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쫄지 마'가 유행하던 시절을 회상해보니 참 재미있는 편집증적 투사이긴 했다.
시곗바늘을 십수 년 전, 이른바 '나꼼수'가 광기를 뿜어내던 시절로 돌려보자. 김어준을 비롯한 스피커들은 팟캐스트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첩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비장한 목소리를 깔았다.
"우리 언제 구속될지도 모릅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미행하고 있어서 잠자리도 매일 바꿉니다."
"가카의 심기를 건드려 언제 암살당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정권이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국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겁박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매일같이 쏟아냈다. 대중은 열광했고, 그들은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는 비운의 투사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해내며 막대한 부와 정치적 권력을 거머쥐었다. "쫄지 마, 씨X"이라는 주문은 이 거대한 사기극의 화려한 배경음악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당시를 회상해보면 진실은 한 편의 허탈한 코미디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들�� 누군지도 몰랐고, 그들의 방송 내용에는 더더욱 관심조차 없었다. 권력은 그들을 핍박할 시간적 여유도 동기도 없었는데, 그들 스스로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장엄한 섀도복싱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던 국가 권력의 암살 위협과 국정원의 억압은 철저히 기획된 편집증 마케팅이자 얄팍한 비즈니스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주 소름 돋는 심리학적 통찰 하나를 건져 올릴 수 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있지도 않은 국가 기관의 사찰과 권력의 입틀막을 그토록 집요하게 상상하고 떠벌렸을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들 내면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검은 욕망의 '투사(Projection)'였다. 즉, 그들이 상상하고 지어냈던 억압적인 권력의 모습은, 훗날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민을 향해 휘두���고 싶었던 완벽한 독재의 청사진이었던 것이다. 반대파의 입을 틀어막고, 정보기관과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을 겁박하며, 감히 자신들을 조롱하는 자들을 사상 검열의 단두대에 올리는 통제 국가. 그들은 독재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그 폭력적인 시스템의 조종간을 쥐는 억압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아닌가?.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라. 그 나꼼수의 주역들이 좌파의 스피커로 건재하고 그들의 선동이 탄생을 일조한 이재명 정권이 하고있는 일이 무엇인가. 입틀막법을 통과시켜, 권력에 이견을 제시하는 국민과 언론에 최대 5배의 징벌적 배상이라는 금융 철퇴를 내리쳤다. 검찰은 해체가 확정되었고, 경찰은 알아서 권력자 보호의 방패를 자처한다. 아이돌의 사투리를 일베로 몰아 인민재판을 열고, 고등학생들의 스타벅스 응원 구호에 묘역 참배를 강요하며, 듣�� 싫은 랩 가사가 나오면 음원 유통망을 긴급 차단하겠다며 국가가 나서서 검열의 가위를 휘두른다.
과거 허공에 대고 "쫄지 마"를 외치며 가상의 억압자와 싸우던 그들은, 이제 현실 세계에서 온 국민을 진짜로 쫄게 만드는 가장 완벽하고 악랄한 빅브라더가 되었다. 자신들이 헛소리로 지어냈던 그 공포의 병영 국가를, 기어코 자기들 손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이들의 찬란했던 과거의 섀도복싱은 결국, 국민의 숨통을 조이고 혀끝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전체주의를 흠모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자백아니었나. 가짜 투사들이 쥐어준 몽둥이에 온 국민이 두들겨 맞고 있는 지금, 쫄지 말라던 그 알량한 주문은 이 시대 가장 역겨운 저주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옥죄고 있다.
방금 전 광주 광산경찰서의 노골적인 증거 인멸 사건을 짚어내는 글을 하나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현직 경찰관 아들의 살인을 덮어주려다 적발된 이 펄펄 끓는 이슈를 빌미로, 혹여 특정 지역 전체를 찌르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잠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굴레를 짊어진 호남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장엄한 서사를 읽다 보니, 차갑게 식혀둔 팩트 폭격의 스위치가 다시 켜지고야 말았다. 박지원 의원에게 건조하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언제부터 객관적인 통계와 부끄러운 행정의 실태를 지적하는 일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희롱'으로 둔갑했는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지적장애인을 잡아다 섬에 가두고 노예처럼 부리는 끔찍한 인권 유린이 버젓이 적발되는 곳이 어디인가. 대한민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북한과 중공군의 군가를 지은 정율성을 기리겠다며, 수십억 세금을 들여 기념 공원을 지은 게 호남이 아니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시민들의 소비 편의는 안중에도 없이 5일장과 전통시장 상권을 지켜야 한다며 대형 복합쇼핑몰 입점을 악착같이 거부해 온 갈라파고스 행정은 누구의 작품인가. 그것이 당신이 말하는 희롱당하는 억울한 성역의 진짜 현주소다.
