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와 정몽규가 얄미운 건 온 국민이 다 안다. 피파랭킹 60위에게 덜미를 잡히며 월드컵 32강 탈락이라는 역대급 똥볼을 찼으니 사퇴는 당연한 수순이다. 광장의 팬들이 분노의 십자포화를 퍼붓고, 인터넷 댓글창에서 가루가 되도록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 거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럽고 어찌보면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이자 카타르시스다. 일 못 한 자가 팝콘각의 안주가 되어 욕을 먹고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건 당연한 이치니까.
그런데 이 판국에 뜬금없이 대통령과 정부가 등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특정 감사를 때리고 조져버리겠다며 완장을 차고 나섰다. 시민단체의 고발을 핑계 삼아 경찰이 배임과 업무방해로 수사를 벌이고, 사법 처리의 지옥문을 열어젖히겠단다.
여론의 욕 폭탄을 융단폭격으로 맞는 것과, 국가 권력이 나서서 사법의 쇠고랑을 채우는 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홍명보가 벤치에서 뒷돈을 챙겼나. 승부조작 브로커와 결탁했나. 아니다. 그는 그저 전술 지능이 참담하게 낮았고, 시대착오적인 똥고집을 부리며 자기 일을 지독하게 못 했을 뿐이다. 엉망진창으로 일했어도 어쨌든 벤치에 출근해서 노동을 제공했으니 연봉 38억 원을 토해내라는 청구서 역시 법적으로 성립조차 안 되는 억지다.
무능한 건 해고의 대상이지 형사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일을 지독하게 못 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이 몽둥이를 들고 패는 나라. 축구 졌다고 감독과 선수를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는 북한이나, 마음에 안 들면 목에 팻말을 걸어 광장으로 끌고 나오던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 놀이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토록 촌스러운 후진국 티를 팍팍 내게 되었나.
이 희극의 절정은 사태에 숟가락을 얹는 정치권의 뻔뻔함이다. 이재명은 홍명보 사태를 두고 "네 편 내 편 챙기다 망했다"며 훈계를 늘어놓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만약 무능력과 제 식구 챙기기 인사가 진짜 징역감이라면, 청와대에 잔뜩 앉쳐놓은 본인의 변호사들이나 국가 환율을 아주 거하게 꼬라 박으시고 경제까지 말아먹고 계신 본인 스스로. 물도 전력도 없는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며 떼를 쓰는 당신들 부터 당장 구치소 독방을 예약해야 이치에 맞지 않나.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 사법의 칼날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권력은, 결국 그 칼끝에 스스로 베이기 마련이다. 팬들의 야유와 조롱은 스포츠의 낭만이지만, 국가가 무능을 핑계로 마녀사냥에 나서는 것은 문명의 퇴행이다. 얄밉다고, 일을 못 한다고 법을 몽둥이 삼아 두들겨 패는 짓이 정의로 둔갑하는 순간, 이 나라는 완벽한 무법천지의 정글로 굴러떨어진다.
욕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제발 선 좀 지키자. 권력의 그 알량한 오지랖, 진짜 촌스럽고 비리다.
길거리의 중학생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낄낄거린다. "안 내면 이재명!"
이 15초짜리 숏폼을 두고, 좌파 매체와 지식인들이 사색이 되어 비상벨을 울린다. 촛불 부모 밑에서 자란 순수한 아이들이 '극우 알고리즘'에 세뇌당해 괴물로 변하고 있단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이라며 교육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거창한 훈수까지 등장했다.
이 요란하고 작위적인 진단서 앞에서, 실소조차 길을 잃는다.
팩트를 나란히 병치해 보자.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10대 청소년들에게 멸칭으로 불리며 조롱당하지 않았던 권력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박통, 전대갈, 물태우, 쥐박이, 닭근혜. 교실 뒷자리에서 당대의 권력을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부르며 희화화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10대 특유의 맹랑한 반항이자 유희였다.
그런데 유독 이재명을 향한 아이들의 조소 앞에서는 '극우의 세뇌'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인다. 내 편을 조롱하면 알고리즘에 오염된 일베고, 남을 씹어대면 깨어있는 촛불 청소년인가.
