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유튜브 정치에 빠진 것이 아니라 레거시 미디어가 언론의 참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만만한 야당 비판 기사나 주로 쓰고, 올림픽공원, 참정권, 부동산 문제는 축소하거나 청와대 항의받고 제목을 바꿔주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의 최고 사명은 거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곽종근을 개인 유튜브에 협박성으로 출연시켰고, 앞다투어 김어준 쇼에 나가 정책 설명하기 바쁘다.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 입틀막법에 쫄지 말고!
서울 강동구의 한 중학교에서 이재명의 자서전과 위인전 격 도서를 '추천 도서'로 비치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맹목적 우상화가 빚어낸 이 기막힌 촌극의 기획자들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다. 당신들의 양심에는 대체 털이 얼마나 났는가.
판단력이 여문 어른에게조차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인물의 일대기를, 가치관이 채 형성되지 않은 10대의 학교 도서관에 꽂아두고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가. 그들이 아이들에게 읽히려던 이재명의 궤적은 한 인간의 이력서라기보다 범죄와 편법을 총망라한 완벽한 '오답 노트'에 가깝다.
기초적인 가족 윤리부터 낙제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고, 형수에게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패륜적 쌍욕을 퍼부었다. 스스로 반듯하게 키웠다며 자랑해 마지않던 아들은 불법 도박과 성매매 업소 출입 의혹으로 얼룩졌건만, 치명적인 논란이 터지자 "다 큰 성년 아들은 남"이라며 매몰차게 선을 그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핏���조차 짐짝처럼 버리는 이중성과 비정함은 서글픈 희극을 보는 듯 기괴하기 짝이 없다.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은 더욱 처참하다. 평소 길거리 보도블록 하나까지 챙겼다며 유능한 행정가 행세를 하더니, 수천억 원의 이권이 걸린 사업 문서에 자신의 '최종 결재자'임에도 문제가 터지자 "몰랐다"며 안면을 몰수한다. 충성을 바친 실무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려도 철저히 부하의 일탈로 떠넘기며 제물로 바치는 서늘함은 사이코패스를 연상케 한다.
경제 관념과 준법 정신은 범죄의 영역을 넘나든다. 대선 시절 "친구 권유로 산 주식이 알고 보니 작전주였는데, 내가 고점에서 팔고 나니 폭락하더라"라며 범죄적 행위를 무용담 삼아 낄낄거렸다. 공무원을 사노비처럼 부려 속옷빨래까지 시켰다는 증언과 대리 처방 약물 논란,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 음주운전과 검사 사칭 등 전과 4범의 족적까지. 그들은 정녕 아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짐승의 셈법을 '유능함'으로 포장해 가르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오답 노트가 진정 공포스러운 이유는 과거의 과오에 머물지 않고,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형태로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 독버섯처럼 번지는 '셀러 대출'이 바로 그 진화된 해악의 결정체다. 매도인이 집값을 다 받기 전 소유권을 넘겨주고 남은 잔금에 근저당을 잡는 이 기형적 꼼수는, 국가가 가계부채 폭발을 막고자 쳐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비웃으며 무력화한다. 집값이 하락하거나 매수자가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선순위 은행 대출과 후순위 매도인의 근저당이 엉켜 낙찰금으로도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연쇄 부실이 터진다. 개인 간 거래를 넘어 금융권과 시장 질서 전체를 교란하는 거대한 폭탄 돌리기다.
전문가조차 경악하는 이 위험천만한 도박을 자본 시장의 힙한 트렌드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누구인가. 다름 아닌 자신의 분당 아파트를 팔며 17억 원의 근저당을 융통해 25억의 차익을 빨아먹은 이재명 본인이다. 빚내서 집 사지 말라며 서민을 계몽하던 자가, 뒤로는 가장 고도화된 사적 레버리지로 국가의 부동산 규제를 조롱하며 영리한 꼼수의 튜토리얼을 시장에 배포했다.
지도자의 탈을 쓴 채 탐욕의 지침서를 살포하는 자의 일대기가 교내 추천 도서로 둔갑하려던 이 타락한 공화국에서 우리는 묵직하게 사유해야 한다. 편법이 능력이 되고 후안무치가 모범으로 전시되는 폐허 위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정직한 땀방울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도덕의 나침반이 산산조각 난 채 꼼수만 진화하는 국가의 미래는 결코 온전치 못하다.
