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들이 이제 눈치도 안 보는구나.
박상용 검사에 대한 집단 폭력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그리고 분노 역시 멈추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 당시 의혹이 제기됐던 '연어 술 파티' 의혹은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https://t.co/YpfUjvJIVU
<백브리핑 특집 예고>
최근 안규백 국방장관의 방위병 복무 시절 탈영 의혹을 세상에 알린 ‘김영수 소령님’의 단독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대한민국 안보와 직결된 이 중요한 이슈가 묻히지 않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금요일 백브리핑 : 밤 9시 45분에 시작합니다.
이낙연 “반성없는 국힘, 기여 방법은 사라지는 것”
(디지털타임스)
“자기 당 내부에 또 적 만들어 내전 중”
“민주, 사람 악마로 몰아 죽이는 일에 하세월”
“국힘, 탄핵 반성 없어…사라지는 게 돕는 것”
“민주 거짓 지적할 유일한 대안은 오직 새미래”
과거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여의도 정치는 파산 상태다”라며 “남은 건 집단 광기이지 정치라고 하기엔 어렵다”고 직격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고문은 전날(25일) 서울역 스페이스쉐어에서 제2차 전당대회를 통해 “저 사람들(여야)은 국민 전체를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서 국가 전체를 내전판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각기 자기 당 내부에 또 적을 만들어서 또 내전을 벌이고 있지 않냐”며 이 같이 밝혔다.
https://t.co/TTxa6hgZRT
문득 깨달은 요즘 좌파의 특징.
과거엔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우스갯소리라도 있었다. 이념은 낡았어도 두꺼운 사상 서적 몇 권은 읽은 티를 내며, 궤변이라도 정교하게 포장하는 최소한의 수사학적 지능은 갖추고 있었단 뜻이다.
그런데 요즘 좌파 생태계의 가장 뼈아픈 특징은 '처참한 언어 능력의 퇴화'다. 토론은커녕 주어와 술어도 호응시키지 못하고, 맞춤법은 파괴되며, 궁지에 몰리면 앵무새처럼 지령받은 단어만 맹목적으로 반복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지적 수준이 붕괴했을까.
최근 내 글에 달린 어느 좌파 지지자의 댓글에서 그 암담한 해답을 찾았다.
"멋진 글입니다 오해도있었고요 창있으면 방패가 만들어 지는거조 맞나 하지만 지금은 콩깍지! 입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무너진 이 기괴하고 섬뜩한 한 줄 앞에서 모든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차가운 팩트와 논리 앞에 "멋진 글"이라며 머리로는 승복하면서도, 결론은 "그래도 난 콩깍지가 씌어 있다"는 기적의 무논리로 귀결된다. 아무리 예리한 논리를 들이민들 무슨 수로 저들을 설득하겠는가.
그들에게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전과 4범의 꼼수와 국정 파탄마저 치명적인 매력으로 숭배하는 콩깍지로 대변되는 '맹목적인 유사 연애'이자 사이비 종교. 온갖 범죄와 모순을 성인군자로 포장하고 17억 꼼수 대출을 개혁이라 우기려면, 뇌의 논리 회로부터 완벽하게 꺼버려야 한다. 이성적 사유를 유지한 채로는 도저히 그 진영의 모순을 견딜 수 없으니, 스스로 지능을 포기하고 콩깍지 씌인 광신도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논리로 무장한 적은 논리로 부술 수 있지만, 콩깍지가 씌어있다 자백하는 맹신도는 이길 방도가 없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던 좌파는 완벽히 멸종했다. 지금 남은 건 뇌를 비우고 주술을 외는 앵무새들의 슬픈 방언뿐이다. 논리가 닿지 않는 광기의 벽 앞에서 느끼는 이 지독한 무력감이, 작금의 이성주의자들이 매일 견뎌야 하는 가장 뼈아픈 형벌이다.
<이낙연의 사유>많이 시청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이낙연 전 총리님이 직접 대본도 쓰시고,
사유 한 편에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고 계십니다.
많이 봐주시고 주변에 구독 권유도 해주세요.
