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아蝶兒야, 나비야, 수풀 사이 헤쳐 첫 해가 떠오르는 지평으로 함께 달릴까. 야밤은 녹아 검은 물결이 되고 그 위로 새벽은 투명한 비단처럼 조용히 펼쳐질 테니. 잠든 세계가 눈꺼풀을 스칠 때 아득한 노래를 남겨둘게. 세월의 강이 천 번 굽이친 나날까지 풀잎 끝에 매달려 만란한 화첩을 그리자.
누나? 누··· (뚝 끊겨버리는 전화에 통화 화면이 꺼진 핸드폰만 망연하게 쳐다본다. 별일이 아니긴. 누가 봐도 그게 아닌데. 차 안에 있어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게 쪽에서 분명히 들리는 상황이라 빨리 나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더군다나 소음도 처음보다 심각하고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려 아무래도 정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누나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손으로 문 손잡이만 만지작거리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어. 혹시 이런 위험한 상황을 혼자 해결하려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나가서 너를 얼른 데려오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와 이겨내려 눈을 꽉 감았다 뜬다. 그냥 누나를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되잖아. 뭐가 무서워.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평소에는 말도 잘 듣는 동생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어길게. 차 문을 달칵 열고 나와 가게로 향한다. 가까워질수록 귀에 더 살벌한 소리가 꽂혀서 떨리는 건지, 찬 바람과 짙은 어둠 때문에 떨리는 건지 몸이 떨려왔다. 그렇지만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가 살피는데 가게에 있어야 할 너는 없고 주인아주머니만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아주머니도 위험하잖아. 뒷방에서 나는 쇠가 스치는 듯한 소리, 물건이 나뒹구는 소리, 남자들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 등 엄청난 소리들에 몸이 움찔거렸지만 가까스로 아주머니한테 혹시 모르니 카운터 밑으로 들어가 숨어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나중에 아주머니와도 같이 빠져나와야지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네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에서 나오는 건 못 봤는데. 숨어있나? 너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계획만 있었지 여기에 없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해서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그러다 네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건 아주머니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여쭤보려던 찰나 뒷방 문에서 쿵 하고 큰 물체가 부딪히는 듯한 마찰음이 들린다. 깜짝 놀라 뒷방을 쳐다보니 부딪힌 충격에 의해서인지 문이 천천히 열리고 문틈이 벌어지자 어떤 남자가 툭 쓰러진다. 입만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본능적으로 주위에 있는 무기가 될 만한 걸 찾다가 빗자루를 발견해 아주머니를 등지고 긴 칼을 든 것 마냥 두 손으로 번쩍 앞쪽을 향해 든다. 손은 덜덜 떨리고 있지만 안에서 누가 나올지,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계속 빗자루를 들고만 있었다. 곧 검은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고 침을 꿀꺽 삼켰다.)
홋카이도 겨울도 좋다고 그러던데. 여행 갔는데 눈 오면 좋겠다. (여행 가서 누나랑 같이 눈 맞게 되면 두 번째 눈이네. 약한 눈보라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물어는 볼게- 네 농담을 듣고 물어보겠다며 받아친다. 농담인 건 알지만 인물 좋은 애가··· 있다고 해도 일등 누나가 훨씬 아깝지.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에이, 찾아오고 그런 게 어디 있어, 누나. 나 그런 거 안 믿어. (완전 믿어. 공포 라디오는 애초에 듣지도 않지만 완전 믿는다고. 어두컴컴한 하늘과 도로, 불빛이라고는 차 불빛만 있는 곳을 달리는 이 상황이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느껴져 괜히 또 등골이 서늘하고 오싹해진다. 역시 무서운 거 잘 보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운전하고 있는 너 몰래 무서움을 떨쳐버리려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떴다가 힘을 푼다. 그러다가 날 부르는 목소리에 살짝 놀라 흠칫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한다. 티 안 났겠지···) 어, 어.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공포물 이야기를 한 직후라서 그런지 이 어두운 곳에 혼자 남겨질 걸 생각하니 다시 무서워졌지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네가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빨리 와야 해, 누나··· 네가 차 문을 열고 나가자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잠깐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온다. 누나 안 추우려나? 가까우니까 괜찮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음료수를 사 올 널 기다리는데 문득 가게를 쳐다보니 가게에 작게 난 창문으로 어떤 사람 실루엣이 보인다. 한 명도 아니었고 행동이 커서 눈에 띄길래 나도 모르게 계속 창문 쪽을 주시하는데 물건이 벽에 부딪혀 깨지고 부서지는 모습이 정확히 눈에 들어온다. ···뭐야? 싸우고 있는 건가? 어떤 일이든 간에 아무리 봐도 저 방 안에서 난동을 피우는 게 확실했다. 누나 아직 저기 있는데 누나한테까지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던 찰나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낸다. 누나가 핸드폰을 가져갔나? 운전석 쪽과 거치대에 핸드폰이 없는 걸로 봐선 핸드폰을 가져간 것 같은데. 일단 최근 통화 목록에 들어가 너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건지 가던 신호가 멈추자마자 말을 쏟아낸다.) 누나! 빨리 와. 거기 위험한 것 같아.
