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one informed me that the coolest looking movie ever made is a dramatization of a 1,000 year old epic poem from Kyrgyzstan.
The Universe of Manas (1995), Melis Ubekyev
내가 2006년에 군대갔을 때 우리 할머니(경상도)는 나에게 후임중에 전라도 후임이 있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더니 뒤통수를 후려버리라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21살이었지만 후임의 뒤통수를 갈기라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전라도에 관련해서 좋은 말을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전라도 사람이 왜 싫은지, 그들이 뭘 잘못 했는지에 대해서 물으면 대부분 '겉과 속이 다르다', '전라도 사람 믿으면 뒤통수 맞는다'와 같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실제로 전라도 사람을 만난적이 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으레히 만나봤으니까 그런 말을 하나보다..생각 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들은 전라도 혐오라는 종교에 빠져있고, 그들은 신을 본 적이 없다는 것.
2026년인 오늘도 전라도 사람들은 앞과 뒤가 다르다, 내 뒷통수 친 사람은 다 전라도였다 같은 말을 들었다. 40대 이상이면 대부분 한번 이상 과거에 들어 본 말들일게다. 지금 어린 친구들의 전라도 혐오는 일베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라 오랜 과거부터 존재한 것. 어른들의 뿌리를 타고 올라온 것이다
극우 행위를 감싸는 데 한동훈과 이준석이 나란히 손을 들었습니다.
배재고 야구부의 5·18 조롱에 6개월 출전정지가 내려지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꺼냈습니다. 어리다는 겁니다. 과하다는 겁니다.
저는 정반대로 봅니다. 이 아이들은 5·18을 조롱하는 법을 스스로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배웠습니다. 5·18은 웃음거리로 삼아도 괜찮다고 온몸으로 가르친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들이 지금 나서서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준 그 조치마저 지우려 합니다. 6개월 출전정지는 벌이 아니라 교육입니다. 어른 사회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건넨 정직한 문장입니다. 5·18은 놀이가 아니라는 문장 말입니다.
한동훈은 스타벅스도 영업정지를 안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이들을 봐줘야 할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너무 봐줬다는 증거입니다. 어른들을 놓친 게 부끄러운 겁니다. 그 부끄러움을 아이들 처벌 면제의 근거로 쓰는 건 순서가 완전히 뒤집힌 논리입니다. 놓친 어른부터 붙잡아야지 아이들까지 같이 놓치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상식이 됩니까.
이준석은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어른들이 5·18을 가볍게 보이게 만들었으니 아이들만 벌하는 건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른들 명단에 이준석 당신도 있습니다. 극우의 언어가 청소년에게 흘러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방치하고 때로는 그 표를 노리고 올라탄 정치인들이 이제 와서 아이들 방패 뒤에 숨는 겁니다. 물타기는 극우 화법의 기본기입니다. 저쪽도 잘못했잖아요 다들 그러잖아요. 이 두 문장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혐오가 면죄부를 받았습니까.
해외는 이미 답을 정했습니다. 일본 고교야구 헌장은 학생 야구를 교육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어떤 형태의 차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2019년 손흥민에게 인종차별 구호를 외친 열일곱 살 본머스 팬은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고 3년간 경기장 출입이 금지됐습니다. 구단은 여기에 더해 생애 출입 금지까지 내렸습니다. 그 나라들은 미성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그걸 가혹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교육이라 불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혐오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하는 것. 그게 어른의 책임입니다.
5·18은 놀이가 아닙니다. 광주가 겪은 그 시간을 상대팀 야유의 소재로 삼는 순간 그건 스포츠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 대가를 무겁게 치르게 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사회의 최소한입니다. 아이들을 미워하자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진실을 돌려주자는 겁니다. 그 진실을 빼앗으려 나선 어른이 누구인지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나치가 수용소에서 유태인만 죽인 게 아님.
집시도 잡아와서 죽이고, 장애인도 죽였고,
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다른 연합군보다 훨씬 높았고, 점령지의 소련 사람들은 말려죽였음.
혐오는 살금살금 나를 죽이러 오는 법임.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다수에 속할 수 없고, 어떤 분야에선 소수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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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histoire simple, racontée à travers le regard d'un père et de sa fille.
Les publicités japonaises savent parfois raconter de magnifiques histoir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