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협찬
📖 오독의 발견 | 김민철
🏷️ 이 세계들을 꼭 직접 걸어보고, 느껴보고, 머물러보고, 음미해보고, 길을 잃어도 보시길. 저는 다만 저의 글들이 믿을 만한 지도 중 하나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자, 각자의 여행을 떠나보시죠.
지금은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지만, 학생 시절에는 입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들을 주로 읽었다. 독서를 온전히 즐기는 방식 대신, ‘문제 풀기용’ 텍스트를 읽는 ‘공식’을 먼저 배웠다. 언제나 출제자의 의도와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숨 막히는 읽기였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나는 독서에 좀처럼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그렇게 '정답 찾기'에만 익숙했던 내가 예술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아주 기분 좋은 '오답'을 경험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가 이런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번뜩드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해석이 창작자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면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정답을 맞힌 거 같아 기쁘기도 하다. 한번은 자신만만하게 나의 해석을 해당 아티스트에게 공유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히 다른 내용을 품고 있는 노래였다. 잠깐 민망했지만, 그 감정은 오래도록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았다. 오답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것 같아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이내 ‘아, 이게 바로 예술의 매력이지’ 싶었던 것이다. 단 하나의 정답이 없기에, 모든 해석이 저마다의 정답이 될 수 있기에 예술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김민철 작가의 『오독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나는 창작자의 의도를 ‘맞히는’ 일보다 나만의 해석을 조각해 나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 오독오독 텍스트를 씹고 음미하며 나만의 ‘오독’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독의 발견』은 총 14권의 책을 오독오독 씹어먹는 독서 에세이다. 저자는 책을 읽으며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자신의 삶을 투영해 적극적으로 오독한다. 책 속 문장들이 저자의 기억과 엉키고 설키며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타인의 정답을 좇느라 지쳐있던 우리에게, 저자는 "당신의 오독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고유한 시선"이라고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진짜 ‘읽기’의 방식을 배웠다. 그것은 학창 시절 내가 배워야만 했던 문제 풀기 공식 같은 숨 막히는 ‘읽기’가 아니었다. 텍스트를 내 삶의 맥락으로 가져와 정답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어떻게 하면 나만의 자유로운 오독이 가능해지는지 알려주는 다정한 읽기의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텍스트 뒤에 숨은 작가의 정답을 찾기 위해 서성이지 않기로, 책이 안내하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며 나만의 풍경을 발견하는 ‘오독’을 즐겨보려 한다.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오독오독 씹어 삼킨 문장들이야말로, 온전히 나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도서협찬
📖 『겨울통』, 정용준
“인하는 고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잔한 수면 밑으로 회오리를 몇 개나 갖고 있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들어가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알기도 전에 휩쓸릴까봐 들어오게 해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겨울통.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슬플 줄은 몰랐다. 그동안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꽤 읽어 왔고, 이제는 웬만한 사랑 이야기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자만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오만을 가볍게 무너뜨려 버렸다.
‘소랑’이라는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동아와 소랑도서관 레지던시 작가로 머무는 인하. 인하는 언어장애로 말을 할 수 없고, 사람들과는 패드를 통해 소통한다. 하지만 동아는 패드의 다른 음성이 입혀진 말보다 인하의 손으로 남기는 말을, 그리고 더 나아가 느리고 서툴더라도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을 기다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천천히,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함께할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겨울통. 잔인하리만큼 무서운 병이 그들의 삶을 덮친다.
누구보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했고, 누군가가 떠난 뒤 남겨진 자리에 홀로 머무는 일을 견디지 못했던 동아는 인하를 사랑하기에 용기를 낸다. 반면 인하는 느리고 더디다. 동아가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싶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벽을 쉽게 넘어설 수 없다. 그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인하야. 너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너는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원래 살았어야 할 삶이 있잖아. 나는 극단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극단적으로 살아도 되지만 너는 아니지. 너는 다음이 있잖아."
“동아야. 나는 네가 없는 이 집에 혼자 남지 않을 거야. 이 집에서 나가지도 않을 거야. 반드시 너를 데리고 올 거야.”
인하의 사랑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연인을 떠나보낸 뒤 남겨진 사람이 공허함과 상실을 견디며 그리움 속에 살아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하는 내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정용준 작가의 문장을 만나 더욱 애틋해진다. 동아가 인하를 바라보는 순간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들에는 섬세한 표현들이 덧입혀져 있다. 그 문장들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봄바람을 불러온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도, 여름의 뜨거운 햇살도 단번에 잊게 만들 만큼.
모든 사랑 이야기에 우리를 대입하는 것은 오래된 버릇 같은 것이지만, 이 소설은 유독 더 그랬다. 꼭 누군가를 투영해 바라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 깊이 몰입했고, 두 사람이 간절할 때마다 함께 간절해졌고, 결국 여러 번 울고 말았다.
끝끝내 서로를 구원하고야 마는 것은 역시 사랑뿐인 것 같다.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날것 그대로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 한동안은, 아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