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거짓말.
우선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일선 경찰의 무능을 탓하며 비겁하게 꼬리를 자르기 전에,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피눈물로 사죄부터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그들은 사법을 망치는 세번의 입법을 통과하며 일반 서민의 삶과는 무관한 법이라 뻔뻔하게 거짓말을 쳤고,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위대한 개혁이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돌려주겠다던 권력은 이재명과 민주당만 누리고, 그 말뿐인 개혁이 결국 국민에게 돌려준 것은, 억울하게 골든타임을 빼앗기고 차갑게 식어버린 서민들의 싸늘한 사체뿐이다.
매년 대한민국 국가 사법 기관이 처리하는 200만 건에 달하는 형사 사건 중, 이른바 정치인이나 권력형 비리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퍼센트는 사기, 폭력, 성범죄, 살인 등 평범한 서민들의 피눈물이 얽힌 지극히 일상적인 민생 사건들이다. 이것은 대검찰청의 통계가 증명해 온 차갑고도 명백한 팩트다.
그러나 그 1퍼센트 특권층의 방탄벽을 쌓기 위해, 99퍼센트의 서민들을 지켜주던 촘촘한 사법 방어망을 통째로 불태워버렸다.
제주도 수풀에서 연달아 발견된 시신들과 불송치 통보서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무 살 청년. 이 끔찍한 비극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억울한 죽음의 릴레이를 멈출 수 있었던 세 번의 명백한 기회가 있었다. 수많은 법률가와 전문가들이 피를 토하며 멈추라고 경고했던 세 번의 골든타임. 그러나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오직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방탄을 위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기만적인 언어로 그 기회들을 철저히 짓밟았다.
우리가 놓쳐버린 첫 번째 기회는 2020년 1월이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일선 경찰에게 사건을 덮어버릴 수 있는 불송치 결정권을 쥐여줄 때다.
법조계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힘없는 서민의 억울함을 뭉갤 수 있다고 수없이 우려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은 이 합리적 경고를 낡은 기득권의 저항이라 악마화하며,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역사적 개혁"이라 자화자찬했다.
비극을 되돌릴 두 번째 기회는 2022년 봄, 그 악명 높은 검수완박 사태 때 찾아왔다. 사법 통제망이 완전히 해체되면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각계의 절규가 쏟아졌을 때, 민주당 수뇌부가 내놓은 핑계는 소름 끼치도록 오만하고 얄팍했다. 그들은 대중을 향해 이 법안은 정치인이나 재벌 같은 특권층을 향한 것이지, 일반 서민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읊어댔다.
서민의 삶과 무관하다는 그 악마적인 거짓말과, 약자의 생명줄을 끊어놓고 기분 좋다며 낄낄댄 그들의 호언장담은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경찰의 새빨간 거짓 종결에 골든타임을 잃고 백골로 부패해 간 실종자들, 가해자의 변명 한마디에 쫓겨나 스스로 이의신청서를 쓰고 투신해야 했던 청년. 이들이 특권층인가. 검수완박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하게 도살당한 희생자들은 철저하게 빽 없고 돈 없는 99퍼센트의 일반 서민들뿐이었다.
그리고 이 생지옥의 문을 영구히 닫아버린 세 번째 기회는 작금의 2026년,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해 버린 입법 폭주다. 앞선 두 번의 끔찍한 실험으로 이미 현실의 지옥이 열렸건만, 이 체제의 최고 권력자 이재명은 무엇이라 답했는가. 국민의 목숨이 걸린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사필귀정이라며 공포해 놓고, 바로 다음 날 공식 석상에서 제가 개정된 법을 안 읽어봐서 그런데라며 뻔뻔하게 실실 웃어댔다. 수십 년간 다듬어온 국가의 사법 신경망을 박살 내면서 정작 그 법안의 조문조차 읽어보지 않았다는 이 역대급 직무유기.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 포장하고, 서민과는 무관한 법이라 기만하며, 정작 자신은 법을 읽지도 않았다며 조롱하는 자들. 당신들이 죽은 노무현의 입까지 빌어 '야~ 기분 좋다"며 망가뜨린 제도의 구멍 속에서 지금 힘없는 서민들이 구조를 외치며 죽어가고 있다.
이제는 또 경찰을 개혁하란다. 이제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의 입에서 개혁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올 때마다 뼛속 깊은 공포를 느낀다. 이 들에게 개혁은 수십 년간 멀쩡하게 굴러가던 국가의 뼈대를 다 찍어 넘겨놓는 것이니까. 좌파의 개혁이란 반드시 개선을 의미하지 않는 걸 아직도 못 깨달았는가?.
[새미래민주당] 진영을 넘어 국민 곁으로
입법부가 한 사람만을 위한 법을 만들고,
행정부가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으며,
사법부마저 한 사람의 권력 앞에 흔들린다면
그 끝에서 희생되는 것은 결국 ‘국민’입니다.
권력은 결코 국민 위에 설 수 없습니다.
진영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승리,
권력자의 사익이 아닌 진정한 국익을 위한 정치.