이들의 기상천외한 행정 촌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시민들이 마실 물조차 부족하고, 이해충돌을 무릅쓰고 생계형 가족사업을 펼친 정동영의 태양광으로는 어림도 없는 전력 인프라. 턱없이 모자란 현실을 뻔히 알면서 냅다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겠다고 우겨대는 꼴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압도적으로 1위를 다투는 나일롱 환자와 보험사기 지표, 전 세계 보이 스카우트 대원들을 폭염 속 진흙탕에 몰아넣고 수백억 원의 세금을 공중 분해시킨 새만금 잼버리 대참사,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준비 부실로 삐걱대는 여수 세계섬박람회, K팝 특화거리를 조성한다며 귀신나오게 생긴 거리를 조성한 기괴한 세금 낭비, 동학운동의 유족에게 나가는 보상금까지. 당신이 원한다면 더 나열해 줄 수도 있다.
내가 열거한 이 모든 참사와 부조리들은 누군가 악의적으로 꾸며낸 음해나 일베 몰이용 가짜뉴스가 아니다. 수십 년간 그 지역을 텃밭 삼아 장기 집권해 온 좌파 정치 카르텔의 폐쇄성과 무능이 낳은 뼈아픈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역 행정의 곪아 터진 환부가 드러날 때마다 아주 편리한 치트키를 꺼내 든다. '핍박받는 호남'이라는 무적의 피해자 서사를 방패로 삼아, 합리적인 지적조차 "우리를 혐오하고 희롱한다"며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팩트를 팩트라 부르지 못하게 억압하는 사회는 결코 스스로의 병을 고칠 수 없다. 잘못된 ��정과 부패한 카르텔에 ���스를 들이대는 것은 비열한 희롱이 아니라, 과거에 갇혀 썩어가는 체제를 미래로 끌어올릴 유일한 백신이다.
대대손손 호남을 모욕하는 진짜 주범은 팩트를 짚어내는 국민들이 아니다. 당신들의 알량한 표밭을 관리하기 위해, 과거의 상처와 피해 의식을 부패와 무능을 덮는 방탄조끼로 전락시킨 정치꾼들이다. 객관적인 사실 지적을 희롱이라 우기며 눈물을 짜낼수록, 그곳은 영원히 낡은 정치 비즈니스의 볼모로 잡힌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될 것이다.
[수사팀장 구속으로 꼬리 자를 일 아냐,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대행 즉각 물러나라]
검찰 보완수사권조차 폐지하면 피해자의 절규가 일상이 되는 세상이 온다.
피해 여고생 어머니의 절규에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는 가슴으로 울었다.
살인범 장윤기의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경찰이었다.
경찰 가족이 범인이라는 것 때문에 함구령이 내려졌고, 경찰이 직접 증거를 인멸하고 법률 적용도 가벼워졌다.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대행이
모두 사퇴할 엄중한 사안이다. 특검도 고려해야 한다.
수사팀장 구속으로 꼬리 자르기 하려고 하다니 어림없다.
민주당이 검찰 마약 수사권 없애서 마약이 창궐하게 됐���.
보완수사권 폐지하면 강력 범죄가 판치게 된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피눈물 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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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말리던 소수점의 전쟁이 막을 내리고 짙게 깔려 있던 안개가 걷히자, 이제야 조금은 진정하는 마음으로 비로소 저들이 치밀하게 설계했던 거대하고 서늘한 '마스터플랜'의 전모를 뒤돌아본다. 애초에 이재명과 좌파 카르텔이 이번 6.3 지방선거를 통해 노렸던 것은 단순한 지자체 권력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헌·공소 취소·검열'로 이어지는, 완벽한 체제 전환과 영구 집권을 위한 3단 콤보였다.
그들의 시나리오는 투명할 정도로 뻔했다. 당초 저들의 첫 번째 계획은 이번 지방선거 투표용지에 '개헌안'을 슬쩍 끼워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파 진영의 끈질긴 방어로 이것이 무산된 것이, 저들의 거대한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첫 번째 치명적 패착이었다.
