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도 아닌 대진연은 북한 3부자를 대놓고 찬양해도 처벌은커녕 '진보당의 꿈나무'로 문제없이 자라나고, 이를 표현의 자유라며 감싸지 않았나?.
그런 위선자들의 입에서 고작 10대 소년들의 오바를 두고 퇴출 운운하며 핏대를 세우니 참으로 가당찮지 않은가. 도대체 광주가 뭐고, 스타벅스가 뭐길래 뭔놈의 표현의 자유가 북한하고 지들 한테만 관대한가? 때마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월드컵은 전술 부재의 아집 속에 32강 문턱도 넘지 못하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축구판의 참사를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라는 무대 위에서, 그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작위적인 토너먼트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반노(反盧) 월드컵'이다.
엔트리는 화려하다. 송영길, 김민석, 정청래. 그리고 이 라인업의 꼭대기에는 과거 노무현 정권의 대척점에서 가히 반노의 수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정동영 지지 모임을 이끌며 선봉장 역할을 했던 이재명이 버티고 있다. 노무현을 향해 가장 매섭게 돌을 던졌던 자들이 한데 모여, 이제는 서로의 멱살을 쥐고 네가 더 반노라며 삿대질을 해대는 풍경. 무덤 속의 망자를 강제로 끌어내어 서로의 충성심을 감별하는 이 블랙코미디 앞에서는 고급스러운 반어법조차 길을 잃는다.
도대체 송영길은 제 입으로 그 이름을 꺼낼수록 과거의 배신이라는 자신의 누추한 이력서만 돋보일 텐데, 왜 자발적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는가. 얼핏 보면 지적 판단력이 마비된 바보 같은 헛발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건조하게 쪼개보면 아주 영악한 정치 공학이 숨어 있다.
송영길의 진짜 목표는 자신이 친노의 적통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재명의 대리인인 김민석은 정통 친노의 표를 온전히 흡수할 수 없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의 창끝은 친노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정청래를 향한다. 잊혀진 이름을 소환해 정청래 지지층의 멘탈을 흔들고 판에 흙탕물을 튀기는 것. 진영의 분란을 조장해서라도 틈새를 벌릴 수 있다면 자신의 과거쯤은 기꺼이 도마 위에 올리는 이 철저한 마키아벨리즘이야말로 그가 정치를 연명해 온 방식이다.
이 희비극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김민석과 친명계의 작태다. 여론조사 지표만 보면 여유롭게 무대를 관망해도 충분할 텐데, 그들에게 강자의 여유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연일 핏대를 세우며 경쟁자들을 향해 우리와 경쟁하지 말고 당장 스스로 사퇴하라며 윽박지르고 떼를 쓴다.
왜 이토록 조급하고 불안한가. 지난 6·3 지방선거의 아사리판을 복기해 보면 답은 선명해진다. 여론조사만 믿고있다 판이 엎어진 경험이 있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도 여론조사의 어떤 수치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된 코미디.
이 다급함은 급기야 권력의 척추마저 꺾어버렸다. 이재명이 어제 삼성과 SK 총수들을 불러들인 장면을 보라. 과거 입만 열면 재벌 해체와 기득권 타파를 외치던 자가, 글로벌 기업 총수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호남에 수백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가 돌연 친기업 인사로 전향한 것이 아니다. 전당대회의 텃밭인 호남 당원들을 매수하고, 김민석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기 위해 국가의 첨단 산업을 선거용 소품으로 차출한 것이다. 1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글로벌 주식회사의 팔을 비틀고 과거의 신념마저 미련 없이 버리는 저 초라한 굴종. 재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권력의 안면몰수다.
우리는 여기서 묵직한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죽은 자의 영정을 방패 삼아 살아남으려는 자들에게, 과연 산 자들의 내일을 맡길 수 있는가.
여의도에 참으로 근면하고 부지런한 집단이 등장했다. "미루지 않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단숨에 법제사법위원회를 포함한 11개 핵심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 하겠단다. 야당과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관례 따위는 '의석수'라는 숫자의 몽둥이로 가볍게 때려 부수었다. 권위주의 시절 거수기 노릇을 하던 통법부(通法府)의 망령이, 2026년 이재명 치하에서 가장 세련된 다수결의 외피를 쓰고 완벽하게 부활했다.
과거 의회 정치의 뼈대를 건조하게 복기해 보자. 법사위는 모든 법안이 본회의로 가기 전 거쳐야 하는 최후의 브레이크다.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을 배출한 제1당이 법사위원장만큼은 제2당에 양보하는 룰. 이 묵계가 확립된 것은 2004년 17대 국회였다.
더욱 뼈아픈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다음이다. 좌파 진영이 그토록 수구 적폐라며 혐오하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이 18대, 19대 국회에서 압도적인 과반을 쥔 거대 여당으로 군림했을 때, 그들은 힘으로 의회를 독식하지 않았다. 보수 여당은 이 관례를 존중해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에게 흔쾌히 법사위원장 자리나 국회의장 자리를 번갈아 내어주었다. 정치적 앙숙일지언정, 의회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염치와 길항 작용만큼은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 그 룰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완장을 차고 거대 여당이 되자마자, 자신들이 적폐라 부르던 보수 여당조차 지켰던 이 묵계를 야만적인 독식으로 찢어버렸다.
