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é Manuel López hablando sobre por qué fue el único jugador de Argentina en ver a España levantar la Copa del Mundo:
"Aunque me expulsen de la selección, no tengo ningún arrepentimiento por girarme para ver a España levantar la Copa del Mundo"
"Cuando fuimos a recibir nuestras medallas, el equipo español se alineó para aplaudirnos"
"Incluso mi capitán Lionel Messi también dio la espalda, en ese momento todo lo que creíamos se derrumbó"
"Si yo diera la espalda, no merecería ser llamado futbolista"
El 7 de enero de 1943, Nikola Tesla murió solo en la habitación 3327 del Hotel New Yorker. Tenía 86 años. Una camarera lo encontró dos días después, tras haber dejado un cartel de “no molestar” en su puerta. La causa oficial fue trombosis coronaria. Pero la verdad más profunda fue más silenciosa: años de aislamiento, pobreza y un mundo que había seguido adelante sin el hombre que ayudó a impulsarlo.
Este fue el inventor de la corriente alterna, el sistema que aún recorre nuestras casas hoy en día. Pionero en la transmisión inalámbrica, la tecnología de la radio y los motores eléctricos. Poseía cientos de patentes e imaginó ideas —como la comunicación inalámbrica y la energía renovable— mucho antes de que se convirtieran en realidad. Sin embargo, al final de su vida, estaba casi sin un centavo.
En sus últimos años, Tesla vivía de manera sencilla. Sobrevivía principalmente con leche, pan, miel y jugo de verduras. Todos los días caminaba hasta parques cercanos para alimentar palomas, especialmente una paloma blanca que amaba profundamente. Una vez dijo que la amaba como un hombre ama a una mujer. Cuando ella murió, algo en él pareció desvanecerse también.
Hubo un tiempo en que Tesla deslumbraba a la sociedad neoyorquina, encendiendo bombillas con las manos desnudas y creando relámpagos artificiales en su laboratorio. Los inversores una vez lo respaldaron. Las multitudes una vez lo admiraron. Pero a medida que sus ideas se volvían más ambiciosas —especialmente su sueño de energía inalámbrica gratuita para el mundo—, la financiación desapareció. Se volvió conocido más como un excéntrico que como un genio.
Y sin embargo, cuando murió, el mundo se detuvo. Miles asistieron a su funeral. Líderes y científicos enviaron tributos. Años después, la Corte Suprema reconoció su prioridad en las patentes de radio. La historia se corrigió lentamente. El mundo que él electrificó no lo había olvidado de verdad —simplemente había tomado tiempo entenderlo.
Hoy, su nombre perdura en la ciencia, la tecnología e incluso en empresas que dan forma a la era moderna. Tesla murió solo en una habitación de hotel, alimentando palomas mientras la corriente que creó zumbaba a través de las ciudades. No murió olvidado. Murió habiendo cambiado el mundo —y ese legado aún brilla.
인플루언서 SNS 공구 시장 현실 팩트체크 알려드림.
SNS 채널을 어느 정도 키우다 보면, 메일함이 꽉 차기 시작함. 특히 요리나 생활용품,제품군 리뷰 등을 다루다 보면 공동구매 제안이 정말 스팸 메일 수준으로 쏟아짐. 이 공구판,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겪어본 팩트만 담백하게 들려드림.
첫번째는 기적의 고무줄 '정상가'다.
엄청난 공구 혜택가라고 포장하지만, 대다수가 뻥튀기 눈속임에 불과함. 내게 들어왔던 제안을 예로 들면, 공구가가 19만 9천 원이었는데 쿠팡에 검색해 보니 20만 2천 원에 팔고 있음. 그런데 내 공구가 시작되는 날, 업체는 사이트 내 정상가를 갑자기 23만 원 선으로 쓱 올려버림. 마치 내 공구를 통해 사는 게 엄청난 이득인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것임. 실상은 그냥 별 차이도 없음.
