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의식을 분쇄한 새마을 운동]
오랜만에 장인어른을 모시고 집 앞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저녁이었다.
아내는 위로 열 살 터울의 오빠, 언니가 있는 늦둥이 막내다. 그렇다 보니 장인어른은 어느덧 팔순을 넘긴 고령이시다. 경남 출신의 장인어른은 농사는 지으시지 않으셨지만, 평생 전국 현장을 누비며 일해 오신 베테랑 전기 기술자셨다
두툼한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채워드리며 문득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아버님, 요즘 애들 학교나 티비 보면 옛날 얘기가 다 잊혀가는 것 같아요. 불과 몇십 년 전인데도 새마을운동 때 진짜 어땠는지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요. 그때 현장에서 보신 얘기 좀 해주십시오."
장인어른은 투박하고 억센 손으로 소주잔을 받아 한 번에 털어 넣으시더니, 캬 소리와 함께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떼셨다.
"그때는 증말 가난했으.... 그때 마 박정희 대통령이 큰일을 하셨지. 모두가 배고파서 일도 하기 싫을 때인데 말이야..."
장인어른의 회상은 1960년대, 최빈국 시절의 팍팍했던 풍경으로 이어졌다.
"자네, 1인�� 국민소득 75달러라는 게 감이 오나? 아프리카 최빈국보다 못 살았어.
기술자로 전국 현장 돌아다녀 보면 농촌은 그냥 요즘 애들 말대로 헬조선 그 자체였지.
봄만 되면 먹을 게 없어서 쑥 뜯고 소나무 껍질 씹으면서 보릿고개를 버텼거든.
동네 사람들은 '우린 평생 이렇게 살다 죽을 팔자다' 하고 완벽히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어.
젊은 애들은 죄다 서울로 도망치고, 남은 아재들은 희망이 없으니까 낮부터 막걸리 나발 불고 신발까지 걸어 가며 화투판이나 벌였단 말이지."
초가지붕은 썩어가고 경운기 하나 못 다니는 좁아터진 흙길이 태반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길을 넓히거나 개천을 정비할 생각을 하지 않던 무의욕의 시대였다.
"근데 1970년 가을인가, 갑자기 나���에서 전국 마을마다 시멘트 300포대를 툭 던져주는 거야.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일꾼을 보내준 것도 아니고, 달랑 시멘트랑 호미, 괭이 같은 연장만 준 거지.
그러고는 박 대통령이 딱 한마디 한 거라.
'이걸로 길을 닦든 다리를 놓든 너희 알아서 해라. 스스로 돕는 마을만 다음에 더 도와준다.'"
처음엔 시골 사람들 반응이 황당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당장 먹을 쌀을 줘야지 딱딱한 돌가루는 어디다 쓰라는 거냐며 궁시렁거렸고, 시멘트 섞는 법도 몰라 비 맞아 굳혀버리거나 자기 집 부뚜막 바르는 데 써버리는 마을도 수두룩했다.
"근데 여기서 한국 사람 특유의 그 깡다구랑 옆 동네 비교질이 발동한 기라." 장인어른이 픽 웃으시며 소주를 한 잔 더 청하셨다.
"옆 마을에서 부녀회랑 청년들이 모여서 '야, 저쪽 동네는 벌써 시멘트로 개천 ��고 길 넓혀서 경운기 들어온단다! 우리가 저 새끼들보다 못한 게 뭐냐?' 하면서 불이 붙은 거지. 그때 내가 전봇대 세우고 전기선 깔러 시골 동네 들어가 보면 진짜 장관이었어."
마을마다 회의가 열리고, 이장부터 아낙네들까지 다 모여 토론을 시작했다. 길을 넓히려니 자기 집 담장을 허물어야 하는 아재가 못 하겠다고 펄펄 뛰면, 동네 사람들이 찾아가 인분도 같이 치워주고 술 한 잔 사면서 "후손들 위해서 딱 한 번만 양보하자"고 설득해 땅 사용 승낙을 받아냈다.
"그다음부터는 진짜 광기였지. 돈이 없으니까 소달구지에 가마솥 싣고 올라가 물 끓이고, 남자들은 괭이로 돌 깨고, 여자들은 치마폭에 돌멩이 날라가며 직접 길을 깐 거라.
지원받은 건 시멘트뿐인데, 주민들이 쏟아부은 피땀은 그 지원금의 몇 배가 넘었어.
마침내 콘크리트 길이 깔리고 그 ��로 경운기랑 트���이 빵빵거리며 들어올 때, 동네 사람들 다 같이 끌어안고 울고 난리가 났었지."
핵심은 단순한 길 포장이 아니었다. '우린 안 돼'라며 가슴속에 박혀 있던 수십 년 묵은 패배주의가 깨져버린 것이었다.
정부에서 약속대로 일 잘한 마을에만 철근과 시멘트를 추가로 때려 부어주니 전국 농촌에 자발적인 배틀로얄이 벌어졌다.
술판만 벌이던 아재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비닐하우스 기술을 연구하는 '새마을 지도자'로 변신했고, 불과 몇 년 만에 농촌 소득이 도시 노동자 소득을 역전하는 기적이 터졌다.
장인어른은 마지막 잔을 비우시며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때 박 대통령이 돈이나 쌀을 그냥 쥐여줬으면, 사람들은 며칠 지나 다 먹어 치우고 다시 노름판으로 돌아갔을 거다.
시멘트랑 호미 던져주고 '너희 손으로 직접 바꿔봐라' 하고 판을 깔��준 게 진짜 신의 한 수였지. 국민들 가슴에 '하면 된다'는 유전자를 강��로 이식해버린 기라."
소주병이 비어가는 동안, 잊혀가던 그 시절의 뜨거운 피땀이 횟집 테이블 위로 묵직하게 전해져 왔다.
그때, 구석 테이블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는 줄 알았던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게임 화면을 켜둔 채 손가락만 얼쩡거릴 뿐, 귀는 온통 할아버지의 입에 쏠려 있었다. 안 듣는 척 딴청을 피우면서도,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할아버지의 전설 같은 옛날이야기에 깊이 빠져든 모양새였다.
"녀석, 할아버지 얘기 다 듣고 있었구나?"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묻자, 아들은 찔렸는지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횟집 콘치즈만 슬쩍 찍어 먹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닌데? 나 게임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쓴 사람들이 길을 매끄럽게 깔아가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린 듯, 녀석의 입���에는 묘한 미소가 걸��� 있었다.
장인어른은 그런 외손주의 귀여운 거짓말이 흐뭇하셨는지, 주름진 손으로 아들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허허 웃으셨다.
"그래, 우리 강아지. 너희가 지금 이렇게 맛있는 회도 먹고 좋은 세상에서 사는 기, 전부 옛날에 할아버지랑 할머니들이 피땀 흘려 길 닦아놓은 덕분이다. 알겠나?"
"응! 알겠어요, 할아버지!"
아들은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외할아버지의 품에 폭 안겼다.
교과서 몇 줄로는 절대 전해지지 않을 뜨거운 역사가, 그렇게 소주 잔이 오가는 횟집 한구석에서 할아버지에게서 외손주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