그들이 이 최소한의 브레이크마저 제 손으로 뽑아 던진 이유는 투명하다.
자신들이 낸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고, 이재명의 사법적 방어막을 치거나 반대 진영을 옥죌 법안들은 마음껏 주무르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다. 그들은 이것을 '일하는 국회'라 포장한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입법부가 오직 1인의 안위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설 로펌으로 전락한 풍경을 제 아무리 포장해봐야 남루할 뿐이다.
소수의 목소리를 짓밟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절대 악이라며 광장에서 돌을 던지던 자들이다. 그런데 권력을 쥐자마자 절차적 정당성은 숫자의 힘으로 찍어 누르고, 합의의 미학은 발목잡기로 매도한다. 내가 하는 독식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성전(聖殿)이고, 남이 하는 통제는 민주주의 압살이라는 이 빈곤한 이중잣대.
이재명과 그 맹목적인 거수기들에게 분명히 일러둔다. 훗날 시간의 추가 기울어 정권이 바뀌고 권력의 자리가 교체되는 날이 오더라도, 부디 거리로 기어 나와 '독재'나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부끄러운 짓거리는 벌이지 않기를 바란다.
견제와 균형을 조롱하고 다수결의 폭력을 합리화하며 이 완벽한 억압의 시스템을 완성한 것은 다름 아닌 당신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회 민주주의의 목을 벤 자들이 훗날 독재의 피해자 행세를 할 뻔뻔한 자격은 이 땅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룰을 부순 자는, 결국 자신이 부숴버린 룰이 사라진 바로 그 폐허 위에서 가장 먼저 심판받게 되는 법이다.
이재명이 아주 물을 만난 듯하다. 어제 부터 꾸준히 엑스에 접속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대한 입장을 뿌리고 있다. 다가올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띄운 얄팍한 블러핑(Bluffing)이 아니냐는 세간의 합리적 의심이 꽤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좋다. 그토록 진심이라면, 행여나 기업의 팔을 비틀어 억지로 빼낸 선거용 조감도가 아니라 진짜 국토의 뼈대를 바꾸고 싶은 의지라면, 기꺼이 그 웅장한 계획을 현실로 만들 '무료 컨설팅'을 제공해 주겠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마이크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면 된다.
"호남에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와 초거대 댐을 건설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면 공학자와 경제학자, 나아가 비판적인 시민들조차 즉각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추진력을 인정할 것이다.
반도체 팹(Fab)은 정치인의 혓바닥이나 낭만적인 이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되도않는 신재생 에너지나, 수시로 바닥을 드러내는 강물로는 24시간 멈춰선 안 되는 반도체 라인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건 굳이 다시 설명하기 조차 지겹다. 원전과 초대형 댐 없이 수백조 원짜리 공장을 돌리겠다는 것은 나무 땔감으로 KTX를 운행하겠다는 소리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현실과 타협해 지역 실정에 맞는 소규모 특화 단지로 방향을 트는 것이 이치에 맞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야 할 기초적인 인프라 계획은 쏙 빼놓은 채 일단 1,000조 원짜리 깃발부터 꽂는다. 전기도 물도 없는 곳에 공장부터 밀어 넣겠다는 이 작위적인 몽상에 팩트를 들이대면, 저들은 어김없이 "호남 소외론", "지역 감정 부추기느냐"며 낡은 방패를 꺼내 든다. 논리와 공학에 감정적 선동을 들이대는 전형적인 궤변이다.
이 희극의 화룡점정은 따로 있긴 하다. 무슨 삼성과 SK가 외국기업이라서 정부가 나서 광주에 투자유치라도 한건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기업의 천 조 원대 투자 계획을 정권이 마이크를 잡고 발표한단 말인가. 글로벌 주식회사의 총수들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권력자가 남의 자금의 용처를 결정해주는 이 초현실적인 풍경은 너무 쉰내 나지 않는가? 결정도 기업이 할 일이지만 그 환호도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니다.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회사 대차대조표를 자신의 정치적 전리품처럼 흔들어대는가.
그 동안 호남 발전을 가로막는 진짜 주적은 합리적 비판자들이 아니다. 표밭 관리를 위해 허황된 몽상을 팔아먹으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온 정치꾼들 아니였나?.
국가의 역할은 기업의 투자 장부를 빼앗아 대신 읽어주는 낭독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자발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전선을 깔고 수로를 트는 묵묵한 조력자여야 한다. 물리학의 법칙을 권력의 아집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사회. 참 후지고 볼품없다.
