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을 직접 보고 온 김재규는 박정희정권의 위기를 감지하고 여러차례 박정희에게 보고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박정희와 차지철을 중정 안가 궁정동 만찬 자리에서 사살하고 다른 별채에 있다 합류한 정승화의 조언대로 중정 대신 육본을 향한 결과 비서실장 김계원의 밀고로 전두환의 보안사에 체포돼 감금됐다.
계엄사령관 정승화는 국정에 개입하는 전두환을 동해사로 발령내려했지만 이미 군부의 통신망을 장악한 전두환의 보안사와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를 체포 감금하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결국 유신독재에 항거했던 부마항쟁은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체포 감금 고문당했다. 그리고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18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 횽아가 기억하는 짧은 현대사다. 부마민주항쟁의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한다.
Je me souviens!
#기회주의자 #우유부단 #독재 #신뢰잃은지도자 #김영삼하나회해체 #부마항쟁 #광주민주화항쟁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1892~1944)
우리는 유관순 열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치열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김마리아 선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에 참여한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건강까지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을 향한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해외에서 독립운동과 여성 교육에 헌신했지만,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자유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청춘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가족을 떠났으며,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 싸우고도 독립된 조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자유가 얼마나 값비싼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
아는 일입니다.
오늘은 김마리아 선생의 이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은정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기영>
2020년 겨울은 추웠다.
2019년 가을 조국 일가 사냥 1차 쿠데타
2020년 봄 채널A검언유착(총선개입) 2차 쿠데타
그 반역의 시기에 온 나라가 윤석열의 검찰권 남용에는 눈귀를 닫고 추윤갈등이라는 억지 프레임으로 추미애 법무부를 공격했다.
이미 정치권력 언론권력을 등에 업고 대권행보에 나선 윤석열은 거침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윤석열의 중대비위에 대한 징계청구를 하자마자 고기영 차관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그날 추미애 장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을 기점으로 윤석열에 대한 징계는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윤석열 징계위원회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법무부 차관이 마치 징계가 부당한 것처럼 사표를 냈기 때문이었다. 보란 듯이 윤석열 측도 친검 언론도 기다린 듯이 그런 공격을 해댔다.
아무도 추미애 법무부를 도와주지 않았다.
법무부에 고립되어 남은 일을 꾸역꾸역 수행하던 검사는 4명이었다.
심ㅇㅇ 박은정 김ㅇㅇ 조ㅇㅇ
그때 고기영이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 시대는 없었을 수도 있었다.
4명의 검사들은 그걸 예감했고 몸서리쳐했다.
나는 지금도 고기영 차관의 사표는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직전까지 윤석열 징계에 반대하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렵 김지용 등 검사장들의 집단항명은 그 지옥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 고기영을 김지용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부른다고?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들끼리 무슨 검증이 되겠는가? 고기영이 차관으로서 윤석열 징계절차를 제대로 진행했다면, 김지용이 한동훈의 억지에 편드는 정진웅 기소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위기의 순간에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직무를 수행하기는커녕 그 쿠데타에 도움을 준 자들의 자기변명을 6년이 지난 이 시점에 들어야 하는가? 국민의힘 정부도 아니고 민주당 정부가 그 판을 깔아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윤석열 징계반대가 정당해야 김지용이 정당해지는데
그러면 윤석열이 정당해지는 아이러니가 민주정부에서 벌어지다니 온 국민이 웃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지용이 집단 연판장할 당시에는 윤석열 감찰과 징계청구 절차에 어떠한 위법도 없었다는 게 법원의 확정된 판결이다.(2021. 10. 14. 선고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8541호 판결, 2023. 12. 19. 선고 서울고등법원 2021누65721호 판결, 법무부 상고포기로 확정) 당시 감찰관 했던 자가 윤석열 징계국면에서 되지도 않은 주장으로 감찰관 지위를 망각하고 기조실장 심우정과 단짝으로 다니며 윤석열 편에 서서 이런저런 주장들을 했으나 그것도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석열 징계청구서에 직접 결재해 놓고 딴소리했던 감찰관이나 정진웅 기소 공판카드에 결재해 놓고 딴소리하는 것 같은 김지용이나 도긴개긴이긴 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헛소리에 상대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역사는 그냥 남겨두시라
이재명정부도 잠깐 흘러가는 한 페이지일 뿐
훗날 눈 밝은 누군가가 윤석열 징계의 역사도, 이 시대도 정확하게 평가할 것이다.
"한동훈 딸 수사, 압수수색 없었음"‥탄식 터진 국감장 | 다음 - MBC
비열한 놈이 패밀리 털릴까봐 법법거리며 협박질 .. 유시민은 고개 숙였을 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물러서는 법이 없다.
최소 압색은 100번 이상 받아야 공정하지 않을까?
혓바닥이 길면 잘린다.
https://t.co/avKIBh9Zmu
'왜 문세광의 단독범행으로 국가는 몰아갔을까'
영화 암살자들이 던진 질문은 이렇게 정리하는 게 맞는 듯 하다.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박정희가 암살의 배후라는 식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안보았거나, 미안한 얘기지만, 약간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는 수많은 합리적 질문을 던진다.
