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장관님, 허위의 ‘연어술파티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조작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장관님,
지난 주 소위 ‘연어술파티‘ 위증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 판결에 대한 장관님이나 법무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저는 아직 접한 바 없습니다.
장관님을 필두로, 이진수 차관 등 법무부, 구자현 총장대행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 정용환 등 서울고검이 ‘연어술파티 의혹’을 진실로 포장하고 조작하여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국민들이 지금까지 한 일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대표적인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관님의 지시로 교도관이 주축이 된 법무부 특별점검팀이 ‘연어술파티가 있었다’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한 결과가 감찰도 하기 전에 언론에 공표되었습니다. ’연어술파티’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공문서의 제목으로 처음 쓴 것도 위 법무부 특별점검팀이었습니다.
이후 장관님의 지시로 꾸려진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TF팀이라는 수사팀은 위 의혹 관련 쌍방울 직원 등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하였고, 수많은 수사기밀을 언론에 누설하여 저를 '음식으로 허위진술을 조작한 검사'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장관님과 장관님의 지시를 따르는 이들의 이러한 조치는, 국회 국정감사, 국정조사의 명분으로 활용되었고, 심지어 특검에게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위헌인 특검법으로 열매를 맺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장관님은 저를 무기한 직무정지시키고, 사건을 종합특검으로 넘겼습니다. 종합특검은 사건을 마무리 하고 있지 않고 ’피의자 전환‘이니, ’출국금지‘니, ‘초대형 국정농단’이니 하면서 소위 언론플레이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법무검찰도 아니고 국가기관도 아니며 그저 권력의 충견이 되어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공무원 하나를 제물로 바쳐 권력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조직에 다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법무검찰을 이렇게까지 반인권적, 비법치적 국가폭력 조직으로 변태시킨 것에 대해 장관님은 통절하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은 검찰을 상대로는 늘 “과거에 대한 자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 본인부터 지금까지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고 반성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선언하여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수원지법의 국민참여재판 판결이 나온 이후에도 저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던 사람들에 대해 사과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검찰에게 뭘 자성하라는 것입니까.
장관님께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공개적으로 요청드립니다.
1. 연어술파티 의혹을 조작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찰자료를 공개 내지 유출하여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을 한 것과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사과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관련자들에 대해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2. 저에 대한 무기한 직무집행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직무에 복귀시켜 주십시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많습니다. 제가 가진 검사로서의 능력도 국가로부터 받고 길러진 것입니다. 장관님이 맘대로 그렇게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3.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를 즉시 해체하거나 활동을 중단하십시오.
이제와서 연어술파티가 안되니 또 무슨 꼼수를 쓰시는 것입니까? 그런 조직이 역사상 한번이라도 있기나 했습니까? 본인이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을 위원회 뒤에 숨어서 하지 마십시오. 죄 없는 검사들을 뽑아다가 잘못에 가담시키기 마십시오.
장관님의 결단을 통해 적어도 법무검찰이 이쯤에서 이탈을 멈추고 정상 궤도로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일주일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응하지 않으시면, 저도 이 전대미문의 국가폭력과 법치파괴에 대해, 모든 법적 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입니다.
국회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남발한 이화영이 유죄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지긋지긋했던 ‘술파티 타령은 허구’임이 드러났습니다.
직접 보지도 못한 일에 ‘100% 사실’ 운운했던 이재명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아울러 수년간 맘고생이 심했을 박상용 검사에게 위로와 축하를 보냅니다.
선글라스를 낀 연예인 이하늘이 차 안에서 카메라를 향해 거친 욕설을 섞어가며 대중을 훈계했다. 1,540원이라는 참담한 환율을 걱정하는 이들을 향해 "모지리들"이라 침을 뱉으며 그가 내뱉은 일갈은 이렇다. "지갑에 기껏 1달러, 2달러 꽂고 다니는 주제에 무슨 환율 걱정이냐. 우리한테는 곱창값, 원자재값, 식재료값, 마늘값이 오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식도 일정 수준을 넘기면 경이로움이 되는 듯하다. 곱창집 불판을 달구는 LNG는 어디서 결제되어 오나? 그 곱창을 내어주는 소를 찌우는 사료는? 불판위의 마늘밭에 뿌려지는 비료의 원료는 도대체 어느 나라 돈으로 사 온단 말인가.
수출입으로 연명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밥상 물가와 원자재 가격은 정확히 저 바다 건너의 '환율'이라는 핏줄을 타고 들어온다. 환율 폭등이 곧 곱창값 폭등이고 마늘값의 폭주다. 이 직관적이고 1차원적인 연결고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당장 네 지갑에 달러가 없으니 환율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저 투명하고 해맑은 무식함. 저것이 바로 세상을 흑백의 평면으로만 인식하는 좌파들의 평균 해상도 인건가.