힘든 시간이지만, 목소리 내실 수 있게 도와주세요.
https://t.co/Zx2B1ouubL
오세훈 서울시장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명시적인 물증이 부족하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맥락과 정황을 엮어 이른바 '묵시적 추정'의 칼날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보수 정치인을 심판할 때면 어김없이 발동되는 사법부의 놀라운 독심술과 전광석화 같은 재판 속도에 우선 경쾌한 박수를 보낸다.
좌파 진영은 사필귀정이라며 환호작약하고 있지만, 이 요란한 축배가 길어질수록 대중의 뇌리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얼굴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재명이다. 오세훈의 재판이 속도를 낼수록 얄궂게도 이재명의 사법적 모순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완벽한 거울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오세훈을 향해서는 맹렬하게 돌아가던 재판부의 타임워치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재명 앞에서는 늘 전원이 꺼진 채 동면에 빠지곤 했다. 이재명은 야당 대표라는 명분과 국민의 선거로 선택받았다는 핑계를 내세워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법정의 시계를 엿가락처럼 늘려왔다. 단식과 정치 탄압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사법부의 템포를 마음대로 조롱하며 재판 지연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 누구였던가.
여기서 건조한 의문이 도출된다. 이재명이 선거로 선택받은 권력이기에 함부로 단죄할 수 없고 재판마저 무한정 미뤄주는 것이 이 나라의 숨겨진 사법 원칙이라면, 천만 시민을 대표하는 오세훈은 대체 뭘로 시장이 되었단 말인가. 선거가 아니라 동네 반장 뽑듯 제비뽑기라도 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는 뜻인가.
같은 선출직임에도 진영에 따라 재판부의 시계는 극단적인 시차를 보인다. 우파에게는 간접적인 정황만으로도 즉각적인 피선거권 박탈의 철퇴가 떨어지지만, 좌파 맹주에게는 산더미 같은 물증과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조차 검찰의 소설로 치부되며 무한한 방어권과 시간적 혜택이 쏟아진다. 오세훈을 옭아맨 "아무 관계도 없는데 돈을 대납할 리가 없다"는 상식적 잣대를 이재명의 무수한 의혹들에 동일하게 대입해 보라. 이재명은 이미 수십 번도 더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법부에 뼈아프게 묻는다. 진영에 따라 판결의 속도와 논리가 고무줄처럼 변하는 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제 당신들에게 거창한 사법 정의나 솔로몬의 지혜 따위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피아를 식별하여 템포가 달라지는 그 기만적인 타임워치를 당장 부수고, 저울의 영점이라도 맞추는 '기계적 중립'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스스로 고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세훈을 내리친 그 판결문의 날카로운 논리들이, 결국 이재명의 거대한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하는 가장 완벽한 올가미가 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이 지독한 역설을 말이다. 국민의 눈에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남아 있다. 사법부의 저울은 왜 늘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채 멈춰 있는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검찰은 못 믿지만 경찰은 믿는다는 입장.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경찰만 믿기는 어려우니 대비책을 두자는 입장. '하나만 믿고 가자'는 사람과 '둘 다 지켜보자'는 사람 중 누가 더 합리적일까. 보완수사권 폐지로 이득을 보는 건 피의자, 불이익을 보는 건 피해자. 신기하게도 보완수사권 폐지에는 정치인이 있고 보완수사 유지에는 피해자가 있다.
우연히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흘러온 낡은 유튜브 영상 하나. 별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던 화면이 문득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인 1984년, 고(故) 정주영 회장이 출연했던 신년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상당히 긴 영상이였는데 잠시나마 느껴보시라 짧게 잘랐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의 위대함이나 서사때문이 아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누구도 상대를 억지로 웃음거리로 만들려 하지 않는 배려가 있었고, 질문을 던지는 방청객들의 눈빛에는 선의가 깃들어 있었으며, 답변하는 거물급 회장의 태도에는 상대를 향한 정중한 존중이 배어 있었다. 악의적인 편집이나 꼬투리를 잡기 위한 날 선 유도신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삶의 궤적을 묻고, 정성껏 자신의 철학을 대답하는 참으로 품격 있는 대화의 장이었다.
영상이 끝날 무렵, 씁쓸하고도 무거운 질문 하나가 뇌리를 때렸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