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 여성이 최근 영국 BBC 인터뷰에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운이 좋은 피해자"라고 칭했다. 끔찍한 범죄의 생존자가 스스로를 '운이 좋다'고 말해야 하는 이 기막힌 모순. 그녀가 운이 좋았던 이유는 단 하���다. 다가오는 10월 본격 시행될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이전에 사건이 터지고 재판이 끝났기 때문이다.
팩트는 건조하고 명확하다. 사건 초기, 경찰은 피해자의 의류에 남은 성범죄의 결정적 DNA를 놓치고 중상해로, 여론이 안좋아지자 살인미수로 송치했다. 심지어 가해자는 구치소에서 피해자의 주소를 외우며 보복 살인을 벼르고 있었다. 자칫 가벼운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괴한의 표적이 될 뻔했던 이 사건을 뒤집은 것은, 가해자의 동선을 재구성해 '강간 살인미수'라는 실체를 밝혀낸 검찰의 보완수사였다. 무능한 초동 수사가 낳을 뻔한 끔찍한 비극을 법률 전문가의 교차 검증이 막아낸 것이다.
단순한 '체급 상의 무능'이 빚은 참사조차 이토록 치명적인데, 만약 공권력이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제 식구를 감싸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광주 '장윤기 사건'이 그 완벽한 예시다. 현직 경찰 간부인 가해자의 아버지가 강간 살인의 핵심 증거인 리얼돌과 케이블타이를 빼돌려 소각했다. 경찰 수사팀은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부하들에게 "성적 목적을 보고서에서 빼라"며 단순 살인으로 조작해 송치했다. 자칫 영원히 묻힐 뻔했던 공권력의 카르텔을 박살 내고 혐의를 바로잡은 것 역시 검찰의 보완수사였다.
10월부터 시행될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유일한 브레이크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내려놓고, 문제가 있으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하라"고 강제한다. 수사 종결권을 독점한 자들이 작심하고 덮어버린 텅 빈 서류를 보면서, 도���체 무슨 수로 맹점을 꿰뚫어 보란 말인가. 이는 사법 개혁이 아니라, 국가가 공권력의 범죄 은폐를 합법적으로 방조하는 짓이다.
제도를 누더기로 만든 거대 여당은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며 가볍게 넘긴다. 이미 섣부른 정책이 빚어낼 참사의 예시가 사회 도처에 널려 있건만, 기어이 국민을 생체실험의 마루타로 삼아 이 망가진 법의 쓴맛을 직접 겪어보라는 선언이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다루는 국가의 사법 체계를, 출시 후 버그를 수정하면 그만인 스마트폰 앱쯤으로 취급하는 지독한 오만이다.
백번 양보해 훗날 끔찍한 부작용이 속출하여 전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다고 치자. 과연 그들의 말처럼 쉽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 번 '수사 종결권'이라는 ���콤하고도 절대적인 권력의 꿀단지를 맛본 경찰 조직이 그것을 순순히 내어놓을 리 만무하다. 조직의 밥그릇과 직결된 권한을 지키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발버둥 칠 것이 자명하다.
간신히 그 조직적 저항을 뚫어낸다 해도, 다시 국회에서 개정안을 발의하고 지루한 정쟁과 심의, 표결을 거쳐 공표되기까지는 또다시 아득한 세월이 소요된다. 정치꾼들이 그 느릿한 입법의 쳇바퀴를 굴리며 핑곗거리를 찾는 그 기약 없는 시간 동안, 굳게 닫힌 경찰서 캐비닛 속에서 질식해 갈 제2, 제3의, 아니 셀 수조차 없이 양산될 억울한 피해자들의 찢겨진 인생은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원상 복구하겠다는 말인가.
잃어버린 시간과 파괴된 개인의 삶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위정자의 가벼운 말장난이,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선고문이 되는 것이다.
평소 약자 보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던 진영의 침묵은 얼마나 역겨운가. 사법 파괴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은 생존 피해자가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린다. 타인의 고통마저 자신들의 정치적 득실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철저한 '선택적 공감'이다.
이재명과 자당 인사들의 사법 리스크를 경찰 단계에서 조용히 덮기 위해, 국가의 치안 시스템을 통제 불능의 정글로 내동댕이쳤다. 범죄 피해자가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을 '천운'으로 여겨야 하는 나라는 이미 실패한 국가다. 권력의 방탄을 위해 사법을 난도질하고 약자의 진짜 목소리를 묵살한 위정자들. 10월 이후 경찰서 캐비닛 앞에서 양산될 수많은 '운 나쁜 피해자'들의 피눈물은, 결국 이 제도를 망가뜨린 자들에게 가장 가혹한 역사의 청구서로 돌아갈 것이다.
