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만 더 늘면 1000팔! 흑, 기쁩니다. 자체 축하 이벤트로 작가가 직접 <허즈번즈> RT이벤트를 합니다. RT해주신 분들 중 2분께 저자 사인 2쇄본 증정합니다. 역하렘+도파민+시대극+고딕호러+요망진 여성서사 <허즈번즈> 기대평과 함께 제 첫 1000팔을 축하해주세요. #1000팔#허즈번즈#2쇄#박소해
1. 안다무가 안온 다정 무해의 줄임말이었군요!
2.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근 문학 외 영역에서도 너무 많은 게 인상과 입맛의 문제로 치환된다고 느꼈음. 인상이나 느낌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님. 다만 그걸 정확히 언어화해 보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느낌적인 느낌’은 윤리적인 긴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임. 가령, 무언가가 타자화되는 방식으로부터 매력을 느낀다든지, 죄의식과 쾌감이 공존한다든지 할 때.
3.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모든 걸 말하는 것은 윤리적, 정치적 긴장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되기도 하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안온, 다정, 무해함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봄. 원트 쓴 분도 인상과 느낌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언어의 형태로 (윤리와 정치의) 세계에 안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걸 문제 삼으셨다고 생각함.
4. 문학 속 안온함, 다정함, 무해함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님. 그리고 문학 속 안온함, 다정함, 무해함으로 피신하는 것도 사실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님. 그게 문학이 지금껏 읽혀온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다만 문학에 ‘안다무’만을 강요하는 건 문학이 다룰 수 있는 ‘정치’를 좁히는 정치적 행위로서 비판받을 수 있음. 때로는 안온함과 다정함, 무해함 속으로 피신하면서도, 문학에 그 기능만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함.
5. 이와 동시에 피신처의 역할도 문학의 여러 역할이나 효용 중 하나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함.‘안다무’라고 퉁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안온하고, 다정하고, 무해하다고 느끼는지 분석하는 게 정치적으로 더 의미 있는 작업일 것임. ‘안다무’라는 뭉뚱그려진 언어도 비평으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기에.
6. 많은 것은 공존 가능하고, 그 공존 가능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상과 느낌을 언어화하는 연습을 해야 함. (이 모든 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함. 나도 그걸 제대로 실천 못하고 있으므로.) 무언가를 언어화한다는 건 정치적 무게를 짊어지는 일이므로 쉽지는 않지만, 그 무게를 다 같이 짊어지려고 애쓰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1인분만큼의 무게, 책임, 부담이 줄어들수록 독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라 믿음.
7. 사람들은 말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졌다고 지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말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모든 걸 소리로 치환하는 게 작금의 상황인 듯. 말은 없지만 시끄러운…
과도한 의성어, 의태어의 사용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함. 아무튼 지금처럼 비평이 소수의 몫이 되면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커지고, 그럴수록 공동체적인 독해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임.
가장 최악의 스토리는 이렇다.
신 #1 처음-중간-끝
신 #2 처음-중간-끝
신 #3 처음-중간-끝(계속)
신을 만드는 데 더 나은 방법은 하나에서 시작해서 그 일부를 관통하는 것이다.
더 나은 스토리는 이렇다.
1.
신 #1 처음-중간
신 #2 끝-처음-중간
신 #3 끝-처음-중간(계속)
2.
신 #1 처음-중간-끝-처음
신 #2 중간-끝-처음
신 #3 중간-끝-처음(계속)
- <애니메이션 이렇게 써라> (제프리 스캇 지음, 올댓스토리 외 옮김)
나는 문학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든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든가, 아름다워야 한다든가 하는 말들도 다 조금씩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그런 말로 잡을 수 없으며, 어떤 규정도 내릴 수 없는 것이 예술의 근본 속성 중 하나다. 문학에는 목적이 없다는 말에도 반대한다. 문학에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박경리, 박완서 세계관 각각 다른 느낌으로 대단하지.
박경리 : 나는 페미니즘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장녀로 자라며 차별을 그리 느끼지 않았다. 어디에라도, 어느 사상에라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여라야 한다.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는 연민의 마음이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시각에 그것이 있는 것이다.
박완서 : 내 모든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이다. 내가 그것을 다 알지 못하고 잘 모르더라도 소설은 인간을 향하고 휴머니즘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간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소설을 쓴다면 당연히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페미니즘 소설이 될 것이다.
생전 인터뷰 영상 보다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상이 급진적이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감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파리의 연인〉 〈도깨비〉 〈더 글로리〉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에 늘 시대의 욕망을 반영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는 ‘계급’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계급이라는 동일한 소재도 시대에 따라 작품별로 다르게 표현된다.
과거에 대중은 계급을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계급 이동을 희망했다. 하지만 계층이 공고해지며 ‘개천용’이 나오기 어려워진 지금, 대중은 계급 이동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이 잘못된 구조를 깨부수고 바로잡기를 욕망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 방영된 〈파리의 연인〉은 당시 대중이 가지고 있던 계급 이동에 대한 욕망을 “애기야, 가자!”라는 한 줄로 저격했다. 재벌인 남자 주인공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위기에서 구하며 던진 대사로, 서민인 여자 주인공은 재벌을 만나 계급을 극복하고 상위 계급으로 올라간다.
반면 2023년 작품인 〈더 글로리〉는 계급 이동에 대한 욕망이 아닌 계급 구조에 대한 불만을 건드린다. “난 왕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거든요”라는, 계급의 최하층에 있는 여자 주인공이 뱉는 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를 상위 계급으로 올려줄 왕자는 필요 없다. 나는 시스템을 깨부수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이 대사 한 줄에 대중은 대리 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김은숙 작가는 변화하는 시대의 욕망을 놓치지 않고 이를 대사 한 줄에 담음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얻었다. 시대의 욕망을 읽고 반영한 한 줄은 이처럼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 <스토리 혁명> (현유석.정종찬.정다솔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