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총이 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글로벌 북반구는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점령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는 데 맥락은 필요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서구의 사고방식에서 저항은 그 행위 자체로, 그러니까 억압하는 힘에 맞서 자신 혹은 공동체를 지키는 행위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저항은
때마다 그에게 다시 불이 붙는다. 영어로 글을 쓸 때면 본능적으로 일군의 젊은 남성들이 점령자들을 상대로 무기를 들려 하는 이유를 둘러싼 맥락을 밝히고, 라시드 후세인이 한 바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싶어진다. “그들이 내 고향을, 내 친구들을, 내 젊음을 태워버렸는데/ 어찌 내
거리에서 나체 수색을 당할 때마다, 칼란디야 군사 검문소에서 개머리판에 얻어맞을 때마다 되살아난다. 매번의 피란이, 매번의 철거가, 매번의 때 이른 장례식이 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형제나 자매를 묻거나 감옥에서 면회할 때마다, 총알이 동료를 꿰뚫을 때마다, 미사일이 하늘을 더럽힐
가자에서든 제닌에서든 전투원은 불가해한 현상이나 ‘난데없는 별종’이 아니다. 그는 그저 야파나 알나캅에서 집에서 쫓겨난 나크바 생존자의 후손이, 수십 년이 지나 해묵어버린 비통한 분노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이가 아니다. 전투원은 매일 자신의 나크바를 마주한다. 그의 분노는 예루살렘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권력 불균형을 흐리는 독해에서 전투원은 애초에 그나 그녀가 생겨나게 된 맥락 바깥으로 밀려난다. 아나운서는 자기 형제자매들의 살해를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은 관찰자로서 전달하기를 기대받는다. 간호사는 공습으로 팔다리를 잃은 사랑하는 동료를 환자로 받으면서도
혁명가들은 우리 민족의 요체가 아니며, 해방이라는 정치적 열망과 꿈을 좇아 움직이지도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무분별하게 혼란을 일으켜 힘없는 주위 사람들ㅡ어느 편도 아닌 여성과 아동, 공평무사한 구급대원과 언론인ㅡ을 실의에 빠뜨리는 불량 행위자로 해석된다. 그런 몰역사적인 독해,
“‘비당파적’, ‘중립적’ 인물이라는 민간인의 발명은 팔레스타인 대의의 탈정치화를 심화했다. 민간인으로 여겨지려면 우리는 아무런 관점도 갖지 않는 신화적 차원에 존재해야 한다. 이 신화 속에서 상상되는 우리의 대의는 이제 해방 투쟁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위기’의 문제로 이해된다. 여기서
대형 출판사는 다들 알만할 테니까 나는 독립 출판사 추천해볼게🩵
📚 마티
페미니즘 도서 쏟아져 나옴 <메두사의 웃음>, <마인드 필링스> 등
📚 오월의 봄
사회학 도서가 많은 편 <보통 일베들의 시대>, <길냥이로 사회학하기> 등
📚 아침달
<여름어 사전> 시 문학 위주
📚 원더박스
사회과학 책 위주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 등
<어째서 진보적인 수사가 가득한 교육 정책도, 비판적 교육 연구도 내가 움직이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까?>
를 질문하며 교사 우울을 다시 쓰기 위한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앤 츠베트코비치의 정치적 우울(political depression), 로렌 벌랜트의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
우리가 광장에 서는 이유가 너무 잘 설명되는 문장. (책문장 요약)
p.25 정치적 우울에 대한 논의는, 실망을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며 비롯되며 무언가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장소들을 알아보고 설명하는 것이자 살아남기 위한 전략들을 전수하는 것이다. <공적 우울, 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