즘"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광장에 촛불의 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자신들의 진영일 때는 약자의 눈물 따위는 1그램의 가치도 없는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나에게 밥을 주면 숭고한 민중이고, 남에게 밥을 주면 치워버려야 할 적폐가 되는 이 기막힌 이중잣대.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게 밥 한 끼 주었다는 이유로 80대 노인의 생계마저 짓밟아버리는 사회라면, 그런 정치와 진영의 쓸모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약자의 밥줄을 짓밟으며 감히 '민주'를 참칭하다니, 그 이름 두 글자가 너무 역겹고 아까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참에 그 위선적인 간판은 미련 없이 떼어버리고 '민호병(민주주의 호소하는 홍위병)'으로 개명하시라. 동네 힘없는 노점상이나 떼거지로 때려잡는 그 시뻘건 완장이 당신들의 진짜 쌩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