허나 한심함의 심연을 지나자 오히려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정말이다. 이 영상은 한 편의 완벽한 사회학적 예방주사였다. 우리가 도대체 어떤 지능을 가진 자들과 같은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며 이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굴려가고 있는지, 그 뼈아픈 현실을 너무도 잔인하게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25만 원에 환호성을 지르고, 멀쩡한 원전 생태계를 박살 내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산에 깔 때 박수를 치던 맹목적인 지지층의 민낯이 바로 저기에 있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이성의 회로가 애초에 끊어진 자들이다.
그동안 저들에게 거시 경제의 위기를 말하고, 국가 재정의 뼈대를 설명하며 어떻게든 논리적 토론을 시도하려 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득한 헛짓거리였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환율과 곱창값이 별개라는 기적의 경제학을 신봉하는 자들과 도대체 무슨 언어로 국가의 미래를 논한단 말인가.
능지가 처참한 자들에게 팩트는 폭력으로 수용될 뿐이다. 이하늘은 1,540원이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우리 사회 기저에 깊숙이 뿌리내린 '절망적인 무지의 심연'을 자신의 얼굴을 걸고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그러니 진심으로 고맙다. 덕분에 저들과 논리적 대화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헛된 미련을 아주 깔끔하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비극은 소크라테스의 한 표와 바보의 한 표가 같은 무게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오늘, 그 묵직한 절망감을 곱창 씹듯 아주 잘근잘근 되새기게 해 주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
좌파 왜 하세요라는 가벼운 질문 하나 던졌을 뿐인데, 몇몇 댓글 덕에 담벼락이 졸지에 80년대 대자보 붙은 학생회관 앞거리로 변해버렸다.
달려온 이들의 레퍼토리는 짠 듯이 똑같다. 본인은 '간접'적으로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라며, '직접' 경험한 적 없다는 바보스런 인증을 하고선, 요즘 2030 청년들은 시대정신이 부족하고 생각이 우경화되어 문제라며 혀를 찬다. 팩트와 논리로 대화를 하자는 공간에서 냅다 이념의 훈장질부터 시전하는 그 낡고 쉰내 나는 텍스트들을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어, 분리수거 하듯 싹 다 차단 버튼을 눌렀다.
어제 내가 썼던 글의 핵심 주제는 아주 명확하고 단순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건 찌든 중년보다는 청년이 훨씬 더 정의로우며,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중년보다 청년이 압도적으로 똑똑하다는 차가운 팩트다.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장 방대한 데이터와 객관적 정보를 처리하며 살아남은 세대가 지금의 2030이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고작 '간접'적으로 민주화를 경험했다는 기괴한 스펙을 들이밀며 가르치려 든다. 최루탄 가스는 윗세대 덕에 마셔봤겠지만 윗세대 선배들이 흘린 피눈물에 무임승차해 평생을 민주화 투사 코스프레로 살아온 자들.
이들의 토론 방식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애초에 남의 이야기를 들을 귀는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청춘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그저 자기 머릿속에 박제된 낡은 진영 논리의 자막을 화면에 강제로 띄우려 발악할 뿐이다.
상대가 빈틈을 찌르고 한 걸음만 깊이 들어가 팩트를 물어보면, 밑천이 바닥난 이들은 이내 이성을 잃고 원색적인 쌍욕과 인신공격을 쏟아낸다. 그러다 참다못한 주인이 더러워서 차단을 먹이면, 그들은 쫓겨난 문밖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내가 뼈를 때렸더니 쫄아서 도망갔다, 논리에서 밀리니 차단을 한다며 본인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무용담을 나눈다.
타인의 거실에 들어와 오물을 투척하고 쫓겨난 건 승리가 아니라니까?
논쟁이나 토론이라는 거창한 단어의 끄트머리에라도 끼고 싶다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순서가 있다.
섣불리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기 전에 일단 입을 닫고 청춘들의 이야기를 똑바로 들어라. 당신의 그 굳어버린 낡은 이념이 혹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틀린 것은 아닐까, 최소한 하루이틀 정도는 턱을 괴고 깊이 고민해라. 그러고도 본인의 주장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면, 제발 억지 감성이나 쌍욕 대신 자신의 말이 근거는 있는지 뇌피셜로 주절댈 시간에 정말 관련 책이라도 읽어본 후에 제대로 된 논리를 들고 와서 반박하라.
당신들이 멈춰버린 시계 속에서 자기들끼리 위대한 민주 시민 놀이를 하는 동안, 세상의 진짜 똑똑한 청년들은 이미 당신들을 한참 뒤에 남겨두고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제발 그 낡은 우물 안에서 나와 현실의 거울 좀 보시길 권한다. 청춘들이 우경화된게 아니라, 혹여 자신이 극좌 유튜버에 선동된 건 아닌지 냉정하게 판단 좀 해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