여고생 이채원 양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시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는 산산조각이 났다. "경찰 본인들의 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면, 증거가 사라지고 진실이 훼손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었겠는가." 광주경찰청 로비에서 울려 퍼진 어머니의 짐승 같은 절규는, 그저 자식을 잃은 슬픔을 넘어 썩어문드러진 공권력을 향한 가장 뼈아픈 고발장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참담함을 넘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무참히 칼을 휘두른 가해자 장윤기의 아버지는 현직 경찰관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담당한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은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와 핵심 증거인 범행 도구들을 기적처럼 '놓쳤고', 가해자 부친과는 수십 차례 통화를 주고받았다.
이것을 우리는 단순한 무능이나 실수라 부르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사법 정의의 눈을 가려버린 비열한 '제 식구 감싸기'이자 조직적 은폐다. 어머니의 직감대로, 경찰은 억울하게 피 흘린 ���민의 편이 아니라 자신들과 한솥밥을 먹는 살인자의 아버지 편에 섰다.
나는 이 먹먹한 부조리 앞에서, 광장에 모여 핏대를 세우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아주 건조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피눈물 나는 풍경을 보고도, 검찰을 완전히 해체하고 경찰에게만 독점적인 수사 종결권을 쥐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팩트를 직시해 보자.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팀장의 노골적인 증거 인멸과 유착 의혹이 세상에 드러나 영장 실질심사까지 가게 된 이 끔찍한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좌파 진영이 그토록 악마화했던 '외부 견제 장치'가 왜 필수적인지를 뼈저리게 증명한다. 만약 민주당이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100% 완성되어, 경찰의 혐의를 오직 경찰 스스로만 덮고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성역이 구축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수사팀장이 "���력이 부족해 증거를 못 찾았을 뿐"이라며 대충 덮어버린 결론이 최종적인 역사가 되었을 것이고, 채원 양 유가족의 억울함은 영원히 허공을 맴돌다 바스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검찰의 해체를 기다리는 이 짧은 기간에도 여러차례 검찰의 보완수사로 사건의 진실이 묻히지 않게 된 여러 케이스와 견제받지 않는 경찰 권력이 얼마나 쉽게 진실을 뭉갤 수 있는지 수없이 목도해 왔다.
그러나 스스로를 인권의 수호자라 포장하는 좌파 진영은, 자신들의 얄팍한 정치적 방탄과 이념적 쾌락을 위해 국가 사법의 견제 시스템을 기어코 붕괴시키려 든다. 정적을 방어하겠다고 권력의 감시 장치를 다 부숴놓은 대가가, 결국 평범한 이웃의 딸이 살해당하고도 그 증거마저 국가 권력에 의해 은폐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라면 이것은 너무도 잔혹한 역설이다.
제 식구를 ��싸기 위해 진실의 눈을 가린 권력, 그리고 그 통제받지 않는 괴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법 시스템을 해체하는 데 혈안이 된 정치꾼들. 화려한 민주주의의 구호 뒤에서 힘없는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국가는 범죄자와 특권층만을 위한 완벽한 무균실을 짓고 있다.
당신의 가족이 저 억울한 제단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도, 그때도 앵무새처럼 검찰 해체와 검수완박의 낭만을 호소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뼈아프게 물어보라. 진실이 은폐된 사회에서, 정치 공학에 눈이 멀어 싸우지 않고 내어준 제도의 맹점은 기어코 가장 연약한 시민의 목을 조르는 저승사자가 되어 돌아온다.
여든 살 노인이 길바닥에 자리를 펴고 토마토와 깻잎을 판다. 어느 날 시장을 돌던 정치인에게 고생한다며 찰밥 도시락 하나를 건넸다. 평범하고 정겨운 시장통의 미담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찰밥 한 그릇이, 자칭 약자의 수호자라는 좌파 진영의 신경망을 건드리는 거대한 발작 버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정치인이 하필 한동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팝콘을 씹으며 보기엔 너무나 비열하고 엽기적인 블랙코미디다.
