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가드가 AI 기반 자산관리·커스터디 플랫폼 알트루이스트(Altruist)를 인수
알트루이스트는 독립 투자자문사(RIA)를 위한 셀프클리어링 브로커리지와 계좌 개설, 거래, 포트폴리오 관리, 청구·리포팅을 통합 제공. 맞춤형 포트폴리오, 소수점 주식, 대체자산·마진, 자동 리밸런싱까지 지원
뱅가드는 2020년부터 투자해왔으며, 인수 후에도 기존 경영진·브랜드·어드바이저 중심 운영 모델을 유지한 독립 사업으로 운영할 예정. 거래 조건은 비공개, 규제 승인을 거쳐 올해 안에 종결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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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위기의 떠오르는 해법
혼자 읽기에서 함께 체험하는 독서 모임으로
(아래 원문 발췌)
코로나19 봉쇄와 소셜 미디어 확산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화면 속 세상이 아닌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인간적 유대감을 갈망한다. 즉, 질문하고 함께 생각하며, 우리에게 전해져 온 현실의 기이함을 바라보는 것 말이다.
책은 이런 활동을 조직하는 데 독보적으로 강력한 매체다. 그렇기에 500년 넘게 우리 문화적 정치적 지적 삶의 기반이 되어 온 글과 소통하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할 수 없는 경험, 즉 다른 사람들과의 실시간 대면 만남을 통해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며 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독서의 미래는 ‘파티’다.
책은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있다. 미 전역에서 Z세대 독서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조용한 독서를 위한 모임인 ‘사일런트 북 클럽Silent Book Club’은 현재 68개국에 2,000개 이상의 지부를 두고 있다.
배드 비치 북 클럽Bad Bitch Book Club이 주최하는 독서 수련회와 여름 캠프에는 주말 동안 15-90명에 이르는 열성 독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인다.
서점들도 고객들에게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내향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북클럽 형식을 재구성하거나 아예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문학과 미식의 이벤트 시리즈’인 ‘The Consumption Book Club‘은 세심하게 테마를 정한 디너 파티와 진행자의 안내에 따른 대화를 곁들인다.
최근 뉴욕의 공원에서 20대들이 주최한 앨런 긴즈버그의 장시 ‘울부짖음Howl’ 공개 낭독회에는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스트로더 급진적 주의력 학교’는 매달 6개 주에서 12회 이상 모임을 주선하며, 공공장소를 옮겨가며 장편 텍스트를 읽고 재현하는 실천인 ‘Sidewalk Study’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모임들을 하나로 묶는 정신은 단순하다. 바로 독서가 고립된 내면성의 방식일 뿐만 아니라 활기찬 사회적 교류의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혼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과거엔 새로운 현상이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오가 소리도 내지 않고 책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경이롭게 묘사했다.
고대에는 독서가 일반적으로 청중 앞에서 공개 낭독하는 게 관행이었다. 텍스트 낭독은 로마 시대 인기 있는 오락이자 토론의 한 형태였다.
집단을 대상으로 하거나 집단을 위해 읽는 관행은 현대에 와서도 종교 예배 공간, 노동자 학습 모임, 아방가르드 문학 공연 등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인쇄물의 확산과 그에 따른 문해력의 민주화는 혼자서 조용히 텍스트에 몰입하는 모습을 독서의 주류 이미지로 굳혔다. 바로 학교에서 배우는 독서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스마트폰 사용과 AI에 대한 인지적 의존으로 인한 해악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긴 텍스트가 더 이상은 지식을 전파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람들을 연결하며, 복잡한 결정을 조율하는 데 있어 독보적이거나 심지어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독서는 일종의 ‘일식’을 맞고 있다. 책의 정보 전달 기능은 쇠퇴하고 있는 반면, 경험의 기능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독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긴 텍스트 자체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혼자서 읽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교육자는 결코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공공 생활에서 문해력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심어줄 엄청난 기회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나는 브루클린 해안가 덤보에서 그런 모임을 기획하는 데 힘을 더했다.. 시인 월트 휘트먼의 207번째 생일 전날 밤 그의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를 밤새 함께 낭송하는 행사였다. 사전 신청자는 25명이었으나 동반자와 현장 참가자들이 더해져 50명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 두세 명의 나이 지긋한 휘트먼 애호가들 이외 거의 모두 20대인 듯했다.
