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지성사노트. 제2권[815~849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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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인류를 “벼락출세한 피조물 한 족속(upstart creatures)”이라 비하하는 사탄의 고백은 복음서의 ‘탕자의 비유(Parable of the Prodigal Son)’와 깊은 신학적·사상사적 대칭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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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최상위 치천사로서 자신의 고귀함과 공로를 과시하면서도, 흙으로 만든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신성한 사랑과 구속의 은혜가 쏠리는 것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질투하는 맏형’의 복합심리(Elder Brother Syndrome)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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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 청교도 혁명기 권력 중심부에서 쫓겨난 기존 귀족층이나 정치적 패배자들이 신흥 민중 세력의 부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적의와 박탈감이 이 구도 속에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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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사탄은 아버지(하나님)의 품과 천상적 권능을 스스로 차버리고 떠났다는 점에서 ‘탕자’의 구도를 취하지만, 죄를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성서의 탕자와 달리 끝내 회개와 복귀를 거부하고 지옥의 왕권을 고집하는 ‘역(逆)탕자(Unrepentant Prodigal)’의 비극을 완성한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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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복고기 잉글랜드 문단을 지배했던 정통 비평의 거장이자 영국 최초의 공식 계관시인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1688년 《실낙원》 제4판의 초상화 판화 하단에 새겨 넣은 저명한 6행 경구(Epigram)에서 고대와 근대를 관통하는 밀턴의 독보적 위상을 증언했다. 원래 ‘비석이나 명문에 새겨 넣는 짧고 예리한 시’를 뜻하던 고전적 경구의 전통대로, 드라이든은 단 6행의 시적 통찰 속에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밀턴으로 이어지는 서사시 거장들의 맥락을 다음과 같이 압축하여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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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세 시대에 태어난 세 시인이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를 빛내었도다.
첫째(호메로스)는 고결한 사상에서 뛰어났고,
둘째(베르길리우스)는 장엄함에서 뛰어났으나, 셋째(밀턴)는 둘 모두에서 뛰어났도다.
자연의 힘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나니,
셋째를 만들기 위해 앞의 두 시인을 하나로 결합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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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poets, in three distant ages born,
Greece, Italy, and England did adorn.
The first in loftiness of thought surpassed;
The next in majesty; in both the last.
The force of Nature could no farther go:
To make a third she joined the former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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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든의 통찰처럼, 밀턴의 《실낙원》은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고결한 신학적·철학적 사상성과 고대 로마 베르길리우스의 장엄한 서사시적 형식을 한 몸에 구현함으로써, 고전적 서사시 전통을 종교개혁적·청교도적 지평 위에서 집대성하고 완성한 영적 서사시의 최고봉이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제2권[674~720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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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본래 9대 천사 위계 중 최상위인 제1품계 치천사(세라프, Seraph)로서, 천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최고위 천사(루시퍼)였으나, 창조주 하나님에 맞서 오만과 반역의 마음을 품는 순간 그의 머리가 터지며 딸인 ‘죄(Sin)’가 무장한 채 출생했다. 이후 사탄은 천상에서 자신이 낳은 딸 ‘죄’의 완벽한 형상에 반해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그 결과 태어난 끔찍한 아들이 바로 피조 세계의 파멸인 ‘죽음(Deat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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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상에서의 패배와 타락 이후 서로의 형상이 흉측하고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탓에, 아비인 사탄과 아들인 ‘죽음’은 서로를 지옥의 흉측한 괴물이자 쫓겨난 반역자로만 인식하며 알아보지 못한다. 가장 고귀했던 대천사가 오만으로 낳은 가문의 끔찍한 비극을 품은 채, 아비와 아들이 지옥문 앞에서 서로의 목을 향해 치명적인 단창(Dart)을 겨누는 이 장면은, 악이 지닌 족보의 끔찍함과 자멸적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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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죽음’이 손에 쥐고 있는 단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타락한 피조물에게 파멸과 필멸의 고통을 가하는 ‘죽음의 권세’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도상(Icon)이다. 이처럼 도상학적 위엄을 갖춘 아들과 사탄이 벌이는 대치 상황은 서사시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제2권 506~555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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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의회가 전격 해산된 직후 펼쳐지는 악마들의 군사 오락과 예술 활동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나 사기 진작을 넘어선다. 