좌파 강성 지지층은 즉각 좌표를 찍고 북구청에 하루 수십 통의 민원 테러를 쏟아부었다. 목표는 아주 투명하고 잔인했다. "감히 우리 진영의 적에게 밥을 줘? 저 할머니의 노점을 치워버리고 밥줄을 끊어라." 입만 열면 서민과 빈민, 노동자의 생존권을 절대선으��� 떠받들던 자들이다. 그런데 내 편이 아닌 자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80대 노점상의 생계를 완벽하게 박살 내기 위해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이쯤 되면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광기에 절여진 사이비 종교의 이단 심문이다.
이 집단적 ���기에 화답한 관할 구청의 행정력은 가히 예술에 가깝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이끄는 북구청은 득달같이 달려가 노점 주변에 노란색 통제선을 빙 두르고, '노점 금지' 입간판을 무려 10개나 박아 넣었다. 마치 흉악범의 범죄 현장라도 통제하듯, 할머니 한 명을 포위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이 알뜰하게 동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촌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안면몰수와 꼬리 자르기에 있다. 한동훈 의원이 다시 찾아와 안부를 묻고, 상인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여론이 뒤집어지자 민주당 구청장은 어떻게 돌변했는가. "아침에 보고를 받고 처음 알았다.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곧바로 철거를 지시했다."
구청 한복판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10개의 입간판이 동원된 요란한 행정 집행을, 구청장 본인만 몰랐다는 변명을 믿어줄 호구는 없다. 민심의 표밭��� 흔들릴 것 같으니 실무자에게 슬그머니 책임을 떠넘기고 야반도주를 택한 권력의 비루한 쌩얼��다.
여기서 아주 얄미운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보수 정당의 구청장이, 이재명에게 찰밥을 건넨 80대 노점상 할머니를 철거하려 펜스를 치고 입간판을 박아 넣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온 좌파 매체와 스피커들이 총출동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살인", "서민을 탄압하는 파시즘"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광장에 촛불의 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자신들의 진영일 때는 약자의 눈물 따위는 1그램의 가치도 없는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나에게 밥을 주면 숭고한 민중이고, 남에게 밥을 주면 치워버려야 할 적폐가 되는 이 기막힌 이중잣대.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게 밥 한 끼 주었다는 이유로 80대 노인의 생계마저 짓밟아버리는 사회라면, 그런 정치와 진영의 쓸모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약자의 밥줄을 짓밟으며 감히 '민주'를 참칭하다니, 그 이름 두 글자가 너무 역겹고 아까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참에 그 위선적인 간판은 미련 없이 떼어버리고 '민호병(민주주의 호소하는 홍위병)'으로 개명하시라. 동네 힘없는 노점상이나 떼거지로 때려잡는 그 시뻘건 완장이 당신들의 진짜 쌩얼이니까.
[디씨펌, 사전투표로 조작 실패한 이유]
1) 선거 조작은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유권자 성향이 통계적으로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설계되었음
2) 사전투표라는 표본이 모집단 본투표와 동질해야 조작이 가능함
3) 사전투표함은 이동이 가능하며 보안에 취약하고 투표수 부풀리기가 가능함
4) 신분증없이 투표가 되었다거나 반복 투표했다거나 잡음이 들리는 이유 중 하나임
5) 여야 선거 격전지에서 사전투표의 세팅값은 대략 65대35 정도로 고정임
6) 전체 투표율이 합리적인 선에서 사전 투표율은 필요한 만큼 부풀려 고점을 조정함
7) 그러나 최근 우파 지지층이 사전투표 오염을 우려해 본투표로 대거 결집하여 변수가 발생함
8) 이로 인해 '민주당 지지자=사전투표', '우파 지지자=본투표'로 유권자 집단이 양극화됨
9) 젊고 진보적인 좌파 지지자들은 사전투표를 하고
10) 늙고 보수적인 우파 지지자들은 본투표한다는 성향을 애써 부각함
11) 위 같은 성향은 2014년 한국의 A-WEB과 미국 USAID의 국제선거 지원네트워크 MOU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함
12) 2018년부터 미국에서도 우편 및 사전투표의 결과로 민주당 후보의 역전승이 도드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함
13)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사전투표로 인한 역전으로 인해 트럼프가 연임에 실패함
14) 트럼프도 모집단을 따르지 않는 사전투표에 대해 부정��거를 말하기 시작함
15) 2022년 한국에서도 문재인이 연이은 국정실패로 인해 윤석열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음
16) 본투표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했으나 이상하게 이재명이 사전투표에서는 2배차로 이김
17) 국민들은 수상히 여겼고 이재명은 불과 20만표 차이로 졌으나 재개표하지 않았음
