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반토막 나자 가장 먼저 깨진 건 가격이 아니라 커뮤니티였음.
마이클 세일러는 흔들리는 진영을 향해 사람들을 네 갈래로 갈라놓는 글 한 장을 던졌고, 그 종이 한 장이 수류탄처럼 터졌음.
자본가, 맥시멀리스트, 기술자, 근본주의자. 세일러는 커뮤니티를 네 진영으로 호명했고 각자 자기 깃발 아래로 흩어졌음. 누구는 비트코인을 티커로 포장해 월스트리트에 팔고, 누구는 사명이라 부르고, 누구는 프로토콜을 고치려 하고, 누구는 노드를 돌리며 순수성을 지킴. 분류 자체는 정교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비켜갔음. 왜 하필 지금 갈라지는가.
답은 단순함. 숫자가 내려갔기 때문임. 가격이 오를 땐 네 진영이 한 몸처럼 전체가 되고, 가격이 빠지면 부족을 만들어 서로를 잡아먹음. 이건 비트코인의 결함이 아니라 피아트가 길러낸 시간선호의 잔상임. 빚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살면 인내는 사치가 되고, 손실 앞에서 인간은 가장 가까운 동지부터 의심함. 약세장의 내전은 자산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산을 들고 있는 인간의 문제임.
그래서 진짜 그림은 진영 싸움 바깥에 있음. 오렌지색 넥타이를 맨 자본가도, 레이저 아이를 켠 맥시멀리스트도, BIP를 두고 다투는 근본주의자도 똑같은 문 하나로 들어왔음. 끝없는 부채와 매년 녹아내리는 화폐를 보고 더는 못 참겠다고 말한 사람들임. 적은 옆자리가 아니라 그들이 등지고 나온 시스템임. 그 시스템은 이 모든 내전 동안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음.
부채는 멈추지 않았고 그 부채로 굴러가는 전쟁도 멈추지 않았음. 그리고 비트코인은 강세장에서도 약세장에서도 내전 중에도 똑같이 10분마다 블록을 찍어냈음.
세일러가 놓친 다섯 번째 갈래는 결국 네 원이 전부 겹치는 한가운데, 자본가도 맥시멀리스트도 기술자도 근본주의자도 아닌 그냥 비트코이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