'문세광이 쏜 네번 째 탄환에 육영수가 맞았다는데 대체 그 탄환은 어디로 갔나?'
'왜 발견되었다는 그 탄환에는 혈흔이 전혀 없거나 아에 혈흔 감식 결과조차 없는가?'
'왜 육영수 수술집도의사는 탄환이 몸속에서 발견됐는지 여부를 말 못하는가'
'왜 문세광은 사형 선고 며칠만에 사형당해야 했을까?'
'왜 문세광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사형당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문세광은 어디서 어떻게 사격 연습을 했다는 걸까?'
'문세광은 애초 한국 정부가 요주 인물로 분류해 감시했는데 어떻게 태연히 입국했는가?'
'문세광이 묶은 호텔에서 함께 있었던 또다른 유창한 한국말 구사 남성은 누구인가? 왜 이자에 대한 조사결과 조차 없는가?'
'문세광은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왜 서둘러 수사본부는 조총련의 사주로 문세광이 단독 범행 했다고 발표했나?'
'문세광의 단독범행으로 서둘러 결론내려야만, 현장에서 공범을 놓쳤다는 비난을 중정 간부들이 피할 수 있으니까? 일본과의 정치적 마찰을 피할 수 있으니까?'
'정말 문세광 단독 범행이 맞는가?'
영화를 본 뒤 집에 가는 길에 내 머릿 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머릿 속을 가득하게 덮였다.
집에 와서 실제로 당시의 사건 기록들을 살펴보는데 놀라울 정도로 영화는 이 합리적인 질문들을 과하지 않게 녹여내고 있었다. 이렇게 정확하면서도 영화의 재미를 놓치지 않게 시나리오를 써낸 작가가 대체 누구인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기자로서 '리스팩트'를 보낸다.
20년이 넘는 기간 국가기관이 개입된 수많은 조작의혹 사건들을 취재해왔는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실이 어떤 식으로 결론내려져야만 하는, 그리고 그랬을 때 권력을 가진 자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수사결과는 급하게 발표되고 모든 다른 질문들은 음모론으로 매장당한다.
-원정화 간첩사건은 반드시 북한이 훈련시켜 내려보낸 간첩이어야 하고
-천안함 사건은 반드시 북한 어뢰 공격으로 벌어진 일이어야 하고
-세월호 침몰은 반드시 원인 불명의 사건이어야 하고
-서울시공무원간첩 조작사건은 절대로 국정원과 검찰이 개입했을리 없고
-이재명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은 반드시 미치광이의 단독 범행이어야 하고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의 증거조작 실행자인 조선족 김원하 씨는 감옥에 있을 때 내게 이렇게 말 했다.
"내가 증거를 조작해오면 국정원이 나를 한국 국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했었어요. 유우성이 간첩이 확실한데 증거가 없다 하니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과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제가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은밀한 제안을 국가가 한다는 게 상상이 잘 안되고, 내가 이 사건 의혹을 처음 공개 제기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음모론주의자 취급을 받고 한겨레 내부에서 온갖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아직도 나를 '또라이'라고 술자리에서 비아냥 대던 선배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자에게 중요한 건 진실을 입증해가는 질문이다. 한겨레에서 외톨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사건을 제대로 밝혀내겠다.' 물론, 영화 속 동성일보 기자들에게 좋은 사회부장(박해일)이 있었듯 내게도 그런 부장-고경태 기자-이 있었고 나는 보도를 계속 밀어부쳤다.
다시 육영수 피격 사건으로 돌아와서 질문 해보자.
'문세광에게 국가(강조하건대, 국가의 전부가 박정희는 아니다)가 이런 제안을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김대중 납치 사건이라는 국제적 비판 여론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약간의 소동을 일으켜 대내외적 관심 정도만 돌리려 했는데, 그게 그만 육영수 피격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볼 여지는 없는가?'
최승호 선배가 암살자들에 대한 영화를 두고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기자에게 중요한 건 애국이나 예의 같은 게 아니다.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팩트를 입증해가는 것. 유족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국익에 좀 손해가 있더라도, 기자에게 그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기자는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의혹에 대한입증을 요구받는 직업인이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영화 암살자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술의 문법으로 예술적인 성취를 다 하면, 그 뿐이다. 허진호 감독이 나같은 기자들만큼의 사회적 책임과 대답을 요구받는 건 좀 황당한 일이다.
무엇보다 영화 '암살자들'은 재미 있다. 그냥 보시라.
한동훈의 죄와 벌
조작검사 잡으러왔다!
국정감사 뒤집은 봉지욱 기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자
조작기소 특검 반드시 해야 되고
봉지욱 한상진 김용진
공소취소 하지 마십시오
재판을 알아서 받을 테니까
조작을 한 검사들은
반드시 처벌하고 감옥에 보내야 한다!
https://t.co/jmJfTStX6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