절대 권력을 독점한 사탄이 홀로 심연 탐험에 나선 뒤, 지옥에 남겨진 악마들은 지옥이라는 참담한 실재와 영원한 형벌이라는 엄혹한 공포, 그리고 당혹스러운 불안(restless thoughts)을 홀로 직면해야 하는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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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이 포착해 낸 이 대목은 동시대인이었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팡세》(Pensées)에서 규정한 인간 비극의 근원, 즉 ‘기분 전환(Divertissement)’의 철학과 완벽히 궤를 같이한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단언했다. 하나님을 떠난 피조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참담한 처지(죽음, 고독, 허무)를 직면할 때 견딜 수 없는 영적 허기와 불안을 느끼기에, 그 불안을 잊고자 끊임없이 노름, 전쟁, 스포츠, 잡담 같은 ‘기분 전환거리’를 찾아 나선다. 중요한 것은 오락의 결과나 목적이 아니라, ‘생각을 마비시키고 시간을 때우는 과정 그 자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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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악마들 역시 완벽히 동일한 존재론적 병리 현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옥이라는 실재를 견딜 용기가 없기에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스포츠 경주(올림피아/피티아 경기), 가상의 군사 훈련, 혹은 티폰과 알키데스(헤라클레스)의 광기에 비유되는 파괴적 폭력 속으로 자신들을 광란하듯 내던진다. 겉보기에는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 서사시 속 기사들의 장엄한 무예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환영과 겨루며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헛된 몸부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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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악마들의 음악과 찬가는 파스칼이 경고한 ‘거짓된 위안’이 어떻게 자아도취적 문화예술로 위장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조용한 골짜기로 물러나 하프를 켜며 노래하는 온화한 악마들은 천사 같은 가락과 빼어난 다성음악의 하모니로 청중을 황홀하게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본질은 신성한 찬양이나 회개가 아니라, 자신들의 반역과 죄는 은폐한 채 모든 패배의 원인을 불공평한 운명이나 우연의 탓으로 돌리는 자기변명적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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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유려한 기교는 파스칼의 말처럼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하며, 단지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기만적 마술(pleasing sorcery)’에 불과하다. 17세기의 두 거장 파스칼과 밀턴은 신성한 은혜를 상실한 피조물이 벌이는 유희와 교양이 결국 영원한 파멸이라는 실재를 눈가림하려는 헛된 껍데기이자 가련한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음을 한목소리로 고발하고 있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제2권 [467~505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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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지옥의 풍경을 넘어 인간 사회 전반과 한국 사회를 비롯한 현대 문명이 직면한 비극적 실태를 강력하게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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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지옥의 악마들조차 저희끼리는 굳건한 화합을 이루고 한 뜻으로 움직이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의 소망 아래 있는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들만이 서로를 향한 증오와 적대 속에서 무의미한 내전과 상호 파멸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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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으로 인간의 소멸만을 노리는 외부의 적과 거대한 위기(지옥의 악마들)가 이미 차고 넘치는데도, 정작 인간들은 그 공동의 위협을 까맣게 잊은 채 제 손으로 직접 서로를 망치고 파괴하는 데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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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7세기 영국 내전의 비극을 넘어, 공존의 가치를 잊은 채 진영 논리와 이분법적 증오로 자멸해 가는 오늘날의 인간 사회를 향한 밀턴의 엄중한 경고이자 한탄이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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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실낙원》 제2권 378b~416행을 통해 지옥 의회의 민주적 의결 절차가 실상은 사탄이라는 단 한 명의 독재자에 의해 철저히 계산되고 연출된 연극적 가식(Civic Theatre)에 불과함을 서사시의 정교한 수사학으로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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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제붑이 제안한 신세계 침투 공작은 표면적으로는 의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표결을 거쳐 채택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자는 이 공작이 “본래 사탄에 의해 처음 고안되고 제안되었던 것(379~380행)”임을 전지적 시점으로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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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지옥 최고의 권력자이면서도 의회 전면에 직접 나서 자신의 안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2인자인 비엘제붑을 대리인(Proxy)으로 내세워 의원 악마들을 설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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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권력자가 자신을 토론의 직접적 비판 대상에서 제외하는 동시에, 의원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선택했다고 믿게 만드는 정교한 흑막 정치(Behind-the-scenes Manipulation)의 전형을 보여준다.