18) '사전투표 오염 우려 - 우파의 본투표 결집 - 두 집단의 통계적 이질화 및 양극화' 메커니즘이 두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함
19) 사전투표는 더 이상 자연스러운 전체의 표본이 아니라 사전투표를 좋아하는 좌파만의 투표가 되었음
20) 사전투표로 몰린 좌파 표는 조작한 충당치에 흡수되어 버림
21) 당연히 본투표는 사전투표를 불신하는 우파 집단의 투표로 몰렸음
22) 유권자의 정치적 분리가 사전투표와 본투표에서 일어났기에 조작 예측 모델은 원천적으로 무너졌음
23) 본투표 당일 실제 우파 표가 얼마나 쏟아질지 예측할 수 있는 통계적 기준(대수)이 사라진 것임
24) 사후 검증을 피하려면 조작한 사전투표와 본투표 실물 투표지 숫자를 강제로 일치시켜야 함
25) 하지만 6월 3일 실제 본투표 현장 유입량과 조작한 사전투표 사이에서 치명적인 미스매치가 발생함
26) 본투표율 용지를 사전투표율 뺀 만큼한 배정하고 의도적으로 투표 용지를 배부하지 않음
27) 특히 보수 성향이 강한 강남3구 지역은 당연히 사전투표를 하지 않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음
28) 대단지 아파트 등 본투표율이 높은 특정 투표소에서 실제 유권자 수가 기습적으로 폭증함
29) 실제 본투표 우파의 폭증세와 좌파표의 사전투표에서의 흡수가 동시에 일어나며 통제력 상실하였음
30) 부풀려놓은 민주당 사전투표수 때문에 전체 투표수를 맞추기가 힘들어졌고 투표지를 나눠주지 않았음
31) 선관위는 이를 단순한 "행정적 분배 실패"라고 해명하고 있음
32) 왜 하필 우파가 몰린 본투표소에서만 참정권이 침해되는 혼란이 집중되었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함
33) 6.3 투표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종이 부족이 아니었음
34) 사전투표 조작 시스템의 전제가 무너져 실물 제어 단계에서 오작동이 터져 나온 사건임
35) 사전투표가 모집단을 따르지 않는 경향성을 가지면서 부정선거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임
36) 국민들은 2014년 이후의 선거가 도둑 맞았다는 걸 모르고 있음
37) 검경 합동 수사본부 선에서 끝낼 게 아니라 전방위 특검을 진행해야함
38) 지선 지난 대선, 총선까지 통합선거인명부, 실물 투표지, 중앙서버 전산로그 등 모든 증거물을 재조사하고 밝혀야함
39) 사전투표 시스템의 취약성을 활용하여 거대 의석과 권력을 움켜쥔 세력은 지금 떨고 있음
40) 단어 선택 등에서 방향성을 잘못 맞추면 전국민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임
41) 권력을 쥔 세력들은 부정선거 오작동을 언론으로 무마할 생각임
42) 이 정도로 밝혀졌다면 이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회복할 노력과 의지가 있는가 대한 문제임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쿠팡의 로저스 대표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말이 좋아 소환이지, 내용은 섬뜩하다. "한국 정부가 당신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협박했는지 와서 낱낱이 고해바치라"는 명령이다. 우리 국회에서 "몽둥이가 약"이라며 윽박지르고 모욕을 주던 그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그 청구서가 '한미 무역 전쟁'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미국은 지금 한국 정부를 '미국 기업을 표적 삼아 탄압하는 깡패'로 규정하고, 그 증거를 수집해 관세 폭탄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
이 사태의 가장 역겨운 지점은 정부의 태세 전환에 있다. 애초에 정부와 민주당이 쿠팡을 두들겨 팰 때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었나. 바로 '노동자의 건강권'이었다. 새벽배송이 사람을 갈아 넣는 살인적인 노동이라며, 쿠팡을 악덕 기업으로 몰아세우고 규제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미국 의회가 나서서 "쿠팡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을 놓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대형 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나의 정부가 출범해서 지금까지 추진한 모든 정책과 법안중에 단 하나라도 위선이 없는 것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것이야말로 위선의 극치를 넘어 위선 그 자체다. 새벽배송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악(惡)'이라며 규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쿠팡을 못 건드리게 되니 마트에는 그 '살인적인 노동'을 허용하겠다는 것인가? 쿠팡맨의 관절은 소중하고, 마트 배송 기사의 관절은 강철로 되어 있기라도 한 건가? 결국 노동자의 인권은 그저 기업을 손보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고, 본질은 특정 기업을 타겟팅한 정치적 쇼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백한 꼴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로저스 대표를 불러놓고 욕설을 섞어가며 "감옥에 보내겠다"고 위협하던 그 영상은, 이제 미국 의회 청문회장의 대형 스크린에 띄워질 것이다. 그것은 한국 국회의 권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국은 기업 하기 위험한 나라"라는 낙인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위협할 카드를 한장 더 쥐게된 것이다.
