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체불가 민주당 강연을 두고 정청래 전 대표의 최측근과 지지자들이 발끈한다고 한다. 실용 노선은 권력을 잡은 정부의 자세이지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갈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체성을 버리고 중도만 좇다가 자기 지지자에게 ��을 돌린 정당은 실제로 방향을 잃는다. 그 실패는 진짜다. 나는 그 우려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강훈식 비서실장이 말한 건 정체성을 버리자는 게 아니었다.
대체불가 민주당 강연에서 예시로 들었던, 코닥과 노키아와 블록버스터는 정체성이 없어서 무너진 게 아니다. 정체성‘만‘ 붙들고 변하는 수요를 외면하다 대중의 선택에서 밀려났다.
반대로 나이키는 포틀랜드라는 뿌리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수요층까지 끌어안았다. 그래서 아직도 시장 1위다.
정체성 강화와 외연 확장은 애초에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었다.
신노동당의 몬데오맨도 기존 노동자를 버린 게 아니라 거기에 새 수요층을 더한 플러스알파였다. 블레어는 이 전략으로 총선에서 세 번 연속 이겼다. 그가 훗날 길을 잃은 건 확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념을 놓았기 때문이다. 같은 사례에서 우리는 틀린 교훈이 아니라 옳은 교훈을 꺼내야 한다.
여기까지가 강훈식 비서실장의 논지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고 싶다.
2020년대는 1990년대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좌와 우 사이 어딘가의 이념적 절충이 아니다. 진짜 갈림길은 다른 곳에 있다.
지지자를 박물관 유리장 속 정체성으로 모셔 두는 정당이냐 아니면 잘 통치하고 반드시 이겨서 그 지지자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정당이냐. 성과는 정체성의 반대말이 아니다. 성과야말로 지지자를 향한 가장 높은 수준의 충성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수요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바뀌는 시대다.
AI가 노동을 통째로 흔들고 세대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정치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문법에만 얼어붙어 있는 정당은 정체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코닥이 되는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건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중도층을 정치 무관심층이라 규정하는 진단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잡아야 할 그랜저 맨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삶에 지독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세금과 집값과 아이 교육과 내일의 일자리를 매일 계산한다.
그리고 그 계산 위에서 누가 자기 인생을 실제로 바꿔 주는지 가장 냉정하게 지켜본다.
이들을 무관심층이라 부르며 밀어내는 순간 우리는 가장 예민한 유권자를 제 손으로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단해지는 것과 커지는 것을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믿는다.
이건 이재명 대통령이 말해 온 방향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 그 위에서 성과를 내야 국정이 뒷받침된다는 것.
내가 최고위원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지지자를 더 단단하게 지키는 동시에 아��� 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까지 배우는 정당.
어제의 문법을 지키는 것을 충성이라 부르지 않고 내일의 승리를 만드는 것을 충성이라 부르는 정당.
듣기 싫은 한 대목만 잘라 서로를 때리는 사이 시대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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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세대교체 쓰나미가 몰려온다. 마치 ��창된 압력을 더이상 못견뎌 솥뚜껑이 날아간 압력솥처럼! 그동안 많이도 눌려왔구나, 싶다... 미안하다, 진작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더 용기내어 목소리내지 못해서. 시대의 흐름을 알면서도 비겁했다. 소리쳐 외치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이내 포기하곤 했다. 이젠 희망을 본다. 그대들의 패기와 열정을 응원한다. 그대들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소위 "촉법평론가들"... 그들이 조만간 시사평론계를 평정하고 제도권에도 물밀듯이 밀려올 것이다! 지나간 레코드나 돌리는 낡은 사고를 가진 꼰대들이 저항하겠지만... 이젠 버티기 어려울 듯하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혹 무엇이 진보인가를 ���고 또 아전인수격으로 저항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2030의 공정과 균형을 두고 아전인수격으로 보수화라는 낙인을 찍듯.
실은... 촉법평론가들이 지금은 이미 청년이 되었다. 아니, 중장년이 된 이들도 많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도 "촉법평론가," "어린 것들"이다. 물러나지 않으려면 소년들이 성장하지 않아야 했다.
그 사이에 낀 우리 X들은 어정쩡했다. 저항하다가 이내 포기했고, 때론 타협했다. 비겁한 줄 알면서도. 한번도 학생운동은커녕 조직화란 것도 해본적 없는 우리 X세대들은 다 각자 놀았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저 동조했다. 이젠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지금은 민주화시대가 지나가고 생존의 시대가 왔다. 국가나 정당이나 국민 개개인이나...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이 역량을 총동원해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당연히 시대적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
장강의 물줄기를 막을 수 없다. 어쩌랴. 시간은 흘러버렸고, 이젠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거대한 쓰나미를 막는 자, 휩쓸려 갈 것이다. 흔적도 없이. 그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그대들도 그랬고, 나도 그렇고, 촉법평론가들도 언젠가는 그렇겠지.
