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홍 교수와 결혼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공개하는 축사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홍성수라고 합니다. 여기 서 있는 A의 지도교수였던 인연으로 오늘 축하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A는 세상이 정해준 기준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온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그의 평소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에 있다 보니 종종 제자들로부터 주례 요청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늘 일관되게 사양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덧붙이곤 했습니다.
“이성혼 주례는 안 한다. 동성혼이면 몰라도….”
그런데 그 ‘단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제자가 주례를 부탁해 왔고, 저는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형식도 주례사가 아니라 축사로 바뀌어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제가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오늘은 판례 한 구절을 인용하며 아는 체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혼을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보다 더 깊은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과 신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숭고한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하나가 되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각자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외로움 속에 살도록 내버려지지 않는 것,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인 결혼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한다.”
이 판결의 메시지는, 누구를 사랑하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품고 서로의 곁을 지키겠다는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두 사람을 보면서 이 문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두 사람의 결혼은 어떤 점에서는 분명 ‘특별한’ 결혼입니다. 하지만 결혼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결혼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함께 살아가겠다고 약속하는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십수년 전부터 A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나는 좀 특별하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평범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 그 간절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데 어떤 난관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가 너무나도 감격스럽습니다.
보통 이 자리에 서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당부의 말을 하게 되어 있지만, 저는 그 대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하객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세상은 두 사람의 삶을 온전히 지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 두 사람에게 힘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오늘 여기 계신 가족, 친지, 직장동료, 지인, 친구분들이 두 사람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든든한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이 앞에 있는 두 사람도 힘겨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오늘 이 자리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웃고, 박수 치며 축복했던 오늘을 말입니다.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큰 박수로 두 사람의 앞날을 함께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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