첫 단추가 막히자 다급해진 이재명은 선거 직후, 국무회의에서 대놓��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것"이라며 '공소 취소'를 운운하는 무리수를 던졌다. 의도는 명확했다. 만약 이번 지선에서 좌파가 압승을 거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다가올 취임 1주년에 맞춰 광화문 광장에서 거대한 굿판을 벌이며, 관제 언론을 ���동원해 이렇게 선동했을 것이다. "보라, 국민이 선거로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이것이 곧 헌법적 사면이니, 당장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모든 공소를 알아서 취소하라!"
당연히 상식적인 국민들의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올 테니, 7월부터는 '가짜뉴스 척결'이라는 도덕적 핑계를 대고 인터넷 검열의 빗장을 걸어 잠가 반대 여론의 입을 완벽하게 틀어막는 입틀막법의 발효. 이것이 그들이 꿈꿨던 무혈 쿠데타의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주권자들의 묵묵하고도 차가운 한 표는 이 끔찍한 폭주 기관차를 완벽하게 탈선시켰다. 이재명의 거대한 자해극이 잃어버린 것들의 청구서를 뜯어보면, 벼랑 끝에서 일궈낸 상식의 승리가 얼마나 통쾌하고 치명적인지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타격은, 보수 진영이 의석수와 지형을 방어해 내며 저들의 개헌 야욕을 뼛속까��� 단단히 틀어막을 수 있는 '거부권의 바리케이드'를 굳건히 지켜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재명 픽(Pick)'은 완벽하게 전멸했다. 거대 메가시티의 비전은 팽개치고 오직 '친명 호위무사'라는 얄팍한 완장 하나로 링에 올랐던 정원오, 남의 스피커에 기생하려던 하정우 등 주군의 아바타들이 모조리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한때 맹신도들을 몰고 다니며 좌파의 정신적 지주 행세를 하던 조국 역시, 그의 알량한 정치적 밑천이 이번 선거의 냉엄한 심판 앞에서 유통기한이 끝났음을 처참하게 증명했다.
오세훈의 생환이 만들어낸 유쾌한 나비효과도 짜릿하다. 그의 극적인 재당선은 단순히 수도 서울을 지켜낸 것을 넘어, 김어준이라는 희대의 선동가가 다시 TBS 마이크를 거머쥐고 시민의 세금으로 가짜뉴스를 배설하려던 그 끔찍한 복귀 시나리오의 싹을 영구히 짓밟아버린 쾌거다.
안방의 샴페인 잔을 깨뜨리는 외신의 냉혹한 평가가 여기에 완벽한 쐐기를 박았다. AP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다수의 선거구를 차지했지만, 최대 격전지인 서울에서 패배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치명적 타격"이라며 "유리한 지형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승부처를 내주어 완전한 승리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건조하게 타전했다. 안방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척 핏대를 세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차가운 팩트 폭격 앞에서는 상징성과 실리를 모두 잃어버린 '상처뿐인 영광'임이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촌극의 훌륭한 백댄서였던 엉터리 여론조사 기관들의 완벽한 파산 선고를 기억해야 한다. 선거 직전까지 좌파의 압승을 점치며 무당 노릇을 하던 그 가짜 지표들은, 그 이해하기 힘들던 높기만 하던 여론조사는 개나 주는게 맞다는 통쾌한 확신만을 남긴 채 ��레기통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이 모든 전리품을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수확은 따로 있다. 바로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를 뼛속까지 갈아엎을 완벽한 '명분과 동력'을 쥐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투표용지가 모자라 주권자를 돌려보내고, 권력자의 선거법 위반 앞에서는 굽신거리며 선거법을 무시하더니, 개표 직전 굳게 닫힌 뒷마당에서 의문의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이 기괴한 헌법기관. 우리는 이제 선거 승리라는 날 선 무기를 쥐고, 민주주의의 심장을 갉아먹는 이 썩어빠진 심판의 카르텔에 가장 차갑고 잔혹한 메스를 들이댈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한 독재를 꿈꾸며 짜놓았던 저들의 3단 콤보는, 도리어 자신들의 무능과 위선을 폭로하는 거대한 자해극으로 끝이 났다. 벼랑 끝에서 이 나라의 상식을 구원해 낸 주권자들의 조용하지만 위대한 반격. 나는 이 서늘하고도 유쾌한 희비극의 결말을, 아주 오랫동안 기분 좋게 곱씹을 참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가 속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미쳐버린 건가... 광주정신이 이런 거였나? 민주당 변태들이 5.18전야제에 유흥업소 몰려가도 못 본척 표 몰아주는 이유가 이런 정서 때문이었나?