<실낙원> 지성사 노트
밀턴은 제1권 679~692행을 통해 지옥의 자원 발굴 작업을 총지휘하는 마몬(Mammon)의 인물됨과 그 부추김에 의해 자행되는 황금 굴착 광경을 묘사한다. 마몬은 천상에서 추락한 자들 가운데 가장 고결하지 못한 영으로, 천상에 있을 때조차 신성한 지복직관(vision beatific)보다는 발밑에 짓밟히는 황금 바닥을 탐했던 탐욕의 인격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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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논점은 “직립(erectus)의 영성 상실과 탐욕으로 인한 가치관의 전도(轉倒)”이다. 마몬을 가리키는 ‘가장 고결하지 못한 영(the least erected Spirit, 679~680행)’이라는 표현은 라틴어 ‘erectus’(직립한, 고상한)에 뿌리를 둔 고전적 메타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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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지성사에서 ‘짐승은 땅을 바라보고 인간과 천사는 하늘을 바라본다’는 상징은 2천 년 이상 전승되어 온 인문주의의 핵심적 유산이다.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I. 84~86)에서 “다른 동물들은 고개를 숙여 땅만을 바라보도록 창조되었으나, 신은 인간에게 솟아오른 얼굴을 주시어 직립하여 별들을 바라보도록 명하셨다”고 노래했고, 플라톤(《티마이오스》)과 아리스토텔레스(《동물부분론》) 역시 인간의 직립한 신체 구조가 신성(Divine)과 통하는 영적 증거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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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락탄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기독교 신학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과 결합시켜, 직립한 인간이 고개를 숙여 땅의 황금을 탐하는 것을 ‘자신을 짐승의 수준으로 실추시키는 영적 퇴행’이라 비판했다. 밀턴은 이 서양 지성사적 전통을 계승하여, 천상에 있을 때조차 바닥의 황금만을 주시했던 마몬의 비열함이 곧 영적 직립성을 상실한 ‘가장 고결하지 못한’ 추락임을 폭로하고 있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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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제1권 642~662행을 통해 사탄의 첫 연설이 마침내 구체적인 ‘전술적 전환’과 ‘인간 세계 침공 기획’이라는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사탄은 전능자와의 정면 대결에서 무력의 한계를 절감한 뒤, 힘을 통한 지배는 적의 절반만을 제압할 뿐이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사기와 궤계(fraud or guile)를 통한 은밀한 공작 정치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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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천상 시절부터 떠돌던 신비로운 소문을 교묘히 이용해, 신의 압도적인 절대 주권에 흠집을 낼 대리 복수의 표적으로 새롭게 창조될 인간 세상을 제시한다. 이 단락은 독재자가 처참한 패전의 과오를 어떻게 새로운 공작 정치의 명분으로 탈바꿈시키는지, 그리고 정당성을 잃은 권력이 무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야비한 사술로 퇴행하는지 그 정치사상적 뼈대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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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주시해야 할 사상사적 논점은 “무력 지배의 실존적 한계와 마키아벨리적 사술로의 퇴행”이다. 사탄이 선언하는 “힘으로 승리하는 자는 적의 절반만을 제압했을 뿐이다(who overcomes / By force, hath overcome but half his foe, 648~649행)”라는 구절은 폭력이나 강압에 의한 지배가 피지배자의 외형만 굴복시킬 뿐 영혼과 의지까지 순복시키지 못한다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핵심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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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승부에서 패배한 참주 사탄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언급한 독재자의 두 통치 수단 중 ‘사자(무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여우(사기/궤계)’의 전략을 채택한다. 정당성을 상실한 참주가 물리적 힘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기만과 모략, 그리고 은밀한 공작 정치의 수단으로 퇴행함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사탄의 눈물'
<실낙원> 제1권 599~621행의 비평적 정수이자 마키아벨리적 정치학의 실체를 드러내는 지점은 “사탄의 연설 시도와 천사의 눈물에 숨겨진 입체성”이다. 사탄이 부하들의 비참한 처지를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은 독자와 피지배 천사들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밀턴은 사탄이 연설을 하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으나, 세 번 모두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 눈물을 단순한 속임수로만 단정할 필요는 없다. 파멸의 책임감과 패배의 슬픔에 잠겨 눈물을 쏟았던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아가멤논처럼, 위기에 직면한 독재자의 감상적인 측면이 표현된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눈물은 고도의 정치적 장치로도 작동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통찰했듯, 전제 군주는 실제로 도덕적일 필요는 없으나 자비롭고 인간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지배 유지에 결정적이다.