[ 국민 눈에 돼지로 보인다면, 그건 당신들이 폭식하는 '돼지 짓'을 했기 때문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집중 투자를 둘러싼 ‘밀실 외압’ 논란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은 일갈이다. 거친 언사로 본질을 덮으려는 전형적인 프레임 전환이자, 정당한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을 향한 명백한 모독이다.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따져보자. 이 거친 반박에 공감할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정부가 오늘 요란하게 발표한 소위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삼전과 하이닉스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 기업이 내린 결정을 두고, 그동안 정권이 보여준 정황과 과정은 ‘자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밀실에서 기업의 팔을 비틀어 짜낸 결과물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정부의 주장대로 이것이 외압 없는 기업의 순수한 자율적 판단이라면,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자신의 치적인 양 포장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기만하는 ‘성과 가로채기’ 쇼다. 반대로 정권의 압박이 있었다면, 그것은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관치 금융, 관치 경제의 부활이다. 결국 “돼지 같은 짓을 해놓고, 문제를 지적하니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며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꼴이다.
이 연출된 각본의 냄새는 이미 이 전부터 풍겼다. 김민석 총리가 국정보고회를 빙자한 전당대회용 사전 유세에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대놓고 군불을 때지 않았던가. 최근 청와대 밀실에서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 모은 뒤, 기업이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들이 먼저 나서서 투자설을 흘리며 조바심을 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권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티를 내고 싶어 안달이 났던 당사자들이, 이제 와서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그 누구도 낙후된 호남 지역에 첨단 산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국토 균형 발전은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기업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천문학적투자 결정을 정치적 의도로 오염시키고, 특정 정파의 전당대회용 불쏘시개로 왜곡하는 그 행태가 추악하고 비루할 뿐이다. 가성비도, 효율성도 당권경쟁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반박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들이 용수나 전력 등 필수 인프라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사업성 판단도 없이 초거대 공장 설립 계획을 세웠겠느냐”*고.
기가 막힌 유체이탈 화법이다. 이 반박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권의 관치 개입 수준이 ‘세계 초특급’이었다는 방증이자 자백이다.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왜 인프라 검토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정권의 정치적 타임라인에 맞춰 부랴부랴 투자 계획을 발표해야만 했을까.
시장과 기업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보는 구시대적 관치 경제,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국민의 입을 막으려는 거친 언사.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친 정권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본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거울부터 보길 바란다.
요즘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들을 관통하는 가장 서늘하고도 보편적인 정서는 분노를 넘어선 일종의 '경이로움'이다. 뉴스와 스포츠 중계를 번갈아 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헛웃음을 뱉는다.
"저 따위가 리더라면, 차라리 내가 해도 저것보단 낫겠다."
이 참담하고도 유쾌한 국민적 자각을 이끌어낸 두 명의 주역이 있다.
먼저 벤치를 점령한 꼰대, 홍명보다. 전술은 찾을 수 없고 고집만 느껴지는 선수기용에 낡은 백패스만 고집하다 슈퍼스타의 피땀과 피날레를 허공에 날려버리기 직전이다. 전술 부재 상태에 빠진 채 자신이 아는 단 하나의 낡은 방식만 우겨대는 지독한 아집. 우리는 이 그라운드의 비극에서 무능력의 가장 전형적인 쌩얼을 확인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여의도를 보면, 이 처참한 무능의 완벽한 데칼코마니가 국가의 운전대를 쥐고 있다. 이재명의 국정 운영 매뉴얼 역시 홍명보의 백패스처럼 단 한 줄로 요약된다. '무조건 빚을 내어 돈을 푼다.'
건조하게 그의 궤적을 복기해 보라. 동의하진 않치만 내란을 극복하는데도, 민생이 어려워져도, 심지어 중동 전쟁과 고물가의 여파를 막겠다며 또 전쟁 추경을 강행했다. 도합 58조 원이다.
이젠 심지어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GPU를 확보해야 한다는 첨단 미래 기술의 화두 앞에서도, 이 권력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유일한 해법은 "곧 추경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1차원적 반사신경이었다. 망치를 쥔 자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듯, 포퓰리즘에 뇌수를 절인 자에게는 국가의 모든 위기가 그저 빚을 내어 표를 매수할 '추경의 명분'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던 해답이 추경 단하나뿐 이라면 정부가 대체 왜 필요한가?
AI 산업의 경쟁력은 규제 철폐와 전력망 확보, 그리고 세제 혜택이라는 복합적인 인프라 혁신에서 나온다. 그런데 국가가 빚을 내어 그래픽카드를 사재기하겠다는 이 조악한 발상 앞에서는 차라리 말문이 막힌다. 복잡하게 얽힌 경제의 인과율을 풀어낼 산업에 대한 이해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 오직 '국가 예산으로 물건을 사서 꽂아준다'는 조선시대식 배급주의 밖에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안을 사유할 능력이 없는 자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오만하다는 것이다. 축구판의 꼰대가 무늬만 쓰리백 '원툴' 전술로 경기를 망치듯, 여의도의 파시스트는 추경이라는 낡은 약병 하나만 쥐고 국가 경제의 척수를 마비시키고 있다. 실패가 뻔히 보이는데도 유연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얄팍한 요행 하나에만 집착하는 아집.
무능은 그저 한 개인의 슬픈 한계일 뿐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처참한 무능과 고집이 완장을 차고 타인의 운명을 결정지을 때, 그것은 거대한 국가적 테러가 된다.
