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에 1억 원 기부,
정작 본인은 10년 넘은 경차 타고 다니는 배우의 정체
16년 차 배우이자 감독 이주승이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으로 받은 상금 1억 원의 사용처가 뒤늦게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집이나 자동차를 떠올릴 거액이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전액을 한부모가정 지원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어려운 형편을 직접 겪었던 그는, 힘들었던 시간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좋은 일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큰 결심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지금도 10년 넘은 경차를 타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선택은 어떤 화려한 소비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 파랑새, 커뮤니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에는 제주 4.3 사건의 가해자인 한국 개신교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었는데요, 모임을 준비하며 이 학살을 주도한 교회들에 직접 전화하여 (놀랍게도 아직 없어지지 않고 있다)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학살 사건의 가해자 함병선이 세운 봉개교회, 서북청년단의 인적 기반인 영락교회에 전화를 하여 4.3사건에 대한 현재 교회의 입장은 어떠한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반성하거나 교육하려는 시도는 있었는지 모임장이 밤이 직접 물어보고 그 대답을 공유하였습니다.
열정적 모임장이지요…?
난 솔직히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의 언어가 좋은데 이창동 이 인터뷰는 걍 인터뷰이의 언어가 좋음 인터뷰어가 묻는, 해석한, 준비한 거의 모든 말에 아닌데?라고 대답함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사람인 것 같고 나도 실제로 이런 사람은 어려워하지만 그래도 좋다 곤조라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느껴짐
죽는 법을 검색하던 그날 아침, 그가 찾아왔다
경기도 오산에서 음식점을 하던 부부.
남편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 약물을 몸에 단 채로도 배달을 다녔고,
수술한 날에도 가게 문을 열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건 육중완 밴드의 노래
'오늘도 나는 악착같이 돈을 번다'
가사가 남편의 삶 그 자체 같았다는 것.
SNS 사연에 육중완이 댓글로 답했고,
버스킹에서 만난 그는 "오산에 꼭 한번 가겠다"고 했다.
부부는 그저 흔한 인사말인 줄만 알았는데.
바로 그날 아침, 아내는 챗GPT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를 검색하며 무너져 있었는데,
그날, 육중완이 촬영을 마친 뒤 오산의 가게로 찾아왔다.
"짧은 인생인데 우울함 쌓아봐야 나만 아프다.
그러니까 좀 즐겁게 살아가자"
스쳐 지나가는 노래 한 곡, 흔한 인사말 하나.
그게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다 진짜.
한참을 망설이던 한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사실 응원 구호보다 댓글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사건 이후,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에는 “역시 전라도” “홍어공화국” “왜 아직도 5·18 이야기를 하느냐”는 식의 조롱과 비난이 이어졌다는 거다. 학생들은 움츠러들고 위축돼 있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지역과 고향, 역사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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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마지막 메시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가짜뉴스는 범죄입니다.
모스탄과 극우 세력이 퍼뜨리는 이재명 대통령님의 소년원 수감설,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법사위 간사를 맡았을 때, 법무부·검찰 자료를 국민의힘 간사와 직접 확인했으나 아무런 근거가 없었습니다.
또한 같은 주장을 한 이들의 재판에서도, 이것이 근거 없는 '아무 말'이었음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지목한 '안양소년원', 심지어 여성 교화시설입니다.
명백히 거짓임이 밝혀졌는데도, 모스탄은 지금도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가짜뉴스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또 거짓을 만듭니다.
가짜뉴스로 입은 피해, 어떻게 온전히 책임집니까. 그 말을 믿고 넘어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이 가닿을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자들입니다
반드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https://t.co/PC4dg55jpg
"풍자는 권력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다면, 그것은 풍자가 아니라 괴롭힘이다. Satire is meant to ridicule power. If you are laughing at people who are hurting, it's not satire, it's bullying."
배재고 학생들이 받을 상처를 오히려 우선적으로 걱정하고, 그들은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며, 이제는 그들이 과도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사람들이 학교에 화환까지 보내고 있다.
“가해자-피해자 역전”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피해자가 아니지만 피해자를 자칭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해자로 호명되는, 즉 피해자성을 “무기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피해자성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무기이자 상징자본으로 작동하고 있다. “피해자”라는 자격이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누구의 상처, 고통, 트라우마가 보다 손쉽게 인정받는가, 반대로 누구의 상처, 고통, 트라우마가 부정되는가의 문제는 결코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부정의의 뚜렷한 양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은 피해자성을 둘러싼 담론적 장치를 정교하게 해부하고, 담론 그 자체를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보여준다. 즉, 누군가가 “피해자성”을 들먹일 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그 구조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가해자들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나설 때, 혹은 어떤 집단이 피해자로 호명될 때, 만약 그같은 “피해자 담론”을 보면서 당혹스럽다면,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담론은 기존의 부정의와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변혁의 에너지를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가?”
바로 이 질문으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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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릴리 출리아라키의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가 출간되었을 때 보냈던 추천사 전문.
어떻게 피해자 담론은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되었을까? ‘갈라치기’의 정치공학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자를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하고, 반면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보상을 촉구한다. 이같은 경합의 장을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까.
이 책은 우리가 피해자성을 둘러싼 담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이면에 놓인 구조와 권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저자는 기득권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새롭게 호명함으로써 불균등한 권력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결국 피해자성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무기이자 상징자본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저자는 변화를 촉구하며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자리가 특권이 된 시대, 우리는 고통의 언어를 취약한 이들의 것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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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사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움. 실제 그 조롱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받은것도 광주일고고, 그 일이 공론화 된 후, 내도록 2차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조심한 것도 광주일고고, 그럼에도 정치인과 언론과 극우의 2차 가해를 당한 것도 광주일고고. 피해를 입은 쪽인데도 미래, 교육 운운하며 마치 가해자를 안쓰러워하며, 사건 자체를 축소시키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광주일고임.
이병태 교수가 물러났습니다. 저는 이 분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극단적 상대주의자처럼 보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자유가 다 허용될 수 있는 것처럼 믿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인종차별 등 각종 차별적 발언이 큰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건 이렇습니다. 그들은 법적 자유가 허락되므로 감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문화적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인종차별주의자는 국가와 사회에 해로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헷갈린다면,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헌법에 분명히 명시하면 됩니다. 5.18은 학살이기 때문에 법으로 5.18 조롱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막아도 괜찮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극단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조차도 비슷한 이슈에 대해서 실제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발언에는 자유가 있고, 차별을 가하는 사람의 발언에는 자유가 없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종을 차별하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그게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탱크데이 등 5.18 가해자의 논리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자유의 한계에 대한 수많은 학자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는 민주주의가 아니므로 허용될 수 없다”
80년 광주의 대학살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옹호하는 발언에 대한 자유는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즉, 표현의 자유는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유는 자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가 자유로 인정되면 그게 바로 극단적 상대주의가 됩니다. 바로 이병태 교수의 경우입니다. 개똥철학이고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누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파괴할 자유를 준다고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