세 번이나 말이 막히는 사탄의 극적인 연출은 결과적으로 자신과 함께 파멸한 부하들의 충성심을 강력하게 결집시키는 심리적 최면제가 된다. 밀턴은 독재자가 지닌 감상성과 눈물의 정치학을 나란히 조명함으로써, 시민사회가 참주의 감성 정치에 선동당하지 않고 그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냉철하게 분별해야 함을 경고하고 있다.
<실낙원> 지성사노트('허장성세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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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실낙원》 제1권 522~540행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져 침울해하던 타락 천사들이 사탄의 교묘한 수사학적 선동과 장엄한 군사적 의례를 통해 오만한 활력을 되찾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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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겉치레만 화려한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정치학’을 날카롭게 해체하는 정치사상사적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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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짚어야 할 대목은 “사탄의 마키아벨리적 수사학과 정치적 선동”이다. 밀턴은 사탄의 얼굴에 잠시 스친 불안한 기색(doubtful hue)과, 겉으로는 신실해 보이나 실상은 허황되고 실체 없는 ‘거창한 말들(high words)’을 명확히 대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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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자신이 처한 패배의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의 오만(wonted pride)을 연극적으로 연출한다. 이는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여론을 기만하고 당당한 허상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보았던 마키아벨리적 통치술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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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사탄의 용기를 북돋우는 연설이 실상은 군사들의 눈을 멀게 하여 파멸적 전쟁으로 다시 몰고 가려는 정치적 기만극에 불과함을 고발한다.
<실낙원> 지성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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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은 종종 이 우상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살아 있는 힘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의로운 제단을 방치한 채, 짐승 같은 신들에게 절했다. [435] 이 때문에 그들의 머리 역시 전쟁터에서 비천한 적들의 창 앞에 그만큼 낮게 엎드러져야 했다. "(1:43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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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턴은 우상숭배라는 주체성의 상실이 가져오는 참혹한 파멸을 구약성서 고유의 ‘신명기 사관(Deuteronomic History)’을 통해 선언한다(431~437행). 신명기 사관의 핵심은 여호와의 율법과 공의에 순종하면 번영(복)을 누리나, 이를 저버리고 눈에 보이는 이방 우상을 숭배하면 가차 없이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파멸(화)을 겪는다는 철저한 역사적 인과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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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이 보이지 않는 신령한 주권을 버리고 “비천하게도 짐승 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을 때”, 그들의 도덕적 자립성과 비판적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시인은 이 정신적 예속의 필연적 대가로 “그들의 머리는 전쟁에서도 역시 숙어져, 가증스러운 적의 창 앞에 떨어졌다”는 서슬 퍼런 역사적 심판을 제시한다. 이 악마들의 무리 뒤이어 초승달 뿔을 가진 ‘하늘의 여왕’ 아스타르테(아스토렛)가 등장한다(438~439행).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비극이 쾌락주의 우상숭배와 결합하여 예루살렘의 영적 타락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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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눈앞의 외형적 무력과 풍요라는 우상 앞에 도덕성을 버린 제국이 결국 자멸하고 만다는 밀턴의 신명기 사관은, 훗날 20세기 식민지시대를 통과하던 한국의 사상가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역사철학에서 완벽하게 재현된다. 일제의 엄혹한 검열 칼날 아래 있던 김교신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열을 가하면 선명히 자국이 찍혀 나오는 ‘은현(隱顯)잉크’의 문법을 사용했다. 