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_news 지귀연판사나 해결해라. 무슨 지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귀결한 존재인줄 착각하는 무리일뿐이라고 나는생각한다. 세상 판사이름 거명하면서 죽이려고 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도 집행유예, 또는 1년 뭐이러니
결국은 전관예우인가?
#조희대#지귀연#판사#대법관#전국대법장회의#서부지법폭동
왜 한국에만 유독 재림예수가 많을까? 재림예수 등장에 중요한 배경 하나가 바로 NRM(네비우스-로스 방법) 기독교 선교 방식이다. 이는 훗날 광기 어린 사이비 교주들이 자신에게 신적 지위를 부여하는 발판이 된다.
오늘은 NRM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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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사이비#종교 h
<분단을 넘어 평화로 나아갈 길에서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를 추모합니다>
광복 80년, 민주주의를 더 굳건히 다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 세워야 하는 과제 속에 맞이한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가 각별합니다.
‘일주명창(一炷明窓)’,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히고 있다.’ 선생께서 늘 가슴에 품고 사셨다는 이 글귀처럼, 장준하라는 이름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고, 꺼지지 않는 양심이었습니다.
선생의 삶은 질곡의 현대사 그 자체였습니다. 선생은 총�� 들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고, 사상계를 창간해 펜을 들고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섰으며,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을 주창했습니다.
독���과 민주와 통일! 선생은 민족사의 제단에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 등불로 타올랐습니다. 선생께서 광복군 시절에 발행한 잡지의 제호, <등불>과 <제단>에 담긴 뜻 그대로였습니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벨지언정, 못난 조상이 될 수 없다.” 학도병으로 징집된 일본군대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할 때를 회고하며 선생께서 남긴 이 말씀이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는 까닭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선생은 모든 금지된 것에 맨 앞에서 저항했습니다. 선생의 저항은 실천이고 행동이었습니다. 일제의 강점,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 군부의 5‧16 쿠데타, 한일협상, 10월 유신에 이르기까지 순응을 강요하고, 자유와 양심을 억압하며, 정의를 금지한 그 모든 불의 앞에서 선생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독립운동가, 언론인, 민주화 운동가, 정치인. 선생이 걸어온 그 길을 가리키는 많은 호칭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실천가’이고 ‘양심가’였습니다.
“한 인간이 민족적 양심에 따라 자기의 생애를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1972년 7월, 예상치 못한 남북공동성명에 모두가 당황하며 박정희 정권의 들러리를 설 수 없다고 할 때, 선생께서 7.4 공동성명을 지지하며 던진 이 물음, 그것은 비단 통일만이 아니라 독립과 민주를 아울러 선생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적 소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광복 80년을 사는 오늘, 우리 앞에 남겨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선생께서 누워계신 이곳에선 북녘 땅이 보입니다. 제 부모님의 고향도 그곳에 있습니다. 여기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선생의 고향 평안북도 의주까지 320km 조금 넘는 거리,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가 닿을 곳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80년 분단의 세월만큼이나 멀리 있는 길이 됐습니다.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통일이 민족사의 전진이라면 모든 가치 있는 것은 그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분단이 독재를 정당화하던 시절, 선생의 이 말씀은 민족의 역량과 개인의 삶을 제약하는 분단구조를 넘어설 때라야 평등과 자유, 번영과 복지 같은 모든 보편적인 가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평화로,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의 시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오늘, 선생의 묘소 앞에서 용기를 냅니다. 다짐합니다. 그 어떤 작은 실천이라도 평화의 길을 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1950년대 말, 민주주의 제도조차 정착되지 않았을 때, ‘부정과 불의에 맞서는 민중의 용기와 의분’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임을 설파했습니다. 선생의 그 혜안이 80년 광주에서 지난겨울 응원봉 광장까지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듯이, 남북의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길에서도 선생의 높은 뜻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원통하게 선생을 잃은 1975년 8월 17일,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진실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지만, 진실을 얻은 사회여야 역사 앞에 떳떳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올봄 사상계 복간에 이어 장준하 기념관 건립도 곧 첫 삽을 뜹니다.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뜻을 모아오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국회도 함께할 것입니다. 장호권 회장님을 비롯한 유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선생의 영전에 깊은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칩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긴 글입니다.>
