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상대를 구하기 위해 스프레드시트를 켰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명과 소개팅을 했다.
의느님이나 존잘남 같이 엄청 특출난 하나는 없지만 애매하게 육각형이라 소개팅 시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180이 넘는 키, 뚜렷한 이목구비, 10억 이상의 순자산, 이미 준비된 노후, 세후 월 천 이상의 수입...
그렇게 의사, 회계사, 수백억대 금수저, 모델 등 많은 사람을 만났고 스프레드 시트에 입력했다.
처음에는 돈만 볼 생각이었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최소한 상위권 전문직이어야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같이 있을 때 온전히 나일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다.
그녀는 처음 만날 당시 나보다 수입이 작았고 모아둔 돈도 작았다.
하지만 꿈이 같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비슷했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사실은 성장 배경이 나와 너무 비슷했다는 것이다.
거의 리얼맨 여자버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미래를 약속하고 지금은 같이 살면서 결혼식을 몇달 앞두고 있다.
그녀를 알게 된지 2년 남짓 됐는데, 처음에는 내 순자산의 절반도 안됐던 그녀의 자산이 지금은 불어난 내 자산의 2배 정도 되고 소득도 2배가 넘어간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찾는데 돈이 우선순위가 되면 불행해질 수 있다.
모든 자산이 폭등하는 지금 뒤쳐지지 않으려고, 살아 남으려고 스프레드시트를 켜고 결혼 상대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고 스프레드시트를 잠시 껐다.
앞으로도 영원히 켜지 않을 것이다.
그녀 자체로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가치있다.
결혼도 M&A가 됐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본인은 6억 모았다. 여친은 본가 출퇴근하면서 직장생활 6년에 4500만원 모았다. 결혼 전에 서로 얼마 모았는지 싸운다.
이제는 결혼도 전략적 인수합병이다.
사랑을 해도 재무제표가 안 맞으면 딜이 깨진다. 상대방 자산 실사하고 부채 확인하고 시너지 효과 계산한다. 감정보다 스프레드시트가 먼저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돈 문제가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그걸 미리 맞춰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6억 있고 여친이 4500만원 있다. 5억5천 차이다. 근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5억5천이면 또이또이 아닌가.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지.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생 살다 보면 돈은 있을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투자에서 잃을 수도 있고 갑자기 아플 수도 있다. 지금 6억이 영원히 6억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 그때는 배우자가 나를 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진짜 결혼 상대에게 바라는 건 통장 잔고가 아니다.
내가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 내가 흔들릴 때 믿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가 더 잘 될 수 있다. 우리가 같이 더 잘 될 수 있다. 지금 4500만원이어도 그 사람이 내 편이면 같이 6억을 만들 수 있다. 근데 지금 6억이어도 내가 힘들 때 떠날 사람이면 그 6억이 무슨 의미냐.
돈은 함께 만들 수 있다.
근데 내가 무너질 때 잡아주는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재무제표로 배우자를 고르는 시대에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진짜 시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