그는 《성서조선》의 〈일기〉에 번역도 하지 않은 《논어》의 한문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며 검열관의 눈을 속이는 동시에, 시대의 행간을 읽을 줄 아는 독자들에게 역사적 대법칙을 은밀히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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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이 일제 군국주의의 폭주 속에서 제시한 역사관의 핵심은 ‘열승우패(劣勝優敗)의 제2 법칙’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승리하는 약육강식의 ‘우승열패’만을 유일한 철칙으로 알고 실망하거나 공포에 떨지만, 이는 우주와 역사를 관통하는 지극히 작은 소법칙(제1 법칙)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교만해진 강자를 반드시 낮추시고 공의와 진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대법칙, 곧 ‘열승우패’라는 제2 법칙이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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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밀턴의 신명기 사관과 김교신의 역사관은 ‘우상’과 ‘패도’의 본질적 통합을 통해 깊게 맞물린다. 성서와 밀턴이 고발하는 우상숭배란 단지 이방의 목석 신상에 절하는 종교적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참된 공의와 진리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 힘과 세속적 풍요를 절대적 구원자로 섬기는 영적 타락이다. 김교신이 꿰뚫어 본 일제 군국주의의 패도(覇道) 정치, 즉 인의(仁義)와 보편적 도덕률인 ‘예(禮)’를 저버리고 무력과 권모술수를 신격화하는 자만이야말로 곧 ‘무력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현대적 형태의 우상숭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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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은 《논어》 〈위정〉편을 빌려, 인의(仁義)와 보편적 도덕률인 ‘예(禮)’를 저버리고 무력과 권모술수로 천하를 호령하려는 패도의 정치는 당장은 서슬 퍼렇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오래가지 못하며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멸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파라오의 왕권이나 만리장성, 카이저의 제국이 그러했듯, 1940년대 천하무적을 과시하던 일제 군국주의 역시 이 제2 법칙에 따라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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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의 진정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군사력의 거대함이나 눈앞의 풍요가 아니라 도덕적·영적 자립성이라는 이 신명기적 인과율은, 17세기 청교도 혁명의 좌절 속에서 이스라엘의 타락을 질타한 밀턴과 20세기 식민지 민족의 수난 속에서 제국의 파멸을 예견한 김교신을 시공간을 넘어 하나의 줄기로 엮어준다.
<영국혁명과 2026년 한국: 역사는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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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혁명 당시 밀턴의 크롬웰을 향한 태도는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었으며, 혁명의 전개 과정에 따라 ‘열광적 지지’, ‘조건부 경고’, ‘깊은 환멸과 침묵’이라는 3단계의 명확한 지적 궤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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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열광적 찬사와 자유의 수호자 (1649~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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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 1월, 의회파가 절대군주 찰스 1세의 목을 베고 잉글랜드 공화정(Commonwealth)을 선포하자 밀턴은 지체 없이 혁명의 전면에 나선다. 혁명 정부의 외교 및 라틴어 문서 책임자인 ‘라틴어 비서관’으로 임명된 밀턴은 국왕 처형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수많은 정치철학적 논설들을 집필했다. 이 시기 밀턴에게 크롬웰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 영웅들에 필적하는 ‘자유의 수호자’이자, 지상의 우상숭배(왕정)를 파괴하기 위해 신이 선택한 신실한 도구였다. 밀턴은 1652년 크롬웰에게 바치는 헌시(소네트 16번)를 통해 그를 “우리의 마음을 평화와 진리로 이끈 위대한 장군”이자 “신앙과 자유의 수호자”라고 열광적으로 찬양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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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불안과 조건부 준엄한 경고 (1653~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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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오른 크롬웰이 혁명의 초심을 잃고 비대해진 권력욕을 드러내면서 밀턴의 내면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크롬웰은 세속적 권력의 핵심인 의회와 격렬한 갈등을 빚은 끝에, 1653년 군대를 동원하여 의회를 강제로 해산해 버렸다. 청교도 혁명이 사실상 1인 군사독재체제로 급격히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혁명의 중심부에서 이를 지켜보던 밀턴은 깊은 충격을 받았으나, 대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크롬웰을 완전히 등지는 대신 그의 저작을 통해 권력자를 향한 공개적인 서면 경고를 단행한다. 