말만 멋드러졌던 사람들. 광주정신은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고, 5.18정신은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라고...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권력자가 스스로 자신의 재판을 없애려 하는, 독재로 물든 대한민국의 오늘 앞에서 기괴한 춤과 노래를 배설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차라리 가벼워진다.
이제 그들에게 권력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마음의 빚은 없다. 기만은 끝났다.
간단한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대단히 어려운 상상이 아니라 그저 정원오의 발언과 해명의 주인공을 오세훈으로 치환해 보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 카페(?)에서 치고받고 싸웠다 치자는 거다. 무려 경찰에게 까지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건말이다. 심지어 아가씨, 2차의혹까지 불거지고 그 부끄러운 동네 주폭질이 들통나자 "5.18 문제로 토론하다 분노해서 때렸다"고 핑계를 댔다고 치자.
당장 다음 날 광화문 광장은 어떻게 됐을까.
광장 한복판에 단두대가 세워졌을 거다. 여성단체들은 성 착취 규탄 삭발식을 열고, 5.18 단체들은 광주 정신을 모독한 대역죄인이라며 밤새도록 횃불을 들었을 거다.
자, 이제 영화를 끄고 현실로 돌아오자. 주인공의 이름표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로 바뀌는 순간, 이 요란했던 정의의 사도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단체로 전원 코드를 뽑아버린다.
무덤 같은, 아니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속기록과 폭로에 술집 아가씨가 등장해도 대한민국의 그 숱한 페미니스트들은 투명 인간이 되었다. 자신들의 가장 거룩한 성역인 5.18이 고�� 술자리 주먹질의 알리바이로 헐값에 소비되어도, 광주를 앞세운 단체들은 ���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한다.
이 지독한 정적 앞에서 기어코 구역질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진보라는 번지르르한 껍데기를 쓴 이 거대한 생태계의 진짜 민낯이 백주대낮에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여성의 인권이나 역사의 성역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아니다. 오직 상대방의 목을 칠 때만 스위치를 켜는 '진영 맞춤형 전기톱'일 뿐이다. 내 편이 술집에서 난장을 피우고 역사를 일회용 걸레짝처럼 소모하는 짓에는 철저히 안대를 쓴 채 흐린 눈으로 넘겨준다. 정의의 여신상을 자신들의 진영을 지키는 사설 경호원으로 개조해 버린 이 기괴한 선택적 분노는, 타락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
진보라는 간판을 달고 수십 년간 대한민국 도덕을 독점해 온 자들의 완벽한 붕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가, 권력이 던져주는 예산표와 공천장 부스러기��� 받아먹으며 주인의 입맛에 따라 짖거나 입을 닫는 '���치 용역반'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러니까 5.18을 모독하고 인권을 능멸하는 진짜 주범은, 술집 시비에 핑계를 댄 저 낡은 정치꾼 한 명이 아니다. 그 더러운 변명 앞에서도 오직 내 편이라는 이유 하나로 기꺼이 침묵의 카르텔을 짜주는, 저 위선자들의 끈끈한 스크럼이다.
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정의의 빤스, 술 냄새와 위선의 썩은 내가 너무 진동해서 이제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난 지금 이 시대가 너무 싫다. 성실해서 노동을, 장사를,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악마가 안겨준 힘을 악용해 파업을 도구로 삥뜯기 한탕에만 골몰해 있다. 그에 순응하는 NPC들은 자신의 지갑에서 통장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고, 나날이 버거워지는 무게에 한탄 할 뿐.
AI특수라는 싱싱한 회.
거기 달라 붙은 원청 노동자, 하청 노동자, 심지어 농어민에, 또 뭐에.
지금의 사회적 혼란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치밀한 ���계다.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이끄는 위정자들이 셀프 공소취소라는 악행을 저지를 동안 대중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뿌린 비싼 미끼 같은 것.
이 추잡한 탐욕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재명을 단죄하고 미쳐버린 개념을 되찾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난 기아 응원가 그거 부르면서 한이 서려있네
5.18이니 지역차별 떠올리며 지지리궁상 떠는
꼴도 보기 싫어 허구헌날 민주당에 호구로
이용 당하고 DJ 이후 이번 아니면 요원할
잘난 호남 인물은 선동 당해서 버리고
어디 버러지 같은 범죄자 경북놈 뽑아 재끼면서
광주 사람들 5.18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