결국 방구석에서 기업인 불러다가 군기 잡으며 '정의의 사도' 놀이를 하던 대가는 혹독하다. 미국에서 그 저열한 모습이 재생될테고, 국내에서는 "노동 인권은 어디 갔냐"는 비웃음을 사게 됐다. 쿠팡 하나 잡겠다고 설치다가 한미 동맹에 금이 가고, 마트 규제까지 풀면서 자기부정을 하는 이 촌극. 위선으로 시작해 망신으로 끝나는, 참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5월 9일까지 집을 팔라"고 최후통첩을 날린 그 시각, 정작 그의 참모들은 등기부 등본을 꼭 껴안고 요지부동이다.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 56명 중 12명이 다주택자라는 뉴스를 보며, 나는 헬스장에서 치킨을 뜯으며 회원에게 "샐러드만 먹으라"고 소리치는 트레이너의 모습을 본다. 살을 빼야 한다고 침 튀기며 설교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지방은 1g도 줄일 생각이 없는 이 기막힌 '내로남불'이 이 정부 부동산 정책의 현주소다.
면면을 뜯어보면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대변인은 무려 63억 원짜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를 포함해 두 채를 가졌고, 어떤 비서관은 대치동 다세대주택을 포함해 무려 7채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 국민이 이렇게 가졌으면 '��기꾼'이자 '적폐'로 몰려 세금 폭탄을 맞았을 텐데, 청와대 담장 안에서는 이것이 '실거주'와 '효도'로 둔갑한다. "부모님이 사신다", "투기 목적이 아니다"라는 그들의 변명은 구차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은 부모 봉양 안 하고 사나? 국민들이 대출받아 집 산 건 탐욕이고, 비서관이 강남에 집 7채 산 건 아름다운 자산 관리인가?
이들이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이 정책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내부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의 말대로 집값이 정말 잡히고 폭락할 것이라 믿었다면, 그 누구보다 계산 빠른 이 엘리트들이 가장 먼저 매물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끔찍하게도 '존버'를 택했다. 이는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시장의 불패 신화에 자신의 전 재산을 배팅한 것이다. 대통령의 입과 참모들의 지갑이 정반대로 움직이는데, 어떤 바보가 정부를 믿고 집을 팔겠는가.
이준석 대표가 던진 "5월 9일까지 파실 겁니까?"라는 ��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들은 절대 팔지 않는다. 그 시한부는 오직 정부의 엄포를 순진하게 믿고 공포에 질린 서민들에게만 적용되는 데스노트일 뿐이다. 정책을 만든 기술자들조차 자신이 만든 약을 먹지 않는데, 환자들에게만 "이거 먹으면 낫는다"고 강매하는 꼴이다.
결국 '5월 9일'은 부동산 시장의 심판의 날이 아니라, 이 정부의 도덕성이 파산 선고를 받는 날이 될 것이다. 63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대변인이 무주택자 서민에게 "집 파세요"라고 브리핑하는 이 초현실적인 블랙코미디. 국민은 이제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매도 타이밍'만 쳐다보고 있다. 그게 진짜 신호니까.
