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이 된 이유
- 한국도 원래는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처럼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이 아니었음
- 불교신자 였던 고 용태영 변호사는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인데 왜 부처님오신날은 공휴일이 아닌점에 명백한 종교차별이라고 여기고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
- 고등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쉰다고 당신의 권리가 훼손되는건 아니라며 패소판결
- 고 용태영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하여 대법원까지 끌고감
- 이 과정에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고 정부는 여론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1975년 1월 전격 공휴일로 지정함
감사합니다ㅠㅠ 변호사님 ㅠㅠ
한국철도고등학교 사건으로 알려진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2026고합OO 사건의 2026년 5월 14일 첫 공판 기록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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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피해 학생의 동급생이었던 2009년생 남성인 피고인은 특수상해, 아청법위반(위계등간음)으로 기소되었습니다.
특수상해는 피고인 자신이 괴롭히던 피해자에게 일명 '담배빵'을 놓아 화상을 입힌 것, 아청법위반(위계등간음)은 그런 피해자를 약 한 시간 후 장소를 옮겨 학교 폭력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자신의 위계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소사실의 요약:
피고인은 2025년 6월 15일 15시경 영주시 소재 A빌딩 앞에서 피해자 어깨 위에 담뱃불을 가져다 대고 10초간 문질러 피해자에게 치료 기간을 알 수 없는 2도 화상을 가하고,
2025년 6월 15일 16시 26분 원주시 소재의 B장소에서 피해자에게 성관계할 것을 요구하고 피해자로부터 이를 거부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커튼을 내려 바깥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하고 피해자의 하의와 속옷을 벗겨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사실로 기소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선임한 변호인과 같이 출석했고,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검사님이 공소사실을 읊고 있을 때, 피고인은 방청석 1열에서 노트북을 들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저를 힐끔힐끔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피고인 측은 특수상해 혐의에 관해서는 인정하지만, 위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동의한 성관계였기에 아청법위반(위계등간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 이미 특수상해 행위 내지 이전 학교폭력 행위들로 피해자와 피고인 간의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라는 위계를 형성했음에도, '담배빵' 행위 이후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의 간음은 위계가 없었고 동의한 성관계였다고 말하는 피고인의 주장에는 통상적으로 보더라도 심각한 모순이 존재합니다.
피고인은 본 공판에서 허위 진술을 함으로, 저절로 자신이 피해자로부터 위계를 형성해 있었고 그 후 성접촉이 있었다고 인정함으로써 아청법위반(위계등간음) 혐의를 인정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때 판사님께서 진술인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은 이 사건 피해자 측에서 목격 진술을 해 준 학생들이 상당수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고인이 눈을 감고 조는 모습도 확인하였습니다.
이윽고, 판사님께서는 피해자의 유가족분들이 출석했는지의 여부를 물으셨고, 피해자의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손을 드셨습니다.
판사님께서는 1분 남짓의 시간 동안 피해자 측이 하고 싶은 발언을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대개 재판을 성실하고 깊은 마음으로 임하는 재판장들이 이렇게 먼저 피해자 측 참석 여부를 묻고 발언권 설명을 해 주기도 합니다.
피해자 아버님이 발언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래는 제가 요약한 내용입니다.
"첫 번째는 피고인이 아직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근 통화 내역에서도 이 사건 자신의 범죄 행위를 공론화한 사람을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등 계속 악의적인 말을 반복하고 있다. 저 또한 많은 조사를 했지만, 위계에 의한 간음이 맞다는 증거도 확보하고 있다. 또 자신이 잘못한 사실에 대해서 따지기 위해 피고인이 거주하던 모텔로 찾아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피고인은 피해자를 만나서 사과를 했다. 물론 형식적인 사과였지만, 강간한 것과 담배빵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돌아가면서 대놓고 침을 뱉는 행위를 했다. 그런 자료들을 공판 검사님께 제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배빵과 성관계가 큰 시차나 시일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불과 몇 시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왜 도망치지 않았냐는 말에, 여기 와 있는 친구(피해자 측과 동행한 故 이서윤 학생의 친구)에게는 피해자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담배빵을 당하고 어떻게 본인이 스스로 옷을 벗고 관계를 하겠나."