4시간의 낭송, 노래, 반복, 일문일답,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실험적인 낭독 방식을 거친 후, 우리는 이스트 리버 강변으로 자리를 옮겼고, 새벽 2시쯤 거기서 목청을 높여 함께 함성을 질렀다.
이어진 숨 막힐 듯한 고요 속에서, 내 옆에 서 있던 갓 대학을 졸업한 한 여성이 자신은 휘트먼 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만 그런 게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용기를 얻어 이렇게 제안했다. “다시 한 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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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보관하는 게 문제. 어쩔 수 없이 여러 방법을 찾게 되는데, 대안이 되어주는 수납 방식이 책을 위로 쌓는 것.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책을 쌓아두면 꽤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 읽은 책이 아닌 읽을 책들을 오며 가며 집어가기도 놓아두기도 좋다.
이렇게 책을 쌓는 선반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브루노 라이날디가 2003년에 디자인한 프톨로메오. 최초의 도서관을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이름에서 딴 이름. 벽, 선반 악세서리, 2열, 4열 등 이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모두 함.
프랑스가 탈취해간 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의 미술품 26점을 반환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호메이(2024) 봤는데 반환 기념 포럼에서 나온 우리가 미술품을 오직 외교만으로 되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짠 식민주의 사고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라는 의견이 인상적
세계 오케스트라들이 클래식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 파산하는 가운데 젤다 등 게임 음악 콘서트가 생명줄이 되고 있다고.
"하이든은 교향곡을 위해 왕자가 필요했다. 젤다의 전설은 정가로 홀을 채운다. 300년 오케스트라 음악 역사에서, 청중이 전체 티켓값을 지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진보 진영의 필독서로 떠오른 책 <하이퍼폴리틱스: 정치적 성과는 없는 극단적 정치화Hyperpolitics: Extreme Politicization without Political Consequences>의 저자 32세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Anton Jäger 인터뷰
지금이 ‘하이퍼폴리틱스(들뜬, 흥분한 정치)’의 시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1914년부터 1989년까지는 대중 정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정치화 수준은 높았고 제도화 수준도 높아서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서나 거리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그들은 정당, 노조, 교회, 노동자 클럽, 독서 모임 등에 가입해 활동하는 ‘참여자’였으며, 서로 얽혀 있는 다양한 제도에 참여했다. 정치적 투쟁이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했다.
그 후 2008년 금융 위기까지는 포스트-정치 시대였다. 이 시기 정치 제도화 수준은 낮았고 정치화는 바닥을 쳤다. 기술관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레이브 파티에 몰려다녔고, '역사는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끝났다'고 말하던 때였다.
금융 위기가 터진 시점(혹은 그 이전)부터 2020년경까지는 反정치 시대였다. 미국의 티파티 부활,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와 반체제 시위,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운동 등이 그 예다. 이 시기 정치화는 맹렬한 기세로 복귀했고, 제도화는 아직 회복되진 않았지만 이런 운동들은 여전히 제도적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 다음이 ‘하이퍼폴리틱스' 시대다. 제도적 뿌리도, 제도적 야망도 없는 극도의 정치화 현상이다. 표면적으로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시위나 미 의사당 습격 폭도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도덕적으로는 천지 차이이지만 조직적 측면에서는 둘은 놀라운 유사점을 보인다. 지속 기간이 짧고, 회원 명부도 없으며, 지지자들에게 실질적인 규율을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폭발적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는 않는다. 운동은 갑자기 치솟지만 어떤 영역도 장악하지 못한다.
정치 이론가 파올로 게르바우도가 말한 '장기 없는 신체'처럼, 지금의 정치 운동은 '집중적이고 강력하지만 내적 대사 작용은 없다'. OECD 회원국 전역에서 이런 양상을 보인다.
기후 파업 참가자들이나 봉쇄 조치 반대 시위자들이나 모두 “짧고 강력한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무수한 존재들로, 카리스마 넘치는 인플루언서와 디지털 선동가들에 의해 행동으로 이끌리는” 존재들이다.
대중 정치의 전성기는 양차 세계 대전 사이였다. 당시 시민 단체들은 노동에서 토끼 사육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는 거의 없었고, 당원증 없는 정치적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에겐 꽤 구속적이었지만 덕분에 일이 제대로 처리되곤 했다.
