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아는 '끌어당김의 법칙(시크릿)'이 왜 많은 사람에게 부작용을 낳거나 반쪽짜리 성공에 그치는지, 그리고 왜 가슴(하트 차크라)으로 내려가야만 하는지가 바로 이 '이원성(Duality) 대 일원성(Unity)'의 구조에 있습니다.
두뇌는 고차원의 사고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기관입니다. 본래 생존을 위해 '나와 남', '선과 악', '얻음과 잃음'을 구분하고 계산하도록 진화되고 설계된 오래된 연장통이자 이원적 도구입니다.
머리로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고 강렬하게 끌어당기면, 두뇌의 이원적 구조 밑바닥에는 필연적으로 '지금 결핍되어 있다(가난하다/아프다)'는 전제와 두려움이 동전의 뒷면처럼 달라붙습니다.
벽을 밀면 벽도 나를 똑같은 힘으로 밀어내듯, 쪼개진 의식(두뇌)으로 빛을 강하게 원할수록 내 시야가 닿지 않는 등 뒤(무의식과 예상치 못한 현실)에서는 정확히 같은 크기의 어둠(반대급부)이 함께 주조되는 것입니다.
이를 부증불감의 원리라 합니다. 전체적으로보면 늘지도 줄지도 않는 제로썸게임이라는 거죠.
흉골 중앙의 '하위 하트 차크라(심장 안의 작은 공간)'는 이원성이 작동하지 않는 유일한 영점(Zero Point)은 이와 달리
일원성(Unity) 구조입니다.
상·하 에너지가 하나로 녹아드는 용광로: 호흡을 통해 하늘(양/상단 삼각형)과 땅(음/하단 삼각형)의 두 에너지를 끌어들여 가슴 차크라에서 합일시키면, 음과 양이라는 대립 자체가 사라진 태초의 일원성 상태(동양의 황극, 서양의 토러스 중심 특이점)가 열립니다.
심장의 공간에서는 만물이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을 직관적으로 압니다. 따라서 ‘부족하니까 가져야겠다"는 에고의 갈망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기쁨과 감사,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안(심장)에서 밖(현실 홀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비추는 방식으로 창조가 일어납니다.
결국 공성의 창조행위가 일어날 뿐이며 세상은 신의 춤이라는 게 이해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끌어당김과 창조의 비결은 "생각(두뇌)으로 현실을 조작하려 애쓰는 것을 멈추고, 의식을 가슴 한가운데(하위 하트 차크라)로 내려보내어 반대급부가 없는 '하나 됨(Oneness)'의 주파수에서 꿈을 꾸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