위와 같이 말씀하셨고, 아버님께서 눈물을 참으며 발언하시는 내내 피고인은 방청석에 있는 저의 눈을 계속해서 노려보며 피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눈을 마주친 이후로 계속 피하지 않자, 한 15~20초 정도 이후 눈을 피하는 피고인이었습니다. 전혀 반성하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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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판사님께서는 피해자 측에서 낸 탄원서, 이외 각 탄원서, 온라인 탄원서 등은 재판부가 모두 기록 편취하여 보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피해자 측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말들을 귀담아듣고 있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재판 날짜를 정하겠다고 말하며, 피고인 측 변호인에게 "피고인 변호인께서도 사실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증거를 부동의하게 되면 옆에 있는(방청석에 나온 피해자 친구들 내외 맥락으로 추정) 무수히 많은 학생들이 다 증인으로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잘 고려하셔서 증거에 관한 의견을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재판은 2026년 5월 28일 오후 2시 50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피고인은 이미 재판 이전 자신의 모든 범죄 행위를 시인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한 바 있으나 본 재판에서 모순점이 다분한 허위 진술을 하며 혐의를 일부 부인하였고, 피해자 측 목격자들에게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라는 식의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은 피고인의 범죄행위와 지속적인 2차 가해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이것은 피고인의 악의적인 저의로 인한 분명한 타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폭위원들은 어른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피해자에게 '좋아서 한 것 아니냐'는 2차 가해를 일삼았고, 고의적으로 학교폭력 심의에서 1점을 누락하여, 원래였으면 강제 전학인 처분을 그 1점 누락으로 인해 고작 정학 10일 처분을 의도적으로 내렸습니다. 학교의 고위직 중에는 가해자와 촌수가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이로 인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같은 학급이었던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학교생활을 이어나가야 했고, 가해자와 친한 학생들의 악의적인 2차 가해에 힘없이 노출되어야 했습니다.
가해자는 분명히 본 재판 말미에 자신의 연소함을 양형 사유로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도 고작 열 일곱 살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린 가해자이기 때문에 감형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오히려 피해자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라도 가중 처벌의 사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는 자신의 연소함을 이용했고,
피해자는 모두에게 자신의 연소함을 이용당했습니다.
피해자는 고인이 되어 이제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어리고 아팠던 피해자가 뒤늦게라도 억울함을 해소 받게 하기 위해 모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 기일에도 방청하러 갈 것입니다.
아래는 보기 쉽게 피고인(가해자)의 모순을 정리해 놓은 표입니다. 피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목적이 없으며, 피해자가 당한 부당함을 알리고 사건이 올바른 방향으로 끝나기에 일조하기 위해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피해자의 어머님께서는 저의 품에서 한참을 우셨습니다.
안동역까지 차로 저를 태워다 주시며 그동안 있었던 사건의 모든 이야기들을 마치 피를 토해내듯 말씀해 주셨던 유가족분들의 억울함을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부디 큰 관심을 가져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의 엄중한 처벌을 바랍니다.
저도 엄벌탄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할 예정입니다.
김선태는 그의 공약을 지켰다.
공무원계의 연예인이었던 김선태는
화려한 입담으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유튜버로서의 성공한 인물.
그는 유튜브 시작 당시 수익의 30%를
기부하겠다는 대중과의 약속을 내걸었다.
이후 우리은행, 비비큐, 시몬스, 메가, 토스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그에게 광고를 제안하며
그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통장에서 직접 큰 금액을
기부하려니 솔직히 아까운 마음이 드는 심정을
영상에서 솔직히 고백하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부를 실천하며,
그동안 기부를 해왔던 이들이 얼마나
고귀한 희생을 해왔는지 깨닫고 존경심을 표했고,
그는 기부처로 서울의 대형 병원이 아닌,
지방 응급 의료 현실을 알리기 위해
충주 의료원을 선택하며 사회적 메시지도 던졌다.
결국 그는 능력을 증명함과 동시에
기부 약속까지 지켜냈고,앞으로 더 많이 벌어
더 크게 환원하겠다는 다짐으로 초심을 다잡았다.
진짜 진국 중에 진국, 난 놈중에 난 놈인 김선태,
그가 그릴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오세훈 후보가 GTX 삼성역 공사 철근 누락을 건설사의 ’단순 실수’라고 합니다.