패배의 원인분석도 못하고 선수탓을 하고, 물가가 오른 이유가 유동성인데 또 추경을 한다. 이 지독하게 빈곤한 철학을 가진 두 명의 권력자 아래서, 2026년의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매일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내 지능이 저들보다 낫다"며 씁쓸하게 안도해야 하는 삼류 코미디의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력이 기업의 목줄을 쥐고 흔들 때, 그 장면은 언제나 화려한 구호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오는 29일, 이재명이 청와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이른바 ‘대한민국 대도약 1,000조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단다. 호남에는 반도체, 충청에는 AI 데이터센터, 영남에는 피지컬 AI를 찢어 나누어 주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이다.
우리는 이 웅장한 텍스트 이면에 은폐된, 아주 차갑고도 폭력적인 사실을 건조하게 쪼개어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팩트. 저 1,0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는 국가의 예산이 아니다. 철저히 사기업인 삼성과 SK가 글로벌 시장에서 피 튀기는 생존 경쟁을 벌이며 투자해야 할 그들의 ‘피 같은 사유재산’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입지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효율성, 즉 전력과 용수의 무한 공급과 인재 확보의 용이성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은 그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자신의 정치적 표밭 지형도에 맞춰 ‘엔 분의 일(1/N)’로 강제 할당해 버렸다. 물이 부족하는 보고서조차 대통령의 충분하다는 근거없는 말 한마디로 퉁치고 수백조 원짜리 반도체 공장을 억지로 밀어 넣고, 지역별로 AI 타이틀을 하나씩 떼어주는 짓. 이것은 경제 정책이 아니다. 권력을 쥔 조폭 보스가 구역을 나누며 기업의 지갑을 강탈하는 완벽한 ‘합법적 삥뜯기’다.
이 기괴한 사기극의 본질은 청와대 정책실장 김용범의 행보에서 가장 투명하게 폭로된다. 명색이 국가 정책을 총괄한다는 자가, 발표를 앞두고 쪼르르 달려간 곳이 하필이면 좌파 선동의 본진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다. 그곳에서 그는 "세계 1, 2위 기업을 쥐어짠 게 아니다"라며 제 발 저린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책실장이 김어준의 마이크를 빌려 숫자를 자랑하는 순간, 이 1,000조 원짜리 프로젝트는 국가의 경제 청사진이 아니라,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에게 던져줄 저열한 선전 선동용 전단지로 완벽하게 전락했다.
도대체 이재명은 왜 기업 총수들의 팔을 비틀어 하필 ‘지금’ 이토록 무리한 숫자놀음을 벌이는가. 과거 얄팍한 스타벅스 사태가 지방선거를 겨냥한 표몰이 쇼였다면, 이번 1,000조 원짜리 반도체 유치 쇼는 철저히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겨냥한 불꽃놀이다. 우리는 그것을 '대도약'이 아니라 '망국(亡國)'이라 부른다.
6월의 눈부신 정오, 휴대전화 화면 위로 참으로 천박하고도 기괴한 텍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법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타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재명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글이다. 권력을 쥐고 나눌 파이가 줄어들자, 이제는 어제까지 동지를 자처하던 같은 좌파 진영 내 스피커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밥그릇을 놓고 으르렁거리는 그들만의 집안싸움이야 기생충들의 흔한 영토 다툼이려니 하고 넘길 수 있다. 이제와 여태껏 이재명의 본질을 몰랐던 것처럼 쑈하고 있는 유시민도 역겹지만 명색이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일개 논객의 비판에 발끈하여 대낮에 이런 감정적 배설물을 쏟아내는 광경 앞에서는 차라리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재명이 차용한 무학대사의 저 낡은 잠언을, 그가 쓴 논리 그대로 그의 거울 앞에 반사시켜 보자.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타인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도대체 '전과 4범'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비칠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망을 우롱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소모품으로 삼고, 불리할 때는 안면을 몰수하며 살아온 자의 눈동자. 그 혼탁한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온통 속고 속이는 사기꾼들과 언제 등 뒤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배신자들로 가득한 처참한 수라장일 것이다. 그가 매사에 타인을 맹렬히 의심하고, 측근조차 믿지 못해 끊임없이 통제하려 드는 이유는 세상이 악해서가 아니다. 그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정확히 그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부처라 착각하며 내뱉은 조롱이, 실은 스스로가 끝없는 탐욕의 돼지우리에 갇혀 있음을 만천하에 자백하는 완벽한 심리적 투사가 된 셈이다.
나는 이 한 줄의 텍스트 앞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존엄이 얼마나 알량한 손가락질 하나로 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목격한다.
환율과 물가의 파도 속에서 서민들의 삶이 익사해 가는 절체절명의 시대다. 이 묵직한 국가적 위기 앞에서 밤잠을 설쳐도 모자랄 권력자가, 고작 진영 내의 말싸움에 이겨보겠다고 휴대전화를 붙잡고 속담이나 인용하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품격도, 무게감도, 최소한의 염치도 시궁창에 내다 버린 저 깃털보다 가벼운 입술에 5천만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사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서늘하고 잔혹한 현실이다.