정치 조직의 붕괴는 단일 원인으로 설명될 순 없지만, 대처와 레이건의 노조 탄압이 주효했다.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이유는 그들의 영향력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즉, 파업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단계, 전면전 직전 단계-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노조가 힘을 잃으며 노동자들은 빈곤에 빠졌고,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업이 붕괴되는 걸 목격했다.
수십 년에 걸친 문화적·세대적 변화도 있었다. 가령, 60-70년대 사람들은 해방과 평등을 원했다. 1989년이 되자 세상은 낮과 밤처럼 달라진 것 같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갑자기 모두가 축제를 즐길 자격이 생긴 것 같았다.
블레어는 세계화를 날씨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했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냥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설파했다. 이게 바로 90년대 ‘포스트-정치’의 모호함이었다.
정치는 더 이상 대규모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란 더 사적이고 더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다른 개인들과 집단적으로 뭉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아름다움도 많았다.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과 애니 에르노, 미셸 우엘벡의 소설 같은 것들. 전통 가족이나 공동체, 이웃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덜 부담스럽고 덜 엄격한 일종의 새로운 공동체를 찾았다. 모호한 점은 이것이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깊은 환멸과 냉소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열광하는 공동체를 볼 수는 있어도 의회를 통한 경로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는 것.
신자유주의에 의한 제도 파괴와 그 뒤를 이은 포스트-정치 및 反정치 현상에는 좌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대처는 대중적 보수주의를 대부분 홍보 전략과 막대한 민간 자금으로 대체했다.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으니 대중 정당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파는 좌파만큼이나 무의미해졌다. 이유는 정확히 동일하다. 과열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위 참여자들은 서로 같은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같은 소셜 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며, 같은 텔레그램 채널에 가입해 있을지는 몰라도, 시위에 참여하기 전부터 공유해 온 조직적 역사라고는 없다.
하지만 우파와 좌파는 사정이 다르다. 우파가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 머스크 같은 갑부의 존재 자체가 한 개인이 ‘사회’라 부를 수 있는 것에서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파의 ‘하이퍼폴리틱스’는 번성하는 반면, 좌파의 ‘하이퍼폴리틱스’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 이유를 설명한다. 우파가 더 조직적이거나 이념적으로 더 일관되거나 더 전략적인 게 아니다. 단지 자금력이 더 뛰어날 뿐이다.
이는 세계 정치의 포괄적인 조직 원리로서 자본 그 자체에 상당한 책임을 지운다. 돈이 유일한 발언권은 아닐지는 몰라도 바라는 것을 얻어내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정확히 말해 파시즘이 아니다. 우파는 조직화된 사회주의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했을 때만 파시즘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지금 좌파는 상대를 파시스트로 간주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오히려 이롭게 하고 있다.
현대의 극우 세력은 좌파의 강력한 힘보다는 자유주의 자체의 위기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트럼프를 통해 목격하는 것은 ‘보나파르티즘’이다. 강력한 대중 운동이나 계급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대부분 수동적인 빈곤 서민들 지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 물론 파시즘에서 보나파르티즘에 이르는 스펙트럼은 더 급진적인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
지금은 실질적이고 견고한 연대 대신 일시적인 하이퍼정치적 군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민주 지도자는 변덕스러운 파도를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것이다. 변덕스러운 파도들 제도와 다시 연결시키고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우리는 조직에 가입하기보다 탈퇴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당에 가입하든 노조에 가입하든 집단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무력화시킨다. 이에 대한 합리적 반응은 무력감이다. 그럼에도 다시 정치화한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하이퍼폴리틱스는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여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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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문인도 '쌈'을 즐겼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소개된
문인 이옥(1760~1815)의 상추쌈 레시피!
문헌 속 기록을 따라가며 200여 년전의 그 맛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여러분만의 최애 쌈 조합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한국전쟁때 당시 금강산 암자에 모시고 있던 불상을 업고 월남하셨는데 그게 조선 후기 석조보살상임. 근데 노스님이 입적 전에 "이 보살님은 금강산 법기보살님이다"라고 말하셨다함. 실제 법기보살상이 맞다면 한국 불교사에선 나름 중요한 자료인데... 당연히 비공개중임. 나도 사진으로만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