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아과를 했을까. 학생때만해도 정신과/이비인후과/응급의학과 정도 생각했지 소아과는 별로 갈 생각이 없었다. 교과서도 너무 답답하고 세밀한 아이들을 봐야하기에 의사들도 약을 0.01cc 까지 재서 주기에 너무 숨막히고 학생 실습때 의대생을 대하는 보호자들도 너무 무섭고 싸늘했고..등등의 이유로..그러다가 인턴 여름에 소아과 턴을 돌았다. 인턴을 돌면서 대단한 무슨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매일 채혈에 드레싱을 하며 아이들을 보다 보니 정든 아이들이나 가족이 있었고, 죽을 꺼 같은 아이들이 스테로이드 펄스 치료 이후 며칠만에 걸어다니고 빠르게 좋아지는 걸 보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과를 선택할 때 소아과를 선택한 여러 이유가 있었던거 같은데 지금 생각나는건 이정도이다.
1. 내 인생을 보람있게 살고 싶었다. 환자가 안좋아 밤을 새더라도 80세보다는 8살 짜리, 8개월 짜리 아이를 살리는데 내 인생을 쓰고 싶었다.
2. 적어도 이 일을 한다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윤리적 무결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게 양면적이고 경쟁해야할 카운터 파트가 있지만 소아과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선의를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세상 모든 일 중에서 가장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
3. 전신 시스템에 대해 어느정도 다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 소아과의 경우 신경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소아과 안에 통합되어 있기에 모든 시스템을 어느 정도라도 다 이해하고 싶었다.
4. 적어도 밥을 굶거나 파산을 하거나 등등은 없지 않을까 했었다. 다른 과보다 조금 못 벌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한다면 먹고 살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소아과 의사가 되고 나서 10여년이 지났다. 30대의 나는 그 시기의 우리나라 그 어떤 소아과 의사보다도 환자옆에 오래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리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그동안 세상의 모든 축이 다 뒤집어졌다. 나의 보람을 남들이 빼앗아 갔으며 나의 자부심은 조롱당했다. 나의 떳떳함은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치부가 되었고 병원에서는 돈 못버는 골치덩이 과에, 온갖 법적인 리스크 위험에, 일반적인 근로 소득만으로는 가족의 안위를 책임질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치는 않았었다. 바이탈 방랑자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진료를 하고 남은 시간에 스스로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이 세상에 숏을 전력을 다해 치는 방구석 마이클 버리가 될지 누가 알았겠나.
30대의 치기 어린 결정이었겠지만 지금 후회하느냐.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금이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때 소아과를 선택안했을 수도 있지만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같은 결정을 했었을 것이기에. 아니 지금도 어리석고 답답하게도 차라리 어떤면에서는 스스로가 최후의 방파제의 역할을 하고 있기에 나와 가족들과 주변의 건강을 지키기에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차린 나의 인생의 결말이 안좋을 수 있겠지만,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나. 그게 내 길이고 내 인생인데. 그냥 대나무 숲에 넋두리나 하련다.
진단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잠든 아기의 볼은 발그레했다.
그 사진 아래, 한 인간(?)이
거꾸로 읽어야 뜻이 드러나는 두 글자를 적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정신의학의 답은 더 정확하고, 더 차갑다.
이런 행동을 가리키는 학술 용어가 따로 있다.
‘일상적 가학성(Everyday Sadism)’.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인격 특성을 뜻한다.
201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폴허스 교수 연구진은 인터넷 악플러 수백 명을 분석한 끝에,
가학성이 악플 행동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변수임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논문 제목은 ‘Trolls just want to have fun‘.
그들은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다…
심리학자 존 술러는 이 현상에
‘온라인 탈억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익명과 비대면이 양심의 빗장을 풀어 놓는 순간,
평소 가려져 있던 본성이 드러난다.
새로 생긴 모습이 아니다. 원래 그러했던 모습이다.
한쪽 부모는 사랑을 게시했다.
다른 인간(?)은 그 사진 위에 두 글자를 얹었다.
두 행위는 같은 저울에 오르지 않는다.
한편에는
새벽마다 아이의 숨소리를 세는 자의 피로가,
다른 한편에는
모르는 아기의 잠든 얼굴 앞에서
권태로워하는 인간(?)의 공허가 있다.
‘한남’ ‘한녀’라 길러 온 미움의 언어가
끝내 잠든 아기의 사진 위로 떨어졌다.
그 댓글은, 그 언어가 다다른 종착역이다.
이것은 견해의 문제가 아니다.
인격의 문제다.
토론할 일이 아니라, 진단할 일이다.
그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분노가 아니다.
‘진단’이라는 단어다.
탈은 벗겨진다. 늘 그래 왔다.
잠든 얼굴 위에 얹어 둔 두 글자는, 결국 거울이 된다.
거울 앞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의 모양으로 늙어 간다……
제가 뭘 사람들을 불안하게 합니까. 광대예요. 제가 뭐라고 방구석 숏충이인데. 저는 이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숏은 그럼 의견도 올리면 안됩니까? 계좌도 올리면 안되요? 계속 본인이 맞다는 전제하에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제 논리요? 별로 대단한거 없어요. 확전이 되면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것에 근거를 대라는 말씀이신가요..? 유가가 150불이면 에너지는 어떻게 만들고 데이터센터는 어떻게 돌리고 물가는 어떻게 하고 금리는 어떻게 합니까? AI가 이 모든걸 다 해결해 주는지요? 그럼 고용은요? 뭐 대단한 인사이트가 있는게 아니예요. 제가 보는 세상은 잘못되어 있고 이에 따라 피눈물 흘려가며 2년 넘게몸 갈아가며 숏으로 버티고 앉아있는 겁니다. 제 소명이요? 그런거는 잘 모르겠고 신생아 중환자실과 소아 응급실에서 일합니다. 제가 숏치라고 했습니까? 빅스니 뭐니 안하는게 맞아요. 저도 수없이 많이 얘기했고 이제 사람들이 그냥 차력쇼로 봅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 관점에는 그게 맞으니까. 제가 전쟁이 오래가길 바란다고요? 본부장님은 롱과 숏을 선과 악의 잣대로 판단하시나요? 제 글을 통해 반대로 투자 한다고요? 아닙니다. 사람들이 애도 아니고 본인이 판단하는거지. 그러면 본부장님도 공개적으로 올리신 뷰 틀리면 책임지시나요? 저는 애초에 본부장님에 대한 공격 의도가 없었어요. 자꾸 이러시면 본부장님에게만 손해입니다. 체급이 안맞아요. 진심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