창밖의 여름 햇살은 찬란하지만, 나라의 꼴을 생각하면 마음은 한없이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돼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에게 옥좌를 내어준 대가로, 우리는 지금 국가 전체가 냄새나는 진흙탕으로 전락하는 끔찍한 수모를 겪어내고 있다. 진정한 비극은, 이 천박한 블랙코미디를 견뎌내야 할 시간이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순리가 있고, 땅에는 그에 걸맞은 쓰임새가 있는 법이다. 이재명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낡고 거창한 주술을 앞세워, 기어코 호남에 수백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를 밀어 넣겠다고 선언했다. 이 화려한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를 건조한 상식의 잣대로 쪼개어 보면 엽기적인 모순들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 왜 역사적으로 가장 비옥한 대한민국의 곡창지대를 굳이 시멘트로 덮으려 하는가.
호남의 흙은 5천만 국민의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생명의 땅이다. 그 비옥한 평야에 벼를 심는 대신, 굳이 하루 수십만 톤의 물과 전력을 집어삼키는 화학 공장과 반도체 팹을 쑤셔 넣겠다는 발상. 공간경제학과 지리의 인과율을 모조리 짓밟고, 오직 정치인의 행정지도 위에 자를 대고 그은 이 강제 배분은 국토에 대한 폭력이자 지정학적 코미디다.
둘째, 반도체를 짓기 전에 젊은 두뇌들이 살 수 있는 '대형 쇼핑몰'부터 허락하라.
반도체 산업의 핵심은 시멘트 건물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울 글로벌 최고 수준의 '청년 인재'들이다. 이 2030 엘리트 엔지니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퇴근 후의 일상, 즉 현대적이고 세련된 거주 여건이다.
그런데 호남의 좌파 정치권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는가. 대형 복합쇼핑몰 하나 입점하려 할 때마다 골목상권과 '5일장'을 지켜야 한다며 결사반대하고 기업을 내쫓았다. 청년들이 원하는 자본주의적 소비 인프라는 "천박한 대기업의 골목 침해"라며 거부해 온 자들이, 이제 와서 자본주의의 최첨단 결정체인 반도체 공장은 내놓으라고 떼를 쓴다. 낮에는 나노 단위의 최첨단 팹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5일장에서 장을 보며 낭만적인 밤을 보내라는 것인가.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재를 부르겠다는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셋째, 정율성 공원과 푸바오에 열광하는 이념적 생태계의 한계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독특한 정치적, 이념적 소비 방식을 그럭저럭 이해해 주며 넘어갔다. 귀여운 판다 한 마리에 온 나라가 빼앗길 듯 열광하는 촌극이나, 심지어 6.25 전쟁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을 위해 팔로군 행진곡을 지어 바친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기리겠다며 수십억 세금을 들여 역사 공원을 짓는 그 기괴한 행태들 말이다. 그게 그 동네 좌파 권력이 선택한 그들만의 갈라파고스적 생태계라면, 그래, 백번 양보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이념의 성역 한가운데에, 치열한 자유시장경제와 글로벌 기술 패권의 심장인 '반도체'를 심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공산당 군가를 부르던 자의 공원을 거닐며,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을 상징하는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이 기막힌 병치. 이것은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결합이다.
이재명이 호남 반도체를 외치는 이유가 정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인가?. 복합쇼핑몰조차 들어서지 못하는 닫힌 생태계에, 수백조 원이라는 가상의 어음을 발행해 자신의 표밭을 영구적으로 매수하려는 얄팍한 '선거 공학'으로 비치는 건 나 뿐인가 말이다.
기본적인 상업 인프라조차 이념의 잣대로 검열하는 곳에, 최고급 두뇌와 수백조 원의 자본이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갈 리 만무하다. 균형 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당장 내려라. 잘 쳐줘봐야 전당대회용이란 걸 알지만서도 학문적으로 말이 안되는 걸 주장해야하는 내 자신도 처량하다.
이재명이 호남 입지의 근거로 내세운 '값싼 땅'과 'RE100- 재생에너지'이라는 기괴한 핑계다.
초정밀 반도체 공장은 땅값이 싸다고 지을 수 있는 단순한 물류 창고가 아니다. 웨이퍼를 씻어낼 초순수를 만들기 위해 하루에만 수십만 톤의 물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하마다.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는 하천 유출량의 변동 폭이 극심해 몇 년 주기로 바닥이 갈라지는 극심한 가뭄을 겪는 땅이다. 마실 물도 모자란 모래사막에 가장 물을 많이 먹는 산업을 쑤셔 넣겠다는 작위적 발상이다.
게다가 RE100을 운운하며 태양광과 풍력을 내세우는 대목은 경제와 공학에 대한 무지의 결정판이다. 반도체 라인은 단 1초만 전력이 끊겨도 수백억 원의 웨이퍼를 폐기해야 한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는 간헐적인 태양광으로는 절대 24시간 돌아가는 팹의 기저 전력을 감당할 수 없다. 기초적인 산업의 물리적 인과율조차 완벽히 붕괴된 헛소리다.