세상이 어지럽고 어렵다. 치열한 생계전선에서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 천지다. 대한민국은 전환기 속 어려운 처지지만 어쩌면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큰 웅비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 정치한다는 이들의 어깨위에 무한한 짐이 놓여 있다. 쓸데없는 기득권 타령이나 하며 시비걸고 발목잡아 에너지를 소모할 것들일랑 제발 스스로 물러나주길 바란다. 역사에, 국민에, 죄짓지 않으려면 말이다. 우린 그깟 쓰레기같은 일들로 실랑이할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쓰나미가 몰려온다. 쓸려내려가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아니,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려면, 그 쓰나미 이후의 세계가 더 나은 시대가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두려움과 희망으로 지켜본다.
젊은이들 모두 피끓는 운동권이었다니요? 그때도 운동하는 학생들 공부하기 싫어 저런다며 조롱하고 지 앞가림만 하던, 윤석렬 같은 인간들이 대다수 였어요. 지금의 50대가 진보가 된것은 모두 운동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 함께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의 반영도 크다구요.
정민철 씨는 "유시민 선생님은 옳은 것이 옳다고 여겨지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 아니냐, 당신은 당신의 동세대들에게 옳음을 조롱당하고 부정당한 세대가 아니지 않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솔직히 저는 무슨 말인지 일견 이해돼요 젊은이들이 모두 피끓는 운동권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현실....
故 노무현
-유시민 씨 만나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쓴소리들' 많이 해요
그러나 오늘 제가 꼭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내가 꼭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네, 청와대 선물 언박싱 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습니다.
천하고 상스럽다고요? 저 정민철은 자랑스럽습니다. 뿌듯합니다.
유시민 선생님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이재명 정부를 지지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되는지. 정부가 이뤄낸 성과 하나하나가 청년 세대 안에서는 어떻게 악마화되는지. 민주진영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친구들 앞에서 그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숨죽이는 세상이라는 걸. 그거 알기나 하고 그런 말씀 하시는 겁니까?
��는 그 한복판에서 싸웠습니다. 인스타그램, X, 스레드 등등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재명 정부 악마화에 맞서 혼자 버텨왔습니다.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빽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 제 뒤에 누가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맥도, 조직도, 방송도 없었어요. 오직 제 SNS 하나, 제 이름 석 자만 걸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허위사실 퍼뜨리는 자들을 상대로 수십 건의 소송을 직접 감당하면서, 그렇게 청년의 전선을 혼자 지켜왔습니다.
그렇게 싸운 사람에게 청와대의 선물이 도착했을 때, 그게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그건 제 개인의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그 인증 사진 한 장은, 숨죽이고 있던 청년들에게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이 전선에 너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 선생님 눈에 ���박해 보였던 그 언박싱이, 누군가에게는 "나도 당당해도 되는구나"라는 용기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촉법평론가에게는 지적 책임성을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고 하셨죠.
선생님이 스튜디오 의자에 편안히 앉아 한 편의 평론을 다듬는 그 시간에, 저는 일분일초를 다투며 거짓과 싸웁니다. 가짜뉴스 하나가 퍼지는 데 10분, 그걸 막지 못하면 청년 수천 명이 물듭니다. 저는 그 속도로 싸웁니다. 그런 저에게 책임성이 없다고 하시는 건, 지금 어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이건 책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터가 바뀐 겁니다. 선생님께 익숙한 활자와 방송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청년들이 사는 SNS에서 사실과 거짓이 실시간으로 충돌하는 새로운 전선이 열렸습니다. 그 전선에 서보지 않은 분이, 그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을 천하다 하십니다.
선생님은 평생을, 민주진영을 지지하는 세대와 함께 사셨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그 세상이, 얼마나 당연했겠습니까. 참 부럽습니다. 저희 세대에게는 그 당연한 것이 매일 싸워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은 달게 받습니다. 더 세게 하셔도 됩니다. 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릴 만큼 곱게 정치한 적이 없습니다.
정민철은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이재명 정부를 지키는 가장 앞줄에서, 청년의 이름으로.
천하다 손가락질받아도 좋습니다. 그것이 숨죽인 청년들에게 닿는 길이라면, 정민철은 기꺼이, 더 천해지겠습니다.
그 천한 자리에서 청년들과 끝까지 함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