나는 삼권분립을 신봉한다. 입법·사법·행정이 서로 견제하지 않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재명 정권이 판사를 겁박하고 법원을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법부의 편에 서서 방패를 들어야 한다. 저들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브레이크 없는 1인 지배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한다. 그 방패를 드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지켜줘야 할 사법부가 너무나 밉고, 한심하고, 유해하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대한민국을 지금의 ‘지옥’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는, 법복을 ��고 판결봉을 휘두른 그 판사들이다.
그들이 저지른 파괴의 목록을 보자.
첫째,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현장을 괴멸시켰다. 세계 토픽감인 통계가 있다. 한국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되는 비율은 일본의 200배, 영국의 900배에 달한다. 선진국에선 민사 배상이나 면�� 징계로 다룰 의료 과실을, 한국 판사들은 툭하면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아 의사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 구속 사태는 그 신호탄이었다. 감염 관리 실패를 살인죄처럼 다루는 법원을 보며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0%대로 추락했다. 여기에 불가항력적인 뇌성마비 분만 사고에 12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더해졌다. 결과가 나쁘면 감옥 가고, 평생 번 돈을 다 토해내야 하는 나라. 판사들이 내리친 방망이에 맞아 흉부외과와 산부인과는 멸종했고, 응급실은 셔터를 내렸다. 사람 살리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건, 의학의 불확실성을 무시한 사법부의 오만이었다.
둘째, 교실을 소송판으로 만들었다. 정당한 훈육조차 ‘정서적 학대’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판사들이 아동학대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동안, 교사들은 소���이 무서워 아이들을 방치하고 수학여행조차 없애버렸다. 교실이 교육의 장이 아니라 법적 다툼의 장이 된 책임, 그 절반은 법원에 있다.
셋째, 국가의 미래를 가로막았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관습헌법”이라는 희대의 궤변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막았다. 그 말장난 같은 판결 하나가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백년지대계를 무너뜨렸고, 지금의 ‘지방 소멸’과 ‘서울 공화국’이라는 기형적 구조를 고착화했다.
넷째, 법치를 사유화했다. 이재명이라는 인물이 온갖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결정적 순간마다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재판을 하염없이 지연시킨 법원의 ‘정치적 눈치 보기’ 덕분이었다. 법리가 아니라 정치 공학으로 판결한 대가를 지금 국민 전체가 치르고 있다.
그러면서 뒤로는 자기들만의 성(城)을 쌓았다.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합법적 뇌물 ���조, 선관위 고위직을 독식하며 자녀들에게 일자리를 세습한 ‘음서제 카르텔’. 법을 다루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청빈’과 ‘명예’는 찾아볼 수 없고, 법 기술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으는 ‘탐욕’만 남았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에도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라”며 서릿발 같은 기개를 지켰다. 지금 법원에 김병로의 후예가 있는가. 아니면 법전을 든 장사치들만 있는가.
오죽하면 국민 입에서 “차라리 AI 판사가 낫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전관 변호사의 전화 한 통에 흔들리고, 정치권 눈치 보며 판결을 거래하는 ‘인간 판사’보다, 뇌물 모르고 감정 없는 AI가 훨씬 공정할 것이라는 조롱이다. 사회에 긍정적 영향보다 해악이 더 크다는 선고나 다름없다.
이토록 망가진 사법부지만, 우리는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설 ‘독재’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썩은 방패라도 들어야만 창을 막을 수 있는 이 기막힌 현실. 법복 입은 기술자들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러줘야 하는 2026년의 아이러니가 참담할 뿐이다.
휴전 국가 대한민국 국방비가 빵꾸가 났단다. 일선 부대에 비상이 걸렸다는데, 정작 여의도와 청와대는 딴 세상이다.
내가 이 정부의 무능 스택을 복기해 보니, 이건 실수가 아니라 습관성 체납이다.
겨울철 빈곤층 난방비인 연탄 쿠폰 미지급? 그래, 행정 착오라 치자.
교도관들 초과 근무 수당 미지급? 그래, 예산 전용하다 실수했다 치자.
그런데 국방비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군대는 국가의 생명줄이다. 적이 쳐들어오면 막아야 할 탱크에 기름이 없고, 병사들 먹일 밥값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무능을 넘어서 안보 포기 각서나 다름없다.