이 지독한 오만함을 찢어버리기 위해,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그들의 영원한 멘토, 유시민이 과거 국정교과서 사태 때 뱉었던 문장을 그대로 끌어오면 아주 우아한 카운터펀치가 완성된다.
당시 유시민은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국정교과서로 배웠지만, 쉬는 시간에는 '이건 독재야'라고 말했다. 국가가 역사를 주입하겠다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참으로 빛나는 통찰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 완벽한 블랙코미디가 탄생한다. 당신들 586세대는 서슬 퍼런 군사 독재의 국정교과서로 세뇌를 시도해도 끄떡없이 진실을 꿰뚫어 보던 위대한 지성들이고, 지금의 10대와 20대는 고작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몇 번에 영혼을 빼앗기는 백치들이란 말인가.
자신들은 국가 권력의 주입식 교육도 튕겨내는 독립적 주체이면서, 지금의 청년들은 알고리즘에 조종당하는 수동적인 아바타로 취급한다. '촛불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는 낯뜨거운 수식어에는, 자식의 정치적 성향마저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소름 돋는 선민의식이 들러붙어 있다.
청년들이 좌파를 혐오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툭하면 가르치려 들고, 자신들의 위선에 냉소를 보내면 '세뇌당했다'며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꼰대들의 납작한 계몽주의.
아이들은 알고리즘에 속은 것이 아니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사법 리스크를 달고 사는 전과자 정치인을 결사 옹위하는 진영의 인지부조화를 본능적으로 간파한 것이다. 그들은 그저 낡고 위태로운 권력의 쌩얼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의 '밈(Meme)'으로 소비하며 비웃고 있을 뿐이다.
권력은 대중의 조롱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권좌의 숙명이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조롱을 성찰하는 대신, 알고리즘을 탓하며 청년들의 뇌 구조를 통제하려 드는 순간 그 집단의 정치적 생명력은 끝난 것이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교정해야 할 오류로 취급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잉태한다. 놀이터의 농담마저 이념의 잣대로 검열하려는 권력에게, 과연 미래 세대와 공존할 내일이 남아 있을 것인가. 웃음을 잃어버리고 가르치려만 드는 빈곤한 권력의 끝은, 언제나 지독한 고립과 파산뿐이다.
[ 선진국 문턱에서 만난 ‘애들 잡는’ 어른들의 졸렬한 잔혹극 ]
배재고 야구부원들의 정제되지 못한 응원 실수는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부과된 ‘6개월 출전 금지’는 징계를 빙자한 잔혹한 ‘선수 생명 사형선고’에 다름 아니다.
미성숙한 청소년의 실수를 품어 안고 교정하기는커녕, 진영 논리에 눈먼 어른들이 떼로 몰려들어 사형 번호판을 찍어 누르는 형국이다.
반성과 심기일전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우리 사회 어른들의 얄팍한 수준이 오히려 참담하다.
세계가 인정하는 초일류 문화국가이자 글로벌 반도체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 정작 청소년의 미래를 제물 삼아 감정을 배설하는 철부지 어른들의 자해 행위가 도를 넘었다.
학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며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한 어른들에게 묻는다. 회초리를 든 당신들의 그 천박한 잔혹성은 과연 누가 중징계할 것인가.
정치적 임명이나 특혜는
공무원들의 사기를 꺾는 요인‼️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동안 외교 경험 없는 특임 공관장이 재외 공관장 65명 중 37명에 달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 변호사가 UN 대사로 임명된 사례는 대표적입니다.
이낙연의 사유 많은 시청 바랍니다😊
https://t.co/1Yd9B55zSo
🚨국방부가 점점 미쳐가네요🚨
북한이 6.25 전쟁 발발 76년에 맞춰
신형 방사포와 탄도 미사일 등을
발사한 사실을 국방부가 뒤늦게 공개
북한이 이를 2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하자, 뒤늦게 국방부가 이를 알림.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여러 정보를
분석 중이었다"고 해명.
"과거에는 분석 중인 상태에서도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아야
되는 현실이 정상이냐"는 기자들이 반박.