(봄꽃처럼 화사하게 빙그레 미소 짓는 널 보니 상처에 관해 생각하는 와중에도 자연스레 따라 웃게 됐다. 그때처럼 또 활짝 웃네. 너를 보며 어떤 몽글한 감정을 처음 느꼈던 그날의 네 미소와 지금의 활짝 피운 미소가 겹쳐 보여 눈을 떼지 못한다. 넌 웃을 때가 제일 예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고백공격에 당했으니까 네가 공격할 차례라고 했었잖아. 어떤 공격이든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여러 가지 준비할 것 없이 아예 작정하고 미소 공격을 한다면 바로 넘어가 버릴지도 몰라.) 음, 그때 알았어도 곤란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야. 그때도 이미 네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똑같이 열심히 작전 수행하다가 오히려 내가 멘탈이 무너졌겠지···. 날 밉지 않게 노려보는 눈빛에 타격은 별로 없이 웃으며 말한다.) 알았어. 이제 안 물어볼게. 충분히 이해했어. (능청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백공격 할 때까지만 해도 널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고 이런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고백공격 작전을 펼친 걸 잘했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매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너와의 지금을 떠올리면 잘한 일인 것 같았다.) 휴지 두고 봐야겠다. 진짜 하루 빼도 돼? 빠지면 빠진 날까지 채워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날로 잡아도 돼. 주말도 되고. (가로등 불빛 아래라서 그런지 달아오르는 얼굴이 더 잘 보였다. 얼굴이 빨간 건 가로등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던 네 말이 갑자기 떠올라 작은 웃음이 튀어나온다. 깍지 꼈던 손이 풀리고 아쉬움의 한숨을 작게 내쉬다가 뭔가 생각난 듯한 소리를 낸다.) 아, 목도리는 그냥 하고 가도 돼. 그럼··· 조심히 가, 경주야. (기숙사 바로 앞이지만 널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숨길 수가 없다. 살짝 흐트러진 목도리를 한번 정리해 주고는 손을 흔든다. 기숙사 쪽으로 몸을 틀어 들어가는 네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들어가기 직전 몸을 돌리는 널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곧 이어지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다 재빨리 기숙사로 들어가는 너의 등 뒤로 외친다.) 강경주! 너도 내 꿈 꿔. 내일도 사랑할게! (늦은 시간이니 너무 크지 않게 외쳤지만 이 외침이 너에게 닿았기를 바라면서 너의 모습이 기숙사 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음에도 아쉬움에 바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겨우 내려가는 길 쪽으로 몸을 틀어 내려간다.)
@Che_Geumhak 누나! 생일 축하해. 이런 날 일등 동생이 빠질 수 없지. 이미 꽃 선물 많이 받았겠지만 내 선물이 일 순위라고 생각했으면 해. 누나는 봄에 태어나서 봄을 닮은 싱그러운 미소를 항상 간직하고 있나 봐. 누나에게 늘 행복만 찾아와서 계속 웃는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 오늘 하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되기- 아, 소원 빌고 촛불 부는 거 잊지 않았지? 다시 한번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그럼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거네? 카트 체험은 꼭 해봐야겠다. 겨울에 카트 타려면 완전무장 해야겠는데··· (장난 섞어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겨울에도 일본에 같이 가자는 뜻임을 바랐던 건 진심이었다. 이제는 내가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을 같이 경험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너와 함께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이 당연시되고 익숙해져 있는 게 좋았다. 얼마나 익숙해져있었는지 너의 그 말이 겨울 일본 여행을 같이 가자는 뜻이 아니었다면 서운했을 거라는 치기 어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여행은 나랑 가야지' 하는 생각은 덤. 피곤해 보이는 네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에서 어깨를 꾹꾹 안마해 주면서 걷는다.) 나랑 놀아주느라 피곤하겠다, 누나. 알았어. 예쁜 누나가 소개해 줬다고 자랑 엄청 할게. (소리 내 웃으며 답한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너한테 예쁜 누나가 있었냐며 친구들이 놀려대겠지만 사실인데, 뭐. 왜 그런 주제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주위가 어둡고 터널이 보여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나?) 무서운 거 잘 못 보는구나. 의외다. 왠지 잘 볼 것 같았는데. (아, 나한테 질문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공포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서 공포영화는 보지도 못하고 괴담이나 공포 라디오마저 듣지 못하는 나였다. 소리나 안 지르면 다행이지··· 괜히 이런 주제를 꺼냈다고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왜 그런 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냐고. 무서운 거에는 자신이 없지만 그런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작은 것에서도 튀어나오는 어이없는 자존심일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야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난 무서운 거 잘 봐. 나도··· (말을 이어가려다 울리는 전화벨에 말을 멈췄다. 잠시만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너에게 편하게 받으라고 웃으며 손짓한다. 내가 통화를 하는 동안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데 꽤 빨리 끊어진 통화에 널 바라보다가 계속 말해보라는 말에 끄덕이며 입을 연다.) 아, 나도 공포 라디오 잘 듣는다고. 가끔 들으면 재밌던데?
그래. 분명히 그때 네가 내 마음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게 맞는데. 그럴 리 없다며 내 마음이 틀렸다고 비가 오 듯 계속 마음에 빗금을 쳐도 너라는 존재를 속에서 들어낼 수 없고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게 정답이었어. 너무 늦게 깨달았네. 좋아한다고 동그라미 치기까지 오래 걸린 내가 너무 어리석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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