초대형 지하 공간의 지하 5층을 떠받치는 기둥 80개에 들어가야 할 철근 중, 당초 계획된 양의 절반인, 무려 2,570개의 철근이 누락된 사건입니다.
‘단순 실수’란 말이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의 총책임자였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요?
서울시장의 제1책무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세훈 후보는 이미 실격입니다.
오세훈 후보는 철근 누락을 인지하고도 5개월 넘게 국토교통부에 알리지 않고 은폐한 까닭을 밝히십시오. 왜 답을 안합니까?
일본 한복판에 버려졌던 윤봉길 의사 유해
1932년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진 뒤 체포된다.
그리고 일본 가나자와로 압송돼
24살 나이에 총살당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정상적인 묘지조차 아닌
쓰레기 하치장 근처 길가에
몰래 암매장해버린다.
무덤도 없었다.
표식도 없었다.
그렇게 14년 동안
사람들 발에 밟힌 채 방치된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일본까지 가서 유해를 찾기 시작했고,
수많은 수색 끝에
가나자와 외곽에서 유해를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윤봉길 의사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금도 일본 가나자와에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가 남아 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암장지 바로 위에는
일본 전몰군인 묘지가 잘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침략군 묘지는 양지바른 곳에 있었고
독립운동가의 시신은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퍼온글) “2살 아이가 이유 없이 폭행당했습니다… 가해자는 지금도 돌아다닙니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2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내일이 어린이날인데, 저희 가족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5월 4일 어제 발생한 일입니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던 부평공원에서 비둘기를 쫓아가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아이가, 일면식도 없는 성인 남성에게 물지마 폭행을 당했습니다. 제가 불과 5~6미터 뒤에서 강아지를 살피던 0.5초의 찰나였습니다. 가해자는 아이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습니다.
2살배기 아이는 그대로 앞으로 곤두박질쳤고,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아이의 두 발이 지면에서 10cm가량 붕 뜨며 등 뒤로 튕겨 올라갔습니다. 아이의 이마는 바닥에 도장처럼 찍혀 피멍이 들고 부풀어 올랐습니다. 저는 아이와 강아지를 주변 목격자분들께 급히 맡기고 도망가는 가해자를 쫓아갔습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에 자판기 커피를 들고 유유히 산책하듯 걷고 있었습니다. 제가 붙잡자 그는 처음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억울하다는 연기를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경찰에 신고하며 끝까지 붙잡자, 본색을 드러내며 제 얼굴에 커피를 뿌리려 하고 주먹을 휘둘러 때리겠다는 제스처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제가 가해자의 양팔을 제압해 현장으로 끌고 왔습니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이 자가 예전에도 소형견의 배를 발로 차 3미터나 날려 보냈던 사람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전형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존재만 골라 공격하는 괴물입니다.
사건 당일 새벽, 아이는 야경증 증세로 12시 반에 깨어나 2시까지 비명을 지르며 울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아이의 큰 울음을 달래며, 저와 제 아내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통곡하다 겨우 잠들었습니다.
차만 타면 동요를 크게 따라 부르며 활기차던 아이는 이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손가락을 입에 넣은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습니다. 아이의 닫혀버린 마음을 볼 때마다 아빠로서 가슴이 찢어지고 피눈물이 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해자의 근황입니다. 경찰 확인 결과 가해자는 농아인이 맞으며, 현재 조사를 마치고 귀가 조치된 상태라고 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슈퍼마켓 앞이 범죄 현장이 되었고, 가해자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저희 가족은 집 근처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도 더 이상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희 가족을 도와주세요.
사회적 약자라는 신분을 방패 삼아 더 약한 아이들을 사냥하는 이 가해자가 반드시 엄벌을 받고 사회에서 격리될 수 있도록 공론화에 힘을 보태주세요.
