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46년 전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변호한다. 자신의 고교 시절을 돌아보라. 아이들은 뭘 모르지 않는다. 또 우리는 100년 전 3·1 운동을 본 적 없지만, ‘유관순 열사’를 비하하지 않는다. 전라도는 비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실로 들어온 10대의 ‘일베 문화’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다.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일고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고, 광주일고도 이들을 용서했다. 광주는 용서가 일이다.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용서하는 이들도 많으니, 배재고 학생들의 미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5·18이 성역이 됐다”며 용서를 구하지도, 잘못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않는, 양심에 화인 맞은 이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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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모두가 가해자들의 미래를 생각해줄 때, 피해자들은 말을 아끼고 체념을 하고 설명할 의지를 잃는다
가해자들이 당당하게 혐오할 때, 피해자들은 본인의 행동이 혐오의 정당화가 될까 싶어 자기검열을 한다
이 학생들은 누가 보호해주지
이번주 경향 칼럼입니다
이번 배재고 사태를 보며 아이유의 오랜 명언 '이거 뭐야 내가 가해자인가? 싶을 정도로 헷갈리는데 뭐 처벌은 해야죠'가 떠올랐습니다
뭐지 광주일고가 가해자인가? 싶게 피해자 가해자 구도를 역전하는 정치인과 언론의 담론 구조를 따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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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의 이 발언이 더 역겨운 이유는 지금껏 피해학생들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을 뿐더러 이 발언이 일베와 일베키즈들 그리고 그 학부모들에게 "광주일고 출신 야구 감독이 선처해주라고 하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임. 님은 프로야구의 적폐세요. 엘지랑 참 잘어울리시네요.
그들에게는 사과문마저 놀이의 일부입니다.
혐오 구호를 숨겨 던지고 걸리면 사과문을 올리고 그래도 제 삶에 타격이 없으면 게임은 성공입니다.
5·18 조롱도 이 각본을 따라갑니다.
구호가 터지고, 사과 사진을 찍고, 며칠 뒤 잊히고.
그리고 다음 시즌 구호만 바꿔 돌아옵니다.
사과를 받았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사과하고도 멀쩡한 것. 그게 그들에겐 승리입니다.
그래서 형식적 사과와 관용이 위험합니다.
서둘러 덮는 순간 우리가 그들의 게임을 완성시켜 주는 겁니다.
피해자인 광주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결단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용서가 사회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광주의 몫이고 대가를 지우는 건 사회의 몫입니다.
진영도 가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편이 “사과받았으니 됐다”며 서둘러 덮으려 해도 저는 잘못이라 말하겠습니다.
이 조롱을 놀이로 끝나게 두지 않겠습니다.
혐오를 재미로, 재미를 돈으로 바꾸는 알고리즘.
사과 한 장으로 닫을 게 아니라 그 구조를 끊어내는 것.
그것이 조롱이 되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광주일고가 그야말로 품격있게 용서와 화해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호사가들은 ‘역시 광주!’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지만… 너도알고 나도아는 건, 저 일배 짓거리는 조만간 또 일어날 것이며, 그때도 또 여러 인간들은 ‘난닝구’들의 품격을 요구할 거라는 점이다. 교훈은 없고, 습관만 쌓인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진짜 용서받는 길은
징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한 행동이 무엇을 조롱했고,
누구에게 상처를 줬으며,
왜 문제가 됐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학생이니까 괜찮다.
장난이었으니까 봐줘야 한다.
미래가 있으니까 책임을 줄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줍니다.
그것 또한 사회가 입게되는 또 다른 간접적 데미지입니다.
역사를 조롱해도
여론만 잘 만들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신호를 줍니다.
잘못을 해도
어른들이 정치적 희생양 프레임을 씌워주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신호.
그건 교육이 아닙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더 망치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실수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로잡음은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실제 책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더 나쁜 것은
학생들의 잘못을 이용해 정치 선동을 하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책임한 어른들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