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진짜 알 수 없다는 걸 지인들을 보면서 느낀 사례.
1. 현대,기아 생산직이 목표였던 친구
아버지도 기아 생산직이라,
진짜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국 떨어짐.
어쩔 수 없이 월급도 많지 않았던 중소기업에 들어가 지게차 일을 시작했음. 근데 거기서 몇년 동안 구르면서 현장 경험 다 쌓고, 거래처 만들고, 업계 이해도 높여서 결국 지게차 임대업 창업.
지금은 월 몇천만 원씩 번다고 함.
2.쇼핑몰과는 전혀 관련 없던 친구 누나
아이 낳고 육아 일상을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음.
그게 점점 반응이 오더니 팔로워 5만 명까지 성장.
이후 직접 쇼핑몰을 차렸고, 지금은 남편까지 본업 그만두고 부부가 쇼핑몰에 올인하고 있다고 함.
이것도 몇천만 원 단위로 번다고 들었음.
이런 사례보면서 느끼는건,
지금 하는 일이 평생 갈 것 같고,실패한 일이 인생 끝인 것 같아도 막상 몇 년 지나고 보면 전혀 예상 못 한 길에서 인생이 풀리는 경우도 꽤나 있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함.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생각보다 변수가 많음.
내 빚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음. 그래야만 한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데…
요즘 별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곳✨
낮에는 고구려 시대 성곽,
밤이 되면 은하수와 별빛이 쏟아지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빛공해가 적어 SNS에서는 "수도권 최고의 별 명소"라고
불리는 연천 당포성.
직접 가보면 왜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단번에 알게 된다고 하는데…
군대 스님이 병사한테 “야 이리 와” 했다가 평생 후회한 이야기
초코파이를 안 먹고 불단 구석에 놓고 가는
병사가 있었다.
군종장교로 복무 중이던 보만스님은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근데 한 번, 두 번, 계속 반복됐다.
스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요즘 군대가 좋아졌나,
배가 불러서 초코파이도 안 먹네.”
결국 군종병한테 말했다.
“그 놈 잡아와.”
불려온 병사한테 따졌다.
“왜 안 먹고 두고 가냐.”
그 병사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위암 말기예요.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 초코파이라도 부처님 앞에 올리면서
어머니 쾌유를 빌고 싶었습니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군종장교가,
스님이,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드린 공양을
“배부른 짓”으로 봤던 거다.
나중에 스님이 고백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님은 이 얘기를 강의에서 자주 꺼낸다.
요즘 MZ는 다 그래, 남자들은 다 그래,
여자들은 다 그래
겉으로 보이는 행동 하나로 세대 전체를
단정짓는 사람들한테.
초코파이 안 먹는 데도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이해 못 하는 행동 뒤에도
각자의 간절함과 아픔이 있을 수 있다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종목 찍어주면서 구독료받고 햇제 하는 사람들 조심해라 진짜
진짜 좋은주식이고 부자될거 같으면 혼자 투자해서 먹고 말지 푼돈받고 알려주는게 이상한거임
유튜브 이런데 둘러봐라.
지 투자 실력으로 돈 벌 자신 없으니까 리스크 없는 '구독료 고정 수입'으로 헷지하는 놈들이 태반이란 말이야
종목 한 10개 던져놓고 그중 하나 걸려서 날아가면 "거봐라 내가 햇제?" 이지랄 떨고, 나머지 처박은 종목들은 입 싹 닫는 사기꾼들이 한둘이냐고.
그냥 전형적인 사기 패턴이란 말이야.
이런 새끼들한테 돈 갖다 바치는 건 그냥 능지 문제임
잃는 돈은 수업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는데, 수업료 맞지.
근데, 왜 남한테 돈까지 갖다 바치면서 수업료 두배로 늘리냔 말이야.
호구새끼냐고 ㅋㅋㅋㅋㅋ
"미국 국채수익률 4.6 돌파, 주식 시장 대폭락"
⚠️이런 소리 하던 계정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저는 거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짜 거시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인데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이 난무하고
거시로 소음 공해 일으키는 계정들이 많기 때문.
소음만 잔뜩 유발하면서 X 조회수 먹던 사람들 거르세요.
근묵자흑이라, 본인도 그런 사람 됩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소음에 집중하는 사람에겐 들리지도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어떤 계정의 이야기에 집중할지 잘 선택.
저는 26년 5월 30일에 헬스장을 등록할 것입니다.
만약 제가 헬스장을 등록하지 않을 시
100만원을 기부하겠습니다.
26년 5월 30일에 등록 인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글을 기억해주세요.
제가 헬스장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벌써 2026년도 5개월이 훌쩍 지났다고요..
헬스장 다녀야해.. 다녀야해.. 🥲
91년 여름.
대학교 2 학년이 된 나는 그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무전여행을 친구와 단 둘이 감행하게 된다.
아주 땡전 한 푼 없이 다닌 건 아니었고.
기본적인 교통비와 정말 정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돈과 그리고 배낭엔 라면 번개탄 쌀 부식 등을 잔뜩 짊어메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중 전화로 전화를 걸어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여수 앞바다에서 노숙을 하다. 그 유명한 전투모기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헌혈을 하기도 했다
무슨 기특한 생각이었는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걸어서 망월동 묘지를 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야
두 인간 합해서 비상금이 1만원 정도 있었는데
그 당시 택시 기본 요금이 700원 800원 정도 할 때였어
이렇게 많이 걸어왔으니 뒷일은 모르겠고. 머.