제보를 위해 당시의 상황이 담긴 CCTV와 상처 사진을 함께 첨부합니다. 내일 원본 자료를 받을 수 있을지 현장의 슈퍼마켓에 문의드려볼 예정입니다. 차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후기도 업로드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사건 당시 저를 도와주셨던 수많은 시민분들께 감사 인사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초 목격자로 저를 도와주신 아이를 안고 계셨던 어머님, 벤치에 앉아 계시던 남성 두 분, 자전거 타고 있던 남학생 두 분뿐만 아니라 아이를 돌봐주시고 달래주시던 약 30명 남짓한 시민 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분씩 찾아뵙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이트판이나 맘카페 등등 해당 글을 퍼뜨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 가족 살린다 생각하시고 많이 공유 부탁드려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단독]고종 ‘을사늑약 저지’ 美에 친서 121년만에 워싱턴서 발견
고종이 을사늑약 저지를 위해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를 통해 보냈던 친서 원본을 최근 확인
해당 친서는 헐버트 박사 회고록 등을 통해 내용은 알려졌으나 실물이 드러난 건 처음
헐버트 박사는 1905년 11월 중순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백악관과 국무부의 냉대를 받았다. 일본이 밀사 파견 사실을 미리 알고 ‘만나주지 말라’며 미 정부에 사전 작업을 한 탓이다. 박사는 을사늑약 체결(11월 17일) 뒤인 11월 25일에야 국무장관과 면담하며 친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동시대에 살았다는 아이러니.
더 웃긴건 그 매국노들의 후손들이 현재 떵떵거리며 매우 잘 살고 있다는 좃같음.
https://t.co/IjnDsVXfyF
🚨 BREAKING: We’re now filming fusion plasma at 100 million °C in real time.
This isn’t CGI.
This is inside the ST40 fusion reactor.
At temperatures hotter than the core of the Sun,
matter becomes plasma a state where atoms are ripped apart.
And for the first time…
We can actually see it evolve.
This is the same process that powers stars.
If we can control it:
Unlimited clean energy
No carbon emissions
Virtually endless fuel
The future of energy isn’t theoretical anymore.
It’s glowing… right in front of us.
What do you think
Will fusion solve energy in our lifetime?
Follow me I break down the physics behind the biggest breakthroughs.
테렌스 타오는 IQ 180 이상으로 추정되는 수학자입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31세에 필즈상 수상.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불리는 인물.
그리고 최근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말을 했습니다.
타오: “이 AI 시대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능’이라고 믿어온 개념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문명을 쌓아올리면서 한 가지 신성한 전제를 믿어왔다. 지능은 특별한 것이다.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기계와 구분 짓는 유일한 본질이라고.
그런데 AI가 우리가 ‘진짜 지능’이라고 믿었던 모든 영역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체스. 바둑. 언어. 시각. 수학.
매번 우리는 골대를 옮겼다. “그건 진짜 지능이 아니야. 그냥 패턴 매칭일 뿐이야.” “그건 생각이 아니야. 그냥 통계일 뿐이야.”
타오: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면, 지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계속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형 언어 모델은 거창한 이론이나 깊은 이해 없이, 그저 다음 토큰을 예측할 뿐이다. 단 한 단어씩, 확률적으로.
그런데도 놀랄 만큼 잘한다.
타오: “아마 인간도 상당 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존 최고의 수학자가 말했다. 인간의 사고가 우리가 ‘단순한 계산’이라고 폄하했던 바로 그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을 수 있다고.
우리는 AI에게 지능을 빼앗긴 게 아니다. 단지 지능이 원래부터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계적이고, 평범했다는 사실을 마주한 것이다.
신성한 불꽃이 아니었다. 초월적인 본질도 아니었다.
그저 극도로 정교한 패턴 인식과 예측 — 실리콘이 아닌, 젖은 뇌에서 작동하는.
AI가 우리에게 비춰준 거울은 아첨하지 않았다. 그저 솔직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수백 년 만에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정의를 외면한 이익의 면죄부'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선물',
일본을 '전쟁 피해자'로 만들었다..
전쟁 주범 히로히토를 비롯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이 생겨났다.
히로히토는 도쿄 극동국제전범재판소의 피고석에 서지 않았다.
"히로히토가 법정에 서지 않은, 누가 봐도 명백한 불공평은 앙리 판사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도저히 다른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본이 저지른 평화를 깨뜨린 범죄에는 ‘일체의 기소에서 빠져나간 주범(히로히토)이 있고, 어떤 경우에도 피고들은 공범에 지나지 않는다’
-존 다우어-
히로히토 불기소뿐 아니다.