🚨[단독] 대한민국 영토 내 중국인은
100% '잠재적 간첩'
국내에 들어와 있는 모든 중국인이 잠재적인 간첩(스파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들은 중국정부(중국공산당)가 명령하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인과 조직이 알고있는 정보를 모두 중국정부에 제공할 의무가 있다.
어떤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뜨거운 고함 대신 가장 차갑고 기괴한 실소로 터져 나온다. 최근 검찰 내부망에 한 현직 검사가 올린 글의 제목을 보며, 나는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지탱해 오던 마지막 이성이 속절없이 끊어지는 서늘한 소리를 들었다.
“범죄자 야호, 아주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안이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자, 매일같이 조서와 씨름하며 ��실을 좇던 일선 검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절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텅 빈 체념이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뼈아픈 외침이였다.
이 기막힌 역설 속에 담긴 심연을 가만히 헤아려 보라. 그는 묻고 있는 것이다. 불량품을 잡아내는 마지막 품질 검사소마저 제 ��으로 폭파해 버리려는 국회를 보며,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막아내야 한단 말인가.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놓친 증거, 덮어버린 의혹, 혹은 교묘한 법 기술에 속아 넘어간 맹점을 다시 들여다보고 바로잡을 유일한 법적 거름망이 바로 보완수사권이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국가의 형사소추 시스템이 완벽하게 마비됨을 의미한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부실한 1차 수사에 가로막혀 기약 없는 소송 지옥을 헤매야 하고, 비싼 대형 로펌을 살 수 있는 권력자와 사기꾼들은 그 헐거워진 그물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무법의 천국'이 도래했다는 선언이다.
치열하게 범죄와 싸워온 실무자로서, 국가의 척추가 진영 논리 앞에서 두 동강 나는 이 참담한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이 오죽 깊었으면 저런 비릿한 실소를 뱉어냈겠는가.
잊지말자. 이 모든 비극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거대 여당 민주당이다. 그들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거창하고 추상적인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조악한 포장지 아래 숨겨진 진짜 욕망은 너무도 노골적이고 치졸하다는 걸 기억해야한다.
정치가 사법을 유린하고 법치가 진영의 사유물로 전락한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범죄자 야호”라는 저 뼈아픈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 국회가 누구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지를 묻는 역사의 차가운 고발장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국가의 방어막을 찢어 발기고 억울한 시민들을 벼랑 끝 사각지대로 걷어차 버린 위정자들에게, 역사의 인과율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사법 체계라는 방파제를 스스로 부수어버린 자들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 로베스피에르가 그랬듯 스스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무법의 파도에 가장 먼저 휩쓸려 익사하게 ��� 것이다.
작법자폐, 자업자득.
내가 김수현 그루밍 사건에 신경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이거 그냥 넘어가면 한국에 소아성도착 환심형범죄에 유한 사회적 분위기가 생김
이거 절대 그냥넘어가면 안됨
어린애들한테 조금이라도 헛짓거리하면 사회에서 생매장당한다는 선례를 만들 절호의 기회임
우리가 사회적분위기를 선도해야함
파면이 안될까봐 불안한게 아니야
파면은 당연한 거지만 우리 5년만 더 살거 아니고,
극우정당 지난번에는 계엄 준비하다가 엎어졌고 이번에는 계엄하고 나서 엎어졌는데 엄벌하지 않으면 그 다음엔 독재가 완성될거라서 그게 무서워서 그라는거지
탄핵 문제없다는게 위로가 안돼 지금..
그동안 사람(여성) 죽여도 딱히 큰 벌 받지 않았거든요.
교제중이던 여성이 폭행으로 11번이나 신고 해도 훈방해주는 사회였거든요.
결국 살해해서 긴급체포 했다가도 도주 우려 없다고 8시간만에 풀어주곤 했거든요.
가해자 구속될때 경찰이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고 선생질 하는 사회였거든요
트랙터를 몰고 지역 이동을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개인의 재산이 되는 트랙터를 망가트리고, 끌어내리고, 목을 부여잡으며, 폭력을 행사한다. 공권력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게 점점 당연해지고 있다. 악질의 범죄자한테도 근거 없이 저래서는 안되는거다 하물며 범죄자도 아닌 농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