밀턴은 이 저서에서 크롬웰의 업적을 정중히 예우하면서도 문장 행간에 서슬 퍼런 경고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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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아버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통째로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위치에 섰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가져온 자유를 내부의 교만이나 타락한 권력욕으로 더럽힌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과 혁명 전체를 파멸시키는 최악의 비극이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지배자가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 안의 욕망을 지배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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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깊은 환멸과 침묵 (1655 이후)
밀턴의 간절하고도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크롬웰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잉글랜드 전역을 11개 군구로 쪼개어 군 장성들을 배치하는 가혹한 군사점령 정치를 펼쳤고, 급기야 봉건 왕정의 세습제까지 고스란히 흉내 내며 자신의 아들 리처드 크롬웰에게 호국경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했다. 밀턴은 크롬웰이 결국 자신들이 처형했던 찰스 1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군주’이자 ‘오만한 독재자’로 전락했음을 직시하며 깊은 환멸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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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적으로 크롬웰에게서 완전히 마음을 돌린 밀턴은 비서관의 공적 직무는 유지하려 애썼으나,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작성한 정신건강에 관한 가장 정교한 논문과 권고들을 합쳐서 가장 축약되고 정제된 문장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산상수훈의 어설픈 모조품에 불과할 것이다. 산상수훈은 심리학의 어마어마한 연구 결과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의 지혜를 이미 완벽하게 담고 있다." --J. T. 피셔(James T. Fisher)
최근 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하여 탐구하여 알아낸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심연(深淵)과 불가지(不可知)의 한계가 인간의 논리와 지혜에 대해 계속 도전하고 있다. 우주가 어느 시점에서 폭발을 하여 시작되었다는 천문학계의 통설에 대하여, 그러면 그 이전에는 무엇이 존재하였느냐는 궁극적인 질문에 현대 과학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 칼 융
"내가 왜 일생을 바쳐 역사를 연구해 왔는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삶의 목적을 찾아낸 다른 행복한 사람들처럼, 역사가 역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내라'(사도행전 17:27)는 신의 소명을 받았기에 역사가라는 천직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 제10권.
"Why have I spent my life studying history? ... My own answer is that, like other happy people who have found their life’s purpose, a historian finds his vocation because he has been called by God to 'seek God, if haply they might feel after him, and find him' (Acts 17:27)."
깊은 과학 정신의 소유자가 독자적인 종교적 감정을 동시에 갖추지 않고 있는 예는 오히려 드물 것이다. 이 감정은 자연 법칙에 대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 감정이야말로 그의 생활과 연구의 지침이 된다. 이 감정이 모든 시대의 종교적 천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과 유사한 것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밀턴에게 완벽함이란 멈추어 있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선택하며 신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역동적인 도정이었다. 그렇기에 《실낙원》에서 인간은 에덴동산의 무죄한 상태에서도 천사 라파엘에게 천문학과 역사를 배우며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주체로 묘사된다.
《실낙원》 제5권에서 제8권에 이르는 거대한 중간 단락 전체가 라파엘의 교육으로 채워져 있다. 신의 명령을 받은 천사 라파엘은 에덴동산으로 내려와 아담과 함께 지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밀턴의 물질적 일원론이 드러나는 대표적 장면), 긴 대화를 시작한다.
1. 역사 교육 (제5권~제6권): 라파엘은 아담에게 인간이 창조되기 전 천상에서 일어났던 사탄의 반란과 천상 내전의 역사를 상세히 들려준다. 이는 인간이 죄의 본질을 식별할 수 있도록 지적 배경을 제공하는 '역사학' 교육이다.
2. 천문학 교육 (제8권 1~178행): 아담은 라파엘에게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와 태양, 지구, 별들의 운행 법칙에 대해 질문한다. 라파엘은 당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을 넘나들며 우주론을 설명한다.