주요 전범재판 자체가 흐지부지 끝났다.
1948년 12월23일 전범자 7명을 처형한 다음날 맥아더 사령부는 스가모 형무소에서 2차 재판을 기다리던 전범 17명을 불기소 처분하고 모두 풀어줬다.
석방자 속에는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육군대장, 전 총리)의 얼굴도 보였다.
"도쿄 전범재판에서 아시아가 빠졌다"
그리고 전범 처벌 피해간 왕족과 731부대
'어설픈 면죄부의 결과'
일본의 극우파들은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지난날 전쟁범죄에 사과와 더불어 용서를 빌자고 하면, '자기학대하는 일본인'이라 조롱한다. 히로히토 전쟁 책임론을 꺼내면 ‘비(非)국민’이라며 돌을 던진다. 과거사를 돌아보자는 몇몇 사학자들의 ‘자성(自省) 사관’을 아예 ‘자학(自虐) 사관’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전쟁 포기’와 ‘전력 포기’ ‘교전권 불인정’ 등을 담은 평화헌법 9조의 개정 또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밀어붙인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어렵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부끄러운 일본인들을 보고 있는 이유다..
https://t.co/Qqt9bYwlRY
17세 소녀가 집 화장실 변기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남자친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출산 직후의 충격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변기에 빠졌고, 그대로 숨졌다. 수원지법은 이 소녀에게 아동학대치사로 장기 2년 6월, 단기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판결문은 소녀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적시한다.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남자친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출산했다”고.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만 봐도 이렇다. 17세가 임신 사실을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고, 임신시킨 남자는 곁에 없었으며, 학교도 의료 시스템도 어떤 공적 안전망도 이 임신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런데 재판부의 결론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였다. 혼자 변기에서 출산한 17세에게 어머니의 의무를 묻고 실형을 선고했다. 임신시킨 남성에게 묻는 책임은 없었다. 임신한 청소년을 어디로도 보내지 못한 사회에 묻는 책임도 없었다. 책임은 가장 어리고 가장 무력했던 사람에게 집중됐다.
이 판결은 한국 사법부가 누구에게 관대하고 누구에게 엄격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앞날이 창창하다”며 성폭력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내주고,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인종 혐오 폭행에 “폭행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판시하던 사법부가, 이번에는 17세 소녀의 ‘앞날’을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법정구속했다.
영국의 Infanticide Act 1938처럼 출산 직후의 정신적, 사회적 위기를 반영해 별도 죄명으로 분리해 감경하는 입법례가 존재한다. 더 근본적으로 임신한 청소년이 가족과 학교를 거치지 않고도 의료, 상담, 주거에 접근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의 실효적 작동, 그리고 임신에 책임 있는 남성 파트너에 대한 법적 책임 부과가 함께 가야 한다.
임신을 알릴 곳이 없었던 17세의 9개월, 그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 모든 시스템, “어머니로서의 의무”라는 말을 17세에게 들이미는 사법의 양심까지 책임이 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9개월 동안, 이 17세 청소년의 생명과 존엄은 누구에게 소중했는가?
혹시 동일방직을 알아?
알몸 시위와 똥물 테러로 유명한 사건이야.
뭔가 싶지?
1970년대 한국 노동 운동사의 가장 끔찍한 사건.
동일방직에선 여성 노동자들이 두 번의 시위를 벌였어.
하나는 1976년의 일명 '나체 시위'.
70년대 여성 방직공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지?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 노조를 세우기 위해 모였어.
회사 측에서는 반길 리가 없지.
회사의 탄압에 여성 노동자들은 농성을 시작했고,
경찰의 강제 진압에 맞서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게
작업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저항하는 거였어.
순진한 생각이었지. 절박한 마음으로 여자들이 옷을
벗고 있는데 남자 경찰이 오지 않길 바라며 작업복을 벗은 거야.
이 사건은 정말로 남자 경찰들이 손을 못 댔다더라.하는
카더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알몸 상태의 여성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어내 연행했어.
실신한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많았어.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 수치심마저 내던지고.
그럼 이 시위로, 과연 민주 노조는 세워졌을까?
끔찍한 사건은 이제 시작이야.
1978년 2월 21일.