여기에 더해, '균형 발전'이라는 낡은 주술과 공간경제학의 충돌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집대성한 신무역이론의 핵심은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ies)'다. 반도체는 팹리스, 파운드리, 패키징, 소부장 기업들이 촘촘하게 얽혀 시너지를 내야 하며, 무엇보다 최고급 두뇌들이 기꺼이 머물고자 하는 정주 여건이 필수적인 생태계의 결정체다.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비용과 알박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수도권에 모이려는 이유는 탐욕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대적인 '생존의 문법'이다.
<수원지검에 묻습니다. ‘쪼개기 후원‘ 정치자금법위반 항소포기는 누구 지시입니까?>
오늘 수원지검은 지난 주 이화영 국민참여재판 관련, ‘쪼개기 후원‘ 정치자금법위반 및 ‘연어술파티‘ 위증 부분은 항소포기하고, 직권남용 공소기각 부분만 항소하기로 하였습니다.
3가지 혐의 중 2가지를 항소포기한 것입니다.
위증의 선고형량 징역 4개월은 그 범행 동기나 범행이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에 비추어 너무 가볍습니다. 따라서 위증도 양형부당 항소를 하였어야 마땅하지만 국민참여재판의 성격을 감안할 때 애써 이해하고자 하면 항소포기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쪼개기 후원‘ 정치자금법위반에 대해 항소포기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한 결정입니다. 공익을 대표하는 검찰로서는 반드시 항소를 했었어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경선에 수천만원을 쪼개기 해서 후원금을 준 사안으로 쌍방울 측은 모두 이화영의 부탁으로 돈을 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심에서 이화영이 무관하니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쌍방울이 수천만원을 누구도 모르게 쪼개기 후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이해가 되는지요?
그간 편파성 논란 소지를 제공한 재판부마저 이례적으로 “유죄의 의심이 되나 배심원 의견 존중하여 무죄를 한다”라고 판결이유에 적었습니다.
수원지검 공판 검사들은 항소의견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상식적이고 그간 업무 관행에 부합하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수원지검 지휘부와 대검도 그 의견을 수용하여 법무부에 보고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종 결론은 항소포기였습니다. 수원지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또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이 “수원지검은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식의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고는 항소를 포기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법무부로 수원지검 항소 의견이 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위례 사건 항소포기 때와 판박이입니다. 그 때도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은 항소의견이었고, 그것이 중앙지검, 대검을 거쳐 법무부로 갔는데, 서울중앙지검은 돌변하여 “서울중앙지검은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식의 문자메시지 하나로 항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 때는 함구령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뭐가 ‘켕겼는지‘ 함구령까지 내렸습니다.
항소 여부는 법리적 판단이고, 그 의사결정 과정은 투명해야 합니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하도록 되어 있고, 지금까지 모두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들 모두 이재명 대통령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검찰 의사결정의 중립성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들이었습니다.
수원지검에 묻습니다.
1. 도대체 이 항소포기는 누가 지시한 것입니까?
2. 공판검사, 수원지검장, 총장대행의 의견이 합치되어 항소의견으로 법무부에 간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3. 항소포기가 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법리적으로 논의된 보고서가 있습니까?
4. 이 사안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마도 위례사건 항소포기 때와 같이 아무 반응이 없겠지요.
다만, 한가지 충언을 드리건대, 관계자들 모두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본인들이 피력했던 의견들은 잘 정리해두고 그 증거도 존안하여 두십시오.
이렇게 사익으로 국가의 일을 망치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와 책임을 치르게 될 것이니까요. 아마도 누군가는 또 자기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미룰겁니다. 그 때 필요할테니 잘 해두시길 권해드립니다.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축구만 망하는게 아닙니다.
나라가 망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 쪼개기 후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부분을 첨부합니다.
얄팍한 속내가 이토록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니, 비판의 언어를 고르는 것조차 사치스러워 차라리 할 말을 잃게 된다. 뻔뻔함도 이 정도면 가히 예술의 경지다.
더불어민주당이 헌법 개정을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체하겠다는 속보를 띄웠다. 무능하고 편향된 선거 관리 시스템을 국가의 근본 규범을 고쳐서라도 바로잡겠다는, 겉보기엔 참으로 비장하고 웅장한 결단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사학의 껍데기를 냉혹하게 벗겨내면,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좌파 권력의 시커먼 야욕과 기괴한 모순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첫째, 지독한 이중잣대의 촌극이다.
과거 그들이 권력의 턱밑을 겨누던 검찰을 도축하던 방식을 복기해 보자. 아마 제헌의원들이 생존하셨다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기괴한 궤변이 동원됐다. 헌법 제12조에 영장 청구 주체로 명백히 명시된 헌법기관 검찰의 수족을 잘라내어, 이름만 남은 텅 빈 '유령 단체'로 전락시킬 때 그들은 굳이 개헌을 운운하지 않았다. 국회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겠다며 자당 의원을 꼼수로 쫓아내는 헌정사상 최악의 '위장 탈당'까지 불사하며, 고작 하위 법률 개정안을 다수결의 폭력으로 밀어붙였다. 헌법 기구를 법률 꼼수로 무참히 찢어발겼던 자들이, 왜 유독 선관위만큼은 국가의 뼈대를 뒤집는 '개헌'이라는 거창한 수술대에 올리려 하는가.