이재명
“삼성 sk 목숨걸고 해체시키겠다”
“대통령되면 이재용 구속 시키겠다”
“문재인은 친기업 친삼성 이재용 구속 확답해라”
또 다른 이재명
“재벌 해체한다 한 적 없어”
"이재용 사면, 재벌이라 불이익 줄 필요 없어"
"규제 없애야 내가 친기업 압도적 1등"
이게 이재명
https://t.co/WwoRPVhtPc
“능력보다 네 편 내 편을 더 중시해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뻔하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엉터리 인사는 감시와 견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사 앞에서 이재명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장엄한 훈계다. 자신이 임명한 UN대사에 대해 자백하는 글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더라. 이 텍스트를 활자로 읽어 내리며, 인간의 언어가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가당착의 현장을 목격한다. 타인의 실패를 딛고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려 던진 저 날카로운 문장들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재명 본인의 국정 운영을 겨냥하는 가장 뼈아픈 자백이자 부메랑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이번 월드컵을 보며 분노를 넘어 아득한 불쾌감을 느끼는 지점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거대한 무대에서 실패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4년 전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을 복기해 보라. 그때도 비판과 우려는 존재했다. 하지만 당시의 불만은 "과연 한국 축구가 전통적인 역습을 버리고 주도적인 점유율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느냐"는 철학적 방법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었다. 방향성에 대한 이견이었을 뿐, 벤치에는 분명한 지향점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홍명보를 향한 대중의 탄식은 그 궤가 완전히 달랐다.
"도대체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철학도, 전술적 뼈대도 텅 비어버린 맹목의 벤치. 역대 최고의 조 편성, 최상의 환경, 유럽 무대를 호령하는 황금 세대의 선수들을 쥐고도 이토록 철저히 붕괴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지휘관의 뇌리에 든 절대적인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여기서 이성의 메스를 들이대어 묻고 싶다. 방향키를 잃고 표류하는 벤치를 바라보며 느끼는 그 절망감은, 지금 대한민국 여의도와 청와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무력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겹쳐진다.
내가 정의하는 좋은 리더란 본질적으로 ‘가능성을 높이는 자’다.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가능성,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 평범한 시민이 노동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하고 노후의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 그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국가의 운전대를 쥔 자의 유일한 책무다.
그러나 이재명 체제의 계기판을 건조하게 들여다보라. 그는 과연 우리 삶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가.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쥐여주는 노란봉투법으로 기업을 목조이고 물리학과 지리의 원리를 무시한 채, 오직 표밭 관리를 위해 전력도 용수도 없는 호남 모래사막에 반도체 공장을 쑤셔 넣으려 한다. 국민연금의 투자 내역 비공개를 확대해 5천만 국민의 노후 자금을 권력의 깜깜이 쌈짓돈으로 굴릴 위험한 틈새를 열어젖혔다. 낡은 부동산 규제로 중산층의 자산 형성 사다리를 모조리 걷어찼으며, 군사분계선 80미터 앞까지 적의 철조망을 끌어들여 국가 존립의 가능성마저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재명의 국정 어디에도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최소한의 철학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직 빚을 내어 푼돈을 쥐여주고, 제도를 뜯어고쳐 자신의 안위와 권력을 연장하려는 얄팍한 전술만이 난무할 뿐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우리가 느끼는 이 참담한 질식감의 기저에는, 무능한 자들이 완장을 차고 시스템을 망가뜨리는데 제1야당인 국민의힘조차 식물인간처럼 쓰러져 아무런 견제를 하지 못한다는 깊은 절망이 자리하고 있다.
타인의 무능을 질타하며 체육행정 개혁을 운운하기 전에, 이재명은 자신의 빈곤한 궤적부터 돌아보아야 마땅하다. 그라운드의 꼰대나 권력의 파시스트나, 완장 찬 무능이 빚어내는 야만의 속성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그 여파는 결코 적지 않겠지만 철학을 잃어버린 축구는 괴롭지만 그저 운동경기일 뿐이라 폄하할 수 있고, 참가하는 토너먼트마다 '중국'처럼 짐을 싸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성을 상실한 국가의 대가는 세대 전체의 가혹한 빈곤으로 지불된다. 철학이 증발한 리더십이 지배하는 사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이 허물어지는 문명의 기둥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 무거운 탄식만이 폐허 위를 떠돈다.