택시 요금 얼마나 나오겠나 싶어서
그냥 택시를 잡아탔어
택시 안에는 에어컨도 없었어
기사님 망월동 묘지 가주세요
그때까지 광주에 택시는 미터기가 있었는데 미터기를 꺾었던 기사님이 갑자기 미터기를 도로 펴시면서
망월동은 미터 요금 아닙니다~
요금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비싸다는 뜻이었어
아 기사님 죄송해요. 저희 돈 없어요. 도로 내려주세요
그때 기사님 거지? 꼴을 한 우리 둘을 보시면 하시는 말씀
대학생? 망월동 묘지 참배가요?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님 미터기 위에 노란색 가죽커버를 턱 씌우시더니
에고~ 갑시다~
지금 생각하니 도대체 지리를 알 수가 없는데
생각보다 꽤 장거리를 갔었던 것 같아
그 기사님 아니었으면 우리 참배 못 했을 거야
그 기사님 묘역 구석구석을 차로 함께 해 주시고
참배도 함께 하셨어
그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셨지.
35년 전 일인데 그때 그 뜨거운 느낌만 생생해
그 기사님 마지막 말씀
어린 학생들이 참 고마운데.
인제 일부러 오지 마소.
대한민국이 다 광주여 인제...
우린 광주다
광주는 대한민국이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그 유명한 파코 씨를 만났다. 한글 ‘파코’ 와 태극기가 붙어있는 모자를 쓰고, 충청도(?) 사투리 느낌이 있는 구수한 한국말을 하는 키 큰 남자. ‘아빠’ ‘엄마’를 외치며 한국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에펠탑 키링을 판매하는 파코. 큰 가방에 키링, 냉장고 자석, 병따개 등을 갖고 다니며 판매하는데 왠일인지 사진촬영을 너무 잘해서 특히 한국인들에게 인기몰이 중.
우리 포함 여러 명의 관광객을 촬영하는 모습을 잘 지켜보니 그 만의 요령이 조금 보이는데 그는 촬영 대상을 광장 서편 계단 끝에 딱 붙어서 서게 한 뒤(뒤로 넘어지지 않게 조심!) 그 지점을 프레임의 기준으로 삼고 노출을 최대한으로 설정해 오늘같이 흐린 날씨에도 화사한 사진을 찍더라.
에펠탑과 사람이 한 장의 사진에 모두 잘 나오도록 무릎을 꿇고, 큰 배낭을 멘 채 온 몸을 바닥에 던져 사진을 찍어주느라 옷은 흙투성이. 그러다 보니 본업(?) 인 열쇠고리들은 저 멀리 팽개쳐져 있다. 파코 씨 말로는 ‘이거 하느라 요즘 살 빠졌다’ 고.
여러 기사에 따르면 파코 씨는 세네갈 출신으로 가족을 만나러 파리에 왔다가 생계를 위해 이 업(에펠탑 열쇠고리 판매) 에 뛰어들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경쟁자들이 많았지만 금새 습득한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특유의 친화력, 센스있는 사진 촬영 서비스 덕분에 명소에서 사진 남기는데 진심인 한국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됐고 여러 한국 유튜브 채널과 인터뷰를 했다. 결국 올 2월엔 방송사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도 갔다왔다고(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출연). 음식도 맛있고(잡채가 특히 맛있다고) 사람들도 친절한 한국이 좋아서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단다.
파리 현지 분의 전언에 따르면 파코는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외에도 영업 수단으로 두 개 언어를 더 구사하고 한국의 나이 서열과 가족 호칭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일과 중에 이슬람 기도를 하러 갔다오며 주로 오후 2시 이후에 트로카데로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는 사진촬영을 하며 계속 사투리가 섞인 한국말로(“오매~ 아빠가 엄마 손을 좀 잡으라니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데 사진 결과물에 감탄한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에 그냥 돈을 주고 가려고 하면 꼭 열쇠고리를 가져가게 한다. 5유로면 작은 열쇠고리, 10유로면 큰 열쇠고리와 다른 여러 개를 챙겨준다. 아마도.. 사진촬영은 서비스일 뿐 어디까지나 자기 본업은 열쇠고리 판매라는 원칙, 물건도 주지 않고 그저 팁을 받지는 않겠다는 직업정신일지도.
아주 예전에도, 에펠탑을 처음 방문했던 20년 전에도 이 곳에서 열쇠고리를 파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계속 있었다. 그들도 짧은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했지만 그런 접근이 매 번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코 씨는 한국말 호객에 사진 서비스를 더해 존재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 노년의 한국 관광객들이 파코 씨의 사투리에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며 10유로 지폐를 선뜻 꺼내 메이드인차이나가 확실할 열쇠고리들을 줄지어 사 간다. 젊은 커플들은 에펠탑 다음으로 파코와 셀카를 찍고 싶어하더라.
무거운 열쇠고리 수백개를 등에 지고, 무릎을 꿇은채 사진을 찍어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파코 씨 덕분에 오후에 많이 웃었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파코 씨가 잘 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호감 1위 말투
평생 “나쁜 사람” 딱지 붙기 싫으면, 그냥 남한테 칭찬하고 아부 떠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안 하면 됌
조언이라는 건 결국 “내가 너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거라
그러니까 바짝 엎드려서 듣기 좋은 말만 해주면 상대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잘 받아들임.
들어야 할 진짜 이야기나 팩트 같은 건 아예 입에 올릴 필요도 없음 ㅋㅋ
사람들은 본인이 듣고 싶은 소리만 해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니까.
말하는 사람 자존감이 바닥을 치든 말든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