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은인 중 한 분인 도진 작가님께 연락을 받고서야 이런 좋은 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쟁쟁한 작품들 속에 [승자의 소망]을 확인하고 2025년에 정말 너무도 큰 사랑을 받았다는 걸 다시 뼈에 새겼습니다.
조만간 하루의 GL을 보여드리기 위해 분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때 이 업계에는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내용에 어떤 장르의 웹툰을 몇 명을 투입해서 어떤 스타일로 만들면 조회수가 얼마 나오고 얼마의 수익이 돌아올 것인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오만한 사��이 잔뜩 있었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고 다니면 투자금 받기는 좋았겠지.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니 다시 정상 영업을 시작한 다른 엔터 업계로 눈먼 투자금이 빠져나갔다. 독자가 아니라 투자만 바라보던 사람들 사업 규모가 작아진 걸 곧 이 업계의 불황이라고 부른다면 수치상으로 그 말도 맞겠지만, 난 꺼져야 했던 거품이 꺼진 거고 오히려 업계가 정상화되��� 중이라고 본다. 그동안 프로듀싱하지 않는 프로듀서, 편집하지 않는 편집자, 스스로 제작할 줄 모르는 제작사가 얼마나 많았나.
정답이 있다면, 예술이 아니고 문화가 아니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면 작가가 아니고 그렇게 만들어진 건 작품이 아니다. 작품은 작가가 만들고 선택은 독자가 한다. 이걸 비웃는 업체라면 망하는 게 맞다. 진짜는 살아남는다. 그렇게 믿는다.
삼풍 때 나 스무살이었고 세월호 애들 열여덟이었어. 나도 사고 나서 피를 철�� 흘리면서도 줄서서 나왔어. 아줌마 아저씨들 밀치는데 밀면 밀리고 그랬어. 애들은 그래 삶에 대한 집착이 적어서.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 나는 그 마음 알거든. 나도 그때 그랬으니까. 근데 세상 사람들이 욕해 가만히 있으랬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었냐고 그러고 없는 애들이 왜 제주도에 배타고 갔냐고 그러고. 나 너무 사무쳐... 나 있잖아. 내가 다 아파. 2014년이후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아파. 그때 진도에 가서 팽목항에 가서 체육관에 가서 괜히 가서 괜히 가서 근데 유가족들은 어떻겠어.
가해자들은 그 후로 8년이나 윤석열이 시간 끌어준 재판에서 전부 무죄 받았어. 11명이나 서면 조사나 받고. 이태원도 봐봐. 윤희근도 박희영도 지금 전부 현직에 앉아있어. 이게 말이 되니? 이게 다들 말이 돼? 나는 지금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