무능한 자가 무능한 자를 향해 대놓고 무능하다 삿대질을 한다. 그 지독하게 무능한 권력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무력한 민주주의의 한계 속에서, 이 모든 청구서를 떠안을 청년들에게 미안함만 커진다.
지지율하락 + 전당대회 승리를 위해서
또 국민을 팔아서 '국민보고회'를 하시겠단다.
내가 예전에 말했을거다.
이재명은 불리하면 꺼내는게 딱 2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국민팔이다.
국민주권정부, 국민통합, 국민보고 등 국민을 팔아제낀다.
두 번째는 바로 일 할 시간이다.
맨날 시장가서 처먹기나 하고 외국 나가서 마이와이프 하면서
일 할 시간 없다고 4년을 8년처럼 쓴다니 마니
지랄염병을 잘 한다.
여러분, 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내일 당장 착공한다고 해도 이재명 임기안에 절대
준공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 여러가지 악재가 있어서
또 국민 팔아서 지랄염병하는거다에 한 표 던집니다.
"존경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동지> 이재명! 누가 뭐래도 이재명은 내가 지킨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격 사퇴를 선언한 정청래의 퇴임 일성(一聲)을 들었을 때 이재명은 과연 감동했을까? 아니면 서늘한 모욕감을 느꼈을까? 35년 저널리스트 시각에서 볼 때
이 화려한 사퇴문은 눈물겨운 동지애의 고백이 아니라 이재명의 목을 겨눈 가장 교활한 덫이었다.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무한한 복종과 존경을 바치면서도
살아있는 최고 권력자 이재명에게는 수평적 지분권자를 뜻하는 <동지>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 그리고 "내가 이재명을 지킨다"며 은연중에 퇴임 후 사법 리스크와 감옥행을 국민의 머릿속에 도드라지게 만든 건
<정치적 족쇄>로 이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부하가 아니며 만약 나를 공격한다면 동지를 배신한 비정한 군주(권력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겠다는 서슬 퍼런 선언에 다름없었다.
시간은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방북단 수행원 명단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 등 내로라하는 여당 광역단체장들이 줄지어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경기지사 이재명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청와대는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하계 다보스 포럼 일정을 핑계로 댔다. 하지만 경기지사 이재명 측이 방북단에만 합류시켜 준다면 중국 일정을 전면 취소하겠다며 간곡히 애원했음에도 친문 청와대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북한 접경지역 단체장을 배척한 노골적인 <평양 패싱>은 경기도청 내부에 깊은 당혹감과 소외감을 남겼다.
맹수와도 같았던 경기지사 이재명은 그 순간 직감했을 것이다. 친문 세력의 철저한 견제와 따돌림을 스스로 깨부수지 못한다면 차기 대권이라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는 친문의 도발적인 독점을 깨기 위해 경기도 자체 역량으로 김정은을 대면하겠다는 무리한 독자 방북을 기획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절박한 조급함은 <쌍방울 대북송금>이라는 거대한 사법 리스크의 덫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친문의 노골적인 배제가 역설적으로 그를 사지로 밀어 넣은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작에서 일찍이 경고했다. 인간은 모욕을 받으면 반드시 복수를 꿈꾼다. 그러므로 강력한 적을 칠 때는 어설프게 쳐서는 안 되며 숨통을 끊지
못하면 반드시 잔혹한 보복을 당하게 된다고.
정청래는 민주당 대표 사퇴 직후 서울에 온 문재인을 찾아가 카메라 앞에서 보란 듯이 손을 잡았다. 2018년 경기지사 이재명을 패싱했던 친문 주류의 정통성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자신이 그 적통임을 당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정교한 보법이었다.