답이야 뭐 두말할 나위 없이 투명하다. 좌파 권력은 지금 선관위 하나를 고치는 것에 만족할 생각이 없다. 선관위 해체라는 자극적인 명분을 미끼로 삼아 헌법의 판도라 상자를 열고, 5·18이나 비상계엄 국회 통제권 강화 더 나아가 결국엔 아마도 연임같은 자신들의 정파적 숙원 사업을 슬그머니 밀어 넣으려는 얄팍한 '트로이 목마' 전술이다. 결국 그놈의 개헌을 잃지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의 뻔뻔한 기만극일 뿐이다.
둘째, 팩트가 만들어내는 블랙코미디다.
상식적으로 헌법을 고치려면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투표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실무 기관이 어디인가. 바로 그들이 적폐라며 해체하겠다고 지목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자신들의 조직을 해체할 헌법 개정 투표의 관리를 맡기겠다는 이 기막힌 형용모순. 사형수에게 자신의 사형 집행 버튼을 직접 누르라고 설계하는 꼴이다.
셋째, 이 모든 사기극의 종착역은 '선거의 완벽한 사유화'다.
도대체 왜 선거의 룰을 고치는 짓을 반칙의 수혜자인 '그들'이 주도해야 한단 말인가. 6·3 지방선거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챙긴 정권과 민주당이 선관위를 해체하고 새로 만들겠다는 세상은 투명하다. 헌법 기구로서의 독립성을 박탈한 뒤, 정권의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는 산하 기관, 이른바 '선거통제위원회'로 편입시키겠다는 노골적인 알박기다.
나아가 그들이 툭하면 만지작거리던 '전자투표'라도 전면 도입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리적 증거는 휘발되고 오직 권력이 통제하는 서버의 디지털 숫자만으로 승패가 갈린다. 파시스트들이 꿈꾸는 가장 완벽하고 추적 불가능한 선거 조작의 생태계가 헌법의 이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개헌없이, 전자개표없이, 사전투표 없애고 국민과 언론이 투명하게 하게 확인 가능한 현장 수개표 이게 그렇게 알아듣기 힘든가?
전광판의 숫자가 화려하게 명멸한다. 코스피 9000. 이 경이롭고 웅장한 지수 앞에서 이재명과 좌파 권력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신들의 경제적 치적이라 포장하기 바쁘다. 그러나 그 눈부신 숫자의 껍데기를 건조하게 쪼개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대한민국 경제의 서늘하고 참혹한 시체가 웅크리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다루는 자들은 기만술의 천재들이다. 코스피 상승을 이끈 것은 오직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개의 거인뿐이다. 지수가 9000을 목전에 둔 폭등장 속에서도 무려 589개의 종목이 하락했다. 상승 종목은 그 절반인 291개에 불과했다. 이것은 국가 경제의 성장이 아니다. 글로벌 AI 열풍이라는 외부의 거대한 해일 위에 올라탄 두 반도체 기업이, 뇌사 상태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멱살을 틀어쥐고 간신히 매달려 있는 아슬아슬한 구조 현장이다.
좌파들이 틈만 나면 개혁과 해체, 적폐 청산을 외치며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던 그 반도체 재벌 대기업들이, 역설적이게도 이재명 체제의 경제 성적표를 분식(粉飾)해 주는 유일한 산소호흡기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과 평범한 국민의 일상은 어떠한가.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에너지 정책과 반시장적 노동 규제로 인해 제조업과 내수 서비스업은 완전히 질식했다. 뉴욕타임스가 정확히 짚어낸 이른바 'K자형 양극화'. 극소수의 첨단 산업만 하늘로 치솟고, 나머지 99%의 실물 경제와 평범한 노동자들은 심해로 곤두박질치는 끔찍한 절망의 생태계다.
가장 서늘한 비극은 이 파산한 경제 구조가 청년들의 영혼마저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30 세대의 뇌수를 잠식한 거대한 포모(소외 불안) 증후군을 보라. 물가는 폭주하고 자산 격차는 은하수처럼 벌어지는데, 월급을 모아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바보들의 동화가 되어버렸다. 청년들은 노동의 가치를 조롱하며 영끌과 빚투로 주식 호가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국가가 땀 흘려 일하는 자들의 내일을 지켜주지 못하고, "노동이 무슨 소용이냐"는 절망감만 펌프질하는 사회. 자산 형성의 사다리를 모조리 걷어차 놓고, 전 국민을 도박꾼 아니면 배급표를 기다리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이재명식 포퓰리즘이 완성해 낸 '투기 공화국'의 민낯이다.