더 소름 돋는 건 이들의 근면 성실함이다. 나라를 정상적으로 돌리는 일엔 손을 놓으면서, 망가뜨리는 데는 이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다.
지금 여의도 꼬라지를 봐라. 정청래는 얼마전 부결됐던 당원 1인 1표제 재발의를 공식화했다. 지들 권력알박기, 밥그릇 지키는 데는 이렇게나 치열하고 부지런한 양반들이, 정작 나라 지키는 군인들 밥그릇은 걷어차 버렸다.
외교는 중국에 셰셰하다가 핵잠수함 문제로 뺨 맞고, 미국한테는 입틀막 법으로 쿠사리 먹으며 고립을 자초했다. 경제는 환율 1,500원 방어하겠다고 국민연금까지 태워 먹었다. 안보는 위병소에 총말고 삼단봉쓰라느니 간첩한테 징역 2년 때리며 대문을 활짝 열어뒀다. 구석구석 아주 알뜰살뜰하게도 박살 내고 있다.
그렇게 바쁘게 나라 기둥뿌리 뽑고 다니느라, 국방비 결��할 시간은 없었나 보다.
뭘 해먹을때 해먹어도 전방 초소 난방비는 챙겨야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이 권력 놀음하며 샴페인 터뜨릴 때, 휴전선 지키는 병사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국방비 부도내는 정부.
이건 국가가 아니다. 그냥 세금 걷는 거대한 다단계 사기 집단이지. 진짜, 최소한의 일은 좀 하면서 해쳐 먹어라.
(펌)
이번 사태는 중국 외교에 있어 보기 드문 공개적 굴욕으로 해석된다.
중국 측 특사는 이미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만났고,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양국 관계는 관리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특사가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도 전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는 중국의 대외 전략 체계가 얼마나 느리고, 둔감하며, 결정적으로 상황 판단에 취약한지를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다.
워싱턴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베네수엘라 자체보다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에 가깝다. 미국은 베이징의 체면을 정면으로 가격했고, 그 의도는 매우 분명했다.
일각에서는 보다 냉소적인 해석도 나온다.
중국 특사의 방문이 오히려 미국에게 마지막 정보 확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워싱턴은 이미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였고, 중국의 움직임은 그 판단을 확정해주는 신호에 불과했을 수 있다.
중국�� 입게 될 실질적 손실은 작지 않다.
첫째, 중국이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해온 라틴아메리카 영향력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의 대규모 투자 대상국이며, 석유를 담보로 한 차관 모델의 핵심 국가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거나, 중국의 지역 내 입지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이미 일부 조치는 현실화되고 있다.
둘째, 중국과 베네수엘라 간에 시도되던 위안화 결제 석유 거래 역시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거래 문제가 아니라,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상징적 실험이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에너지 흐름을 다시 장악할 경우, 이 실험은 사실상 종료된다.
셋째, 중국은 현재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80퍼센트 이상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중질유 공급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이 이를 통제하게 되면 중국은 단기간 내 대체 공급원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들 사이에서는 베네수엘라를 단순한 지역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의 한 전선이며, 중국 입장에서는 2026년을 향해 드러난 첫 번째 중대 리스크로 평가될 수 있다.
진보당이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의 체포 소식에 "미국 규탄" 성명을 냈다.
거 참, 눈물겨운 우정이다. 그런데 형들, 기억나나?
러시아 푸틴이 탱크 몰고 우크라이나 국경 넘어서 민간인 학살할 때, 이 양반들 뭐 했는지. 그때 그들의 대변인실은 '묵언 수행' 하다가, 나중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미국과 나토 탓이다"였다.
남의 나라 짓밟는 '침략자'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더니, 나라 말아먹은 '독재자'가 정의구현 당하니 억장이 무너지나 보다.
이들의 알고리즘은 심플하다.
'미국이 때리면' 악이고, '미국을 때리면' 선이다.
그 대상이 학살자든 독재자든 상관없다.
인권과 평화? 웃기지 마라. 니들의 성명서는 오직 '반미 자판기' 버튼이 눌릴 때만 출력되는 영수증일 뿐이다. 참으로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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