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를 마쳤습니다.
7프로 마이너스면 최종 안정승리라 본 충청과 부울경 1%마이너스 결과에 감사드립니다.
국민여론조사까지 감안하면 첫 주 결과는 약간 우세로 마감된 듯 합니다. 끝까지 절실 성실 진실하게 뛰겠습니다.
부산연설이 제 마음에도 남습니다. 24년만의 고백입니다. 제 개인사와 상처와 성찰이 담겨있습니다.
노사모를 비롯한 24년간의 비판 모두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부산 합동연설회 김민석 당대표 후보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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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당원 여러분,
24년 전에 김민석은 잘 나갔습니다. 경남 사천 출신의 할아버지와 부산으로 넘어와서 살았던 아버지의 아들로, 정치에 들어와서 김대중의 정치적 아들로 평가받았고 30대에 최연소 국회의원과 최연소 서울시장 여당의 후보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나서 서 있는 저는 그 사이에 18년의 정치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 18년 야인 시절 동안에 김민석에게는 여섯 분의 큰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후보 단일화 이후에 침잠해 있던 김민석을 만나셨을 때 45세인 제게, "앞으로 40년을 더 정치를 할 테니 물러나 내공을 잘 닦으라"는 퇴수를, 본인께서 정계를 은퇴할 때, 은퇴했다 돌아오실 때 가졌던 퇴수의 화두를 주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에 드물게 저와 함께 부산 출신의 정치인이셨습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그 모든 진상을 알고 있는 서갑원 의원께서 최근에 저를 돕고 계신데, 후단협이 아니었던 김민석이 2002년에 했던 행동에 대해서 2008년 최고위원이 돼서 봉하를 찾았을 때, 노 대통령님께서는 "대의원들의 선택으로 역사적 정리가 되었다. 이제 역사적 화해가 됐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서전에 이렇게 남기셨습니다. '김민석의 선택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합리적 충정이었을 수 있다. 그대로 그렇게 되었다.'
실제로 김민석의 선택은 저의 정치적 스승이고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김대중의 평화의 남북화해가 무너질까봐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벌였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저를 안아주셨을 때 그렇게 큰 분이 인간적으로는 아무리 정치적 선택이 그렇다 하더라도 판단이 그렇다 하더라도 하기 어려운 포용의 언어를 남겨주셨을 때 노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후에 저는 너무나 야속했습니다. 그렇게 가시지 않았으면 참 오래 뵐 수 있었을 텐데.
세 번째는 이해찬 전 총리셨습니다. 이해찬 총리는 저를 참 아끼셨습니다. 그리고 2002년 당신이 기획본부장으로, 저를 기획부본부장으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를 치르자고 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께서 중국에 출장 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2002년 단일화를 위해서 제가 행동했을 때, 이해찬 전 총리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모든 정치인들에게 별로 미안하지 않았지만 이 총리에겐 평생 죄송했습니다.
오랫동안 꾸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선대위원장과 종합상황본부장으로 만났고, 저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님의 당선보다도 이해찬 전 총리와 함께 선거를 치른 것이 기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해찬 전 총리께서 제 정치 복귀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총리와 함께 치렀던 마지막 총선,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과반을 만들어냈던 총선이 끝나고 나서 이 총리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네들이 해." 10번 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담과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이재명 대표께서 제게 수석 최고위원을 권했을 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맡았고, 했고, 집권 플랜 본부장을 했고, 대선을 치렀고, 총리까지 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네 번째 인연은 김근태 고문이셨습니다. 2002년 단일화를 결정할 때 마지막 상의했던 어른이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노무현 후보께서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단일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소위 동교동이 하면 안 되고 후단협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에 안 돼서 재야 민주화운동 출신이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마지막까지 상의했습니다. 김근태 고문께서 당신께서 해야 되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 재야의 지도자로서 하겠는가.' 결국 제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여러 번 저는 김근태 고문께서 '민석이한테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그 사위가 저와 함께 선거운동을 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계셨습니다. 민주당의 당명을 지킬 때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가 되신 후에 '이제 민주당의 당명을 돌려놓는 일을 하시오.' 돌려드렸고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이제 '다음에 총선으로 복귀하시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말씀 주셨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을 아까 정청래 후보가 말씀하셨듯이 강하게 비판했던 사람입니다. 책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비판을 지금 정청래 후보보다 훨씬 선거를 잘하셨는데도 제가 비판했는데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총선과 대선을 제게 사실상 맡기셨습니다. 큰 분입니다. 그리고 제게 총리까지 맡기셨습니다.
