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귄북스 🐧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 문학동네
그 즈음엔 그랬던 것 같다. 재개발이 한창이던 도시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별볼일 없는 시골 구석에서 숨죽이던 앨리스들이 많았던 때에. 뉴스에는 각종 폭력에 휘둘린 아이들이 노출되고 끝내는 도움없이 그들의 미래는 숨겨지던 때.
그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담은 이소설. ‘씨발됨’ 이라는 다소 폭력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노출된 앨리시어와 이름조차 불리지않던 동생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점막에 내내 붙어있을거다.
짧고 굵은 소설이다. 이 작가의 일대기를 쫓아 세상의 면면을 낱낱이 파고들어 담담히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싶어지던 소설이다.
#도서무료제공
☀️ 홍선주, 『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
효율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회사 일에서는 민폐만 끼치는 빌런, 커피믹스 도둑, 낙하산 본부장까지. “설마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겠어?” 싶다가도 작가의 실제 직장 경험이 70%이상 녹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났다. 진짜 SNL ‘직장인들’을 보는 것처럼 과장된 듯 현실적인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커피믹스 도둑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전체적으로 재미와 미스터리 요소가 함께 있는 소설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특히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커피믹스를 훔쳐 간 사람이 누구인지 따라가며 나도 함께 범인을 추리하는 기분으로 읽게 됐고, 그래서 더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그러다가도 어이없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효율성, 재미 같은 각자의 인생 모토가 등장할 때면 “그럼 내 인생을 설명하는 단어는 뭘까?” 하고. 직장인들의 골때리는 사건들을 보며 웃다가도, 가끔은 그런 사소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점이 의외로 좋았다. 누군가에겐 현실이라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 .
#광고
☀️ 치넨 미키토, 『리얼 페이스』
간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기 어려운 미스터리 읽었다 . . (진심) 당연함 의사가 쓴 메디컬 미스터리임
죽은 전처의 얼굴을 현재 아내에게 입혀 달라는 회장
횡령한 아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야쿠자 그리고 . . . 까지
『리얼 페이스』는 돈만 내면 어떤 의뢰든 받아들이는 성형외과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기묘한 수술 의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들만 노린 연쇄살인 사건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캐릭터들이었다. 자칭 천재 성형외과 의사 히이라기, 신입 마취과 의사 아스카,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며 묘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간호사 사나에까지. 개성 강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호흡 덕분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성형외과를 배경으로 한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읽을수록 더 인상적이었던 건 얼굴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사연이었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새로운 얼굴을 원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선택들이 생각보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다양한 의뢰를 따라가다 보면 『리얼 페이스』가 말하는 '페이스'는 단순히 얼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뀐 얼굴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건 결국 그 사람이 가진 진짜 마음과 본모습이었다.
역시 의사인 치넨 미키토답게 의료 현장과 수술 장면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 여기에 중반 이후부터 연이어 드러나는 비밀과 반전까지 더해져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기 어려웠다. 결국 이 이야기에 남는 건 바뀐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 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반전 있는 미스터리와 메디컬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읽었수
☀️ 연여름, 『메르헨』
이 책은 죽은 이를 ‘재생인’으로 다시 존재하게 할 수 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재생인과 일생인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재생인으로 다시 존재하게 된 나호와, 그런 언니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일생인 은호 쌍둥이 자매가 있다.
재생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관계를 이어가려 해도, 재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구분되고 의심받는 모습들이 현실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생인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SF적 설정이라기보다 결국 인간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대한 질문처럼 읽혔다.
나호와 은호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재생인에 대한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신경망 오류는 분명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라면 재생인을 아무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쓰고 읽는 것을 사랑하는 자매가 ‘공존’하는 이야기이자, 지금의 사회와 미래 사회에 대해 깊생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도서무료제공#독파앰배서더9기
☀️ 아룬다티 로이, 『어머니 내게 오시네』
이 작품은 단순한 에세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사유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에 가깝다.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사랑과 갈등을 함께 놓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게 된 방식을 되짚는다. 이 책은 모성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규범과 독립성을 지닌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긴장과 충돌을 드러내며, 관계를 단순한 화해로 정리하지 않고 감정의 결을 그대로 남겨둔다.
동시에 이 책은 개인의 기억이 사회와 정치 같은 현실과 연결되면서,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더 큰 이야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개인의 삶은 인도 사회의 계급, 여성성, 식민 이후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며, 그 안에서 개인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드러난다.
읽으면서 나는 로이의 어머니가 살아온 환경을 이해하는 동시에, 딸로서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속도일 것이다. 실제로 딸이 엄마를 이해하기까지의 시간과는 달리, 우리는 그 이해에 너무 쉽게 도달해버리니까.
결국 이 작품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결론이라기보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다시 묻는 느낌이었다. 보호자이자 규범이었고, 동시에 저항과 독립의 기점이기도 했던 로이 여사를 통해 관계는 단순한 사랑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 복합적인 감정을 따라가며,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완독챌린지독파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