‘GP 검증 부실 의혹 사건’의 전말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같은 해 12월 12일 남북 양측은 비무장지대(DMZ) 내 각각의 감시초소(GP) 11개를 상호 철수하기로 하고, 그 이행을 위해 경로를 개설한 뒤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이 중 GP 10개는 완전 파괴되었고, 1개는 원형 보존의 형식으로 불능화 후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군은 현장 검증 결과, 북한 측 GP 10기가 완전히 파괴되어 불능화되었음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적대적으로 전환되고, 2023년 북한이 일부 GP를 신속히 복원하자,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이�� 근거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이에 따라 강압적인 방식의 감사를 착수하였다. 국방부는 당시 검증단이 작성한 검증보고서의 비밀을 해제하고, 해당 내용은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을 통해 국회와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후 감사원은 2025년 3월경, 정경두, 서욱, 김도균 등��� 포함한 군 관계자 6명을 ‘허위공문서작성’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지난 7월,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피의자뿐 아니라 다수의 전·현직 관련 인사들에게 참고인 조사를 통보했다.
그러나 2025년 7월 31일,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혐의 없음”처분을 내렸다.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검찰의 공식 발표였다. 이로써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이행 과정과 관련해 제기되었던 법적 의혹은 모두 근거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GP 검증 부실 의혹 사건’의 전말이다.
지난달, 검찰은 느닷없이 나에게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하라는 통보하였다. 매우 뜻밖이었다. 나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감사원의 감사 대상에도 포함된 적이 없었다. 당시 평화군비통제 비서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검찰이 보낸 출두 요청 이메일에 회신하지 않자, 검찰은 �� 전화번호를 확보하기 위해 학과 사무실, 연구실, 과거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행정관들, 군 관계자들에까지 연락을 취하며 수소문했다. 심지어 조교들이 “교수님, 검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라고 전해올 때, 설명조차 난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출두 요구를 거부했지만, 법률 자문을 거쳐 서면 질의에 응했다. 정책적 판단을 형사 사건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으나, 이 수사의 부당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 감사와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검찰이 법과 사실에 따라 판단을 내린 점은 환영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획 감사와 수사로 인해 당시의 정책 결정에 관여했던 공직자 다수가 명예를 훼손당했고, 북측지역에서 휴전 이후 최초로 검증 작업을 하였던 우리 국국장병들은 부당한 법적·심리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정치적 폭력이었다.
우리는 단지 무혐의 결론을 받아든 것이 아니다.
국가 안보와 평화를 위한 정책 결정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치화될 수 있고, 그 결과 실무자에게 사정과 수사의 칼날이 겨눠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 된 감사원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적 목적에 편승한 감사, 그리고 법적 근거조차 불충분한 채 이어진 수사의 출발점이 바로 그 감사에 있었다. 감사원은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국민 앞에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정치권, 학계, 법조계, 종교계 등 각계 인사들의 조국 사면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더라도 이미 죗값을 혹독하게 치렀으니 사면이 ‘당연’하다는 취지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이 조국의 유죄를 확정한 날은 2024년 12월 12일,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사건을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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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가 비공개 일정인 언론사와의 만찬에 대해 물었습니다.
비공개 일정인 것을 뻔히 알면서 이를 공개된 자리에서 질문한 의도가 뭘까요?
엠바고라는 언론의 기본적 역할을 무시한 것은 물론 대통령실을 노골적으로 능멸하는 행위입니다.
해당 기자를 대통령실 취재기자에서 제외해주십시오.
문선명에게 한국전쟁은 사람들이 기적을 믿도록 만드는 매개체였다. 문선명은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 사건이 기독교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유사한 수난의 기간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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