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근처에 HOMELESS라는 가게가 문을 열었고 그 유리문에 어느 주민이 쪽지를 붙였다.
타인의 가난을 간판으로 쓰지 말라는 쪽지를.
그러자 가게는 그 옆에 손글씨 답장을 붙였는데, 세상에는 조폭떡볶이도 있고 바보낙지도 있고 미친양념치킨도 있다는 답장이었고, 그러니까 어리석은 이름이 세상에 이미 셋이나 있으므로 네 번째 어리석은 이름은 무죄라는 논증이었는데, 나는 이 논증 앞에서 모자를 벗는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완성한 유일한 논증이기 때문이다.
남들도 그런다는 논증, 이 논증으로 인류는 전쟁을 정당화했고 학교를 정당화했고 결혼을 정당화했고 이제 마침내 상호(商號)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쪽지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쪽지라는 것은 언제나 책상을 가진 인간이 쓰는 것이다. 책상이 없는 인간은 쪽지를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리문 위에서 벌어지는 이 논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상을 가진 자들끼리의 논쟁이고, 논쟁의 주인공인 책상 없는 자들은 그 유리문 앞을 지나가면서 두 장의 쪽지 중 어느 것도 읽지 않는데, 읽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자기에 대해 쓰인 글을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게는 답장의 끝에 시간이 증명할 것이라 믿는다고 썼는데, 시간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시간이 무언가를 증명하기를 기다린 인간들을 보아 왔고 그들은 전부 증명 없이 죽었다.
시간이 유리문에서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테이프를 떨어뜨리는 일뿐이다.
초록색 테이프는 떨어질 테고 쪽지 두 장은 청소부가 치울 테고 간판만 남을 텐데, 간판이란 오래 남는 물건이어서, 항의한 주민보다 오래 남고, 어쩌면 가게보다도 오래 남고, 망한 가게의 간판이 몇 년씩 걸려 있는 것을 나는 이 도시에서 수없이 보아 왔으니, 간판은 무엇보다 그 앞을 지나는 홈리스들보다 오래 남을 텐데,
그중 하나가 어느 밤 하필 그 유리문 앞에서 얼어 죽는다면, 간판은 밤새 켜진 채로 그를 비출 것이다, 조명이라는 것은 무엇이든 돋보이게 만들라고 있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시체는 쪽지보다 빨리 치워질 것인데, 쪽지는 몇 주씩 붙어 있어도 시체는 두 시간이면 치워지고, 이 도시가 무엇을 오물로 치는지는 치우는 속도가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시체와 산 사람의 구별은 치우는 쪽의 장부에서 점점 사소한 칸이 되어 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있으니까, 아직은.
치워지는 쪽이 아니니까, 아직은.
좋아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고 사람들이 장원영이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줫음 함 수십번 받아본 생일광고 보고싶어서 한참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디저트 한입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전히 컨페티를 붙잡고 소원을 빌고 예쁘단 말은 언제고 기쁘고 새삼스럽다는 단순하고 밝은 애임
염치 없지만,, 한번만 도와주세요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가 공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계세요,, 엄마는 백내장수술을 하셨지만
증기가 나오는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계십니다,,
이대로 엄마까지 잃을 거 같아서,,
여쭤봅니다,,
저희 해외 수출이 가능한지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싶습