새미래민주당이 해내겠습니다.
"우리의 진영은 국민이고,
우리의 노선은 국익입니다."
새미래민주당과 함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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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킥스에 올라가니 암장 불가능‘...성남FC 수사 막은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죠
* 박은정 '경찰 암장 불가능하다' 주장
* 지청장 시절 이재명 성남FC 사건 보완수사 꾸준히 묵살
* 담당 수사검사 이에 항의하며 사직서 제출
https://t.co/kUgbWc0Yx4
나는 글을 다루고 사유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주장에 함부로 '궤변(詭辯)'이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진보 언론의 상징이라 불리는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을 마주하고서는, 그 원칙을 처참하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한 줄의 문장은 단순한 궤변을 넘어, 민주 공화국을 떠받치는 근대 법치주의에 대한 완벽한 사상적 파산 선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 것을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대통령을 끝까지 설득하든 자신이 양보하든 관행을 지켰어야 했다. 국정에서 관행은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눈을 굳게 감고 다시 활자를 곱씹어 본다. 평생을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법의 지배를 부르짖어왔던 원로 언론인의 입에서, "국정에서는 관행이 법률보다 우위"라는 마피아 조직에서나 통용될 법한 망발이 튀어나왔다. 헌법 104조가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고유한 임명제청권을 '법대로' 행사한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권력자와 밀실에서 티키타카를 하던 '짬짜미 관행'을 법보다 우위에 두고 숭배하라니. 평생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온 대법원장에게, 법전 대신 뒷골목의 룰을 따르라고 훈계를 두는 저 기괴한 뇌 구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건의 본질은 자명하다. 사법 리스크의 올가미에 목이 졸린 이재명 체제가 대법원을 자신들의 사적 방탄 로펌으로 사유화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강요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위헌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내 헌법적 권한은 여기까지이니, 불만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해 역사적 책임을 지라"며 서면을 툭 던진 것이다. 이것은 관행 파기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권력의 외압에 맞선 사법부 수장의 가장 외롭고도 차가운 헌법적 저항이다.
그런데 성한용 기자는 이 헌법적 저항을 짓밟기 위해 또 하나의 끔찍한 궤변을 동원한다. 그는 과거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것을 두고 "만약 파기자판으로 피선거권을 박탈했다면 시민혁명이 일어나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겁박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대법원장을 향해 헌법의 가장 기본인 국민주권 원리를 모르는 무자격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사법부의 합의된 판결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 조롱하고, 161석의 입법 완력을 쥐고 사법부를 협박하는 것을 국민주권이라 포장하는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이쯤 되면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성한용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1인 수령을 옹위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과 펜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안성한용', 완벽하게 부패해 버린 '상(傷)한용'일 뿐이다.
법치의 심장인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권력자와의 밀실 관행에 순응하라고 대법원장에게 훈장질을 하는 사회. 헌법이 명시한 권한 행사보다 1인 교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더 숭고한 국정 철학으로 찬양받는 나라. 이재명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언론마저 스스로 이성의 목을 매달고 궤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작금의 풍경이야말로, 자유주의의 붕괴를 알리는 가장 서늘하고도 비극적인 전조(前兆)다.
[사법 내란 선동을 중단하라 — 사법부 예속 시도를 사법 구성은 물론 국민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여당 지도부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과 법원 구성원들을 향한 집단행동 선동이 정치공세의 금도를 넘어섰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장악한 집권세력이 이제 사법부 수장까지 흔들어 끌어내리려 한다면,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아니다.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사법 내란’ 선동이나 다름없다.
의도 또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대법원장을 축출해 새로 임명될 대법관 인사에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사법부를 권력 아래 예속시키려는 것 아닌가. 더구나 그 끝에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지워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법원장 축출 → 대법관 구성 장악 → 사법부 예속의 시나리오의 목적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결국 입법·행정에 이어 사법까지 장악하는 ‘삼권일체형 독재 권력체제’로 가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삼권분립은 민주공화국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어느 하나라도 권력에 예속되는 순간 민주공화제는 껍데기만 남는다.
이제 판사들과 법원 노조등 사법부 구성원들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 독립과 권위를 지켜낼 일차적 책임은 법관과 법원 구성원들에게 있다. 헌정질서의 근간이 흔들리는데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중함도 중립도 아니다. 권력의 사법부 농락을 방치하는 비겁함이자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원 구성원들은 집권세력의 오만한 사법부 흔들기와조롱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 줘야 한다.
국민과 여론을 믿고 사법권 독립과 민주공화국의 파수꾼으로 당당히 일어서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주 공화제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와 헌법은 영속해야 한다.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중단하라. 그리고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국민은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사법부가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사법 흑역사’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차마 끝까지 뉴스를 지켜보기조차 괴로워 기사 링크는 가져오지 않았다. 스무 살,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이 40대 주점 사장에게 끔찍한 짓을 당하고도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발생 52일 만에 경찰이 피해자에게 보낸 서류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차가운 불송치 통보서 단 한 장이었다. 그 종이 쪼가리를 받아 든 청년은 사흘 뒤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차가운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상식의 눈으로 이 기가 막힌 수사 과정을 뜯어보자. 사건 당일 청년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만취 상태였다. CCTV에는 대화 도중 눈물을 훔치고 가해자에게 질질 끌려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지어 청년의 휴대폰에는 사건 전후로 성폭력을 당했다거나 죽고 싶다며 지인들에게 보낸 절규의 메시지가 명백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신고 당일 단 한 차례 피해자를 부른 것이 전부였다. 휴대폰을 열어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합의된 관계였다는 가해자의 뻔뻔한 변명만을 덥석 물어 사건을 서둘러 덮어버렸다.