여기에 친문 외곽 스피커인 박시영 등이 가세해 이재명은
왜 문재인을 1년 넘게 개무시하느냐며 당장 초청해
대통합의 도량을 증명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런 식의 공격은 뉴~이재명을 강조해 온 그에게 불리해 보였고 자칫 외통수처럼 여겨졌다. 거부하면 <동지>마저 내치는 소인배가 되고 초청하면 문재인의 존재감이 부각되어 정청래에게 강력한 뒷배를 만들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정청래의 사퇴문에서 시작되어 외곽 유트브 스피커로 이어지는 물 샐 틈 없는 문조털래유 연합군의 의도된 포위망이었다. 그러나 이재명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군주론을 읽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응에 있어서만은 마키아벨리가 움찔 놀랄만큼 판을 통째로 뒤집어버렸다.
7월 1일 청와대 만찬을 전격 수용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적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적을 한 번에 가두는 거대한 포획이었다.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는 신하의 아킬레스건을 먼저 파악하여 권력을 통제한다고 했다.
문재인의 아킬레스건은 너무나 명확했다. 김정숙 여사의 특활비 옷값 의혹과 딸 문다혜 씨를 둘러싼 뇌물 수수 혐의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사법 리스크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검찰과 경찰의 칼날은 현재 이재명 권력 체제하에서 조용히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갑을관계는 완벽하게 역전되었다. 화려한 청와대의 식탁 위에는 따뜻한 음식 대신 보이지 않는 서늘한 칼날이 놓이게 되었다. "형수님과 따님은 안녕하신지요"라는 이재명의 한마디는 겉으로는 다정한 환대이지만 내면은 과거 자신을 평양 패싱으로 사지에 몰았던 문재인을 향한 가장 잔혹한 협박이다.
어제 트친님이 물 문제로 설전 벌이시는 거 봤는데... 반도체에 물이 얼마나 중요하고 많이 들어가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 한 것들이랑 싸우고 계시더라.
반도체 공장이 물을 얼마나 쓰는지 알고 있음? 웨이퍼 한 장 만드는 데 물이 2,000리터가 넘게 들어감. 근데 그냥 수돗물 쓰면 됨? 아님. 초순수라고 지구상에서 제일 순수한 물 따로 만들어서 써야 함. 수돗물에 있는 이온이나 먼지 하나가 나노 단위 회로 다 날려먹거든. 세정할 때도 쓰고 장비 냉각할 때도 쓰고 연마 공정에도 쓰고...(어떻게 아냐고 묻는거면 반도체 관련 책만 10권이상 만들었음.)
TSMC가 애리조나 사막에 공장 지으면서 팹 하나에 하루 물 3,400만 리터 쓴다고 하니까 환경단체랑 원주민이랑 농민들이 난리났던 것도 이것 때문임. 10년 넘게 가뭄인 지역에. 그걸 물 90% 재활용 시설 지어서 수습 중임. 근데 호남은 그 전에 재활용할 원수도 없고 인프라도 없음. 애리조나랑은 차원이 다른 얘기임.
근데 이게 남 얘기가 아님. 지금 삼성이 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 짓겠다고 나섰는데, 영산강·섬진강 수계 여유 물량이 수만 톤 수준밖에 안 됨. 팹 하나 돌리려면 수십만 톤이 필요한데. 2023년엔 호남 주요 댐 저수율이 20% 아래까지 떨어진 적도 있음. 애리조나랑 똑같은 상황을 우리가 재연하려는 거임.
삼성도 안 되는 거 모를 리 없음. 근데 이재명 정부 압박에 끌려가는 거겠지. 반도체 강국으로 가야 할 길을 정치가 막고 있는 거임... 내가 보기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재명 정부의 경제다.
최근 주가 급등락과 환율 불안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와 서민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통화긴축의 분배효과와 신용 제약이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이다.
주가가 흔들리고 환율이 오르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결국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압박을 받게 된다. 최근 한국은행이 계속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는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 충격이 모두에게 똑같이 가지 않다.
자산이 많고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대출에 의존하는 서민, 청년, 자영업자는 다르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바로 늘고, 대출 문은 더 좁아진다.
전세대출, 주담대, 운영자금이 막히기 시작하면 생활은 곧 팍팍해진다.
결국 시장의 충격은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서 시작되지만, 고통은 아래로 내려온다. 지금 한국 경제는 자산가보다 서민이 훨씬 더 아프게 맞는 구조다. 그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 이재명 경제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