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려면 당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되게 못된 사람이거나 이래야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누군가를 정말 좋아해도 그 사람을 내 상황에 유리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고, 본성이 선한 사람도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럴 수 있음을.. 30대 넘어서야 겨우 깨달음
이용 당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선 제대로 그어야 한다는 거
나는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려면 당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되게 못된 사람이거나 이래야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누군가를 정말 좋아해도 그 사람을 내 상황에 유리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고, 본성이 선한 사람도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럴 수 있음을.. 30대 넘어서야 겨우 깨달음
이용 당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선 제대로 그어야 한다는 거
덕자라는 분 adhd 약 드시고 있다 하셔서 (정확히는 '치료'란 기사지만 adhd란 치료가 없는 병이니까) 위키 찾아봤는데 이 대목 진심 공감가네... 약 먹은 후로 예전엔 인지 못했던 내 주변 현실 객관적으로 깨닫고 현타오는 거... 마치 세상을 맨날 흐릿하게 보다가 안경 쓴 느낌...
갑자기 오늘 언니랑 옛날 얘기하다가 생각난 것.
나는 우리집의 가난을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비참하다면 비참할 만한 일도 많았음. 대학에 갈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면서,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더 다양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웬걸, 나가보니 우리집보다 가난한 집은 대학에는 없더라. 나도 언니가 알바비로 모은 돈으로 등록금을 해줘서 갈 수 있는 대학이었지만, 마치 내가 가난한 사람 중에 갈 수 있는 대학에서 제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았음.
친구들에게 너무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는 온통 낯선 일이어서, 대학 초반에는 비디오를 빌려서 하숙방에 틀어박히는 일도 많았음. 왜냐면 나는 겨우 하숙비를 조금 깎은, 내가 세 번 구르면 끝인 하숙방에서 비디오만 가능한 낡은 티비를 친구에게 얻어서 살고 있었는데, 애들이 영화보러 가자고 하거나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그냥 돈이 없었음.
가난한 몸뚱이를 세상에 부딪히는 일이 그때는 너무 힘들었고, 그걸 숨기고 싶어서 더 힘들었던 거 같음. 대학 이름 걸고 과외를 다닐 때, 과외하느라 학과 생활에 하나도 참여를 못할 때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 방황도 많이 함.
마치 추억 이야기 같지만, 나는 아직 '여유롭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음. 왜냐면 가난은 홀로 가지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가난한 거거든. 가난한 집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마치 기적 같은 일이고 우리집은 딸 셋이 자기 한 몫을 다 하게 되면서부터 조금 안정을 찾았지만, 넉넉해진 게 아니라 그제야 잔금 확인 않고 외식정도는 해도 되는 정도가 된 것임.
책 살 것도 잘 사고, 먹는 것도 잘 먹는 거 같은데? 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걸 남들보다 10년은 늦게 이루었다는 거지.. 오래 걸려서 도달했음. 그리고 10년 늦게 이룬 것들이 대단치도 않은데 온 집안이 우리 자매 목구멍만 바라볼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은, -이건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감각일 거. 여전히 누가 아프면 병원비 걱정부터 할 수밖에 없고, 가족 중에 누가 무슨 일이 생기면 돈 나올 데가 뻔히 우리밖에 없는 걸 아니까 너무 짜증이 남.
아마 우리는 자매 셋이 서로가 아니었으면 누구 하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 그건 커서 정말 정말 많이 느끼는 점임.
가난이 키운 아이는 가난을 잊지 못함.가난 속에서 옹송그리면서 살 것이냐, 세상에 부딪힐 것이냐는 언제나 나의 숙제임. 이제까지 나는 부딪히면서 살았는데 좀 상처가 많이 나서 엉망진창이 되어 있음. 지금은 그래서 좀 쉬는 중.
근데, 불안해서 가끔 잠에서 깨어 울기도 함. 내가 학교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 내가 거꾸로 가족의 짐이 될까 봐.
물론 그렇지 않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 우리 엄마도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키웠음. 엄마는 항상 최대한의 한계까지 다, 써서 우리를 키웠을 것임. 그런데 세상에 나와 보니 엄마의 최대가 세상의 최소에 겨우 미치는 정도였을 뿐.
아 그렇다고 지금 가난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아뇨, 라고 대답할 정도만큼은 왔음. 근데 가난은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집안에 여러 일이 생기면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
난 잘 벗어난 줄 알았는데 그놈이 그렇게 질기더라..
갑자기 이런 감성적인 가난타령을 왜 하게 되었냐면, 어렸을 때 얘기하다가 언니가 첫 등록금 내준 거, 나 너무 자랑스러웠다 얘기하는데 나는 엄마가 언니에게 빌려달라고 요청해서 언니가 흔쾌히 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자기 대학때 고작 90만원 국립대 등록금이 없어서 여기저기 빌렸던 것이 생각나고, 그때 너무 슬펐기 때문에 내 등록금은 자기가 해주겠다고 알바한 돈에서 일정 금액을 계속 모으고 있다가 주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대학이라는 것이 그나마 내가 가난에서 멀어질 수 있는 계기였는데, 그게 오로지 언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어. 오늘 조금 울었고, 나도 과외 하면서 나도 못가본 수학여행, 동생도 못보낼까봐 돈 모아서 보낸 기억, 동생 가방이나 신발을 자주 살핀 기억 같은 게 나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버팀이 되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음. 그래서 또 질질 울었지.
언니한테 감동하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내가 과외한 돈으로 동생 빕스 데려가서 샐러드바 이용법 같은 거 가르치던 기억이 나더라고. 나 사실 그때 빕스 갈 돈 내고 나면 쌀 살 돈 없었어. 우리가 서로에게 가난한 티를 벗기기 위해, 무엇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지금 좋은 것만 발견하면 사줄까 물어보는 내 동생도 그렇고.
가난을 추억할 수있으면 여유가 생긴게 아니냐고..?
가난을 추억하면서 웃어야 그런 거지. 난 질질 우는 걸.
그냥 조금 멀어진 거임. 가난은 방심하면 또 바짝 붙는 녀석이라서 방심할 수 없음.
언니에 대한 사랑과 감동에 벅차서 너무 긴 글을 쪘다.
내일 일어나면 삭제할지도
여초는 통제와 규칙이 진짜 줫같음
나 다마고치 네이버 카페에서 글 썼는데 질문글인데 질문게시판에 안올렸다고 삭제당함 근데 글 내용이 님들은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하세요? 이런거였음 씨발 그리고 글 3줄 이하 적으면 글삭+정지, 뭐하면 삭제 삭제 정지 이지랄 쳐해서 그냥 접음 웃긴건 문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