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서울에서 쥬라기 공원 오프닝 찍어 왔습니다.
퇴근길에 마주하면 울컥하는 오직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레전드 노을 뷰.
한강철교 위로 붉게 물든 오렌지빛 하늘이랑
시원하게 가르는 제트스키 궤적
여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의 실루엣까지
완벽해서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순간이었어요.
모든 촬영 및 편집 제가 직접 한 것입니다.
서울 부암동 석파정은 영의정 김흥근이 도성 밖에 마련한 집과 정원이었다. 삼계동정사로 불리던 곳은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되면서 그의 별장으로 쓰였다. 대원군의 후손들이 관리하던 곳은 한국전쟁 뒤 천주교가 운영하는 보육원으로도 쓰였다.
옛 건물 한 채는 다른 곳으로 갔다. 서예가 손재형이 1958년 인근 홍지동으로 별당을 옮겼다. 부암동 석파정과는 떨어져 있는 별개의 문화유산이다.
2004년에는 소유자의 채무로 석파정이 경매에 나왔다. 두 차례 유찰 뒤 2006년 1월, 아홉 명이 입찰해 63억1천만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채권을 둘러싼 다툼과 법원의 경매 정지 결정이 이어졌다.
그해 미술품 수집가인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석파정을 인수했다. 그가 직접 밝힌 인수금액은 65억원이었다.
석파정을 인수하면서 미술관 설립 계획도 구체화됐다. 안 회장은 별서를 복원하고, 모은 그림을 여러 사람과 나눠 볼 공간을 만들었다. 2012년 서울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옛 별장과 정원도 미술관의 야외공원으로 이어졌다.
지금 미술관에서는 임직순 작고 30주기 전시인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2027년 2월 14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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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서울시는 독립문을 원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70m 옮기는 공사에 들어갔다. 사직터널과 새 금화터널을 이을 고가도로를 놓으려는데, 그 길에 독립문이 있었다.
처음 이 일대에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과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이 있었다. 청일전쟁 뒤 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영은문이 철거되자, 서재필 등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보여 줄 새 문을 세우려 했다. 독립협회가 모금을 벌였고 왕실과 민간이 돈을 보태 1897년 독립문을 완공했다.
문은 영은문 북쪽에 섰다. 중국 사신을 맞던 문을 대신해 독립을 선언한 장소인 셈이다. 그래서 도로를 만들려고 옮기자는 서울시와 원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문화재위원회가 맞섰다. 돌로 된 문만 남기면 되는지, 그 문이 선 자리까지 남겨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서울시는 문을 제자리에 둔 채 고가도로 설계를 바꿔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독립문보다 높은 도로가 양쪽에 들어서자, 그 아래 남을 문의 모습이 다시 문제가 됐다. 결국 이전을 다시 건의해 허가를 받았다. 해체된 독립문은 새 자리에 다시 쌓였고, 1979년 12월에는 현판석과 태극석을 올리는 상량식이 열렸다.
이후 서울구치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자리에 서대문독립공원이 조성되면서 독립문도 공원의 일부가 됐다. 지금은 고가도로 옆에 서 있고, 문 앞에는 영은문을 받치던 돌기둥 두 개가 함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