그럼에도 수많은 인플루언서가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압도적인 마진율 때문임. 판매 건당 인플루언서가 가져가는 마진이 무려 10~20%에 달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셀러 파워'는 단순하게 겉으로 보이는 팔로워 숫자가 아니라 기꺼이 지갑을 열어주는 3040 충성 팬덤이 얼마나 탄탄하느냐가 핵심임. 36만 원짜리 음식물 처리기를 100대 팔았다고 가정해 보면, 15% 마진만 잡아도 한 큐에 540만 원이 떨어짐.
아마 '나는 솔로' 돌싱편에 나왔던 옥순 님처럼 탄탄한 인지도를 구축했다면 한 달에 천 단위 이상 버는 건 일도 아닐 것임. 심지어 인플루언서는 그저 '주문'만 받으면 끝남. 배송부터 골치 아픈 CS까지 모조리 공구 업체에서 다 떠안아 주기 때문에, 판매자 입장에선 리스크나 스트레스가 전혀 없음.
하지만 진짜 소름 돋는 포인트는 따로 있는데, 애초에 작정하고 '공구 전용'으로만 기획된 제품들이 존재함. 평소엔 말도 안 되게 비싼 정가를 매겨놓고, 인플루언서가 공구를 열 때만 '원래 팔고 싶었던 진짜 가격'에 판다. 평상시 가격이 미쳐있으니, 공구가로 사면 엄청난 혜자처럼 보이는 완벽한 마케팅인 셈. 결국 평소에 제값 주고 사는 사람만 억울한 호구인거지
내가 겪은 공구시장은 이랬음.
맹목적인 팬층을 확보한 사람들에겐 이 시장이 엄청난 '돈 복사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 이면에는 이런 치밀한 상술이 숨어있다는 것. 이것이 인플루언서 공구 시장의 진짜 현실임.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교육 시스템이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진실’을 그냥 입 밖으로 꺼냈습니다.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인간을 ‘계산기’처럼 생각하도록 길렀습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그 능력을 하룻밤 사이에 쓸모없게 만들었습니다.
황: “똑똑하다는 건 지능이 있고,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적인 사람을 의미했죠. 하지만 그건 이제 상품(commodity)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인공지능이 그 부분을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게 될 겁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안전한 직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초지능이 제일 먼저 그 자리를 쓸어버렸죠.
SAT는 지능을 측정한다고 했지만, 사실 ‘지시를 잘 따르는 능력’을 측정했을 뿐입니다. 순수한 기술적 처리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닙니다. 기계가 당신이 잠에서 깨기도 전에 이미 그 문턱을 넘어버렸으니까요.
이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계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데이터가 나타나기 전에 무엇을 미리 볼 수 있느냐”입니다.
황: “코너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진짜, 진짜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가치는 엄청납니다. 문제가 나타나기도 전에 ‘분위기를 느끼고’ 미리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 ‘분위기’는 마법이 아닙니다. 그건 제1원리(first principles) + 인간 공감 + 실제 살아온 경험의 충돌입니다. 어떤 모델도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죠.
황: “그 분위기는 데이터, 분석, 제1원리, 인생 경험, 지혜,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감지하는 능력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입니다.”
코너를 보는 사람들은 AI를 ‘지휘’하게 될 것이고, 대시보드가 업데이트되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AI에게 대체될 것입니다.
황: “장기적으로 ‘똑똑하다’는 정의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면서도 인간적 공감력을 갖추고, 말하지 않은 것, 코너 너머,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지 않은 변수들(unspoken variables)이 이제 새로운 레버리지(지렛대)입니다. 시장 속 인간 심리, 협상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마찰, 아직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본능.
스프레드시트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고, 프롬프트로도 그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수치에 나오지 않는 것’을 지켜본 경험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황: “그런 사람은 오히려 SAT 점수가 형편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답을 외운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아직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때, 그 질문을 먼저 ‘느끼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옛날 시스템은 ‘명령을 잘 따르는가’를 시험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은 ‘알려지지 않은 영역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시험합니다. 그리고 기계는 그 부분을 절대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은 오로지 당신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