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매쓰 처음 입는 옷(스타일)+평소에 양갈래에 앞머리 벗어나서 이번주부터 앞머리 까고 똥머리함 이 상태인데.. 아까 백화점에서 혼자 화장실 갔다 나오는데 순간 어떤 아이가 나한테 막 뛰어오길래 1초 찰나 동안 왜 저렇게 큰 애가 나한테 오지? 하고 봤더니 그게 내 열매였다.. 넘 충격.
엄마니까 나만이라도 느려도 괜찮다고 해줘야 하는데 나는 나보다 세상이 더 냉혹하기에 더 다그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키웠다. 솔직히 그래서 얻은 것고 있고 잃은 것도 있다. 내 방법이 옳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틀린 것도 아니란 믿음으로 키운다. 내가 한 선택은 뭐든 최선이었어야만 하니까.
예전에는 딱 한번 만 더 장애없이 나한테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지금 모습 그대로 딱 한 번만 더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의 내 선택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두번째는 같은 아이라면 조금은 다르게 키워보고싶기도 하다. 아이 관련한 선택과 결정에 후회는 없는데.
토드허먼의 저서 <알터에고 이펙트>에 정말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경기장에 내보 낼 선수를 각각 다르게 세팅하는 것. 회사라는 경기장에는 그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선수를, 가정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각자 경기장에 맞는 선수를 내보내는 게 다중 페르소나의 핵심.
페르소나나 개인의 아이덴티티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많이 추천해줬던 책.
저도 엄마와 오래도록 서로 원망한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긴 우울증을 겪었고 거식증과 알코올중독으로 두번 입원했었고
그때마다 엄마도 저도 그런 저를 두고 항상 어쩔줄 몰랐는데요.
서로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법은 아주 오래 걸려서라도 찾을수 있는 것이기도 하더라구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투병에서 임종까지 해본 입장에서 국가나 사회의 개입 없이 가족과 친족끼리 장기 돌봄을 하는건 가족 해체의 지름길이거 돌봄에 완벽한 공평은 없고 모두가 힘들고 억울한 순간이 찾아옴.. 체력이 더 되���나 정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경제적 지원을 해야함.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고 이 의미는 돈이 있더라도 모든 노동을 외주화할 수 없다는 뜻 같다. 돌봄은 뼈를 깎도록 힘들고 어린 자식을 자기 생명력을 깎아 키우고 나이가 들어 자식의 기력을 빼앗아가며 의지하는 것은 그냥 … 선도 악도 아닌 자연스러운 법칙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