여섯 분 모두 제게 은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인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저를 비판해 주시고, 대중의 힘과 집단지성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저를 오랫동안 24년간 비판해 주신 노사모의 동지들과 당원 주권의 힘을 깨우쳐 주신 당원들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인생을 지금까지 지켜주신 여섯 분의 은인과 노사모의 동지들과 당원 동지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대중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치를,
노무현처럼 뜨거운 정치를,
김근태처럼 도덕적인 정치를,
이해찬처럼 원칙의 정치를,
문재인처럼 품격의 정치를,
이재명처럼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새로운 역사를 이끄는 정치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 부산의 아들 김민석, 한 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 돌아온 탕아를 안아주시는 그러한 부산과 민주당에게 말씀드립니다. 김민석이, 민주당의 아들이, 민주당의 적자가 돌아왔습니다. 당을 혁신시키고 승리하겠습니다.
@gomirae 조계종
봉이김선달 논란때
선당후사 하신다는분이
잠시 탈당 하시지~
그럼 나중에 더 박수 받는 일 아닌가?
책임을 모르는 것
이것은 전형적인 국힘당스러운 모습인데...
6.3 지방선거
민주당 당원 대다수는
패배라고 생각하는데
대구에 김부겸후보가 파란을 일으키는데,
보탬도 하지 못하고,,
@kimsunchul68 보완수사권에 대해 좀 더 숙의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니었나 라고 하는 소신이
검찰의 편에 선 것입니까?
양분법 적인 생각, 언사
과거의 것입니다.
제일 싫은 것이 흑백논리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르면 적으로
규정하고 헐뜯고, 그게 뭡니까?
우파적 생각 아닙니까?
@yellowknife000 장강의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습니다.
흐르면 흘러가는대로
거기에 순응해야합니다.
이제 나라가 친일잔재도 벗어던지고
정교유착, 정언유착, 정계유착도 벗어던지려는데
비로소 국민주권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현 정권의 반대세력의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서야 되겠습니까?
한 순간, 물거품.
[ 노무현 대통령을 따른다면서, 왜 군사독재 정권의 방식을 따릅니까 ]
노무현 대통령을 오래 기리셨다면, 대통령이 평생 싸운 것이 "나의 결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토론 없이 결론을 강요하는 권력", "다수결로 소수를 침묵시키는 정치 문화"였다는 점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원하셨지만, 그분이 원했던 건 어떤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남용을 차단하고 민주적 통제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었지, 새로운 기관에 권력을 몰아주고 억울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구제 창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보완수사권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소수 의견도 아닙니다. 국민 대다수가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민주당원과 지지자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절반에 달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검찰주의자"로 몰아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입니까.
돌이켜보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민주화 세력을 "친북·종북"으로 몰던 방식과 무엇이 다릅니까. 왜 노 대통령을 따른다면서 노 대통령이 평생 싸워온 독재 적폐의 방식을 따릅니까.
백보 양보해서 상대방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와 근거로 반박할 문제이지, "당을 떠나라"는 말로 정리될 문제가 아닙니다. 당론이 항상 옳다면 토론과 숙의는 왜 필요하며, 개인의 소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꿈꿔온 개혁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이 꿈꿨던 것은 "우리 편이 아니면 나가라"는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논리가 민주주의를 지켜온 적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