다만 이때 밀턴이 강조하는 배움은 추상적인 천문학 이론의 옳고 그름을 다투는 기술적 논쟁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다. 라파엘은 아담에게 우주의 신비를 캐내려는 지적 허영을 경계하라고 충고하며, “네 앞에 다가와 있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선과 악을 현명하게 식별하는 것”(8:172~174)이 참된 지혜라고 권고한다. 이는 지식의 최종 목적지가 지상에서의 도덕적 실천과 주체적 삶의 현장이어야 한다는 밀턴 특유의 실천적 기독교 인문학의 선언이다.
<실낙원>사상사 노트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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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을 바라보는 밀턴의 세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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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구사하는 군주를 향한 저항의 수사학과 그 배후에 숨은 영적 오만함의 모순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생 철저한 공화주의자로 살았던 존 밀턴이 당대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을 바라보았던 입체적이고도 극적인 사상적 시선의 변화를 추적해야 한다. 밀턴의 크롬웰을 향한 태도는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었으며, 혁명의 전개 과정에 따라 ‘열광적 지지’, ‘조건부 경고’, ‘깊은 환멸과 침묵’이라는 3단계의 명확한 지적 궤적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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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열광적 찬사와 자유의 수호자 (1649~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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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 1월, 의회파가 절대군주 찰스 1세의 목을 베고 잉글랜드 공화정(Commonwealth)을 선포하자 밀턴은 지체 없이 혁명의 전면에 나선다. 혁명 정부의 외교 및 라틴어 문서 책임자인 ‘라틴어 비서관’으로 임명된 밀턴은 국왕 처형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수많은 정치철학적 논설들을 집필했다. 이 시기 밀턴에게 크롬웰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 영웅들에 필적하는 ‘자유의 수호자’이자, 지상의 우상숭배(왕정)를 파괴하기 위해 신이 선택한 신실한 도구였다. 밀턴은 1652년 크롬웰에게 바치는 헌시(소네트 16번)를 통해 그를 “우리의 마음을 평화와 진리로 이끈 위대한 장군”이자 “신앙과 자유의 수호자”라고 열광적으로 찬양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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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불안과 조건부 준엄한 경고 (1653~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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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오른 크롬웰이 혁명의 초심을 잃고 비대해진 권력욕을 드러내면서 밀턴의 내면에는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크롬웰은 세속적 권력의 핵심인 의회와 격렬한 갈등을 빚은 끝에, 1653년 군대를 동원하여 의회를 강제로 해산해 버렸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국왕과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종신 독재관인 ‘호국경(Lord Protector)’에 취임했다. 청교도 혁명이 사실상 1인 군사독재체제로 급격히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혁명의 중심부에서 이를 지켜보던 밀턴은 깊은 충격을 받았으나, 대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크롬웰을 완전히 등지는 대신 그의 저작 《영국 백성을 위한 두 번째 변호(Defensio Secunda, 1654)》를 통해 권력자를 향한 공개적인 서면 경고를 단행한다. 밀턴은 이 저서에서 크롬웰의 업적을 정중히 예우하면서도 문장 행간에 서슬 퍼런 경고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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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아버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통째로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위치에 섰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가져온 자유를 내부의 교만이나 타락한 권력욕으로 더럽힌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과 혁명 전체를 파멸시키는 최악의 비극이 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지배자가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 안의 욕망을 지배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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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깊은 환멸과 침묵, 그리고 《실낙원》을 통한 복기 (1655 이후)
밀턴의 간절하고도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크롬웰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잉글랜드 전역을 11개 군구로 쪼개어 군 장성들을 배치하는 가혹한 군사점령 정치를 펼쳤고, 급기야 봉건 왕정의 세습제까지 고스란히 흉내 내며 자신의 아들 리처드 크롬웰에게 호국경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했다. 밀턴은 크롬웰이 결국 자신들이 처형했던 찰스 1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군주’이자 ‘오만한 독재자’로 전락했음을 직시하며 깊은 환멸에 빠졌다. 사상적으로 크롬웰에게서 완전히 마음을 돌린 밀턴은 비서관의 공적 직무는 유지하려 애썼으나,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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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크롬웰 사후 1660년 왕정복고가 단행되어 동지들이 처형당하고 혁명이 처참한 종말을 맞이했을 때, 두 눈이 먼 채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인 밀턴이 구술하여 완성한 대작이 바로 《실낙원》이다. 밀턴은 실패한 청교도 혁명의 잔해 위에서 고통스럽게 질문했다. “우리는 왜 실패했는가? 하나님을 부르짖던 의로운 주체들이 왜 파멸했는가?” 밀턴이 도달한 사상사적 결론은 명확했다. 혁명의 명분(수사학)이 아무리 올발랐을지라도, 크롬웰을 비롯한 인간 주체들이 내면의 교만(Pride)과 권력욕을 통제하지 못해 사탄처럼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라는 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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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실낙원》 속 사탄이 펼치는 찬란하고 당당한 저항의 언어는 왕정을 타도할 때의 크롬웰파가 가졌던 ‘위대한 자유의 명분’을 투사하며, 사탄이 도달한 바닥없는 지옥의 형벌은 내면의 도덕성을 상실한 채 1인 독재로 치달았던 크롬웰 정부의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지난 글에 이어, 밀턴의 일원론(Monism)이 주는 사상사적 함의를 우리 역사 속 한 인물의 삶과 연결해 보고자 한다. 조금 전 산책을 하며 문득 한국 기독교 사상사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남긴 김교신이 떠올랐다.