청년이 목숨을 끊으며 남긴 이의신청서가 접수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그나마 두 달 뒤면 법 개정으로 영영 사라져 버릴 그 알량한 보완 수사 요구라도 내려졌다. 청년이 자기 목숨을 내던지지 않았다면 이 끔찍한 범죄가 경찰의 서랍 속에서 영원히 묻혔을 것임을 증명하는 서늘한 팩트다. 권력자들의 방탄을 위해 망가뜨린 제도가 평범한 서민의 생명줄을 썰어버린 완벽한 제도적 타살이다.
이 비극을 마주하며 과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그널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좌파 성향의 대중들은 화면 속 형사가 토해내는 저 정의로운 절규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현실과 가상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실제 배우 조진웅의 범죄까지 감싸고 돌았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저 대사에 열광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던 그들은, 정작 극 중 이재한 형사의 그 서늘한 물음 앞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들이 맹신하는 이재명 체제가 만들어낸 2026년의 대한민국이야말로, 돈 있고 빽 있는 범죄자들이 가장 살기 좋은 완벽한 생지옥이다. 자신들이 추종하는 정치인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그들은 사법 시스템의 최소한의 견제 장치인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무자비하게 거세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일선 경찰이 가해자의 말만 듣고 대충 사건을 덮어버렸을 때, 힘없고 빽 없는 서민은 억울함을 호소할 마지막 비상구조차 사라진 끔찍한 사법 생태계가 완벽하게 구축된 것이다.
드라마 속 명대사에는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던 그 얄팍한 감수성으로, 정작 현실에서는 권력자들의 방탄을 위해 사법 제도를 난도질하는 짓에 열렬히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 소름 끼치는 인지부조화와 집단적 몽유병이 합작해 낸 결과, 빽 없는 스무 살 청년은 가해자의 뻔뻔한 변명 한마디에 짓밟힌 채 차가운 바닥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그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혐오해 마지않던 바로 그 부패한 세상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열어 제낀 셈이다.
진정한 정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게 자아를 의탁해 열광하고 환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억울한 자들의 비명을 외면하게 만든 이 기괴한 사법 시스템의 붕괴를 똑바로 직시하고, 그 법을 만든 자들에게 준엄하게 책임을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죽음으로 이의를 제기해야만 비로소 국가가 돌아보는 이 잔혹한 나라를 합작해 낸 권력의 공범들은 기억하라.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라면, 스크린 밖의 이 차가운 죽음 앞에서 처절하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반 토막 났습니다. 트럼프의 일방적 지시로 훈련 도중에 그렇게 됐습니다. 트럼프는 북핵 용인 가능성까지 풍겼습니다. 11월 이전에 김정은과 회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의 돌발행동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전시작전권 회복을 서두릅니다. 우리 안보와 한미동맹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낙연의 사유,
<한미훈련 반토막…그래도 전작권 조기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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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가 어려워지니 그 공원의 일부를 주택 후보지로 검토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은 정부의 장기 계획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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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 협약 등록을 추진 중인 국가적 습지 바로 옆에 반도체 메가 팹을 때려 짓겠다니. 사태가 이쯤 되면 이것은 더 이상 국내에서 공장을 돌릴 전기가 모자라느니, 공업용수가 부족하느니 마느니 하며 입씨름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람사르 협약이 무엇인가. 습지와 물새 서식지 보호를 위해 전 세계 170여 개국이 가입한 이 국제 조약은, 글로벌 환경주의자들에게 결코 타협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성역이다.
반도체 공장을 멸종위기종 13종이 서식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나란히 병치시키겠다는 발상은, 전 세계 환경 생태계를 수호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향해 정면으로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타령은 이제 그만 접어두자. 어울리지도 않는 산업 발전 핑계는 치우고, 원래 하려던 대로 중국에서 판다나 빌려와서 키우고, 향수 어린 5일장이나 계속 열며, 북한과 중공군 군가를 지은 정율성 기념 행사나 성대하게 이어가면 될 일이다. 애초에 최첨단 산업 자본이 들어가는 것보다 가난하고 낭만적인 이념의 테마파크로 묶어두는 것이 표밭 관리에 훨씬 남는 장사 일 수도 있다.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고, 딱 그 거기까지만 하자.
그래도 국제 협약인데 무시하고 추진하다간 그렇찮아도 사쿠라 좌파정부와 환경단체들 찐 좌파 유럽 환경 단체들앞에서 밑천털리고 개망신 당하는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