구체적인 숫자로 장부를 까보자. 지난 5월과 6월, 단 두 달 동안에만 매매를 강제 정지시키는 사이드카가 무려 28차례나 터졌다. 5월에 6번 울리더니, 6월에는 아예 거의 매일같이 사이렌이 울려 퍼진 셈이다. 시장 전체의 전원을 강제로 뽑아버리는 서킷브레이커 역시 6월 8일과 23일, 연달아 두 번이나 발동됐다. 특히 23일엔 하루 만에 코스피 지수가 910포인트, 10% 가까이 증발하며 증시가 완벽한 셧다운을 맞았다. 여기에 매일같이 수십, 수백 개의 종목이 상하 30% 가격제한폭의 천장과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옴짝달싹 못 하며 비명을 지르는 엽기적인 발작이 숨 쉬듯 반복되고 있다.
이 차가운 팩트가 증명하는 본질은 명확하다. 지금의 코스피는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의 정상적인 자본 시장이 아니다. 그저 끝을 모르고 돌아가는, 코인판보다 더한 '초대형 사설 도박장'으로 완벽하게 전락했다. 노동의 가치를 짓밟고, 징벌적 세금과 규제로 부동산과 실물 경제를 질식시킨 좌파 정권이, 벼랑 끝에 몰린 전 국민의 멱살을 쥐고 '영끌 빚투'라는 룰렛 테이블 앞으로 강제로 끌어들인 결과다.
상황이 이토록 참담한데도, 어제 국회에는 기본소득당, 사회 무슨당 같은 좌파들이 모여 반도체 기업의 초과 세수를 뜯어내 '국부펀드'를 만들고 기본소득을 나눠주겠다는 몽상을 얘기한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두 거인의 등골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빨아먹으면서, 그 핏빛으로 자신들의 볼이 발그레해졌다고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기생 생물들의 왈츠다.
코스피 9000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무능한 권력이 빚어낸 극단적 불평등을 가려주는 거대하고 위태로운 홀로그램이다. 글로벌 AI 사이클이 식고 반도체의 착시가 걷히는 날, 우리는 모래로 쌓아 올린 이재명 체제의 경제가 얼마나 끔찍한 소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게 될 것이다. 신기루가 화려할수록, 사막의 갈증은 더욱 잔인한 법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 전과 이재명.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 너그 민주당.
공정에 대한 모독, 위조 조국.
참정권에 대한 모독, 개판 선관위.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 연어 정성호.
통일에 대한 모독. 세작 정동영
저널리즘에 대한 모독, 딸랑 MBC.
한국전쟁에 대한 모독, 항미 국방부.
군인에 대한 모독, 방위 안규백.
월드컵에 대한 모독, 뇌사 홍명보.
이걸로 밤샐 수 있을 듯.
6월의 태양은 뜨겁고, 76년 전 그날의 포성은 이제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박제된 낡은 기록처럼 보인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낯선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렸던 푸른 눈의 이방인들, 그리고 조국의 척박한 산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산화했던 이름 모를 국군 용사들. 오늘, 그 잔혹했던 6.25의 아침을 다시 맞이하며 나는 낡고 주름진 그들의 훈장 앞에 가만히 시선을 멈춘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노병들의 탁한 눈동자에는 깊은 탄식과 절망이 서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피로 맺은 한미동맹을 조롱하고, 적의 전차를 막을 최전방의 대전차 방벽을 흉물이라며 제 손으로 부수고 있다.
평화와 자주라는 얄팍하고 위선적인 텍스트로 국가의 안보를 해체하는 기괴한 자해가 매일같이 상영된다. 어쩌면 당신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이, 당신들을 완벽하게 잊고 배은망덕한 망각의 늪에 빠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시라. 스피커를 장악한 소수의 파시스트들이 광장에서 헛소리를 뱉어내며 역사를 기만하고 있을 뿐, 이 땅의 묵묵하고 평범한 대다수 시민은 당신들의 피 묻은 군화 위에서 우리가 어떤 기적을 쌓아 올렸는지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떠 호흡하는 당연한 자유, 밤하늘을 불야성처럼 수놓는 번화가의 불빛으로 대변되는 물질적 풍요.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결코 입술로만 더러운 평화를 읊조리던 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전쟁의 가장 비참한 폐허 속에서, 자신의 내일을 포기하며 조국의 오늘을 바친 당신들의 청춘과 차가운 묘비 위에서만 피어날 수 있었던 묵직한 인과율의 산물이다.
제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져도, 사실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눈부신 기적의 카다란 지분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기꺼이 방아쇠를 당겼던 16개국 참전 용사들과 이름 없이 죽어간 국군 병사들의 피에 빚지고 있다.
거짓과 선동이 잠시 시대의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피로 쓰인 역사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대다수 국민들은 가짜 평화와 무장해제의 주문에 속아,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헐값에 팔아넘길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러니 현충원과 유엔기념공원, 그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땅에 잠든 이름 모를 국군 장병과 또 푸른 눈의 용사들이여,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낡은 전우의 빛바랜 사진을 쓰다듬고 있을 늙은 영웅들이여. 부디 안심하시라.
당신들이 지켜낸 이 서늘하고도 찬란한 자유의 영토는, 헛된 광기와 거짓에 결코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 76년 전 당신들이 치러낸 그 참혹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도, 결코 패배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