김 선생은 생전에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구원 교리를 담은 요한복음 3장 16절보다,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유교적 취향의 피력이 아니다. 만물이 신으로부터 발현된 하나의 선한 실질이며, 현생에서의 지적·도덕적 단련이 천상계로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았던 밀턴의 일원론적 우주관과 깊이 공명하는 신앙적 태도이다.
밀턴에게 완벽함이란 멈추어 있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선택하며 신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역동적인 도정이었다. 그렇기에 <실낙원>에서 인간은 에덴동산의 무죄한 상태에서도 천사 라파엘에게 천문학과 역사를 배우며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주체로 묘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김교신은 지상에서 그러했듯, 지금 천상에서도 부지런히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에게 배움이란 현생에서 끝나는 세속적 행위가 아니라, 영원한 신성으로 나아가는 숭고한 신앙 실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일각에서는 지성적 사유를 불신하고 맹목적 순종만을 강요하는 반지성주의를 마치 금과옥조처럼 받들곤 한다. 그러나 17세기의 밀턴과 20세기의 김교신이 보여준 프로테스탄티즘의 본질은 그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기독교 신앙은 앎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이 주신 자유의지와 이성을 격렬하게 가동하여 끊임없이 배우고 식별해 나가는 도정이다. <실낙원>이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날카로운 사상적 시금석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실낙원> 번역 작업을 재개하며 17세기 존 밀턴의 사상적 깊이를 새삼 실감한다. 흔히 밀턴을 문학적 수사학의 대가로만 기억하지만, 그의 서사시 저변에는 당대 철학과 신학의 패러다임을 뒤흔든 독창적인 ‘일원론적 존재론(Monist Ontology)’이 흐르고 있다.
밀턴은 <실낙원>에서 천사와 인간, 영과 육이 완전히 분리된 이질적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에게서 발현된 ‘하나의 근원적 물질(one first matter)’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천사적 직관과 인간의 추론적 이성 역시 단절된 능력이 아니라 동일한 스펙트럼 위에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 위계란 고정된 단절이 아니라, 정제된 ‘정도(degree)’와 ‘밀도’의 차이에 의해 언제든 영적으로 성장하고 변모할 수 있는 유연한 개념이다.
이 대목을 번역하다가 문득 19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을 떠올렸다. 세기를 건너뛴 이 두 사상가가 ‘존재의 격차’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정확히 같은 논리적 뼈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상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다.
칼라일은 대중을 영웅과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종(種)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영웅과 범인(凡人)은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다만 세계에 깃든 신성한 계시를 인식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행해 내는 ‘정도와 밀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범인의 내면에도 영웅적 본질이 잠재되어 있기에, 영웅을 각성제로 삼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갈 수 있다는 역동성을 내포한다.
17세기의 청교도 사상가와 19세기의 초월주의 사상가.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위계를 인정하되 그것을 영원한 단절이 아닌 연속적인 도정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개혁주의적 주체성과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공유하고 있다. <실낙원>을 순수한 영문학적 관심을 넘어 사상사적 배경 위에서 읽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