동일 방직은 여성 노동자들이 겨우 세운 민주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을 사주했지.
노조 대의원 선거 투표로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남성 수십 명이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어.
일명 똥물 테러 사건이야.
남성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미리 준비한 인분을 뿌리고,
눈과 코, 입에 바르고, 심지어 억지로 입을 벌려
입 안에 인분을 밀어 넣어 먹였어.
현장에는 경찰도 있었지만 '노동자끼리의 싸움을 우리가 어떻게 말리냐'고 웃으면서 방관했지.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강제로 인분이 입 안에 넣어지고,
'더러운 년들'이라는 조롱을 당하고 있었는데
공권력은 여성들의 그 수모를 웃음거리로 삼았어.
회사는 이 사건을 빌미로 여성 노동자 124명을 해고하고,
명단을 다른 방직 공장에 뿌려 다시는 취업할 수 없게 했어.
해고 노동자들은 명동 성당에 모여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단식 농성을 벌였지.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고 외치며.
만약 명동 성당 농성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알려지지도 못했을 거야.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민주 노조를 세우려 했어.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알몸 시위와 똥물 테러가 알려지면서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이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고, 8,90년대 노동 운동의 뿌리가 되었어.
똥물을 뒤집어 쓴 그 분들은 명예를 회복했을까?
2018년, 사건 발생 40년 만에 일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대.
우리는 이런 분들의 땀과 눈물과 온 몸을 내던진 투쟁으로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거야.
우리 삶의 토대가,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그리고 여성은 언제나 싸워왔고
앞으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도.
변호사들은 이런 허점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네요.
문서 위조가 정말 이렇게 쉬운 건가요?
문서를 볼 때마다 항상 느낀거지만.
한눈에 안 들어오는 복잡한 구조,
검증하기 어려운 행정 시스템 자체가 문제 같아보입니다. 저런 문서를 기업에서 썼다간 난리 날듯.
문서는 어려워 보이려고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빠르게 읽고,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세 사기가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 이유도 단순히 “사기꾼이 많아졌다”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무식하게 규제만 늘릴 게 아니라,
문서 양식과 검증 시스템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복잡한 양식부터 고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전세 #부동산 #사기안당하는법
"양배추 자르듯 아이 베”…러 자료로 드러난 종전 후 조선인 학살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러시아 정부가 보관해온 수사·재판 자료를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패전 뒤 일본군의 사할린 지역 조선인 학살은 8월 17일 18명이 살해된 ‘가미시스카 사건’, 8월 20~25일 28명이 살해된 ‘미즈호 사건’ 등이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확인된 사건은 9월 초까지 일어난 일어났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된 것.
홍범도 장군 생년월일·출생지, ‘평양·1868년 8월 27일’로 일원화
국가보훈부는 그동안 기관마다 일부 다르게 표기되어 온 홍범도 장군의 생년월일과 출생지를 전문가 자문과 유관기관 협의를 거쳐 일원화하고, 관련 기관에 안내할 예정입니다.
자세히 보기👉https://t.co/5JuwT8qtzV
기사 너무 좋다. 초록마을은 현재 문을 닫는게 재정적으로 더 이득이지만, 그렇게되면 국내 무농약 유기농 농가가 모두 무너지게 된다고 함(일반 시장, 마트 등은 무농약 유기농을 높게 쳐주지X) 그래서 납품업체들이 돈을 모아 인수하기로 했대. 농가를 살리기 위해서. 초록마을 이용하러 가야겠다!
현재 베트남을 훈훈하게 달구고 있는 한 한국 아버지의 미담
새벽 일찍 5살 딸을 맡길 곳이 없던 택시 기사 단 씨가 아이를 뒷좌석에 몰래 태우고 영업을 시작함. 아이는 아빠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 시간 동안 숨죽이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음.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한국인 승객은 화를 내기는커녕 환한 미소로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용돈까지 챙겨줌.
택시기사는 너무 미안했는데 손님이 환하게 환대해준
것에 너무 감동을 했다는 후문이고 다들 너무 보기 좋다고 해서
난리임
우리 아빠들은 저 심정 잘알지 나라도 맛있는 과자랑
용돈도 줬을듯
그나저나 저 운전수 아저씨도 애쓴다. 이게바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